254화. 오호대장 (1)
마가군은 야습하는 조조군을 격퇴하고 대승을 거뒀다. 제갈량의 계책이 만들어 낸 승리였다.
승상 조조는 자신의 군막으로 조인을 소환했다.
“노초를 잃은 데 이어 다시 악진을 잃었나. 고전하고 있구나, 자효.”
조조는 조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승상.”
“마초를 잡아 단숨에 전황을 결정지으려는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소부대 전투에서는 역시 마초를 당해내기 어렵군.”
방덕은 관중에 있고, 서황은 조조군의 포로가 되어 낙양에 유폐되어 있다. 지금 마초에게는 마가군의 양 날개라 불리는 두 장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초는 강했다.
조조는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자수,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장남 조앙이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소부대 전투에서는 마초를 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면?”
“전황을 대군끼리의 결전으로 만들어 가시지요. 전 병력을 동원해 총공세를 취하십시오. 온현은 작은 고을입니다.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7만 대군이 총공격하면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조조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곽가를 바라봤다. 그의 의견을 물으려는 것이다.
“장공자의 말이 옳습니다. 7배의 병력 우위가 있으면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피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조앙과 곽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나 마가군의 맹장들이 용맹으로 전황을 뒤집으려 시도할 테니,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것처럼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8척이 넘는 거한이었다. 기묘할 정도로 굵은 목과 큰 손이 눈에 띄었다.
반면, 거대한 체격 위의 얼굴은 분명히 소년의 그것이었다.
“소장이 오환돌기를 이끌고 막겠습니다.”
조조의 삼남, 올해 열여섯이 된 조창이었다.
가끔씩 하늘이 내린 용력을 타고난 인물들이 나온다. 조창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얼마 전 답돈이 죽은 후, 오환돌기들의 서열 다툼에 끼어든 조창은 그 타고난 용력으로 오환 대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조조는 조창을 잠시 내려다보다 말했다.
“자문(조창의 자), 너에게 적 맹장의 기습을 막는 역할을 맡긴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하명하십시오.”
“만약 마초가 직접 나타나면 반드시 자리를 피해라. 아직 네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조는 그대로 군의를 파했다.
다음날, 온현을 목표로 7만 조조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 * *
드르르륵!
연노차에서 여덟 발의 화살이 동시에 쏟아지자 화살에 맞은 조조군이 쓰러져 나갔다.
황충은 연노차가 한 번 제압한 공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이들이 창칼을 들고 저항했지만, 황충이 휘두르는 낭아봉 앞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 나갔다.
이런 싸움을 치른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그러나 조조군의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끝이 없군.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나?”
황충은 연노차 위의 곽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곽준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야, 저들이 다 죽거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겠지요.”
“저들이 먼저 죽을까, 우리가 먼저 죽을까?”
“아마 우리가 먼저 죽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내 생각도 그렇다네.”
황충과 곽준은 무심한 듯 문답을 주고받으며 손으로는 각자의 할 일을 했다. 황충은 낭아봉으로, 곽준은 연노로 각각 조조군과 싸우고 있었다.
“중막(곽준의 자), 묵가도 죽을 때가 되면 도교처럼 기도를 올리나?”
“하하하, 우리는 그런 것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지요.”
“그것참 재미없는 사람들이군.”
황충은 그렇게 말하며 적병의 시신을 들어 올려 적진으로 내던졌다.
우당탕!
시신에 맞은 적병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나동그라졌다. 동시에 황충이 수신호를 하자, 곽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보며 호령했다.
“퇴각하라!”
총공세가 시작된 후, 마가군은 거점을 하나씩 계속 빼앗기고 있었다.
조조군은 출혈을 감수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한 부대를 물리치면 다른 부대가 교대해서 투입되는 식이었다.
감녕이나 황충이 별동대를 이끌고 나서서 전황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오환돌기가 투입되었다. 오환돌기의 선두에 선 소년 장수 조창은 뛰어난 무용으로 마가군 별동대를 무력화시켰다. 덕분에 조인, 장합, 하후연은 부대 지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의 거점을 빼앗긴 황충과 곽준은 미리 약속된 장소로 퇴각했다. 온현 근처의 산속이었다.
산속에는 마가군의 군사들이 모여 있었다. 1만이 넘던 군사들은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바위 위로 마초가 올라섰다. 은빛 갑옷에 사자 투구를 쓰고, 비색 전포를 걸치고 있었다.
마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좌중이 조용해지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다들 엉망이군.”
아직 몸이 완전치는 않다. 그러나 지금은 마냥 회복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힘든 싸움이다. 적은 숫자가 많고, 강하다. 그러니까…….”
마초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열 것이다.”
텅.
마초는 팔을 고정하고 있던 부목을 빼서 내던졌다.
“이제 곧 원군이 온다. 서쪽에서 오는 원군은 지금쯤 함곡관을 넘고 있을 것이고, 남쪽에서 오는 원군은 호로관을 뚫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하면 이 싸움은 끝난다!”
원군이 온다.
마초는 부하들에게 이 사실을 주지시켰다.
서쪽에서 오는 원군은 관서대도독부의 원군이다. 이는 당연한 것이니 보안을 유지할 사안도 아니었다. 그러나 함곡관을 넘어 온현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반면, 남쪽에서 오는 원군은 다르다. 이제까지는 보안 때문에 원군의 존재를 따로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보안보다 사기가 더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원군의 존재를 알자 병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승리에 대한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내 투구를 잘 봐라. 그리고 이 투구가 향하는 곳으로 따라서 달려라. 맹진까지 달리면 조조군의 군량고가 있다. 그곳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며, 원군을 기다릴 것이다!”
