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40화 (305/306)

240화. 마가이소(馬家二小)

후한 낙양의 황궁은 본래 남궁과 북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궁과 북궁 모두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각 1km가 넘는 규모이며, 이 두 개의 궁을 공중 복도로 이어서 사용하는 형태였다. 이마저도 진의 아방궁이나 전한의 미앙궁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든 규모였다.

마초에 의해 복구된 황궁은 북궁이었다. 남궁은 아직도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운은 북궁의 한쪽 구석에 위치한 황실의 서고로 숨어들었다. 비서랑 나관중의 건의로 서고를 민간 학자들에게 개방하기로 한 다음부터 학자들 여러 명이 서고에 드나들었다. 조운은 그들이 쓰는 길이 아닌, 우림군이 알고 있는 샛길을 통해 몰래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털썩.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조운은 갑주를 벗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몸에 박힌 화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우득.

“큭…….”

비단 전포가 막아 준 화살이 두 개, 몸에 박힌 화살이 세 개. 뽑을 수 없는 화살 두 개를 부러뜨렸다. 얕게 박힌 화살 하나는 이를 악물고 뽑아냈다.

그때, 서고 안에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시죠?”

여인의 목소리였다. 조운은 그대로 벌떡 일어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여인을 겨눴다.

“소리 지르지 않을 테니 칼은 치우셔도 됩니다.”

아직 18, 9세 정도의 젊은 여인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왔지만, 여인의 태도는 태연했다.

“…그대는 궁인인가?”

“아니요. 그저 황궁 서고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입니다.”

“황궁 서고는 비서랑의 통행패를 받은 학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

“통행패는 목에 걸고 있습니다. 품을 열어 보시겠어요?”

이상하리만치 대담한 여인이었다. 조운은 잠시 여인을 바라보다 문득 한 가지에 생각이 미쳤다.

비서랑 나관중에게 통행패를 받아서 황궁 서고를 드나드는 여인이 한 명 있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대가 마 소저인가.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상황이 이러니 무례를 용서하시오.”

조운은 그대로 두 발짝 물러난 후, 칼을 집어넣었다.

황궁 서고에 있다가 정변을 맞게 된 마화는 그런 조운을 향해 살짝 몸을 숙여 인사했다.

“별말씀을. 마화가 조자룡 장군을 뵙습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소?”

“장안의 처녀들은 전부 장군의 무용담을 듣고 자란답니다. 게다가 저는 나관중 선생에게 조 장군의 용모가 어떠한지 많이 들었습니다.”

“나 선생이?”

“예. 오라버니 못지않은 미남이시고, 오라버니는 나쁜 성격이 얼굴에 드러나지만 조 장군은 선한 인상이시고, 그리고 키는 팔 척에 가까우며…….”

마화는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조운을 향해 조잘거렸다. 조운은 대꾸하는 대신 낮게 한숨을 쉬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승상 조조가 정변을 일으켰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오. 나는 죽기로 싸워 폐하를 지키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이제 궁 밖으로 몸을 피할 생각이오.”

“궁 밖으로 나간다고요?”

“서고에 지하 통로가 있소.”

“아하! 그러면 나도 살아날 수 있겠군요. 다행이네요!”

조운은 싱글벙글하는 마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궁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헤아리기 어렵소. 나는 궁을 나가 마맹기와 합류하여 조조와 싸울 생각이나, 조조는 꾀가 많으니 벌써 마맹기에게도 손을 썼을 것이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 소저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요.”

“저기, 조 장군.”

“말씀하시오.”

“‘소저’는 좀 그렇지 않아요?”

“무슨 뜻이오?”

“맹기 오라버니와 의형제 사이죠? 그러면 나에게도 오라버니뻘이 되니, 마땅히 내 이름을 부르시는 게 맞지 않아요?”

“…내가 하는 말을 듣기는 한 거요?”

“아아, 들었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정변이라면 결국 소수 병력끼리 칼과 칼로 겨루는 싸움일 테고, 오라버니는 그런 상황에서 절대로 지지 않을 테니까.”

살면서 힘 앞에 굴복해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귀족 영애라서 그런 것일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마화는 구김살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운도 극심한 위기감에서 벗어나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좋소. 어쨌든 소저의 몸이 상하지 않게 내가 최선을 다하겠소. 이제 빠져나갑시다. 나를 따라오시오.”

