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료래맹진(遼來孟津)
장료가 이끄는 100기는 육손이 펼친 화공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벌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런 그들의 앞을 오환돌기가 가로막았다.
본래는 가죽 갑옷에 짧은 활과 굽은 칼로 무장한 전형적인 유목민 기병이다. 그러나 조앙이 새롭게 무장시킨 오환돌기는 금철기의 양식과 비슷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철갑에 마삭(馬矟, 기병창), 그리고 고정식 안장과 등자까지 있구만. 돈을 좀 들였겠어.”
항상 돈에 민감한 장료다. 오환돌기의 무장을 훑어보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을지 잠시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하여튼 어마어마하게 들었겠군.’
조조는 용병의 달인이다. 이유 없이 이런 고비용 부대를 편성했을 리 없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확실한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편성했을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라면 한 가지뿐. 마가군과의 회전에서 쓰기 위해서겠지.”
단위 부대의 전투력이라면 서량의 마가군 기병대가 천하제일이다. 꼭 금철기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일반 경기병들도 기마술이나 훈련도, 사기에서 중원의 기병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만약 조조군과 마가군이 대규모 회전을 벌인다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실이다. 단위 부대의 전투력에서 앞서는 부대가 있어야, 조조군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기반으로 수 싸움을 해 볼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그 또한 대열을 갖추고 돌격을 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육손의 화공으로 인해 오환돌기의 대열이 흐트러져 있었다. 게다가 절반은 강을 건넜고, 절반은 강을 건너지 못한 상태였다.
다다닥.
장료는 긴 자루가 달린 참마검을 옆구리에 끼고, 말을 달려 맨 앞으로 나섰다.
자신을 발견한 오환돌기들이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달려왔다. 장료는 씩 웃으며 그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쾅!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참마검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참마검이 만드는 궤적을 따라 그대로 선혈이 튀었다. 달려오던 오환돌기 하나의 어깨 위가 참마검에 맞아 통째로 날아갔다.
끼이익.
장료는 그대로 말발굽을 미끄러뜨리며 죽은 오환돌기가 있던 자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 번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근처에 있는 오환돌기들을 눈에 담았다.
‘왼쪽에 셋. 오른쪽에 둘. 오른쪽 2열은 이미 대열을 갖췄고, 왼쪽 2열은 아직 허술하군.’
찰나의 순간이면 상대의 움직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남다른 안력을 가진 장료다. 그는 왼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참마검을 휘둘렀다.
퍼억!
이날을 대비해 날카롭게 벼린 참마검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왼쪽에 있던 오환돌기 하나의 목이 허공으로 날았고, 장료는 그가 원래 있던 자리로 뛰어들었다. 장료가 피한 곳으로 오른쪽에 있던 오환돌기들의 창이 덮쳐 왔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
오환돌기들이 시끄럽게 외치며 서로에게 뭔가를 알렸다. 흉노 말을 꽤 잘하고, 선비족 말도 어지간히 하는 장료다. 오환족의 말은 몇 마디밖에 몰랐지만, 대강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료가 눈으로 다음 수를 꿰뚫어 본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다.
장료는 개의치 않고 참마검을 휘둘렀다.
퍽!
퍽!
언제나 그렇듯이 장료의 칼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중무장을 한 오환돌기들은 한 합에 하나씩 쓰러져 나갔다.
퍼억!
자신감이 붙은 장료가 참마검을 길게 잡고 크게 휘둘렀다. 마치 마초나 여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참마검의 궤도 위에 있는 두 명의 목이 동시에 하늘로 날았다.
“장료 장군을 호위하라!”
장료를 따르는 아장이 뒤에서 크게 외쳤다. 아장은 긴 창을 들고 장료에게 접근하는 오환돌기들을 찔러 떨어뜨리며 뒤를 따랐다.
장료는 씩 웃으며 아장을 돌아봤다.
“백도, 많이 늘었구나.”
“이 정도 실력은 원래부터 있었습니다.”
“자만하면 죽는 곳이 전장이다. 이놈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 무리하지 마라.”
학소, 자는 백도.
