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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43화 (230/306)

243화. 무덤 속의 호랑이

낙양의 남쪽에는 낙수(洛水)라는 강이 흐른다.

이 강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다 보면 낙수와 황하가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하내군 온현은 이 지점의 북쪽에 있었다.

낙양에서 불과 백 리 떨어진 이 고을은 최근 여러 번 전쟁에 휘말렸다. 동탁군과 반동탁연합군의 전투가 있었고, 남흉노의 약탈이 있었고, 마초가 근황병을 모아서 벌인 하내 전투가 있었다. 원소와 조조, 마초가 겨룬 황하 전쟁도 온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이 온현만은 그때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갈 수 있었지요. 전부 사마가에서 힘써 주신 덕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그저 오랫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어찌 그만한 힘이 있겠습니까?”

사마의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젊은 현령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현령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마가의 가주이자 사마의의 아버지인 사마방은 온현의 대호족일 뿐만 아니라, 하내군 일대의 유력한 군웅들에게 자금을 대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는 사마가가 중원 최고의 거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현의 현령은 물론, 하내군의 태수도 사마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문제가 발생했다. 사마가와 전혀 관계없는 젊은이가 현령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게 다 마초가 쓸데없는 짓을 벌인 탓이지. 과거 제도 같은 걸 도입하다니. 이자가 1회 과거에서 장원급제했다고 했던가?’

사마의는 겉으로는 미소를 띤 채 현령을 위아래로 훑었다.

신임 현령 제갈량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 흰 얼굴과 사나운 눈매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대단한 미남이었지만, 날이 서 있는 눈빛과 굵은 못이 박힌 손을 보면 마냥 귀족 사회의 인물 같지는 않았다.

“현령께서는 본래 아버지를 만나려 하셨지만,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려우십니다. 요즘은 이 사마의가 가문의 일을 돌보고 있으니, 하명하실 것이 있으면 저에게 하십시오.”

사마의의 말은 반 정도 사실이었다.

사마의가 가문의 일을 돌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주 사마방은 어지간한 것은 전부 사마의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사마의의 재주가 가주인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마방의 몸이 불편한 것은 거짓이다. 사마방은 이따금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갈 정도로 건강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군웅들을 만날 때가 아니면 좀처럼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갈량은 그런 사마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사마 공자를 뵙자고 한 것은 필요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필요한 것이라니요?”

“병사가 필요합니다. 사마가의 가병이 천여 명가량 되지요. 그들을 빌렸으면 합니다.”

“하하하.”

사마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현령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가병이 필요하신지요?”

“역적을 치기 위해서입니다.”

“역적이라 하시면?”

“사마가에서도 낙양의 변란에 대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승상 조조가 정변을 일으켜 천자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역적 조조를 쳐서 천하를 평안케 해야 할 것입니다.”

“하하, 현령 어르신. 사마가의 가병은 천 명이고, 조 승상의 군사는 낙양 팔관 안에 있는 이들만 수만에 달합니다. 무모하지 않습니까?”

“관서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곧 관서대도독이 이끄는 마가군이 함곡관을 넘어 낙양으로 들이닥칠 테니, 그때 거병하여 역적을 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천하의 기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에 대한 칭찬으로 화제를 돌렸다.

신임 현령 제갈량은 실제로 천하의 기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인물이었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그는 중앙의 요직 대신 낙양 바로 옆의 큰 고을 현령을 지원했다. 그리고 부임하자마자 고을에 쌓여 있는 송사를 해결하고 민생을 챙겼는데, 그 일 처리가 대나무를 쪼개듯 분명하여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니 천하를 위해 큰일을 하시려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마의는 그저 범용한 인물입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마가의 가산을 지키는 것만 해도 재주가 모자라니, 천하의 큰일에 끼어드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완곡하지만 분명한 거절.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분명히 의사표시를 했다. 제갈량은 당황하지 않았다.

“잘 됐습니다. 결정하실 수 있으시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마방 대인의 허락 없이 직접 가문의 진퇴를 결정하실 수 있는 위치에 계시는군요.”

