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대해의 검은 상어
‘저 그물이 까다롭군.’
삼지창과 그물을 쓰는 마충이다. 삼지창은 비슷한 무기를 상대해본 적이 있지만, 그물을 뿌리는 적은 처음이었다. 마초는 마충이 왼손에 들고 있는 그물을 보며 다음 수를 생각했다.
“그물부터 베어 주마.”
슈욱!
마충이 삼지창을 찔러 먼저 공격해 왔다. 마초는 가만히 서서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촤아악!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마충이 왼손에 든 그물을 뿌렸다. 그러나 마초는 이미 오른손에 쥔 치란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공중에 뿌려진 그물이 막 정점에 달했을 때, 마초가 든 치란이 큰 호를 그렸다. 정확한 각도로, 최고의 속도로, 그리고 제대로 힘을 실은 참격이었다.
퍼억!
마초의 치란이 번득이자 그물이 두 쪽으로 잘렸다. 단단한 물체가 아니라 낭창낭창한 그물을 허공에서 잘라내는 신기를 보자 마충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마초는 왼손의 청강검을 앞세운 채 마충을 향해 돌진했다. 마충은 삼지창의 날 사이로 마초의 청강검을 막았다.
끼이익!
청강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삼지창의 날 사이에 박혔다. 이제 마초와 마충이 병장기를 맞대고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초는 청경의 수법으로 마충의 무게중심을 흔들었다. 마충은 마초의 의도를 눈치채고 삼지창을 놓아 버리며 대신, 허리에 찬 4척의 검을 뽑았다. 그러나 잠시 무게중심이 흔들려 휘청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초의 치란이 날았다.
깡!
치란은 마충이 뽑아 든 검을 잘라냈다. 마충이 뽑은 검은 순식간에 자루만 남긴 채 날이 사라졌다.
“Incredibilis(믿을 수 없군).”
마충은 자신도 모르는 새 고향의 말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자루만 남은 검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큰 칼로 그물을 자르고, 작은 칼로 쇠를 자르다니. 놀랍군.”
맨손이 된 마충은 두 주먹을 눈앞으로 들었다. 투기장의 권투사들처럼 징 박힌 가죽 띠로 감은 주먹이었다.
‘이제 이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나는…….’
“Ne desperes(포기하지 않는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위기와 눈빛으로 마충의 뜻이 전해졌다. 순식간에 마충의 세 가지 병장기를 부수고 여유 있게 다가오던 마초는, 맨주먹으로 계속 싸우려는 마충을 보자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후, 씩 웃으며 치란을 강바닥에 꽂고 청강검을 집어넣었다.
“서역의 권법도 한 번 볼까. 상대해 주마.”
“Non paenitet(후회하지 마라).”
팟.
마충이 선공을 취했다. 왼손이 직선으로 뻗으며 마초의 턱을 노렸다. 마초는 아주 살짝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하며 앞으로 한 발짝 전진했다.
팟!
마충은 촌경의 수법처럼 빠르게 왼손을 회수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역시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공격이었다. 생각보다 팔이 길었다. 빠른 공격을 눈에 담기 위해 마초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슈욱.
마초는 전진하던 자세 그대로 뒤로 비스듬히 상체를 뉘었다. 마충의 징 박힌 주먹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며 몇 방울 선혈이 튀었다. 그리고 자세를 눕힌 마초의 오른손 주먹이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날아가 마충의 몸통에 꽂혔다.
퍽!
마충의 몸이 들썩거렸다. 마충은 공격을 받은 순간 이를 악물었다. 자신보다 작은 상대지만 치는 힘은 투기장에서 싸웠던 거구의 게르마니아 무사 못지않았다.
무기로도, 주먹으로도 이기기 힘들다. 마충은 체격의 우위를 활용하기 위해 그대로 마초에게 다가가 껴안고 힘 싸움을 벌이려 했다.
마초는 마충이 접근하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럴 줄 알았지.”
턱.
마초는 자신의 허리를 껴안으려는 마충의 뒤통수에 왼손을 댔다. 그리고 청경의 수법으로 힘의 방향을 밑으로 향한 채 눌렀다.
촤악!
마충의 머리가 강바닥에 처박히며 사람의 머리 높이만큼 물보라가 튀었다. 마초는 뒤이어 오른손을 들어 마충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물의 저항을 이기기 위해, 손바닥이 수면에 닿기 직전 촌경의 수법으로 한 번 더 가속한 일격이었다.
쾅!
이번에는 사람 키의 두 배만큼 높은 물보라가 일었다.
잠시 후, 마초는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실신한 마충의 멱살을 잡고 건져 올렸다.
