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221화 (221/306)

221화. 마초 대 황충

관우와 비슷한 9척의 키.

장비와 비슷한 우람한 근육질.

아예 바싹 밀어버린 대머리.

황충의 외모는 개성이 넘쳤다. 마초가 지난 생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았다. 장수 티를 내지 않고 병사들의 갑옷을 입고 있는 점도 마초의 기억 속 황충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명의 무사라.”

황충은 그렇게 되뇌며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거대한 방패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어디 무명의 무사가 맞는지 확인해 볼까.”

쿵!

황충은 말이 끝나자마자 발을 굴렀다. 마초와 감녕은 황충이 발을 구르자 배가 흔들리고 시야가 기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충은 발을 구르는 힘으로 마초를 향해 빠르게 돌진해 들어왔다.

마초는 천천히 철간을 들어 앞으로 길게 뻗었다.

쿵. 쿵. 쿵.

황충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9척에 달하는 거구가 두 개의 방패를 앞세운 채 순식간에 마초의 앞으로 다가왔다. 마초는 철간을 앞으로 겨눈 채 달려오는 황충을 맞았다.

황충의 방패와 마초의 철간 끝이 맞닿기 직전, 두 사람은 동시에 촌경의 수법으로 각자의 무기를 가속시켰다.

콰앙!

폭음이 울렸다. 쇠처럼 단단한 남방의 거목을 깎아 쇠테를 둘러 만든 황충의 방패가 한 짝이 맥없이 터져나갔다.

마초의 철간은 두 촌경이 충돌한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튕기듯 위로 솟구쳤다. 마초는 미련 없이 철간을 놓았다. 철간은 공중을 빙글빙글 돌았다.

철간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황충이 두 번째 수를 발출했다. 오른손의 방패가 부서지자 왼손에 든 또 하나의 방패로 공격해 왔다. 마초의 눈앞 한 치까지 다가온 방패는 거기서 촌경의 수법으로 다시 한번 가속했다.

척.

마초는 가만히 오른손 손바닥으로 그런 황충의 방패를 받았다. 상대의 힘을 읽고 흘리는 청경의 수법이었다. 이제는 황충 같은 고수가 발출하는 촌경까지 받아낼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동시에 마초가 왼손을 뻗었다. 왼쪽 주먹으로 발출한 촌경이 황충의 갑옷 입은 가슴을 강타하고, 뻗을 때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회수되었다.

퍼억!

황충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허공을 빙글빙글 돌던 철간은 그제야 뱃전에 떨어졌다.

쾅!

묵직한 철간이 나무로 된 뱃전을 깨뜨리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신호인 것처럼, 한 수를 나눈 두 사람은 잠시 떨어졌다.

마초의 왼쪽 주먹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마초는 손바닥을 펴 보고 피식 웃었다.

“아까 촌경끼리 부딪혔을 때 찢어졌군. 힘이 센 줄은 알았지만 이런 고급 무공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황충의 신체는 압도적이다. 관우, 장비, 여포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촌경 같은 무공까지 익히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황충 또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의 청경에 촌경이라. 이는 사오십 년을 수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경지다. ‘무명의 무사’, 그대는 서른도 안 돼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무공을 얻었나?”

“어느 날 꿈을 꾸다가 기연을 얻었지.”

“재미있는 친구로군.”

황충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 뒤 왼손의 방패를 고쳐 잡았다. 마초 또한 뱃전에 박혀 있는 철간을 다시 뽑아 들었다.

팟.

이번에는 마초가 먼저 움직였다. 마초는 철간을 어깨에 멘 채 낮은 자세로 돌진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황충은 방패를 비스듬히 기울여 모서리로 마초를 찍어 갔다. 마초는 얼른 몸을 틀어 피했다.

쾅!

방패의 모서리가 뱃전을 그대로 깨뜨렸다. 마초는 그대로 철간을 휘둘렀다. 목표는 황충의 다리였다.

