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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28화 (228/306)

228화. 마초와 주유, 회담하다

“강동 태평도의 수장, 우길의 목입니다. 대담하게도 평상시에는 덕망 높은 유학자 고대로 행세하고 있었지요. 이 자는 감히 독단적으로 대장군의 목숨을 노려서 강동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뻔했으니 그 죄를 물어 참수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마초는 주유를 노려봤다. 주유는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침묵을 통해 주유를 압박하고자 했다. 그러나 압박이 통하지 않자, 마초는 이내 크게 웃어 버렸다.

“으하하! 과연 주랑이 인물은 인물이군. 내가 한 방 먹었는걸.”

“과찬의 말씀입니다.”

“명문가 출신의 배경에, 강동 제일이라는 군략에, 이 정도 담력까지 갖췄나. 내가 보기에 강동의 주인 자리에는 그대만큼 어울리는 인물이 없네. 어떤가? 주랑이 강동을 취하겠다면 내가 밀어주지.”

“농이 과하십니다.”

이제까지 침착하던 주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악당 웃음을 짓게 되었다.

‘이건 아픈가 보군.’

주군보다 뛰어난 신하.

그런 입장으로 사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주유에게도 괴로운 속사정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 방 먹여주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마초는 우길의 목을 가져온 장한을 향해 말했다. 그도 아는 얼굴이었다.

“주유평을 여기서 다시 보는군. 자네도 한 잔 들지 그러나.”

“어르신들의 자리에 낄 주제가 못 됩니다. 소장은 물러가겠습니다.”

주태, 자는 유평. 진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손책을 업고 단신으로 마가군의 포위망을 뚫었던 무사는 마초를 향해 군례를 올리고 멀리 사라졌다. 체격은 여전히 건장했고, 당당한 태도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걸음걸이가 뭔가 불편해 보였다.

‘그날 너무 많이 다쳤으니까. 무공이 예전 같지는 않겠군.’

자신이 회귀한 후, 분명히 세상은 원래의 역사보다 더 좋은 쪽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난세에 이름을 떨친 무장들은 원래의 역사보다 더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어딘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마초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유에게 물었다.

“주랑. 그대의 이야기는 저 태평도가 나를 노린 게 괘씸해서 먼저 목을 벴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태평도 무사들의 솜씨가 대단하더군. 나를 노리려면 태평도의 주력이 전부 나를 치기 위해 동원되었을 테고, 우길의 주변에는 경계가 느슨해졌겠군. 그대는 무서운 사람이니 그것까지 고려해서 암살을 의뢰했을 거라 생각하네.”

마초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일은 주유가 꾸몄을 것이다.’

강동군이 태평도와 대립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손책은 태평도를 탄압했었다. 주유의 입장에서는 마초 암살을 통해 마초를 제거해서 손책의 복수를 하거나, 우길을 제거해서 태평도 제거라는 실리를 얻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둘 다 한꺼번에 이룰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주랑,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네.”

“대장군께서 오해하시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 그러니 오해를 풀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마초가 본심을 말했다. 주유는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첫째. 내 체면을 좀 세워 줘야겠네. 황조군이 원정을 떠나면서 빈 강하를 그대가 빼앗았지?”

“그렇습니다.”

“그 강하를 내게 넘기게. 마치 내가 담판을 지어 되찾은 것처럼 보이도록. 그래야 나도 유 형주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수 있지 않겠나.”

“하하, 대장군. 강하는 선대의 원한이 서려 있는 땅입니다.”

“그리고 강동군이 지켜내기 어려운 땅이기도 하지. 어차피 곧 내주고 물러날 예정이었던 걸 알고 있으니 내 말대로 하게.”

주유는 내심 놀랐다.

‘대장군 마초. 우리의 생각을 놀랍도록 정확히 꿰뚫고 있구나.’

마초가 회귀했다는 것을 주유가 짐작할 리 없다. 주유는 내심 마초의 무공이나 용병술보다 안목과 식견이 더 무서운 것 아닐까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둘째. 이제 곧 내 특사가 강동에 갈 것이다.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그가 강동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을 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입니다. 또 원하시는 건 없으신지요?”

“아까 약속한 것을 잊지 말게. 장사에 병력을 주둔시키며 장사의 뒷배가 되어 주라고. 교주 사람들과도 문제 일으키지 말고.”

“그리하겠습니다.”

“내가 곧 강하로 찾아가서 회담을 주재하겠네. 내가 보는 앞에서 그대와 장역, 그리고 형주군의 대표가 모여서 문서를 쓰고 맹세를 하게.”

어차피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강화 협상이다. 얼핏 들으면, 그 과정에서 마초가 체면만 세우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주유는 마초의 요구사항을 듣자 속이 답답해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 강동군은 손발이 묶인다.’

대장군 마초의 앞에서 새로 얻은 영토를 반환하고 화해의 맹세를 한다. 당분간 형주와 강동 사이에는 분쟁이 없을 것이다.

형주목 유표는 육십이 넘은 고령이다. 젊은 마초 입장에서는 일단 조조와의 싸움에 전념하고, 형주는 유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집어삼켜도 늦지 않다.

