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23화 (223/306)

223화. 검투사

“도가쟁이들이군.”

마초는 자객들이 외우는 주문을 듣자 피식 웃었다.

‘내가 천사도의 도관을 다 파괴했으니, 거기에 원한을 품고 나를 암살해 보겠다고 따라붙었나. 녀석들 입장에서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겠군. 내가 외딴 곳에서 몰래 활동하고 있으니까.’

형주에 온 이후, 마초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 안에서 머물렀다. 현직 대장군이면 형주에서 가장 큰 손님이니 주로 태수부나 자사부에 기거했던 것이다. 만약 마초를 암살하려던 자들이 있었다면 그 동안은 기회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초를 습격한 십여 명의 자객들은 몸놀림이 가벼웠다.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입에 물고 있던 갈대를 뱉어 버리고 기울어진 배 위를 타고 올라왔다. 그중의 하나가 칼을 뽑아 들고 다가왔다.

마초는 허리에 찬 치란을 뽑아 들었다.

퍼억!

치란을 한 번 크게 휘두르자 자객이 든 칼과 자객의 몸이 통째로 잘렸다. 순식간에 시신이 된 자객이 물 위로 떨어지며 요란한 물보라가 일었다.

“덤벼라!”

마초는 비스듬하게 기운 선체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자객들을 상대했다. 제법 훈련된 자객들이었으나 마초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치란이 번뜩이자 허무하게 쓰러져 나갔다.

“자봉승천거(紫鳳乘天去), 자난강지도(紫鸞降地逃)…….”

자객들은 순식간에 세 명의 희생을 내자 마초와 맞대결을 피했다. 천사도의 은형주(隱形呪)를 외우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물속을 이동해서 반대쪽 뱃전으로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배의 높은 쪽을 선점하고, 마초를 내려다보며 싸우기 위함이었다.

“뭔가 이상하군.”

마초는 자객들의 움직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물싸움에 극히 능한 녀석들이다. 한중은 산골이고 강이 깊지 않은데, 이놈들이 정말로 한중 출신이 맞나?’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리 없다. 그런 건 싸움이 끝난 후 생존자를 붙잡아 문초하면 될 일이었다. 마초는 그대로 기울어진 뱃전을 거슬러 오르며 달렸다. 목표는 벌써 뱃전 위에 올라 있는 키가 큰 자객이었다. 마초는 상대를 향해 치란을 올려 쳤다.

쉬이익.

까앙!

쇠와 쇠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키 큰 자객이 손에 든 단창으로 마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자객은 마초의 칼이 나오는 방향을 예측하고 옆에서 비스듬히 창을 끼워 넣어 치란의 칼날에 실린 힘을 흘렸다. 그렇지 않았으면 창과 함께 두 쪽이 났을 것이다.

“아니?”

마초도 당혹했다. 방금 자객이 보여 준 무공은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맹장들의 그것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덜컥.

그때, 옆으로 몸을 피하려던 마초의 몸이 뭐에 걸린 듯 멈췄다. 자객이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그물을 던져 마초의 몸을 옭아맨 것이다.

“창과 그물이라고?”

어부 같은 병장기를 든 키 큰 자객은 마초가 그물에 걸리자 그대로 창을 찔러 왔다. 창 끝이 세 가닥으로 나뉘어 있는 삼지창이었다. 마초는 치란을 들어 잘라 버리려 했지만, 치란을 든 오른손이 그물에 걸려 있으니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슈우욱!

마초는 급한 대로 몸을 크게 눕혔다. 삼지창은 공기를 찢으며 마초의 눈앞으로 지나갔다. 아찔할 정도의 힘과 속도였다.

턱.

마초는 비교적 자유로운 왼손으로 삼지창의 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청경의 수법을 써서 창의 반대쪽을 쥐고 있는 상대의 중심을 흔들었다. 상대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을 때, 그대로 창을 낚아채며 비스듬한 뱃전을 타고 미끄러졌다.

끼이익!

그물에 걸린 채 그대로 떨어지는 마초. 그리고 마초와 같은 삼지창을 쥔 채 따라 떨어지는 자객.