‘창검으로 싸우면 죽고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날이 없는 철간이라면 목숨을 빼앗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마초다. 이제 어지간한 상대는 맨손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 창검으로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대는 남방 제일의 무사, 황충이다. 이기려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상대인 것이다. 그래서 굳이 날이 없는 철간을 빌려 쓰는 것이다.

마초는 그대로 황충의 다리를 후려쳐서 승부를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텅.

황충이 발을 들어 마초의 철간에 가져다 댔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동작이었다. 철간이 미처 가속하기도 전에 황충의 발바닥이 철간을 막았다.

황충은 그대로 마초의 철간을 밀어 찼다. 500근(약 113kg)이 훌쩍 넘는 황충의 체중, 그런 몸집에 어울리는 괴력, 그리고 촌경의 수법이 더해지자 황충의 발차기는 마초의 철간에 실린 힘을 압도했다.

쾅!

마초는 그대로 허공에 붕 떠서 날아갔다. 그대로 철간을 놓치고 뱃전을 미끄러졌다. 뱃전에서 튕겨나가 물에 빠질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제길!”

지난 생에서 황충과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겨뤄본 적은 없었다. 한중 공방전에서 잠깐, 그리고 익양 대치에서 잠깐 군의에 참석했을 뿐이다. 황충이 얼마나 뛰어난 무장인지는 친분이 있는 장비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괴력을 지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초는 등에 메고 있는 치란을 뽑아 뱃전에 박아 넣었다.

끼기기긱!

칼의 마찰력을 이용해 정지한 마초. 그런데 뱃전에 박힌 칼을 뽑아냈을 때, 황충이 이미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퍽!

황충은 방패를 앞세워 마초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질량으로 밀어붙여서 물속으로 처넣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초의 치란이 어느새 황충의 방패에 박혀 있었다. 황충과 마초는 각자의 무기를 쥐고 힘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휘리릭.

그리고 잠시 동안의 힘 싸움이 끝났을 때, 황충의 방패는 마초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청경의 수법으로 황충이 가하는 힘을 흘린 것이다.

마초가 방패를 빼앗는 것을 보자 황충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고강한 무공은 처음 보는군. 병장기를 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상황이 부득이하여 어쩔 수 없구나.”

“잠깐.”

마초는 그렇게 말한 뒤 치란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방패를 옆으로 던졌다.

“무슨 병장기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지러 갈 필요 없이 이대로 권장으로 승부를 내는 게 어떤가.”

“권장으로?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맨손으로 겨룰 때는 무기를 들고 겨룰 때보다 힘과 체격의 차이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황충은 자신보다 훨씬 작은 무사가 그런 제안을 하자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래. 나는 그대와 서로 몸을 상하기를 원치 않는다.”

“야습을 해 놓고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저 장사태수 장선의 편에 서서 싸우는 젊은이들을 살려주고 싶을 뿐. 그대와 사적인 원한은 없다. 이 자리에서 권장으로 승패를 가리고, 지는 자가 승복하여 군사를 물리는 게 어떤가. 감 대협께서도…….”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감녕 쪽을 돌아봤다.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던 감녕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셨군. 자, 어떤가?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살생도 줄어들지 않겠나?”

황충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바로 찰갑을 벗어 던지고 두 손을 맞잡았다.

“나 또한 어지간하면 살생을 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자신이 있지만, 그대에게는 손속을 두기 어렵겠군. 그대가 나의 권장에 죽어 버리면 그때는 어떻게 되나.”

“그야 나의 패배 아니겠나.”

“그렇다면…….”

비무의 규칙을 확인하자 황충의 기세가 달라졌다. 거대한 상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받아들이지.”

탓!

마초와 황충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초의 권이 먼저 황충의 턱을 노렸다.

황충은 고개를 살짝 틀어 마초의 권을 피했다. 주먹이 얼굴을 스치며 칼에 베인 것처럼 상처를 남기고 피가 튀었다. 황충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마초를 덮쳤다.

