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서전 (1)
조조는 그대로 군사를 일으켜 온현으로 진군했다. 개봉대전에서 동원한 군사 수를 상회하는 7만의 대군이었다.
양식이 없어서 문제였을 뿐, 그 시절에도 양식만 받쳐 준다면 10만 이상을 동원할 만한 능력이 있던 조조다. 그 사이 중원이 안정되었고, 원소가 다스리던 기주와 청주의 인구와 물자까지 손에 넣었다.
마가군이 중앙 정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조조군은 내실을 다지고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 왔다. 조조의 세력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낙양에서 맹진 포구를 통해 황하를 건너면 온현이 지척이다. 손수 군사를 이끌고 온현 공략에 나선 조조는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군의를 열었다.
“온현에 모인 적군이 예상보다 많군.”
표기장군 조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장료의 병주군이 온현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원래 온현의 수비병들과 합치면 도합 1만에 달할 것입니다.”
1만이라면 일개 현이 오랫동안 수용할 수 있는 군사 수가 아니다.
이만큼의 대군이 온현에 모여들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초가 온현에 있는 게 맞나 보군.”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조는 군막 안에 모인 휘하 장수들을 둘러봤다.
조인, 우금, 악진, 장합, 주령, 노초, 그리고 조앙과 조창.
함곡관을 지키는 조홍과 별도의 임무를 부여받은 하후연을 빼면 휘하의 맹장들이 전원 집결했다. 조조 자신이 꺼낼 수 있는 최적의 인선이다.
참군 곽가가 말했다.
“승상, 방심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온현의 현령 제갈량이라는 자가 불과 1년 만에 현성을 높게 증축하고, 곳곳에 요새를 지어서 방어 체계를 만들었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또한 마초는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깨뜨리는 데 능하니, 적진에 정말로 마초가 있다면 뭔가 복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익주 공략의 실패 이후 오랫동안 칼을 갈아 온 곽가다. 과거의 경박한 성품은 사라지고 진중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조조는 걱정하는 곽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 복안이란 게 무엇인지, 자네 생각을 한번 들어볼까.”
“마초는 선공을 취할 것입니다.”
온현의 방어 태세가 예상보다 좋다. 곳곳의 요새를 활용해서 농성하면 상대가 대군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조와 곽가가 아는 마초라면 그런 전투 방식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병사의 수, 병사의 질, 장수의 질, 그리고 보급에서도 아군이 압도적입니다. 마초가 가진 우위는 단 하나, 자신이 선두에 서서 기병대를 이끌었을 때의 무용뿐입니다. 마초는 그것을 활용하려 할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승패는 뻔하다. 조조군은 의외로 단단한 방어 체계에 막혀 꽤 고전하겠지만, 결국 오래지 않아 그것을 돌파하고 승리할 것이다. 요새에만 의지하면 마초 입장에서는 잘 싸울 수는 있겠지만, 석패 이외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장에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마초가 가진 유일한 강점, 단위 부대의 전투력뿐이다.
“봉효(곽가의 자), 그대의 말이 내 생각과 같다. 마맹기는 앉아서 싸움을 기다리는 성정이 아니다. 그는 필시 먼저 나올 것이다. 첫 싸움에서 크게 이겨서 기세를 쥘 생각이겠지.”
마초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최정예 기병대도 따라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온현에는 기병대가 없다.
조조는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누자백이 지금쯤 오사진을 건너고 있겠군.”
오사진은 맹진의 동쪽에 있는 작은 나루터다.
대군이 이동할 만한 지형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오사진을 건너면 온현의 동쪽이 나온다. 지금 조조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과 반대편이다.
조조의 부하 누규가 이 오사진을 통해 기병대를 이동시켜, 전장 뒤편을 헤집으며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온현의 최정예 기병은 마초와 함께 출진한 상태일 테니 대응하지 못하겠지. 누자백이 얼마나 큰 공을 세우는지 한 번 볼까.”
조조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싸움에 나설 때 자주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 * *
누규, 자는 자백.
본래 형주 남양 호족 출신인 인물이다. 군재가 범상치 않아서 원래의 역사에서도 조조가 자주 조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군재에 만만치 않은 규모의 사병집단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형주목 유표도 그를 우대할 수밖에 없었다. 유표의 세력권 안에서 나름대로 반 군벌 행세를 하던 그였지만, 유표가 마가군과 동맹을 맺고 북방 진출을 포기하며 입지가 애매해졌다. 더 이상 부하들에게 북방 진출이라는 원대한 꿈을 보여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 승상에게 귀부했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누규는 지금 승상부의 중랑장으로, 부하들 삼천 명을 거느리고 별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사진을 통해 황하를 건너서 온현 수비군의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이다.