“우와아아!”
마초의 연설이 끝나자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적의 군량고를 탈취하고, 그곳에서 보급을 해결한 후 원군을 기다린다.
전략이라고 할 수도 없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러나 총대장이 선두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대장 마초가 직접 선두에서 길을 연다. 마초는 이제까지 수십 번의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온 그 전략을 이번에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기에는 몸이 완전치 않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초는 오른손으로 금마삭을 단단히 쥐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황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공이 선두에 선다는 것만으로 병사들의 분위기가 바뀌는군요. 대체 얼마나 많이 이겼던 겁니까?”
“한 스무 번쯤 되나?”
회귀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자신도 헷갈릴 만큼 많은 전투에 종군했던 마초다.
마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자 투구를 쓰고 선두에 서서 돌진했다. 그리고 대열의 첫 번째 상대에게 금마삭을 박아 넣었다.
퍼억!
“으아악!”
적의 비명을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바로 다음 상대를 노린다. 쐐기형으로 진형을 짠 기병대가 자신을 꼭지점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뭉개진 적의 대열에 보병들이 뒤를 따랐다.
아주 단순하지만 막기 힘든 전략이었다.
얼마나 많은 적을 찌르고 벴을까?
그 숫자를 세기 힘들어졌을 때였다.
“마초는 순순히 말에서 내려 승상의 앞에 부복하라.”
오환족의 복식을 한 거대한 체격의 무사가 마초의 앞을 막아섰다. 반면 입으로 말하는 한어는 잘 교육받은 한인 귀족의 억양이었다.
마초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의 상대를 응시했다.
“뭐냐, 너는?”
“조창, 자는 자문. 조 승상의 삼남이다.”
자세히 보니 얼굴은 아직 앳된 소년이었다.
조창이라면 원래의 역사에서 나름대로 군공을 세웠다는 인물이다. 마초는 나관중에게 들었던 조창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렸지만,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장은 어린아이의 놀이터가 아니다. 목숨이 아깝다면 비켜라!”
마초는 그대로 조창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조창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침착했다. 말을 몰아 마초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환돌기에 수신호를 보냈다.
휘이이잉.
오환돌기는 조창의 수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화살을 쏘아붙였다. 순식간에 하늘을 까맣게 덮을 만한 화살 세례였다.
퍽! 퍽! 퍽!
마초는 금마삭을 크게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냈다. 빗나간 화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변의 땅에 박혔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활을 다 쏜 오환돌기들은 바로 다른 이들과 교대했다. 앞으로 나온 오환돌기 2열이 두 번째 화살을 날렸다.
퍽! 퍽! 퍽! 퍽!
답돈이 이끌던 때와는 전혀 다른 용병술이었다. 마초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조창은 능숙한 기마술로 마초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마초가 물러나자 오히려 앞으로 전진해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을 본 마초는 헛웃음이 나왔다.
“재능이 대단한 놈이군. 내 밑에서 한 번 키워 보고 싶을 정도인걸.”
얼핏 봐도 군재가 범상치 않았다. 마초 휘하의 젊은 장수들 중 필두로 꼽히는 왕평보다 나으면 나았지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상대를 하필 좋지 않은 시점에 만났다.
조창이 이끄는 오환돌기가 막아서자 마가군의 진격 속도가 느려졌다. 그 틈을 타서 조인, 하후연, 장합, 우금의 부대가 넓게 진을 펼쳐서 마가군을 포위하고 있었다.
“꿰뚫어 주마!”
마초는 기병대를 이끌고 뚫고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부대라면 기병의 충돌로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 마초의 정면에 있는 오환돌기는 조창의 지휘에 따라 계속 움직이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주변을 둘러싼 조인, 하후연, 장합, 우금의 부대는 오환돌기의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마초가 이끄는 기병대는 포위되게 되었다.
조창의 오환돌기가 만들어 낸 성과였다.
두두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조창의 옆으로 한 장수가 다가왔다.
이 전역의 주장, 조조였다.
“마맹기.”
조조는 마초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설마 이 정도까지 잘 싸울 줄은 몰랐네. 낙양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가서, 이만큼의 군세를 다시 만들고, 그걸로 나를 이렇게까지 고전시킬 줄이야. 그러나 이제 전세가 기울었군.”
“조맹덕.”
조조를 바라보는 마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조조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나보다 강했네. 비옥한 관중 평야, 십만 서량병, 천자의 신임, 게다가 젊은 나이까지. 그러나 너무 강했던 게 문제였어. 나는 나보다 강한 자를 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네. 반면 자네는 어떤가? 영웅이 된 기분에 취해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냐는 말일세.”
조조는 마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별안간 마초의 눈에서 타는 듯한 분노가 사라졌다.
마초는 조조를 마주 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을 빛냈다. 그러면서 다시 입꼬리를 올려, 한껏 웃는 표정을 지었다.
“조맹덕, 그대는 확실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천하 사람들을 적으로 돌렸나?”
마초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마초 자신의 왼편, 조조의 오른편이었다.
“이제 그 업보를 치를 순간이다.”
조조는 마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군사들은 하나같이 투구에 흰 천을 달아 귀를 덮고 있었다. 세 명의 장수가 말을 달려 군사들의 선두로 나왔다.
왼쪽에는 녹색 전포를 두르고 거대한 언월도를 든 장수.
오른쪽에는 검은 갑옷에 밤송이 수염을 기른, 쌍신모를 쥔 장수.
그리고 가운데에는 온통 흰 갑옷에 백마를 탄 장수가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