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강동소호 (1)
긴 밤이었다.
야습을 시도하던 황충과 단기접전을 벌여 되돌려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충, 범강, 장달에게 야습을 받아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피곤했다. 그러나 마초는 해가 뜨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배후가 누구냐?”
오라에 묶인 마충과 장달을 문초하는 일이었다. 장달은 범강의 죽음 때문에 충격이 큰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면 마충은 크게 뻗댈 생각이 없는 듯 마초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돈을 받고 사람의 목을 취하는 살수다. 도교 교단의 사주를 받아 그대의 목을 노렸다.”
“도교 교단이라. 내게 원한을 가진 한중 천사도 말이냐?”
“아니, 강동의 태평도다.”
“오호.”
마충의 대답을 듣자 마초는 씩 웃었다.
“너희들이 천사도 사람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태평도라고?”
마충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했다.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이랬다.
돈황에서 석공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마충은 중원에서 살수가 되려 했다. 그의 가장 큰 고객은 강동의 태평도였다. 로마에서 100승을 거둘 만큼 뛰어난 검투사였던 그는 태평도의 의뢰를 받아 여러 차례 암살을 성공시켰고, 대신 평상시에는 태평도가 제공하는 마약과 여색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초의 암살을 맡게 되었다. 마초는 도교의 한 분파인 한중 천사도와 원한이 깊으니, 마충과 함께 암살에 나선 태평도의 교인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한중 천사도를 사칭하게 되었다.
“흠, 그러면 범강과 장달도 태평도의 인물인가?”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암살을 돕기 위해 어딘가에서 데려왔다고 하는데, 어딘지는 모르겠다. 나는 태평도의 세세한 내부 사정까지는 모른다.”
이리저리 돌려 심문해 보고 협박도 해 봤지만, 마충의 말은 일관성이 있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원래의 역사에서 마충은 손권이 다스리는 오나라의 무장으로 관우를 잡는 임무에 동원되고, 성공한다. 강동에서 위세를 떨치던 태평도가 오나라 정권과 손을 잡았는지, 아니면 오나라가 태평도를 병탄하고 솜씨가 뛰어난 마충을 데려다 썼는지는 이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녀석은…….’
강동은 암살이 횡행하는 땅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암살로 목숨을 잃은 강동의 인물 중 가장 굵직한 인물은 손책이고, 강동 최고의 암살자는 마충이다. 어쩌면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손책 암살의 실행범이 마충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의미 없는 일이지. 이제 손책은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마초는 피식 웃고 마충에게 물었다.
“이대로 죽이기에는 솜씨가 아깝구나. 너를 살려주는 대신 언젠가 위험한 임무에 투입할 생각이다. 받아들이겠느냐?”
마충은 고민하지 않았다.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한인들의 읍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Grartias tibi(고맙습니다).”
마초는 마충을 감금하되 숙식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나중에 상대 맹장을 저격하는 용도로 한 번 쓸 생각이었다. 마충의 삼지창과 그물은 어지간한 맹장이라도 빠져나가기 어려우니, 만약 성공한다면 군사들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수를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초는 바로 이감을 불러 지시했다.
“마충을 잘 감시하라. 만약 통제가 되지 않거든 먼저 제거하고 나중에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뒤이어 생포한 다른 자객들에 대한 심문이 있었다. 그들 또한 마충과 비슷한 처지라 임무의 정확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콧구멍으로 매실차를 한 잔씩 마시면 어떨까?”
끔찍한 고문도 가해 봤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었다. 그 와중에 장달은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바닥에 머리를 찧고 자결해 버렸다.
태평도는 왜 마초를 암살하려 했을까? 그리고 태평도 사람이 아닌 범강, 장달을 태평도에 빌려준 것은 누구인가?
증언은 없다. 그러나 마초는 그들의 배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범강과 장달은 원래의 역사에서 장비 암살에 성공한다. 그로 인해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가?
