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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51화 (238/306)

251화. 팔문금쇄 (1)

두 명의 호표기가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황충은 왼손에 든 방패를 땅에 찍었다. 왼쪽 호표기가 달려들며 내지른 창은 황충의 방패에 막혔다. 방패는 호표기의 돌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황충은 동시에 오른손의 낭아봉을 휘둘러 오른쪽 호표기가 내지르는 창을 후려쳤다.

쾅!

낭아봉에 닿은 창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황충이 휘두른 낭아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창을 부수고, 그대로 오른쪽 호표기의 말을 후려쳤다. 낭아봉에 맞은 말은 네 발이 전부 허공에 뜨며 튕겨져 나갔다. 오른쪽 호표기가 말과 함께 미끄러지자 달려들던 다른 호표기들이 넘어진 오른쪽 호표기에게 걸려서 같이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

오른쪽이 정리되었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호표기들이 달려들었다. 선두의 한 기, 그리고 뒤따르는 네 기였다. 동료들이 쓰러져 나가는 것을 보고도 망설임이 없었다.

퉁.

황충은 낭아봉을 땅에 내려놓고 방패를 눕혀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냅다 던졌다.

퍽!

긴 방패에 맞은 호표기들이 쓸려나갔다. 순식간에 세 명의 호표기가 땅을 굴렀다. 나머지 두 명의 호표기는 황충이 눈을 부릅뜨자 덤벼들지 못했다.

황충은 낭아봉을 챙겨 들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이 끌고 온 수레로 다가가 방패를 다시 하나 뽑아 들었다.

그사이 다른 호표기들이 길게 산개해서 황충을 둘러쌌다. 황충이 순식간에 십여 기를 무력화했지만, 아직 사십 기가 남아 있었다.

“계속해 보자는 건가? 역시 조조군의 호표기는 용감하군.”

황충은 큼지막한 이목구비로 활짝 웃었다.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차림새였다면 서글서글한 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인상이 드러나기에는 황충의 풍모가 너무 특이했다. 투구가 날아가서 드러난 머리는 바싹 밀어버린 상태였다. 병졸들과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옷 밑으로 장대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황충을 둘러싼 호표기 사십 기는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왔다.

깡!

호표기 하나가 황충의 낭아봉을 찔렀다. 황충이 날아드는 창을 쳐내자 반대쪽에 있던 호표기가 유성추를 던졌다. 그마저도 피했을 때, 대도를 든 호표기 둘이 양쪽에서 쓸어 왔다.

황충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 호표기들의 공격을 피하고, 흘리며 전진했다. 낭아봉과 방패에 닿은 호표기들은 그때마다 폭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이전은 장도를 거머쥔 채 계속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자가… 아직까지 무명이었다는 말인가?”

호표기는 본래 천하 용장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다. 지금 황충을 둘러싼 대형은 관우, 장비, 마초를 상정하고 연습한 대형이었다.

그런데 황충은 그런 호표기를 상대로, 말도 없이 단신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저 큰 몸뚱이로 하루 종일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치고 빠지며 싸워라! 시간을 끌면 잡을 수 있다!”

이전은 지시를 변경했다.

황충의 체력 소모를 노린 전법이었다. 황충은 오늘 단신으로 천근노 열 발을 쏘고, 조조군의 대열을 뭉개버린 후, 호표기 오십 기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제는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이전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군.”

황충은 조금 떨어져서 지휘하는 이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부우우우—

이전의 귀에 익숙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황충은 처음 듣는 소리다. 그러나 이전은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개봉대전의 마지막 순간, 이 소리를 울리며 마초의 금철기가 돌격해서 전투를 끝냈었다.

“설마… 설마?”

이전은 눈을 부릅뜨고 영채 쪽을 바라봤다.

예상대로였다. 강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숫자는 오백 정도밖에 안 돼 보였다.

문제는 그 선두에 대장군 마초의 군기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첫날, 첫 싸움에 적의 총대장이 오백 기만을 이끌고 직접 출진했다.

이럴 때는 총력전으로 적의 총대장을 잡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전은 다른 선택을 했다.

“퇴각하라!”

마초가 기병대를 이끌고 있다면 이 정도의 준비로는 이길 수 없다.

