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살아남은 후계자
연회가 파한 후, 마초는 언제나처럼 나관중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형주행에서는 얻은 게 참으로 많습니다. 유표군과의 동맹을 성사시켰고, 형주에 있는 인재들도 거의 다 모았지요.”
“그래. 한 녀석을 결국 찾지 못한 게 아쉽지만 말이야.”
마초는 결국 놓친 인재 한 명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은 지금쯤이면 18, 9세 정도일 텐데. 아직은 고향에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부터 유 예주를 흠모하여 일찌감치 여남으로 떠났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마초와 나관중이 아쉬워하는 인물은 위연이었다. 본래 병졸 출신으로 유비가 발탁하여 장군이 된 후, 훗날 촉한의 기둥으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지난 생에서 위연의 자질을 알아봤던 마초는 그의 부재를 크게 아쉬워했다. 반면 나관중은 마초만큼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쨌든 위연은 나중에 반역을 일으키다 죽는 인물입니다. 이제 주공의 휘하에 재주 있는 인재들이 수없이 많으니, 능력만큼 충의도 중요하게 보셔야 합니다.”
“으음, 내가 지난 생에서 만났을 때는 그럴 녀석 같지는 않았는데… 됐네, 어차피 유 사군에게 가버린 걸 이제 와 아쉬워하면 뭐 하겠나.”
아쉽게도 위연과는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초는 속으로 유비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관우, 장비, 노숙에 위연이라… 그렇게 고생하는 와중에 많이도 모았군.’
상황이 바뀌어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비의 능력은 여전한 모양이다. 그러나 유비를 위해 큰 계책을 내어줄 방통은 마가군에 합류했고, 제갈량은 내년 과거를 통해 조정에 들기로 하였다.
“게다가, 원래의 역사에서 유 사군이 천하를 노리는 기반이 되었던 형주는 마가군의 또 다른 동맹이 되었다.”
“형주목 유표의 수명은 앞으로 7년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가 선생을 비롯한 모사들이 형주 내부의 친 마가군 세력이 커지도록 뒤에서 공작을 할 테지요.”
남방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마초와 나관중은 자연스럽게 북방의 일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조맹덕과 약속한 기한은 1년. 지금부터 천천히 낙양으로 돌아가도 몇 달이 남는군.”
“그동안 조맹덕은 원소군을 공격하고 하북을 정벌하기로 했었지요.”
“나는 남방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이토록 많은 인재들을 얻었다. 조맹덕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조조의 일을 생각하자 마초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 * *
기주 업성.
볼과 3년 전까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였던 원소의 근거지다. 그러나 지금은 성을 둘러싼 조조군에 의해 함락 일보 직전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
조조군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20대 중반쯤의 젊은 청년이었다. 키는 평균보다 약간 작고 체격도 평범하다. 외모도 미남이라고는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청년에게는 어딘지 기품이 있어서, 단정함과 위엄이 동시에 엿보였다.
퍽!
청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원소군의 병사에게 직접 창을 내질렀다. 화려한 기예는 아니다. 그러나 기본기가 완전히 몸에 익은, 훌륭한 솜씨였다.
청년은 병사의 몸을 관통한 창을 빼낸 후, 원소군 진영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내가 바로 조 승상의 장자, 조앙이다! 누구든 내 목을 갖고 싶은 자가 있으면 이름을 밝히고 덤벼라. 상대해 주마!”
그 모습을 보는 원소군의 숙장과 노병들은 그 모습을 보자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마치 젊은 날의 주공을 보는 것 같구나.”
“어찌 우리 주공이 아닌 조맹덕에게서 저런 아들이 났다는 말인가.”
전쟁터에 나선 조앙의 모습은 전성기의 원소를 떠오르게 할 만큼 위엄이 있었다.
조앙은 맨 앞에 서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적병들에게는 용감했고 아군 병사들에게는 다정했다.
“게다가 장 공자는 전쟁의 천재라고 불리고 있죠. 원소군의 주력을 얼마 전의 회전에서 전멸시켰으니까요.”
조앙의 옆에 선 사내가 전쟁터 같지 않은 태평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그 또한 서른 전후의 젊은 무장이었다.
“국양(전예의 자), 그것은 모두 자네의 공이 아닌가.”
“별말씀을. 좋은 작전을 짜낼 수 있는 부장은 많습니다. 하지만 장 공자처럼 병사들의 존경을 받고, 적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만한 주장은 찾기 어렵지요.”
전예는 속내를 알기 힘든 미소를 지으며 빙글빙글 웃었다. 공손찬군에 있다가 공손찬이 패망한 후 조조의 휘하에 들었다. 항장 출신이니 언제 중용될 수 있을지 초조했는데, 조조군 후계자 조앙의 부관이 되었으니 그 또한 빠른 출세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전공을 세우려면 유능한 부장이 꼭 필요하지. 내 평소부터 자네를 눈여겨보고 있었네.”