꿈틀.

사마의가 눈썹을 찌푸렸다. 제갈량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사마 공자. 이는 사마가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마가군의 편에 섰다가 진다면, 온현은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것참 무서운 일이군요.”

“농담이 아닙니다. 형님이신 사마백달(백달은 사마랑의 자)이 승상부의 주부로 있지요?”

사마랑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마의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렇습니다만.”

“최근 사마백달이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하다 조 승상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압니다.”

정전제란 우물 정자모양으로 땅을 9등분한 뒤, 8가구가 각각 하나씩을 경작하고, 중앙에 있는 땅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공전으로 삼는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우물 정자나 9등분이 아니다. 이런 제도가 시행되려면 토지를 재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재분배하려면, 먼저 대호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국유화해야 하는 것이다.

“형님은 조금 이상적인 분이라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사마백달이 이 제도가 좌절된 것에 대해 크게 낙심하여 세상을 원망하며, 저와 주고받은 서신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사마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형님이 정전제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사마가의 힘을 써서 온현의 현령인 이자를 지원한 것으로 꾸밀 생각인가.’

사마의의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제갈량이 한 마디를 얹었다.

“저는 마가군 쪽 사람입니다. 마 대장군은 정전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으로 사마백달에게 여러 번 의견을 들은 바 있지요. 조조가 보기에는 어떻겠습니까? 사마백달이 신념을 위해 마가군 쪽에 붙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빌어먹을, 형님이 결국 사고를 쳤군.”

사마의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사마랑이 조조를 배신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배신으로 엮어서 사마가를 멸문시키고 가산을 몰수할 만한 핑계가 조조에게 생긴 것이다.

사마랑의 서신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마랑이 적당히 불만을 토로한 내용만 있으면, 제갈량이 얼마든지 답신을 꾸며내서 사마랑을 엮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필 이 온현에 마가군 쪽의 인사가 현령으로 온 게 문제다. 형님이 낙양에서 혼자 뭘 꾀하든, 온현 현령이 이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일이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제갈량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마의는 그런 제갈량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제갈공명. 이제 그대의 생각을 알겠군. 장원급제한 수재가 중앙 관직을 마다하고, 굳이 이 온현의 현령으로 부임한 이유를 말이야. 사마가를 끌어들여서, 조조의 뒤를 찌를 생각이었나.”

“사마중달. 바로 보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지모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사마의다.

그런 사마의조차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제 조조군이 승리한다면 사마가는 멸문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물었다.

“이길 자신은 있나?”

“있습니다.”

“내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승낙한다면 그대와 함께 마가군의 편에 설 것이고, 실패한다면 사마가의 가병을 동원해 그대의 목부터 취한 후, 조 승상에게 달려갈 것이다.”

“하나씩 말씀해 보십시오.”

“첫째, 사마가의 가병은 내가 지휘한다.”

사마의가 말하자 제갈량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용병에 자신이 있습니까?”

“시대를 잘 타고나서 용장입네, 맹장입네 하는 중늙은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

“좋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무엇입니까?”

“승리한 후, 사마가의 지위에 관한 건이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이신 사마백달은 토지개혁을 주도할 조정의 중신으로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또한 사마중달 그대는 제후의 반열에 올라 이 온현을 세습하며 다스릴 테니, 정전제가 몰고 올 폭풍도 사마가만은 비켜 갈 것입니다.”

“그런가. 일개 현령이 약조할 수 있는 말은 아니군.”

이번에는 사마의가 제갈량을 보며 씩 웃었다. 제갈량은 그 모습을 보며 잔잔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눈치채셨습니까.”

“낙양에 변고가 있는데 대장군은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갔는지 뻔한 일 아닌가.”

탁.

제갈량은 서안에 놓인 벼루를 들었다 소리가 나도록 한 번 놓았다.

그것이 신호였다. 사마의의 등 뒤에 있는 미닫이문이 열렸다.

사마의는 앉은 채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봤다.