온현 수비군은 서쪽에서 진군해 오는 조조군과 맞서게 될 것이다. 그때 누규가 거느린 삼천 군사가 동쪽에서 나타난다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후방을 공략당하며 많은 손실을 입을 것이다.
“잘하면 군량고를 털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된다면 이번 전투의 제일 전공은 누규의 것이 된다. 누규는 부푼 마음을 안고 황하를 건넜다.
그런데 강을 건너자마자 멀리서 뿌옇게 흙먼지가 일었다.
“저놈들은 뭐지?”
누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서 이는 흙먼지를 응시했다.
그때, 미리 보내 놓은 척후병이 헐레벌떡 달려와 누규에게 외쳤다.
“장군! 마가군… 마가군입니다!”
“뭣이? 마가군 놈들이 우리의 도하를 눈치챘는가?”
누규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차피 싸움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누규는 말 위에 올라 활을 굳게 잡고 전령에게 말했다.
“어떤 놈이든 상관없다. 우리 형주병의 힘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적장은 누구냐?”
적이 마가군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적장이 누구인지 알리는 군기가 올라가 있다는 뜻이다. 누규는 누구의 군기가 올라가 있는지를 물었다.
전령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적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장군…….”
“어허,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그것이… 대장군 마초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누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뭐라고?”
“대장군 마초의 군기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적병의 수는 약 오백, 전원 활과 만도로 무장한 강족 기병으로…….”
누규에게는 더 이상 전령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전원 돌격 준비! 중기병이 앞으로 나서라!”
잘하면 대장군 마초를 잡을 수 있다.
그 또한 장수로서 이름을 떨친 자이기 때문일까? 겁을 먹고 사색이 된 전령과는 달리, 누규는 마초의 이름을 듣자 공명심에 불탔다.
“오늘, 내 손으로 마초를 잡을 것이다!”
삼천 대 오백. 약 여섯 배의 병력 차이가 있다. 강족 기병이라면 가벼운 차림의 경기병이다. 중기병을 돌격시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규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흙먼지가 가까워졌다. 강족 기병 5백이었다. 선두에는 대장군 마초의 군기가 올라가 있었다.
옆에서 달리던 월길은 마초를 보며 물었다.
“주공, 이곳으로 조맹덕의 별동대가 올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월길. 예전에 너에게 했던 꿈 이야기 기억하냐?”
“아, 그 30년이나 되는 긴 꿈을 꾸셨다는 이야기요? 꿈속에서 조맹덕과 싸우기도 하고, 유현덕의 밑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꿈속에서 조맹덕이 과감한 기습공격을 자주 하더구나. 오사진을 건너면 온현의 후방이 그대로 노출되지. 이 정도의 좋은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그런데, 적장이 누구라고?”
“누규라는 자입니다. 본래 형주 호족이라고 하더군요.”
“누규라.”
마초가 아는 이름이었다. 지난 생에서 조조와 천하를 놓고 한 판 붙었을 때, 조조의 곁에 있던 인물이다.
‘그래, 기억난다. 축성에 능했던 자다. 저자가 하룻밤 사이 영채를 만들어서 꽤 고전했었지.’
척.
마초는 그대로 사자 투구를 들어 머리에 썼다. 오랜만에 갖춰 입은 은빛 갑옷이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나고, 천자의 하사품인 비색 전포 자락이 크게 흩날렸다.
“지난 생의 인연을 또 만나는군. 이번에는 내가 기병전을 가르쳐 주지.”
마초는 푸른 눈을 빛내며 특유의 악당 같은 웃음을 지었다.
“산개하라!”
마초가 호령하자 월길이 명을 받아 깃발을 흔들었다. 강족 기병 5백은 일사불란하게 분열하게 대열을 넓게 펼쳤다. 손으로는 저마다 활을 꺼내 들었다.
끼이이익.
앞으로 나선 월길이 활을 한껏 당겼다.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붙잡고 앞을 노려보던 월길은, 누규의 중기병들이 50장 안으로 들어오자 시위를 놓았다.
탕!
월길의 활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그것이 신호였다. 넓게 대열을 펼친 오백 기병대가 일제히 활을 당겼다. 화살이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었다.
퍽! 퍽! 퍽! 퍽!
“으아아악!”
유목민 궁기병의 활은 한인들의 예상보다 조금 더 강하고, 유목민 궁수의 실력도 한인들의 예상을 조금 상회한다. 유목민이 익숙하지 않은 형주 군사들은 강족 궁기병의 사거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첫 사격에 수십 명이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탕!