이전은 바로 퇴각의 신호를 내렸다. 이제 이십 기가 전사하고 삼십 기만 남은 호표기들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전의 구상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두두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기병대의 선두에서 한 기가 뛰쳐나왔다. 중원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대한 백마, 도철이었다. 도철은 폭발적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다른 말들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도철에 탄 마초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을 잔뜩 숙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달려와 호표기에게 충돌하는 순간 금마삭을 옆구리에 끼우고 단단히 조였다.

콰드드득!

마초의 금마삭이 호표기 하나를 뚫고, 뒤이어 또 하나를 뚫고, 다시 또 하나를 뚫었다.

마초는 세 명이 꽂힌 금마삭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치란을 뽑아 들고 닥치는 대로 호표기를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기껏 내가 다 이겨 놨더니…….”

볼멘소리하는 황충을 향해 마초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적장을 잡으라고. 저기 도망치고 있지 않나?”

황충은 고개를 돌려 이전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전은 황충과 맞상대할 생각이 없는 듯, 퇴각하기 위해 말머리를 돌린 참이었다.

‘저 청년은 지모가 있어서 훗날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잡는 게 좋겠군.’

황충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패를 땅에 꽂았다. 그리고 낭아봉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붕. 붕. 붕. 붕.

황충의 몸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도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마침내 여섯 바퀴째를 돌았을 때, 황충은 손에 쥐었던 낭아봉을 놓았다.

마치 발석차에서 쏜 것처럼, 황충의 낭아봉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그리고 끝내 이전이 타고 가는 말 궁둥이에 내려앉았다.

퍼억!

말이 무너지며 이전도 튕겨 나가 땅바닥을 굴렀다. 곧이어 따라간 강족 기병들이 이전을 둘러싸고 칼을 겨눴다.

황충은 방패도, 낭아봉도 없는 맨몸으로 이전이 쓰러진 자리까지 다가갔다. 이전은 다행히 낭아봉에 맞지 않아서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다행히 죽지 않았군. 산양의 이전, 조조 같은 역적의 밑에 있느니 나와 함께 밝은 주인을 따르지 않겠나.”

황충은 장도를 짚고 겨우 서 있는 이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 감히 세 치 혀로 항복을 권유할 셈이냐!”

지모가 있는 자라고 어찌 감정이 없을 것인가?

이전은 청년다운 혈기로 일갈한 후 장도를 뽑아 들고 황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황충은 그 모습을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턱.

황충은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디디며 이전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이전의 투구 쓴 머리를 후려쳤다.

쩡!

“컥…….”

이전은 쇠가 울리는 소리가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황충이 자신을 들쳐 메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전에 정신을 잃었다.

* * *

첫날의 싸움은 마가군의 대승이었다.

오사진으로 우회하던 누규의 별동대는 마가군의 기습을 받아 전멸했다. 뒤이어 정면에서 영채를 습격하던 우금의 선봉대도 황충의 활약에 의해 패주하고, 부장 이전이 포로로 잡혔다. 대장 우금의 빠른 판단으로 그나마 전력을 많이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조조군이 다시 기세를 올린 것은 삼 일 후, 우금 대신 다른 대장이 투입된 다음이었다.

“표기장군, 아군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공격의 명을 내려 주십시오.”

“기다려라.”

표기장군 조인은 부장 주령의 말을 물리치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는 좀처럼 공을 다투는 법이 없었다. 임무가 크든 작든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조조의 육촌 아우인 그에게는 그저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기만 해도 군부의 최고 실권자 자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만약 그런 그가 다른 장수들과 전공을 다툰다면?

‘내게 전공은 필요 없다. 가장 빛나는 전공은 항상 승상의, 맹덕 형님의 것이어야 한다. 그다음 가는 전공은 우금이나 악진, 장합의 것이어야 한다.’

최고의 실력과 최고의 배경을 동시에 가진 자가 최고의 성과까지 낸다면 다른 장수들의 사기가 꺾일 것이다. 그런 것은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조조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첫 싸움에서 패한 조조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패를 냈다.

휘우우웅.

쾅!

발석차에서 발사한 바윗덩어리가 영채에 직격했다. 마가군의 군사들이 영채에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 한 시진 안에 무너지겠군.’

조인은 첫 싸움에서 패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발석차를 만들고 있었다.

사실 온현 주변에서는 발석차의 탄이 되어 줄 바위를 수급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발석차는 단순히 영채 하나를 공략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발석차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남은 마가군의 영채들에 계속 위협이 된다는 뜻이다.

‘마가군이 아군보다 유일하게 우세한 것은 마초가 이끄는 기병대의 힘이다. 난전이 되고 발석차 주변의 경계가 허술해지면, 마초는 발석차를 파괴하기 위해 나올 것이다.’