“사마가의 둘째 공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더니, 사실이군.”

예상대로였다.

문 뒤에서 나타난 인물은 30세 전후의 미남자였다. 남색 비단옷을 걸친 채 풍성한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잘생긴 이목구비는 나이가 들며 더 뚜렷해져서 더 이상 선이 가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푸른 눈동자가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다.

사마의는 얼른 고쳐 앉으며 예를 표했다.

“사마의, 자는 중달. 대장군을 뵙습니다.”

“알고 있다.”

제갈량도 일어나서 사마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상석에 앉은 마초가 제갈량과 사마의를 보며 물었다.

“와룡(臥龍, 제갈량의 별명)과 총호(冢虎, 사마의의 별명)가 동시에 나를 따르게 되었군. 나관중이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사마의는 마초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대강 뜻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자신과 제갈량을 두고 누운 용과 무덤 속의 호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둘 중에 누가 누운 용이고 누가 무덤 속의 호랑이인지 대충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무덤 속의 호랑이라. 이 사마모에게는 과분한 별명입니다.”

“그대의 재주를 생각하면 이것도 부족하지. 중달, 내가 그대에게 궁금한 게 있네.”

“하문하십시오.”

“손책과 나를 비교하면 어떤가?”

사마의는 고개를 들어 마초를 쳐다봤다.

정변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된 대장군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몸소 칼을 휘두르며 창검의 숲을 뚫었을 테지만 큰 상처를 입거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사마의는 빙글빙글 웃는 마초를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손 장군은 천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만한 영걸이지요. 대장군은 손 장군 같은 이들을 부리며 천하를 호령하실만한 그릇 아니겠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랬나?”

“그때는 대장군의 그릇이 이처럼 큰지 몰랐으니까요.”

마초는 과거 사마가가 손책과 협력해서 허도를 노렸던 일을 가지고 은근히 사마의를 압박했다.

당시 손책의 진격 때문에 하후돈이 죽었다. 손책의 길잡이가 사마가였다는 사실을 조조가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좋아. 지금 나를 돕겠다니 지난 일은 불문에 부치도록 하지.”

마초는 그 자리에서 군의를 소집했다.

낙수를 따라 온현으로 피신해 있던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 모였다. 제갈량과 사마의 외에도 가후, 서서, 황충, 감녕, 그리고 조운이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

“지금쯤 조조는 낙양 팔관을 다 장악하고 정변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겠지. 우리는 그런 조조의 뒤를 친다.”

마초는 지도를 펴 놓고 계획을 설명했다. 가후와 서서, 그리고 제갈량이 여러 번 토론하며 완성한 계획이었다.

“조조군의 주력이 있는 곳은 세 군데. 낙양 팔관 안, 동쪽의 연주, 북쪽의 하북이다. 우리는 장막과 장패에게 연통을 넣어 연주 방면의 구원군을 끊는다. 그리고 하북에서 내려오는 병력은…….”

“장료 장군의 병주군이 끊어낼 것입니다.”

“그래. 조조가 낙양 팔관 안에 둘 수 있는 군사는 5만을 넘지 않는다. 장안에서도 대군을 보낼 테니, 이제 곧 함곡관을 사이에 두고 마가군과 조조군 사이에 결전이 벌어지겠지. 그때, 우리는 원군을 데려와서 조조의 뒤를 친다.”

사마의가 물었다.

“대장군. 사마가의 가병은 대장군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지만, 조조군을 바로 들이칠 만큼은 되지 않습니다.”

“중달. 우리는 한 곳에서 더 원군을 청할 것이다.”

“한 곳이라니요?”

마초에게 묻던 사마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딘지 짐작이 간 것이다.

‘여남인가.’

장료가 북쪽을 견제하고, 장막과 장패가 동쪽을 견제한다.

그리고 서쪽에서 마가군 본대가 조조군을 쳐서 힘 싸움이 한창 벌어졌을 때.

“남쪽의 유비군이 낙양 팔관 안으로 쳐들어온다. 이번에는 반드시 조맹덕의 목을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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