퍽! 퍽! 퍽! 퍽!
월길은 말없이 두 번째 화살을 쏘아붙였다. 두 번째 화살은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사람과 말이 쓰러지자 형주 중기병들은 전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원래 두 발을 쏘고 거리를 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적의 피해가 크자 마초는 계획을 수정했다.
세 번째 화살이 날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병들이 쓰러져 갔다.
“50보 뒤로!”
마초가 외치자 월길이 군기를 흔들었다. 강족 기병들은 빠른 속도로 50보 뒤로 물러났다. 다시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달려라! 저들을 쫓아라!”
누규는 충혈된 눈으로 군사들을 독려했다.
아무리 경기병이라지만 물러나는 걸음이 달려가는 걸음보다 빠를 수는 없다. 중기병대가 한 번 근접하기만 하면 경기병을 와해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물러나던 강족 기병들 중 여럿이 몸을 뒤로 틀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뒤쪽으로 활을 쏘는 번신배사의 수법이었다.
퍽! 퍽! 퍽!
“이런 제기랄!”
번신배사는 궁마술의 달인만이 쓸 수 있다는 경지다. 이것을 할 수 있으면 평원의 싸움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한인 기병이라면 어지간한 정예들만이 번신배사로 상대 기병을 맞출 수 있다. 그런데 유목민 중 고참병에 속하는 자들은 죄다 번신배사를 활용했다.
심지어 마초를 따르는 강족 기병들은 거의 전원이 번신배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10년간 서량에서, 관중에서, 익주에서, 그리고 중원에서 수많은 실전경험을 쌓아 온 정예부대이기 때문이다.
누규의 중기병대는 후퇴하면서도 사격을 멈추지 않는 강족 기병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강족 기병들은 50보를 후퇴하자 다시 한번 정렬하고 일제사격을 가해 왔다.
퍼퍼퍼퍽!
사격 한 번에 수십 기가 쓰러지는 일이 네 번이나 반복됐다. 누규의 기병대는 이제 대열이 크게 흐트러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하나다.
“어떻게든 붙어라!”
누규는 병사들을 더 몰아쳤다. 한 번 접근해서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다닥.
순간, 말발굽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강족 기병대의 대열에서 단 1기가 뛰쳐나왔다.
다다다닥.
사자 투구를 쓴 마초였다. 돌격하는 누규의 기병대에 혼자서 달려들고 있었다. 도철이 최고 속도를 내자,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마초의 모습이 엄청나게 커졌다.
‘빠르다.’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끼이익.
누규는 활을 당겨 마초를 겨눴다. 달려오는 상대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마초의 쇄도가 워낙 빠르니 기회는 딱 한 번이다.
달려오던 마초는 금마삭을 들어 정면을 겨눴다. 그리고 누규를 향해 똑바로 질주했다.
탕!
누규가 활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직선에 가까운 궤도로 마초의 가슴팍을 향해 날았다. 나름대로 명궁이라고 불릴 만한 솜씨였다.
그러나 마초의 가슴팍에 닿기 전에 화살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퍽!
금마삭의 창촉이 날아오는 화살촉을 정면으로 뚫었다. 화살은 허공에서 폭발하듯 사라졌다.
날아오는 화살을 창촉으로 꿰뚫은 마초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대로 누규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이게… 이게 천하제일인인가.”
누규는 방금 일어난 일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콰직!
마초가 대열에 충돌했다. 중기병 몇몇이 몸으로 누규를 막아섰지만 허사였다. 마초는 누규를 향해 겨눈 금마삭을 크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쭉 뻗은 금마삭에는 어느새 세 명이 동시에 꿰뚫려 있었다.
두두두두.
도철은 속도만 빠른 말이 아니었다. 발굽으로 땅을 짓이기며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적병들을 밀어내고 그대로 돌진해 왔다. 마초는 간단히 손을 놀려 적병의 몸에 꽂힌 금마삭을 빼내고, 다시 누규를 겨눴다. 그리고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쾅!
일합을 겨룰 새도 없이, 금마삭에 누규의 가슴이 뚫렸다.
“컥, 크윽… 마…….”
누규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마초를 향해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마초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누규의 몸에서 창을 뽑아낸 마초는 그대로 적진을 몇 번 휘저었다.
바닥에 쓰러진 누규는 죽기 전까지 잠시 동안 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단 한 기가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보이며 자신의 기병대를 와해시켰다. 그리고 유유히 돌아가자 다시 한번 강족 기병들이 퍼붓는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백 기가 삼천 기를 압도하는 광경이었다. 누규는 자신이 키운 기병대가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