시리아에서 형주까지, 만 리가 넘는 길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던 검투사는 첫 번째 패배를 당하고 정신을 잃었다.
* * *
까앙!
감녕은 사각철간을 들어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았다. 지금 상대하는 덩치 큰 자객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덩치 큰 자객이 휘두른 도끼를 쳐내자, 뒤이어 옆에서 기회를 보고 있던 작달막한 자객이 창으로 찔러 왔다. 빠르고 예리한 일격이었다.
“이런 제길!”
감녕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굴러 몸을 피했다. 창날이 스쳤는지 어깨가 화끈거렸다.
이쯤 되면 적이 쫓아오지 못한다고 생각될 만큼 후퇴한 감녕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장소는 강바닥이었으니 온몸에 물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작은 자객의 창날이 눈앞에 나타났다.
“크윽!”
감녕은 급격히 몸을 숙였다. 시야에 시커먼 강물이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서는…….’
큰 자객의 도끼가 자신을 노릴 것이다. 감녕은 감각만으로 좌철간을 뒤로 휘둘러 큰 자객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곳을 쳤다.
부우웅!
철간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났다. 큰 자객은 마지막 순간 고개를 젖혀 감녕의 철간을 피했다. 대신 큰 자객의 복면이 철간에 걸려서 하늘을 날았다.
두 발짝 물러난 큰 자객은 입술을 따라 난 큼지막한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장강에 금범대협 감녕을 당할 수 있는 자가 없다더니, 사실이었군요?”
“하지만 그 명성도 오늘까지입니다. 우리를 만났으니까요.”
체격이 크고 작은 두 자객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팔이 네 개 달린 적을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는 빠른 보법으로 하나씩 상대해야 하는데, 강물 속이라 발을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으니 더욱 상대하기 어려웠다.
쏴아아.
감녕의 무릎께에 파도가 치며 물벼락이 쏟아졌다. 몸에 물이 닿자 상처가 난 곳 여기저기가 쓰라렸다. 벌써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 정도 무예 실력이면 강동군이나 원소군의 이름난 장수 못지않은 놈들이다. 최고 수준의 살수가 틀림없는데, 이런 놈들이 한중 천사도의 잔당이라고?’
한중 천사도에 이 정도 수준의 살수들이 있었다면 한중 정벌 도중에 정체가 드러났을 것이다. 천사도에서 형주나 강동 일대의 살수를 재물로 샀다고 보기도 석연찮았다. 살수도 의뢰를 가려 받는 법인데, 재물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해도 대장군 마초의 목을 사는 게 가능한가?
감녕이 의문에 빠져 있는 사이, 강안 쪽에서 횃불이 올랐다. 난전이 벌어지자 얼른 상륙한 마대가 시야 확보를 위해 횃불을 켠 것이다.
“감 장군! 제가 가세하겠습니다!”
“기다려, 마대 공자.”
감녕은 손을 들어 마대를 제지했다.
“고작 살수 두 놈이다. 나 혼자서 충분하다.”
감녕은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옆으로 돌았다. 큰 자객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쌘 몸놀림으로 감녕의 뒤로 이동하고, 작은 자객은 창을 길게 잡고 감녕의 정면에 섰다. 작은 자객의 복면이 마치 웃는 것처럼 흔들렸다.
“자신감은 대단하군요. 하지만 장강에서 수적들 잡으면서 쌓은 명성은 진짜배기를 만나면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더군.”
감녕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태원 전투에서 여포에게 도전했었다. 그러나 장료, 조운과 함께 덤볐으면서도 여포를 당해내지 못했다. 여포의 무위는 천하 용장이라 불리는 수준에 있었다.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날부터 3년간, 단 하루도 수련을 거르지 않았다. 이제 겨우 그 무위의 끄트머리가 보이려는 참이다.’
“그런데 고작 자객들 손에 죽을 것 같으냐!”
감녕이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허리춤에 찬 구리 방울이 요란하게 같이 울었다.
강안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마대가 침을 삼켰다. 지휘 능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무공은 이미 대성한 몸이다. 그가 보기에도 감녕이 상대하는 두 자객의 솜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감흥패가 꽤 고전하고 있나 보군.”
“아니, 형님!”
마대의 옆에 마초가 불쑥 나타났다. 일각 동안 황충과 마충을 연이어 상대했지만, 아직도 몸놀림이 가벼웠다.
‘고작 자객들이다. 내가 가세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마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객들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큰 자객은 복면이 날아가서 얼굴이 드러나 보였다. 거대한 흉터가 있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큰 자객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횃불을 더 크게 밝혀라.”