“강동군인가. 하여튼 씩씩한 녀석들이군.”
마초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 * *
장사성.
내성에 갇혔던 장선군은 외성을 탈환하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이튿날 아침부터 장선 휘하의 한 부대가 용감하게 나서서 싸웠다. 곽준이 이끄는 묵가 제자들이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을 곧 의(義)라 부른다. 의가 우리에게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곽준이 선두에 서서 황조군을 밀어붙였다. 묵가 제자들은 묵가에 비전으로 내려오는 송곳이 박힌 수레, 검차를 끌고 곽준을 엄호했다. 황조군 병사들이 검차를 탈취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검차에 실린 연노에서 십여 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됐다.
퍼퍼퍽!
“으악!”
“으아악!”
제갈량이 고안한 연노는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었다. 그 쓰임새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하는 묵가 제자들이 운용하니 한정된 쓰임새로도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군.”
황충은 전장에서 조금 벗어난 언덕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밤, 마초와의 단기접전에서 상처를 입고 천근노까지 빼앗겼으니 전장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앉아 있는 황충에게 부하들이 물었다.
“교위. 전장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아직 약속한 사흘이 지나지 않았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기다릴 것이다.”
보아하니 오늘은 묵가 제자들의 맹공을 견디지 못한 황조군이 외성을 다시 내줄 것 같았다. 잠시 전장을 주시하던 황충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천근노만 돌려받으면 외성은 언제든 다시 열어젖힐 수 있다. 그러나 보급이 끊긴 장사성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괜히 인명만 더 상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군.’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장사성을 일찍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초의 개입으로 이제 불가능해졌다. 황충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초, 그대는 정말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가. 필요 이상으로 피를 보게 된다면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황충이 그렇게 황조군에 의해 벌어질 학살을 걱정하는 사이, 황조군의 총대장 황조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중천에 걸렸던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자, 묵가 제자들이 계속 밀고 들어와 황조의 군영 근처까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 또한 장강에서 20년간 칼 밥을 먹은 몸이다. 묵적을 따르는 애송이 놈들아, 누가 내 칼에 죽어 보겠느냐!”
황조는 비대한 체구만큼 기운도 셌다. 순식간에 묵가 제자 셋을 베어 넘기고 포효하자 근처의 묵가 제자들도 주춤거릴 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황조는 그런 묵가 제자들을 보고 씩 웃었다.
“젊은 놈들이 묵가 같은 허황된 사상에 빠질 수도 있지. 하지만 목을 내놓을 각오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형주를 다스리는 것은 저명한 유학자 유표다. 그는 무력 대신 자신의 명성과 유가적 명분을 교묘히 결합해 권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형주 땅에 묵적을 믿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지. 내가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서 묵가의 씨를 말리면 유 형주가 나를 후하게 대접할 것이다. 형주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내가 형주의 이인자가 되고, 나이 많은 유 형주가 별세하면…….’
사상 탄압이 필요한 유표. 그리고 정치적 입지 상승을 위해 큼지막한 전공이 필요한 황조.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황조는 알 수 있었다. 학살을 행하면 유표는 그것에 대해 반드시 보상할 것이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그렇게 맞물려 있었다.
그렇게 황조가 난전에 돌입했을 때, 뒤통수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군, 자중하십시오.”
“닥쳐라! 내가 저 발칙한 놈들의 목을 벽돌 삼아 성을 하나 더 쌓을…….”
퍼억!
황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뒤에서 누군가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은 것이다.
“컥, 크억…….”
황조는 있는 힘껏 뒤로 칼을 휘둘러 상대를 떼어내고 간신히 몸을 빼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 선혈이 쏟아지자 순식간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황조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찌른 상대가 누군지 확인했다.
“풍칙, 네놈이 간자였느냐!”
“그렇다.”
황조의 젊은 부장 풍칙은 침착했다. 황조가 찔리자 당황해 있던 부하들이 이내 고함을 지르며 나서기 시작했다.