‘결국 이 자가 원하는 대로 남방의 정세가 흘러가겠군. 이 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형주와 강동을 아우르는 강한 세력이 탄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조조와의 대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강동군 입장에서는 형주 방면으로의 확장이 부담스러워진다. 평화 협정에 서명한 게 주유라면, 협정을 파기하면서 생기는 정치적 부담도 주유가 지게 될 것이다. 유표와 맺은 협정과, 마초의 주재하에 맺은 협정은 정치적 부담의 무게도 전혀 다를 것이다.

만약 주유가 그런 부담을 견디면서 형주를 공략할 경우의 대비책도 있다. 여남에 주둔하는 예주목 유비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동을 노릴 것이다.

주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장군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내린 영웅이십니다.”

“응? 그야 지금 천하에 영웅이라면 그대와 이 마초가 있을 뿐이지. 조맹덕 따위는 족히 여기에 끼지 못하네! 핫하하하!”

마초는 짐짓 크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두 사람은 제법 많은 술을 마셨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자 마초는 주유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보였다. 원래의 역사에서 주유는 그만큼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오늘날의 사람들 중 마초의 동년배들 중 지휘관으로서 가장 뛰어난 무장을 꼽으라면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마초, 손책, 사마의, 장료, 서황 등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주유는 그들 중 첫손 꼽히는 인물이었다.

주유 또한 마초와 대화하는 게 싫지 않았다. 주유 자신과 대등한 수준에서 병법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인물은 천하를 다 뒤져도 찾기 어려웠다. 이상할 정도로 노련한 마초의 식견을 들으며 주유 또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러는 사이 밤이 깊었다. 마초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려가려던 마초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주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공근(주유의 자). 그런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대장군.”

“어쩌자고 나와 독대를 받아들였나? 내가 자네를 벴으면 어쩌려고?”

마초는 짓궂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주유도 그런 마초를 보며 웃어버렸다.

“저도 검술을 꽤 잘합니다. 도망치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하, 사람 참.”

마초는 더 묻지 않고 손을 들어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주유는 떠나는 마초의 등을 향해 잠시 동안 허리를 숙이고 손을 모아 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초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일으켰다.

“술을 많이 마셨나 보군. 검술 따위로 그대를 당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

주유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 옆에 놓아둔 청동 술잔을 들어 올렸다.

화르륵.

청동 술잔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술잔에는 장강 하류에서 흔히 연료로 쓰는 돌고래, 상괭이의 기름이 담겨 있었다. 주유는 잠시 너울거리는 불꽃을 지켜봤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저자와 함께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여 다음 수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죽었을 경우 뒷일을 맡기로 한 여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주유는 피식 웃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꽃을 껐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정자를 내려왔다. 정자 주위에는 기름을 잔뜩 먹인 풀더미가 둘러져 있었다.

* * *

“주공근은 회담이 어그러지면 나와 함께 동귀어진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마 불이라도 지르지 않았을까?”

군영으로 돌아온 마초는 빙글빙글 웃으며 주유와의 만남을 회고했다. 술에 취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가후가 잔잔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주공께서 주유라는 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마음에 들다 뿐이겠습니까? 그는 남방 제일의 영웅입니다. 죽은 손책에게도 영웅의 기상이 있었고, 장안에 있는 손권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지요. 하지만 주공근은 그들 이상입니다.”

마초가 계속 주유를 극찬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서서가 불쑥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제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랬다가 혹시 반격이라도 당하면 곤란하지. 시간은 우리 편이니 굳이 조급할 필요는 없네.”

마초는 나관중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역사를 알고 있었다.

‘역사대로라면 유표에게 남은 수명은 앞으로 7년. 주유에게 남은 수명도 15년이 채 되지 않는다.’

원래의 역사에서 강동군의 대도독이 되는 주유, 노숙, 여몽은 전부 단명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당시 강동 지방의 덥고 습한 기후와 좋지 못한 위생으로 질병에 취약했던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나관중 또한 그런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신의 장중경에게 자문을 받으며 그런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주유는 손익을 제치고 주공과 독대했으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강동군의 전권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역사대로 그의 수명이 일찍 다한다면, 강동은 그걸로 끝이다.’

조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유표의 수명이 다하는 시점에 맞춰서 형주만 제때 접수하면 된다. 굳이 전쟁을 벌일 필요 없이 시간을 끌다 보면 주유를 잃은 강동군은 크게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마초와 나관중이 가지고 있는 대전략이었다. 나관중은 마초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주공, 강동에 인물이 주유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유만한 인물이 또 나올 가능성도 고려해야겠지요.”

“말 잘했네, 관중. 그래서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네.”

마초는 씩 웃었다.

“강동에 특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자네가 특사가 되어야겠어.”

“예? 원래는 가 선생이 하시기로 했던 일 아닙니까?”

“서주 쪽의 일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되었네. 가 선생이 먼저 낙양으로 돌아가서 챙겨 봐야겠더군.”

가후는 서주에서 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이것을 지휘하기 위해 먼저 떠나야 하는 것이다.

“으음, 그렇다면…….”

“그래. 자네가 강동에 특사로 다녀와. 가서 그 인물을 데려오게.”

그 인물.

그는 형주에서 지금 강동에서 이름 없는 소년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성인이 되어 강동군에 합류한다면, 단신으로 강동의 판세를 뒤바꿀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만약 그 인물을 우리가 데려온다면, 그래서 강동군에 그 인물이 없게 된다면…….’

‘주유가 병사하는 것과 동시에, 강동군은 무너질 것이다.’

마초와 나관중은 서로 마주 보며 같은 사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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