마초는 그렇게 지시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을 어디서 봤을까 생각하던 마초는, 그의 이름이 기억난 순간 눈을 부릅떴다.
“감흥패, 몸을 피해라!”
익주 파군에서 본 얼굴이었다. 그는 원래의 역사에서 무예 실력 하나로 장비의 눈에 들어 부관이 되었다. 그리고 장비는 큰 전쟁을 준비하던 중 그의 배신으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그러고 보니 작은 자객도 눈매가 낯설지 않았다. 큰 자객과 함께 장비를 배신했다는 그 인물이 틀림없었다.
‘범강, 그리고 장달… 원래부터 위장 잠입한 살수들이었나!’
큰 자객과 작은 자객의 이름은 범강과 장달. 원래의 역사에서 장비를 암살한 자들이었다.
마초는 그대로 치란을 빼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칫하면 감녕을 잃을 판국이었다.
한편, 감녕은 다가오는 마초를 향해 손바닥을 펴서 오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주공은 끼어들지 마십시오.”
“저들은 그냥 살수가 아니다!”
“소장도 그냥 무사가 아닙니다.”
척.
감녕은 좌철간을 놓아 버리고 우철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자세에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마초는 감녕이 발하는 기백을 보며 발을 멈췄다.
“…삼합 안에 끝나지 않으면 끼어들겠네.”
“일합이면 충분합니다.”
감녕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눈앞의 작은 자객, 장달이 창끝을 기묘하게 흔들었다. 큰 자객, 범강이 도끼를 치켜들고 뒤에서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는 게 느껴졌다.
팟!
장달의 창이 날아들었다. 이름난 무장 못지않게 빠른 창이었다. 우철간을 세운 채 장달의 창을 기다리던 감녕은 침착하게 위에서 아래로 철간을 내리쳤다.
쿵!
감녕의 철간이 닿자 장달의 창은 밑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바닥으로 처박혔다. 마초가 사용하는 청경의 수법을 응용해서 힘의 방향을 아래로 바꾼 것이다.
“아니?”
장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녕은 장달의 창과 함께 바닥에 처박힌 자신의 철간을 꽉 쥐었다. 마초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기에 청경을 쓰면 자신의 철간도 같이 딸려가게 되었다.
뒤에서 범강의 도끼가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감녕은 한 박자를 기다렸다. 마침내 도끼날이 등짝에 한 치 차이로 접근했을 때, 힘의 방향을 따라 몸을 돌리며 바닥에 처박힌 철간을 크게 뒤로 휘둘렀다.
쾅!
상산창술의 절기, 일신시담을 응용한 초식이었다. 역시 조운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섬세한 무공 없이도 장강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감녕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범강은 말이 없었다. 철간에 맞은 머리가 터져나가 목 위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목 없는 범강의 거구는 서서히 기울더니 물 위로 쓰러졌다.
감녕은 그 모습을 흘긋 보고 다시 큰 동작으로 철간을 휘둘렀다.
쩡!
장달이 던진 비도는 너무나 쉽게 철간에 막혔다. 장달은 이를 악물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협공하면 천하 용장이라도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저놈이!”
장달은 이를 갈며 깊은 물 속으로 도망쳤다. 자맥질에는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다. 얕은 강안을 벗어나 깊은 물 속으로 헤엄쳐서 도망칠 셈이었다.
장달은 물 밑에서 수십 장이나 되는 거리를 헤엄쳤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잠시 수면으로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나?”
같이 자맥질해 온 감녕이 어느새 장달을 따라붙어 있었다. 장달은 이를 갈며 비도를 뽑았다.
콱!
감녕은 그대로 장달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장달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우드득.
“크아악!”
감녕이 한 번 힘을 쓰자 장달의 손목이 부러져서 축 늘어졌다. 이번에는 무공이 아니라 그저 타고난 힘이었다. 장달은 헤엄치는 것도 잊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너는 바보냐? 금범군 두령 앞에서 강으로 도망치다니.”
“크윽, 크아악!”
“아까 배에 충돌했던 악어가 네놈이었나 보군. 하지만 나 또한 어려서부터 자맥질을 하도 잘해서 대해(大海)의 검은 상어라고 불리던 몸이다. 너 따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냐?”
바다를 본 적 없는 감녕은 상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이 자신처럼 잘생긴 물고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두 자객을 잡아낸 감녕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강안으로 돌아왔다. 수련의 성과를 확인했으니 오늘은 진탕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옆구리에는 사로잡은 장달을 낀 채였다.
그런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강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초가 감녕을 향해 술병을 던졌다. 감녕은 허공에서 술병을 낚아챈 뒤 그대로 입 안에 한 병을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