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정변 (2)
“흥, 새파란 놈이 장가 잘 가서 대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군.”
거기장군부 중랑장 채양은 길게 기른 콧수염을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오늘 밤, 낙양에 있는 조조 휘하의 모든 군사들이 일거에 거병했다. 승상 조조, 거기장군 조인, 사례교위 하후연, 하남윤 조홍, 그리고 그 밖의 무관직에 있는 조조군 인사들과 조조군에게 포섭된 황궁의 숙위들까지.
조조가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마초의 누이동생과 매제를 생포하는 것.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위험은 적은 반면 적당히 공을 세울 수는 있어 보이는 임무였다. 만약 황궁이나 대장군부, 또는 마초의 자택으로 투입됐다면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역적 왕찬은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썩 나오너라!”
왕찬의 저택을 포위한 군사들은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 댔다. 식객으로 있는 무사들 몇몇이 저항했지만 바로 제압당했다.
“왕찬이란 놈은 말라비틀어진 서생이라더니 겁을 먹어서 나오지 못하나 보군. 좋아, 내가 직접 들어가 주마.”
채양은 호기롭게 외치며 부하들이 부순 대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부하들 십여 명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퍽!
그런데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피가 튀었다. 병사 세 명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았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선혈이 채양의 발치까지 비처럼 내렸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냐?”
퍽!
다시 한번 병사들의 목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세 명의 목이 동시에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비스듬하게 발사되어 땅을 굴렀다.
“으아악!”
선두에 섰던 가장 용감한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 칼을 휘둘러 여섯 개의 목을 떨어뜨린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억?”
채양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화려한 남색 비단옷을 걸친, 30세 전후의 미남자였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채, 칼날이 검은 5척 장도를 쥐고 있었다.
눈동자는 서역인의 피가 섞여서 푸른색을 띠었다. 낙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신체적 특징이었다.
“마… 마…….”
채양이 당황해서 마초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도 못하는 사이, 마초는 채양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남들이 뜀박질하는 것만큼 걸음이 빨랐다.
“제기랄! 채 장군께 다가가도록 놔둘 것 같으냐!”
채양의 부장이 칼을 잔뜩 치켜들고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마초는 그런 부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치란을 한 손으로 들고 바깥쪽으로 뿌리는 것처럼 휘둘렀다.
퍼억!
허리둘레가 만만치 않은 부장이다. 갑옷도 단단하게 껴입고 있었다.
그러나 마초가 한 번 칼을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굵은 허리가 단숨에 위아래로 잘렸다. 잘린 상체가 몸 위를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고, 외롭게 서 있는 하체는 뇌의 신호가 끊어지자 기묘한 모습으로 경련하기 시작했다.
콱!
마초는 그대로 왼손을 뻗어 채양의 목을 쥐고 들어 올렸다. 채양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허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컥, 커억… 대장군!”
“조맹덕의 짓이냐?”
“컥, 컥… 승상이 지시한 게 맞, 맞습니다.”
“빌어먹을!”
마초는 욕설을 내뱉었다.
‘방심했다. 조조가 언제 업으로 가는지, 업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사례교위 하후연과 하남윤 조홍은 곧 인수를 반납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가군에서는 그때를 대비한 인선이 한창이었다. 설마 그들의 군사들이 밤을 틈타 직접 천자를 확보하고, 마초와 마가군의 인사들을 제거하려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교활한 놈. 위왕 즉위 자체가 거대한 함정이었구나. 우리의 시선을 업으로 돌리고, 곧 있을 전쟁으로 돌리고,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컥, 컥, 대장군… 소인은 그저 조 승상의 핍박을 받아… 흐윽!”
우두둑.
마초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채양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채양은 별다른 유언도,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절명했다.
남아 있는 백여 명의 군사들은 사시나무처럼 떨며 마초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놈들이 내 가족을 해하려 했느냐.”
군사들을 바라보는 마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수적 우위는 무의미했다. 분노한 마초가 치란을 휘둘러 몇 번 더 피를 뿌리자, 100명이 넘는 군사들이 와해 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발이 느린 자는 마초의 칼에 베여 죽었다. 기가 약한 자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전부 죽여주마.”
마초는 한 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풀을 베듯 남아 있는 군사들을 베기 시작했다. 용기를 얻은 왕찬의 청지기들이 따라나섰다.
번듯한 저택의 정원에 순식간에 수십 구의 시체가 쌓였다. 마초는 마지막 남은 군사까지 제거한 것을 확인하자 수행원 몇몇만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황궁인가, 대장군부인가, 자택인가?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고민될 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초는 주저 없이 선택했다.
* * *
마초의 자택.
왕월은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는 부러진 창대 두 자루를 들고 피투성이가 되어 계속 싸우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튼튼한 놈이군.”
과거 호분(虎賁, 황제의 친위대)을 거느리는 호분중랑장으로 있었던 왕월이다. 괴팍한 성격 탓에 대군을 지휘하는 무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검술만은 당대 최고라고 꼽혔다.
그런데 눈앞의 이 사내는 그런 그에게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절충장군 감녕. 장강에서 당할 자가 없었다더니 진짜였나 보군. 오늘의 포진은 마초를 잡기 위해 준비한 포진이다. 지금까지 버틴 것은 대단하지만, 네놈은 결국…….”
“졸개는 닥치고 있어라. 어이, 쌍철극. 네놈이 직접 와라. 아니면 애꿎은 부하들만 뒈진다.”