“네놈도 묵가였구나!”
“잡아라! 풍칙을 잡아서 오체분시할 것이다!”
묵가와는 전혀 관계없는 풍칙이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밝히려 하지는 않았다. 풍칙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군사들을 향해 검을 들었다.
퍽!
“어억!”
풍칙이 검술을 펼치자 지켜보던 군사들의 눈이 커졌다. 말단 도위라고 믿을 수 없는, 능히 백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솜씨였다.
“이런 제길!”
“태수 어르신을 지켜라!”
군사들 몇몇이 피를 쏟아내는 황조를 몸으로 막아 지키려 했다. 풍칙은 그들 또한 가볍게 제압하고 황조의 허벅지와 팔에 다시 한번 깊은 검상을 남겼다.
“으아악!”
황조는 피를 쏟아내며 뒹굴었다.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당장 죽는 것만 면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이제 한 칼이면 황조의 목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타닥.
그러나 풍칙은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황조군 병사들은 나는 듯한 신법으로 자리를 벗어나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풍칙이 군사들의 눈을 피해 상수 근처의 외딴 포구까지 도망치자, 약속한 대로 거룻배를 대 놓고 기다리던 송겸이 그를 불렀다.
“문향!”
첨벙.
이제 풍칙이라는 이름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1년간 황조군에 잠입해 있던 강동군 장수 서성은 황조군의 갑옷과 투구를 벗어 강물 속으로 내던졌다.
서성과 송겸은 그대로 배를 저어 나아갔다. 북쪽의 강하 방향이 아니라 남쪽, 하류 방향이었다. 중간에 육로로 난 샛길을 통해 강동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송겸은 배를 저으며 서성에게 물었다.
“황조는 어떻게 되었나?”
“며칠간 목숨만 부지할 수 있을 정도의 중상을 입혔네. 이제 황조는 밖으로 후송되지도 못하고, 외성과 내성 사이의 영채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게 되겠지.”
“1년이나 걸린 책략을 완벽하게 마무리했군.”
“아직 마무리된 것은 아닐세. 마지막 단계까지 성공해야지.”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이걸로 끝났지 않나. 자네도 참 보통 사람이 아닐세. 주 장군은 자네의 그런 재주를 어떻게 단번에 꿰뚫어 봤는지 모르겠군.”
송겸은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기에는 이 대담한 작전을 입안한 주유도,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한 서성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이 작전에는 마지막 한 가지 단계가 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유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이제 송겸과 서성의 임무는 무사히 강동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때.
쾅!
폭음과 함께 배가 크게 흔들렸다. 물속에서 뭔가 부딪힌 것이다.
“크윽, 무슨 일이지?”
“쇠가 부딪히는 소리다.”
서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손에는 비도를 뽑아 들었다.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다.
쾅!
다시 한번 폭음이 일었다. 이번에는 아예 배가 두 개로 쪼개졌다. 서성과 송겸은 어찌할 도리도 없이 물에 빠지게 되었다.
부글부글.
서성은 입 안의 호흡을 조금씩 뱉으며 강안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헤엄쳤다. 물속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쿵.
뒤에서 누군가 몸통으로 서성을 받았다. 엄청나게 빠르게 헤엄을 치는 자였다. 서성은 어두운 물속에서 손발을 놀려 의문의 상대와 사투를 벌였다.
부글부글.
상대는 체격이 크고 단단했다. 일당백의 무사인 서성조차 압도하는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자맥질 실력마저 월등했으니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결국 상대가 뒤에서 목을 조르자 서성은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뭐라도…….’
상대의 허리춤에 뭔가 달려 있었다. 누가 봐도 단검을 차고 있을 만한 위치였다. 서성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상대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상대를 찌르기 위해 빼앗은 물건을 치켜든 순간, 서성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상대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것은 단검이 아니라 구리 방울이었다. 서성은 말소리가 되지 못하고 부글거리는 거품 소리로 변해버린 자신의 욕설을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