병주 태원 출신으로 현지에서 모병한 인물이었다. 장료를 병주로 부임시킨 마초는 마치 신통력이 있는 것처럼, 태원의 학소라는 청년을 데려다 아장으로 쓰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원에 가니 학소라는 청년이 있었다. 써 보니 실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무예도, 지휘도 자질이 뛰어난 녀석이다. 경험만 더 쌓으면 족히 1만의 군사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마초가 학소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등용하라고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초는 종종 이런 식으로 인재를 영입하곤 했고, 그 선택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학소 또한 아장으로서 대단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장료는 학소의 어깨를 툭 치고 다시 참마검을 잡았다.
“세간에서는 혼자 힘으로 전장의 승패를 뒤바꾸는 무장을 두고 천하 용장이라 부르지. 우리 주공, 죽은 온후, 그리고 관우, 장비…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칼을 쓰던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오른 무장들이다. 그들의 싸움을 보며 깨달은 게 있지.”
오환돌기는 과연 정예병이었다. 장료의 칼에 순식간에 십여 명이 전사했지만 위축되지 않고 다시 장료의 주변을 둘러쌌다.
장료는 그런 오환돌기들을 보며 씩 웃었다.
“나도 마음가짐을 바꾸면, 언젠가는 그들과 같은 반열에 설 수 있다는 것.”
팟!
장료는 그대로 대열의 가운데로 돌진해 들어갔다. 신안이라 불리는 눈에는 십여 명의 오환돌기 각각이 취하는 동작들이 이미 입력되어 있었다.
콰직!
장료는 상대가 내지르는 창을 피하며 참마검으로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찔린 상대의 창을 잡아 몸을 지탱한 채, 참마검을 옆으로 크게 한 바퀴 돌리며 반원을 그렸다.
퍼억!
칼끝을 따라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한 초식에 세 명의 오환돌기를 벤 장료는 다른 이들을 상대하지 않고 적진 깊숙한 곳으로 치고 들어갔다.
“오늘,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늠해 보리라.”
퍽!
장료는 그대로 오환돌기들을 짓밟고 들어갔다.
장료가 원래 즐기던 싸움의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까지는 몰래 잠입해서 적장의 목을 취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마초나 여포가 그런 것처럼 장병기를 들고 정면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진을 분쇄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열이 망가진 기병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이렇게 적 기병대의 전열을 망가뜨리는 것이, 맹장 한 명이 전쟁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장료를 향해 주눅 들지 않고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안평의 견초다. 감히 조 승상의 군사에게 대적할 셈이냐? 누군지 이름을 밝혀라!”
큼지막한 대도를 들고 짧은 턱수염을 기른 청년이었다. 장료는 달려오는 견초를 보며 실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신안은 상대가 칼을 뽑아 들고 달리는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무공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학백도가 상대하면 딱 좋을 녀석이군. 하지만 지금은 갈 길이 급하니 내가 직접 상대해 주마.”
장료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대로 대열을 부수며 달렸다. 그러면서도 방해받지 않고 달려 들어오는 견초와 속도가 비슷했다.
30장 너머에서 대치하던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20장, 10장, 5장으로 가까워졌다. 마침내 두 마리 말이 서로 엇갈리게 될 때, 견초가 오른손에 쥔 대도를 한껏 뉘어서 강하게 휘둘렀다. 손바닥을 단단히 조인 멋진 참격이었다.
부우웅!
그러나 장료는 견초의 수를 미리 읽고 있었다. 말머리의 방향을 틀어 견초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견초는 오른손의 대도를 허공에 휘두르는 꼴이 되었고, 장료의 시야에 견초의 몸통 옆면이 훤히 드러났다.
촤악!
참마검이 섬뜩한 빛을 뿌렸다. 견초는 급히 몸을 틀어 봤지만 허사였다. 허공에 피가 흩뿌려지며 몸통이 크게 베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크윽, 제길!”
견초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말고삐를 잡았다.
‘강하다. 누구기에 이렇게 강한가?’