발석차는 마초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예상대로 영채는 한 시진을 넘기지 못했다. 조인은 영채를 둘러싼 목책이 파괴된 것을 보고 천천히 부대를 전진시켰다. 발석차 주변의 경계는 일부러 허술하게 한 채였다.

마가군은 다음 영채로 퇴각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영채 안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조인의 예상은 적중했다.

강족 기병들이 우회해서 조조군 대열을 크게 가로지른 것이다. 경기병이었지만 마초가 이끄니 그 위력이 금철기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동력과 범용성에서 앞서니 변화무쌍한 전장에서는 금철기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저들 사이에 마초가 있다. 준비하라.”

“존명!”

부장 주령은 군례를 표한 후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나섰다. 주령의 안면에 있는 큼지막한 칼자국이 꿈틀거렸다.

강족 기병들 사이에는 예상대로 마초가 있었다. 조조군 진영에 거의 근접해서 정체를 드러낸 마초는 여전히 눈부신 위용을 자랑하며 조조군 병사들을 찌르고 벴다. 신위천장군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만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단기필마로 저 정도의 무위를 발휘할 수 있는 건가. 신기할 정도군.”

조인은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안장에 걸어 둔 칼을 꺼내 들었다.

춘추시대의 칼과 비슷한, 날이 넓은 장검이었다. 다른 점은 훨씬 길고, 크고, 무겁다는 점이다. 조인은 자신의 애병 팔척검을 들어 어깨에 메고 마초를 향해 말을 달렸다.

도철을 타고 날뛰는 마초는 눈에 잘 띄어 찾기 쉬웠다. 조인은 난전을 벌이는 마초에게 달려 들어가며 팔척검을 크게 휘둘렀다.

퍽!

마초의 금마삭이 두 갈래로 부러져서 하늘로 날았다.

“오랜만입니다, 대장군.”

화려하게 첫인사를 한 조인은 크게 한 바퀴 돌며 말을 멈췄다.

마초는 자루만 남은 금마삭을 던져 버리고 주변의 병사가 던지는 새 금마삭을 받아 들었다.

“낯짝이 좋아 보이는구나, 조인. 역적질에 성공해서 어지간히 호의호식한 모양이군.”

조인 또한 지난 생의 숙적이다.

그런 상대와 칼을 맞대게 된 마초는 기쁜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고 있었다.

“승상을 역적이라 칭하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나? 조맹덕이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정변을 일으켜 천자를 핍박하고 백관들을 주살할 줄은 몰랐다. 어디 동탁이나 할 법한 짓을…….”

“정말 천자를 핍박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조인이 말하자 마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의 사직에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는 나 마초다, 뭐 그런 궤변을 늘어놓을 셈이냐?”

“자신보다 한 세대 전의 나이 든 권신, 그리고 같은 세대의 젊은 영웅. 폐하께서 누구의 집권을 바라시겠습니까.”

“역적의 졸개 놈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발석차보다 먼저 네놈의 입부터 다물게 할 것이다.”

마초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번쩍 빛났다.

조인은 말없이 수신호를 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두 명의 부하 장수들이 나타났다.

한 명은 주령. 또 한 명은 노초.

병법에 어둡고 살육을 즐기는 인물들이라 낮은 직위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소규모 전투에서만큼은 확실한 실력을 가진 장수들이기도 했다.

“세 명이면 이길 것 같았나?”

마초는 코웃음을 쳤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발석차 뒤에서 마초가 아는 얼굴들이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에 풍성한 수염을 기른 장수, 그리고 작은 키에 각진 턱을 가진 장수였다.

마초는 한 방 먹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우금에 악진이면 좀 까다롭지. 상장 둘을 동시에 매복시켰다는 건, 내가 발석차를 파괴하러 올 줄 알았다는 건가. 과연 조인이군.”

조인, 주령, 노초, 우금, 악진.

마초는 자신을 둘러싼 다섯 명의 장수를 보며 금마삭을 한 번 돌려서 비껴 잡았다. 5대 1의 싸움이라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한 명이 더 나타났다. 마른 체구에 키가 껑충하고, 단창이 잔뜩 꽂힌 말을 타고 있는 장수였다.

장수는 마초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장합이 대장군을 뵙습니다. 천하에 이름 높은 대장군의 창술과 도법을 오늘 한 수 견식하고자 하니 물리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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