“알겠어요.”

조운은 마화를 끌고 지하 통로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호분군과 우림군, 그리고 이 북궁을 중건한 마가군의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통로였다.

그런데 지하 통로의 앞에 이르자 어느새 수십 명의 조조군이 모여들어 통로를 막고 있었다.

“조 중랑장. 마지막으로 황명을 따를 기회를 주겠소.”

조조의 호위 전위였다.

“거절한다.”

조운은 전위의 말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칼을 꽉 쥐었다. 그리고 전위와 양옆에 있는 무사들을 눈으로 훑었다.

‘전위, 그리고 왕월과 사아인가.’

전위의 왼쪽에 서 있는, 마른 체격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한 50대 남자가 왕월. 본래 천자를 호위하는 호분중랑장으로, 젊은 시절에는 낙양 최고의 무사라고 불리던 자다. 뇌물을 받아 면직된 후 조조 쪽에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위의 오른쪽에 서 있는, 단단한 체격에 흰 얼굴을 한 30대 남자가 사아. 왕월의 동문 사제로, 지금은 조조의 아들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거한이 전위다. 항상 표정이 없는 단정한 얼굴을 하고 쌍철극을 들고 있었다. 조조군 최고의 무사로, 개봉 전투에서는 장비와 일합을 겨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고 한다.

전위는 예의 그 표정 없는 얼굴로 조운에게 말했다.

“그대의 기백에는 같은 무부로서 존경심이 드는군. 허나 나는 그대가 상처 입은 몸으로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여기 있는 두 검객도 나 못지않은 고수들이오. 칼을 버리지 않으면 개죽음을 당할 뿐이오.”

“말이 많구나. 덤벼라. 상대해 주마.”

척.

조운은 가운데의 전위를 향해 칼을 겨눴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마화에게 말했다.

“마 소저는 뒤로 피하시오. 소저가 정체를 밝히면 저들이 소저를 해하지는 않을 것이오.”

“으음…그러니까 저 세 사람이 전부 고수라서 조자룡 장군도 승패를 장담하실 수 없는 거지요?”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질 것이오. 허나 하나라도 더 적의 수를 줄이고 죽을 것이오.”

팟!

조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아가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조운을 향해 검을 뻗어 왔다. 조운은 창 대신 익숙하지 않은 칼로 사아의 칼을 받아냈다.

챙! 챙! 챙!

조운과 사아가 순식간에 3합을 교환했다. 검술에 능한 사아가 밀어붙이고, 지친 조운이 받아내는 모양새였다.

“과연 상산의 조자룡.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보군.”

사아는 씩 웃고 검을 크게 들어 내리쳤다.

순간, 조운의 눈이 번쩍 빛났다.

끼이익!

조운은 왼손으로 칼집을 들어 사아의 일격을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그 힘으로 팽이처럼 회전하며 오른손에 쥔 검을 힘차게 뻗었다. 검으로 발출하는 상산창술 절기 일신시담이었다.

순간적으로 사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깡!

그러나 조운의 일격은 사아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왕월이 장검을 들어 조운의 칼을 쳐낸 것이다.

스윽!

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조운의 몸통을 크게 그었다. 조운은 몸을 뒤로 뺐지만 칼에 베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사아의 칼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선혈이 튀었다.

“쳇, 얕았나?”

사아가 투덜대는 사이, 이번에는 왕월이 앞으로 나섰다. 몇 번 발을 구르던 왕월은 앞에 둔 왼쪽 다리를 힘차게 내디디며 한 손으로 길게 찔러 들어왔다.

슈욱!

조운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왕월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어느새 사아의 칼이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퍽!

다시 한번 선혈이 튀었다. 이번에는 다리였다.

전장에서 말을 탄 채로 만났으면 왕월이나 사아가 감히 조운을 대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좁은 공간에서 칼로 난전을 벌이는 상황이고, 조운은 이미 중상을 입었으며, 2대 1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왕월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상산 조자룡이라고 으스대더니 꼴좋구나. 네놈이 전쟁터에서 병졸들을 상대로 힘자랑이나 하는 동안, 우리는 검술의 이치만을 궁구했다. 네 명성을 네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조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구나. 사아의 칼을 받고, 왕월에게 절초를 써서 쓰러뜨린다. 한 명만 데려가는 것으로 만족해야겠군.’