뒤엉켜서 떨어진 후 자객의 삼지창을 뺏으려는 게 마초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같이 떨어지던 자객은 별안간 창과 그물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불안정한 자세에서 팔 힘만으로 발출한 수였지만, 마초의 힘과 체중을 모두 감당해서 끌어당길 정도로 완력이 강했다.

부웅.

이번에는 마초가 창을 잡은 채 상대에게 딸려갔다. 자객은 마초가 다가오자 한껏 접었던 긴 다리를 쭉 펴며 발로 밟듯이 마초의 몸통을 찼다.

뻑!

“컥…….”

복부에 강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뱃전을 다 미끄러져 물속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자객이 다시 한번 삼지창을 들어 마초를 찍으려는 찰나, 마초는 왼손으로 뒤춤에 찬 청강검을 뽑아 그물을 잘랐다. 그리고 몸을 뒤틀어 자객의 두 번째 수를 피하고 물에 빠졌다.

퍼엉!

물보라가 일었다. 마초는 물속에서 몸 이곳저곳에 걸린 그물들을 청강검으로 잘랐다. 그리고 헤엄쳐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수면 위로 보이는 하늘이 새까매졌다. 자객이 마초가 있을 위치를 예측하고 두 번째 그물을 던진 것이다.

“……!”

마초는 더 깊이 잠수해서 그물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물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자객이 내리꽂는 창이 날아왔다.

펑!

요란한 물보라가 튀었다.

잠시 후, 마초의 머리가 물 위로 나왔다. 격전이 벌어지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강안 근처, 수심이 가슴까지 오는 곳이었다.

자객도 어느새 그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손에 든 삼지창은 한쪽 가지가 떨어져 나간 채 세로로 깊게 잘려있었다. 물속에서 반격한 마초가 치란으로 삼지창을 잘라낸 것이다.

마초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자객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기묘한 차림새로군.”

8척이 넘는 큰 키에 균형 잡힌 근육질의 무사였다. 머리에 서역의 양식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청동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세 번째 그물과 두 번째 삼지창을 양손에 들고, 허리에는 4척의 폭이 넓은 검을 차고 있었다.

찬찬히 자객을 훑어보던 마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서역인인가.”

“그렇다.”

청동 가면 너머에서 자객이 말했다. 발음이 약간 어색했지만 분명한 한어였다.

“네가 이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라고 들었다, 마초.”

“용케 내 이름을 알고 있군.”

마초는 가면 쓴 자객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는 이제 이 서역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진국 군관 출신이 내 밑에 있다. 그가 말하기를, 무예가 뛰어난 자 하나가 살수가 되겠다며 동쪽으로 갔다고 했지.”

5년 전, 서량 원정에서 얻은 로마군 백부장 출신의 석공 갈서. 그와 함께 한으로 건너온 부하들 중 투기장에서 100승을 거두고 자유의 몸이 된 검투사가 있었다.

자객이 쓰는 전법은 갈서가 말해준 로마의 투기장에서 쓰이는 전법과 흡사했다. 일대일의 대결에서는 그물과 삼지창이 검과 방패보다 더 유용하다고 들었던 것이다.

“통성명이나 하지, 서역인. 내가 한의 대장군 마초다. 네놈 이름은 뭐냐?”

“고향에서는 검투사 막센티우스(Maxentius). 여기서는 마충(馬忠)이라 불리고 있다.”

자객의 이름을 들은 순간 마초의 눈이 커졌다.

‘마충이라면 설마?’

훗날 역사에 남게 되는 마충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누구인지는 이름 두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역사서에 남긴 행적은 딱 하나.

“…관우를 잡은 인물인가.”

훗날 관우가 전쟁에서 패해 죽음을 맞이할 때, 관우를 사로잡았던 무사인 것이다. 마충이 누구인지, 그 한 줄의 기록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마초는 마충의 정체가 단지 무명의 솜씨 좋은 무사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설마 로마 출신의 검투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상대로 부족함은 없겠군. 내게 서역 무사의 솜씨를 보여다오.”

마초는 치란을 들고 마충에게 다가갔다. 마충은 가슴까지 잠기는 물 위에서 능숙하게 보법을 밟으며 마초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촤악.

마충이 먼저 그물을 던졌다. 마초는 그물을 피하고 몸을 틀어 강안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수심이 얕은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마충도 마초와 몸을 나란히 하고 강안 쪽으로 달렸다.