본래 조조는 후계자 조앙에게 우금이나 장합 같은 상장을 붙여주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조앙이 이를 거절했다.
‘우금이나 장합을 앞세워 공을 세운다 한들, 누가 그것을 내 공으로 여기겠는가? 이번 전투의 성과가 온전히 내 것이 되려면 무명의 젊은 장수를 데려가야 한다.’
그래서 무명의 젊은 장수들 중 자신의 안목으로 전예를 골라서 부장으로 삼았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선비족과 오환족 토벌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전예다. 탁월한 군략으로 조앙을 보좌하니 가는 곳마다 대승이 뒤따랐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전공에 집착하십니까? 장 공자는 누가 봐도 굳건한 후계자인데요.”
전예가 특유의 웃는 얼굴로 민감한 부분을 묻자 조앙은 크게 웃었다.
“하하, 사람 일은 어찌될 지 모르는 것 아닌가. 국양은 나를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 말게.”
이번 출진에서 조앙은 기라성 같은 맹장들과 같은 수준의 공을 세웠다. 이제 업을 함락시킨다면 하후연과 조인, 우금과 장합의 공도 조앙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전공에 집착하는가?
‘국양, 자네는 모르겠지. 내부의 적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조앙은 올해 열다섯이 된 자신의 아우 조비를 떠올렸다.
조비는 문무에 전부 능하지만, 도량이 작아 뛰어난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나이도 조앙보다 한참 어리고 심지어 서자였다.
그러나 형제지간으로 조비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조앙은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자환(조비의 자)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 후계자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괴물 같은 놈이다.’
조조의 차남 조비에게는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이 아예 없었다. 반면 권세와 지위에 대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그 사실을 부모도 모르게 숨길 만큼 독한 면도 있었다.
어쩌면 서자의 몸으로 적자인 형을 폐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후, 조앙은 자신도 모르게 아우 조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 녀석,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를 닮았지.”
“예?”
“아무것도 아닐세.”
조앙은 전예의 어깨를 툭 치고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전예 또한 조조 집안의 속사정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위협적인 아우가 있다면 제거하면 될 것을, 끝내 그조차 끌어안고 갈 생각인가. 장 공자, 그대의 재주는 조 승상을 빼다 박았지만, 인품은 조 승상과 사뭇 다르구려.”
전예는 멀어지는 조앙의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 * *
업성을 지키는 원소군의 저항은 격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원소군의 저항이 약해졌다. 조앙과 전예는 원소군 내부의 투항자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원본초가… 별세했다고?”
원소가 죽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영웅 원소는 병이 든 이후 수시로 각혈을 했다. 원소가 병색을 보이자, 그의 권위로 유지되던 원소군은 빠르게 해체되었다.
“기주 호족들은 앞을 다투어 아군 쪽으로 돌아섰지요. 원소의 가신들끼리는 기주를 사수하려는 이들과 유주로 도망치려는 이들이 패가 나뉘어 싸움을 벌였다고 하니, 아마 내부 사정이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상황은 전예가 예측한 그대로였다. 원소가 이룩한 공업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원소는 패배를 각오하고 있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삼남 원상은 먼 북쪽 유주로 탈출했다. 차남이지만 사람됨이 모자라서 후계 구도에서 탈락한 원희, 그리고 원소가 아끼는 외조카 고간이 그런 원상을 따랐다. 장남 원담은 개봉 전투에서 마초에게 잡힌 후 아직까지도 장안에 억류되어 있으니 권력 다툼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아들들을 전부 멀리 보낸 후, 원소는 외롭게 업성에 남아 항전했다.
남은 군사들로 한두 차례 큰 승리를 거두면 조조가 직접 나설 것이다. 그렇게 끌어낸 조조와 다시 한번 전장에서 승패를 가리는 것. 그것이 원소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원소의 계획은 다 틀어졌지요. 장 공자가 단독으로 원소군을 격파하고 이렇게 업성을 함락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앙이 업성에 접근하자 원소는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그리고 칠 일째 되던 날 죽음을 맞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초연했다고 전해진다.
수장을 잃은 업성의 성문은 투항자들에 의해 열렸다. 조앙은 성내로 돌입해 빠르게 진격했다.
“승상부의 조앙이다. 길을 열어라!”
원상이 이끄는 자들이 유주 변경으로 떠나고, 업성에 남아 있는 원소군은 원소와 함께 순장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싸움이 될 리 없었다.
조앙과 전예는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아 거대한 업성을 제압했다.