그런데 조운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마… 소저?”

뒤에 빠져 있던 마화가 슬금슬금 조조군 병사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 손목을 붙잡은 것이다.

우두둑.

“으억!”

마화가 몸을 비틀자 병사의 손목이 기묘하게 꺾였다. 병사는 손목이 부러지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마화는 재빨리 병사의 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조운의 곁으로 다가온 마화의 손에는, 병사에게 빼앗은 장검이 들려 있었다.

“2대 1이라니 비겁하네. 나도 나름대로 무장의 딸이에요. 도와 드리죠.”

“마 소저, 무공이 있다고 끼어들 자리가 아니오!”

“내가 한 놈을 상대하며 시간을 끌 수 있어요. 장군께서는 그동안 다른 한 놈을 베세요.”

조운이 낮게 외쳤지만 마화는 듣지 않았다. 병사에게 빼앗은 장검을 휙휙 돌리며 왕월과 사아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하는 계집이냐?”

“하찮은 놈들. 사내로서 용력을 타고났다면 응당 천하를 위해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할 터. 검술을 팔 곳이 없어서 역적을 선택했느냐.”

“뭐 하는 계집이기에 무공까지 수련했느냐고 물었다.”

“수련한 적 없다. 네까짓 놈들을 베는 데 무슨 수련이 필요하겠느냐?”

“뭣이?”

사아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마화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조운과 눈짓을 교환하고 사아 쪽으로 향했다. 조운은 마화를 돕는 대신 왕월 쪽을 향해 칼을 세웠다.

모욕을 당한 사아는 이를 부드득 갈며 마화를 노려봤다.

“어디서 어깨 너머로 검술을 조금 배웠나 보구나. 오냐, 소원이라면 죽여주마.”

팟!

사아가 마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입으로는 연신 씨근거리며 손으로는 날카롭게 초식을 발출하고 있었다.

사아가 움직이는 순간, 마화의 눈매가 한 번 꿈틀거렸다. 마화는 사아를 보지도 않고 자신과 사아 사이의 공간을 향해 비스듬하게 검을 내려찍었다.

퍽!

“어억?”

“아니!”

사아의 당황한 소리, 그리고 왕월의 경악한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마화가 칼을 내려친 위치는 사아가 일격을 가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디딘 곳이었다. 마화가 휘두르는 곳으로 달려 들어온 형상이 된 것이다.

사아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다리에 박힌 검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에잇!”

마화는 그대로 몸으로 검을 내리눌렀다. 다리가 잘릴 뻔한 사아는 황급히 몸을 굴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깡!

마화의 검이 돌바닥을 찍자 불똥이 튀었다. 사아의 다리에서 뿜어 나온 선혈이 그 자리를 가렸다.

마화의 힘은 단련된 검객의 다리를 잘라낼 정도가 되지 못했다. 칼을 휘두르는 속도도 급소를 노려 치명상을 가할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마화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동작을 언뜻 보기만 하면 한 수 앞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들은 적이 있다. 신안(神眼)… 평범한 검객을 일기당천의 용장으로 만들어 준다는 눈을 가지고 있군.”

사아는 이를 갈며 마화에게 내뱉었다. 마화는 칼로 사람을 베자 손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도 알아. 장문원이라는 사람도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지?”

척.

마화는 칼을 두 손으로 잡고 몸 가운데에 세웠다. 칼끝으로는 사아의 인중을 겨눴다.

언니 마수에게 배운 마가도법의 자세였다. 무예를 좋아하는 마수는 무예에 흥미가 없는 마화에게 마가도법의 몇 수를 가르쳐 줬다.

그러나 신안을 가진 마화가 몇 수를 배운 다음부터 마수는 한 번도 마화를 이기지 못했다. 오히려 마화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사아는 마화의 자세가 제법 빈틈없는 것을 눈치챘다.

“범상한 계집이 아니군. 필경 이름난 무장의 딸이렷다. 너, 이름이 무엇이냐?”

“왜, 계집이라고 무시하더니 이제 궁금해졌나?”

탁.

이번에는 마화가 먼저 한 발짝 다가섰다. 사아가 움찔거릴 정도의 기백이 전해졌다.

“마화, 자는 운록(雲騄). 내가 누구의 딸인지 궁금해하지 마라. 지금은 그저 네 목숨을 거두는 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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