감녕은 왕월의 말을 듣지도 않고 조조군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를 바로 도발했다. 얼굴은 단정하지만, 체격은 감녕 못지않게 건장한 사내였다.
감녕은 그가 들고 있는 쌍철극을 본 순간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전위. 조조의 부하들 중, 일신의 무예로는 아마도 가장 강한 녀석일 것이다.’
과거 익주에서 곽가, 허저와 밤새 술을 마셨던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기억이 강렬해서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마초 자택 습격을 지휘한 전위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초는 천하제일인이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 300명의 군사를 전부 호표기로 꾸렸고, 맹장 못지않은 검술을 가진 왕월까지 동원했다. 그런데 마초도 아니고 마초의 수하 하나를 뚫지 못한다는 말인가.’
전위가 마초의 자택에 쳐들어왔을 때, 마초는 집에 없었다.
그래서 마초의 가족을 확보하고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계획이 어그러졌다.
근처 기루에서 술을 마시던 감녕이 무기도 없이 단신으로 달려와서 호표기 300명을 막아선 것이다.
“화살로 잡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군.”
감녕의 옆에는 키가 무척 큰 여인이 서 있었다. 손에는 철퇴를 들고 있어서, 여차하면 감녕과 함께 싸우기 위해 뛰어들 태세였다.
마초의 아내 양하원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화살에 맞으면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정변을 일으켰다는 건 승상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마초의 잔당들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초의 가족들에게는 예의를 갖출 생각이었다. 그런데 양하원은 그런 눈치를 채자 스스로 감녕의 옆에 섰다. 활을 쏘면 같이 맞을 만한 거리였으니 좀처럼 활을 쏘기 힘들었다.
“위험합니다. 주모(主母)께서는 제발 좀 들어가십시오.”
“싫어요.”
“주모, 이놈들은 호표기입니다. 백파적과는 다릅니다. 여차하면 죽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옆에 서 있기만 하잖아요.”
양하원이 말을 듣지 않자 감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몇 발짝 떨어져 있던 전위는 눈으로 호표기의 숫자를 셌다.
‘벌써 서른 명 정도 죽었나.’
이대로 밀어붙이면 잡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큰 희생을 내면, 만약 마초가 자택으로 돌아왔을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다.
전위는 결단을 내렸다.
“퇴각한다.”
“이런 제길, 전 교위! 저 건방진 수적 놈을 살려 둘 건가!”
“왕 중랑장, 오늘 밤은 제 명령을 따르셔야 합니다. 계획대로 황궁으로 가시지요.”
황궁, 또는 대장군부.
결전이 벌어진다면 둘 중의 한 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중 전위가 위치하기로 예정된 곳은 황궁이었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계획대로 거사가 성공한다면 순식간에 낙양 전역을 제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투도 벌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감녕은 물러나는 전위를 굳이 쫓지 않았다. 상처를 심하게 입어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감녕은 마가군의 수군 책임자로서 다른 할 일이 있었다.
잠시 후, 마초가 자택으로 달려왔다.
덥석.
마초는 그대로 양하원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부인, 무사해서 다행이오. 감흥패, 내가 그대에게 큰 은혜를 입었네.”
“예전에 주공이 목숨 한번 던지라고 했지요? 그거 오늘 던진 셈 치지요. 그나저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주공. 여기서 조금만 달려서 낙수 강변으로 가면 제가 만들어 놓은 영채가 있습니다. 일단 그곳에서 배로 몸을 피하시지요.”
“나는 할 일이 있으니 갈 수 없네. 가족들을 잘 부탁하네.”
마초는 뒤이어 양하원을 보며 말했다.
“감흥패를 따라 낙수에서 배를 타면 하내군 온현이 지척이오. 온현의 현령이 우리 쪽 사람이니, 그를 찾아가면 몸을 숨기도록 도와줄 것이오. 일이 조용해질 때까지 당분간 그곳에서 숨어 지내시오.”
“상공.”
양하원은 마초의 옷깃을 잡았다.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초는 지금 낙양에 남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기고 돌아오실 거죠?”
“물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부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한 입맞춤을 나눴다.
감녕과 양하원, 그리고 마초의 여섯 살 난 두 아들을 비롯한 가솔들이 낙수의 영채로 몸을 피했다. 마초는 최측근 두 명만을 데리고 앞으로의 일을 준비했다.
“이런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하구나.”
“주공은 참, 마음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이기러 가는 거 아닙니까.”
월길은 그렇게 말하며 마초를 타박했다. 그가 이끄는 강족 기병대도 마초를 따라갈 준비를 마쳤다.
마초는 씩 웃고 다른 한 명에게 고개를 돌렸다.
“월길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왔으니 그렇다 치고, 설마 네가 달려올 줄은 몰랐다.”
“돈 냄새가 나더군요. 대장군이 지게 되면 알아서 조조 쪽에 붙을 테니 걱정 마시고, 재물이나 넉넉히 준비해 주십시오.”
마충이었다. 본래 마초가 따로 임무를 부여할 때까지는 휴식을 취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먼저 마초의 자택으로 달려와 합류했다.
“좋아. 이 싸움에서 살아남으면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우리는 이제부터 황궁으로 간다.”
마초는 월길과 마충, 그리고 강족 기병 수십 기만을 거느리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에는 마초의 작은 누이 마화가 있다. 그리고 천자 유협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구해내야 한다. 실패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