마침내 원소의 시신과 유가족들이 있는 기주목의 치소를 포위했을 때, 오백 명 남짓한 원가의 군사들이 마지막으로 조앙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두에는 조앙과 비슷한 20대 중반쯤의 청년이 서 있었다. 짧은 턱수염을 기른, 제법 굳세 보이는 청년이었다.
조앙은 청년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견초, 자는 자경. 원 대장군의 휘하에 독군종사로 있는 자다. 하북의 장수로서 조앙 공자에게 투장을 청한다.”
“하북의 상장들은 전부 조 승상에게 항복했다. 이제 싸움이 끝났거늘 말단 무관직에 있는 자가 어째서 내 앞을 가로막는가.”
“나는 원가를 섬기는 자다. 지금 아무도 원가를 위해 죽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원가를 비웃지 않겠는가.”
견초의 얼굴에는 죽음을 각오한 자의 담담한 낯빛이 떠올라 있었다. 조앙은 눈을 반짝 빛낸 후,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견자경과 내가 단기로 승부를 가릴 것이다. 끼어들지 마라.”
다 끝난 싸움이다. 총공격을 지시하기만 하면 견초는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조앙은 단기접전을 택했다. 견초는 두 손을 모아 조앙에게 감사를 표한 후, 대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챙!
첫 합이 강하게 부딪혔다.
마초나 관우 같은 달인들의 경지는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싸움은 진지하고, 치열했다.
“도대체 원가가 무엇이기에 목숨을 던지려 하는가?”
깡!
견초는 대도를 크게 휘둘러 조앙의 창을 쳐냈다. 그리고 몇 발짝 멀어진 후 말했다.
“공손찬이 다스리는 유주에서는 사람이 숱하게 죽었다. 그러나 기주에서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
“그게 이유인가?”
“원공은 백성의 삶을 돌보는 분이었다.”
퍽!
이번에는 조앙이 달려들었다. 조앙은 창대로 견초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좋다. 내가 이 자리에서 약조하지. 나는 기주를 수탈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조맹덕의 아들이다. 그걸 어떻게…….”
“바보 같은 놈들! 조맹덕이나 원본초가 뭐가 그리 대단한가!”
조앙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과거에 선정을 베풀었던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미래에 선정을 베풀 자가 누구인지 잘 판단하라. 나는 원본초처럼 더러운 모략도 쓰지 않고, 조맹덕처럼 학살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원공도 뛰어넘어 새 시대를 이끌 것이다!”
견초가 움찔하게 만들 정도의 기세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전예가 한마디 거들었다.
“너희들은 원공의 수하이기 이전에 한의 백성이며, 조앙 공자 또한 조 승상의 아들이기 전에 한의 신하다. 고집부리지 말고 한의 백성으로 본분을 다하라.”
견초, 그리고 그가 이끄는 군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조앙은 다시 한번 사자후를 토했다.
“돌아가신 원공의 시신이 아직 식지 않았다. 마땅히 내가 들어가 조문하고 제후의 예로 장사지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이 감히 가로막겠느냐!”
쨍그랑.
견초의 뒤에 있던 군사들 중 하나가 칼을 바닥에 던졌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군사들은 창칼을 집어 던지고 항복의 의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나는…….”
견초는 쓸쓸한 눈을 하고 조앙을 향해 대도를 세웠다.
이제 집요하게 조앙과 승패를 겨룰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 한 수를 받아내고 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앙이 먼저 창을 거뒀다.
“쓸데없는 짓은 허락하지 않는다.”
“뭣이?”
“죽고 싶으면 전장에서 죽어라. 네가 죽을 만한 전장은 내가 만들어 주마.”
대담한 것인가, 아니면 무모한 것인가.
조앙은 그대로 창을 거두고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견초의 옆을 지나쳐 기주목의 치소로 들어갔다. 조앙의 앞을 가로막았던 군사들이 썰물처럼 갈라져 길을 터 주었다.
견초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쨍강.
견초는 대도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멀어지는 조앙의 뒷모습을 향해 군례를 올렸다. 그 옆을 지나던 전예가 웃으며 견초의 가슴을 툭 쳤다.
“잘 선택했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주군을 고른 것 같군.”
조조와는 다르다. 원소와도 다르다. 조앙은 간웅들과는 다른, 올곧은 기백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전예는 그런 조앙의 뒷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예전에 잠시 섬기던 인물을 떠올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인물은 돗자리 장수 출신이었고 조앙은 최고 권력자의 장자라는 것이다.
순식간에 업성을 제압한 조앙은 그대로 원소의 시신이 누워 있는 빈소로 향했다. 병장기조차 지니지 않은 맨몸으로, 조문을 위해 당당하게 입성한 것이다.
그때, 조앙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