수심이 무릎에 닿을 만큼 얕은 곳까지 이동했을 때, 마초는 치란을 들고 마충을 향해 돌진해서 내리쳤다.

쉬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치란이 공기를 갈랐다. 마충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마초의 칼을 피했다.

그러나 내리치는 공격은 허초였다. 마초는 내리치던 칼을 회수해서 마충의 얼굴을 찔러 갔다. 마충이 고개를 크게 틀었다.

깡!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마충의 청동 가면 한쪽이 깨졌다. 마충은 개의치 않고 오른손의 삼지창을 부려 마초를 찔러 갔다. 찌르기 공격을 하느라 몸을 크게 뻗은 마초의 다리가 목표였다.

철썩!

공격을 예측한 마초가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마초는 물을 뒤집어쓴 채 일어났다. 마충도 깨진 가면을 던져 버리고 얼굴을 드러냈다.

금발과 푸른 눈, 높은 콧대.

마충의 얼굴은 예상대로 서역인의 그것이었다. 조금 전 살초를 간신히 피한 것처럼 보였지만, 마충의 표정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마충은 마초를 보며 말했다.

“체격이 생각보다 작군. 속도는 대단하지만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동쪽의 ‘천하’에서는 그 정도로 행세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체격과 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마충은 그렇게 말하고 마초를 찔러 왔다.

부우우웅!

무쇠로 만든 묵직한 삼지창이 공기를 찢었다. 마초는 순간적으로 마충이 휘두르는 삼지창의 기세가 여포의 방천화극 같다고 생각했다. 서역인의 공격은 그만큼 힘과 속도가 출중했다.

깡! 깡! 깡!

마충은 쇠도 잘라내는 치란을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아무리 치란의 칼날이 날카로워도 쇠를 자르는 건 정확한 각도로 빠르고 강한 공격을 날렸을 때의 일이다. 수세에 몰려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상황에서는 마충의 삼지창을 베어낼 수 없었다.

부웅!

마초가 치란을 한 번 크게 휘둘러 마충을 떼어냈다. 마충은 두 발짝 물러난 뒤, 다시 마초를 향해 다가왔다. 마초는 빠르게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숨을 골랐다.

‘황한승과 싸우면서 얻은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하기는 너무 강한 자로군.’

아직 손발이 무거웠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고 싶었다. 게다가 시간을 끌면 자신의 군사들이 구원하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마초가 물러나는 만큼, 마충은 마초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왔다.

“시간을 끌 셈인가.”

마초는 눈앞의 서역인을 보며 씩 웃었다.

“들켰나. 투기장에서 100번 연속으로 이겼다더니, 눈치가 여간 아니군.”

“네가 전쟁터에서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일 대 일의 대결과 전쟁은 다르다.”

“그런가.”

“이곳에서는 전쟁터에서의 명성을 가지고 일 대 일의 승패를 셈하더군. 목숨이 오가는 일 대 일 대결을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군.”

“서량의 마초. 나는 너보다 더 강한 자들을 꺾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 ‘천하’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 물으면 너나 관우 같은 자들의 이름이 나오던데, 너희들은 내가 투기장에서 상대했던 자들에 미치지 못한다.”

꿈틀.

마초의 눈썹이 깊은 주름을 그렸다.

“오늘 천하제일로 불리는 너를 꺾고…….”

“잘 들어라.”

마초는 더 이상 듣지 않고 마충의 말을 끊었다.

“네가 대진국에서 뭘 했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 따위에게 내 무우(武友)가 사로잡혔다는 건 참을 수 없군. 원래의 역사에서, 그는 아마 큰 상처를 입거나 삶의 의지를 잃은 상태로 너를 만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잡혔을 리 없으니.”

“무슨 소리냐?”

마충은 마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초는 대꾸하지 않고 청강검을 뽑았다.

스르릉.

2척 반의 청강검을 왼손에, 5척의 치란을 오른손에 든 마초가 앞으로 나섰다.

“너는 나를, 그리고 나의 벗을 당해내지 못한다. 지금부터 그걸 가르쳐 주마.”

마초는 그 말과 함께 왼손을 뻗어 청강검으로 마충을 겨눴다. 마초와 마충, 두 사람의 푸른 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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