견초 또한 어지간한 마가군 장수와는 승부를 겨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실눈의 무장은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아무리 마가군이라도 견초를 압도하는 무장이 여러 명 있을 리 없다. 견초의 머릿속에 마가군 장수들의 이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전장군 서황은 승상부에 유폐되어 있다. 진서장군 방덕은 장안에 있다. 절충장군 감녕은 항상 구리 방울을 달고 다닌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남는 이름은 하나.
견초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실눈을 한 장수가 휘두르는 참마검이 허공에 다시 한번 호를 그렸다.
퍽!
동시에 견초가 탄 말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았다. 머리를 잃은 말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미끄러지고 견초는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
“컥…….”
견초는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참마검을 든 장수는 간신히 주춤거리며 일어나는 견초를 흘긋 보고 외면했다. 그리고 말을 달려 적진 더 깊숙한 곳을 향했다.
“나와라, 답돈! 내가 바로 안문의 장료다!”
장료의 호령을 듣자 견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탕구장군 장료였나. 듣던 것 이상이로구나. 어쩌면 저자도 천하 용장…….”
퍽!
견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장료를 따라 달려온 학소의 창이 견초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견초의 입에서 피거품이 비어져 나왔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선비족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지용겸비의 명장 견초다.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일까.
창에 가슴을 관통당한 견초의 몸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오환족 대인 답돈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한참 황하를 건너는 중이었다. 그러다 의문의 상대가 기습해 왔다. 상대는 전예가 손도 쓰지 못할 만큼 용병술이 뛰어났다. 그런 상대가 화공을 가하니 대열이 결정적으로 흐트러지게 되었다.
오환돌기의 대열이 흐트러지자 상대는 100기만을 이끌고 1만 오환돌기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답돈의 부하들을 마구 도륙하며 길을 열고 있었다.
“그 적장의 정체가 마가군의 장료란 말이지. 차라리 잘 됐군. 내 이름을 중원에 알릴 기회다.”
답돈은 묵직한 철퇴를 들고 앞으로 나서서 달려오는 장료를 맞이했다.
멀리서 장료가 달려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답돈은 장료를 향해 약간 어색한 한어로 외쳤다.
“네 이놈! 오늘 나와 백 합을 겨뤄 승부를 가리자!”
“이런, 이런. 한어를 잘 못 하는군. 이럴 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고.”
장료는 참마검을 비껴들고 혀를 찼다. 여전히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두 사람의 말이 근접했다. 답돈은 철퇴를 들어 어깨에 멘 채 장료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입으로는 백 합을 겨루자고 말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저놈이 검술을 아무리 잘해도 힘이라면 내가 우세하다. 철퇴의 무게로 긴 칼을 내리누르면 당해낼 수 없을 터. 단 한 번의 공격에 승부를 건다.’
다닥. 다닥. 다닥.
장료는 답돈의 팔 근육이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머리가 근접했을 때, 참마검의 자루 끝을 잡고 가장 길게 만들어 벼락같이 찔렀다.
촤악!
장료의 눈대중은 틀리는 법이 없다. 참마검의 칼끝이 답돈의 팔을 찌르고 선혈이 튀었다.
부웅!
팔에 큰 상처를 입은 답돈의 일격은 당연히 빗나갔다. 답돈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로 허공에 철퇴를 휘두른 뒤, 이를 악물고 철퇴를 회수해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장료가 한 바퀴 몸을 돌리며 참마검을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퍽!
답돈의 목이 하늘로 날았다. 몸에 피조차 묻히지 않은 장료는 그대로 답돈을 지나치며 씩 웃었다.
“이럴 때는 내 이름을 외쳐서 부하들에게 위험을 알렸어야지.”
한인 쪽 지휘자 견초와 오환족 지휘자 답돈.
오환돌기의 지휘관 둘이 순식간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장료는 경악하는 오환돌기의 병사들을 향해 오환족 말로 말했다.
“장료가 왔다(遼來). 앞으로 이 말이 들리면 칼을 뽑지 말고 퇴각하라. 그래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을 테니.”
장료는 답돈의 목을 챙겨서 유유히 진영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오환돌기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