퍼억!

황충은 마초를 몸으로 들이받은 후 그대로 껴안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마초의 몸을 뱃전으로 내리치려는 순간, 공중에 뜬 마초의 팔꿈치가 정수리에 떨어졌다.

퍽!

마초는 자신을 놓치고 휘청거리는 황충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으로 촌경의 수법을 써서 황충의 몸통을 때리려 했다.

그때, 황충은 먼저 한 발을 전진하며 마초의 촌경 속으로 파고들었다.

퍽.

힘을 쏟아내는 지점이 어긋나서 완전하지 못한 촌경이었다. 마초는 뒤이어 오른손 장을 옆으로 휘둘러 황충의 턱을 가격했다. 황충은 그것까지 몸으로 받아내며 다시 한번 마초를 껴안았다.

턱.

“장사로군.”

마초는 자신도 모르는 새 감탄했다.

이 정도의 공격이면 어떤 맹장이라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충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단순히 신체의 강도만을 놓고 보자면 여포, 관우, 장비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마초는 황충과 맞잡고 청경의 수법을 써서 중심을 흐트러뜨리려 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건…….”

“청경이 가장 위험하군. 그러니 봉해야겠다.”

황충은 그렇게 말하며 온몸으로 마초를 밀어붙였다. 몸을 맞댄 상태에서 힘이 동시에 가해지는 지점이 너무 많으니 어느 한 지점의 힘을 흐트러뜨리는 청경의 수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수준 차이가 많이 났으면 그런 악조건에서도 청경을 시전했겠지만, 마초 자신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올라 있는 황충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쾅!

황충은 그대로 마초의 중심을 띄운 후 바닥에 눕혔다. 등을 통해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황충에게는 강한 신체만 있는 게 아니다. 예상보다 정교한 무공도 있었다. 마초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제압하는 건 무리겠군.’

황충은 머리로 마초의 가슴팍을 압박해서 움직임을 봉하려 했다. 마초는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황충의 오른쪽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귀를 잡히면 머리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를 들어 올린 황충이 벼락같은 속도로 다시 머리를 내리찍었다.

퍼억!

“컥…….”

누운 채 박치기에 맞은 마초의 코와 입에서 선혈이 튀었다. 급격한 머리 움직임으로 떨어져 나간 황충의 오른쪽 귀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초는 누운 상태에서 황충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배에 발을 대고 밀어 차며 몸을 틀었다.

데구르르.

황충이 내려치는 주먹은 옷깃을 잡힌 까닭에 빗나갔다. 마초는 땅을 한 바퀴 구른 뒤 일어났다. 황충이 마초를 향해 말했다.

“누운 상태에서도 싸울 수 있는 건가. 이건 중원의 무공이 아니군. 강족 씨름인가?”

황충은 그렇게 말하며 윗옷을 벗어 던졌다. 옷깃을 잡고 다양한 수를 쓰는 마초에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근육에 감싸여 있는 흉통이 터무니없이 거대했다.

황충은 윗옷 일부를 찢어 피가 흐르는 오른쪽 귀에 두건처럼 둘렀다. 마초는 얼굴의 피를 닦아내며 씩 웃었다.

“혼자 이것저것 연구하다 보니 익히게 됐다네. 강족 씨름에서 가져온 수도 몇 개 있고.”

황충이 웃통을 벗은 채 인상을 찌푸리며 마초 쪽으로 다가왔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군. 살수를 쓸 수밖에.’

마초는 황충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황충이 다시 한번 몸으로 껴안으려 덮치는 순간,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보법을 밟으며 황충의 옆으로 돌았다.

척.

황충의 옆을 잡은 마초는 왼손을 황충의 팔에 대고 청경의 수법을 썼다. 힘을 아래로 흘리자 황충의 팔이 쑥 내려가며 몸이 흔들렸다. 마초는 팔이 내려가며 드러난 몸통을 향해 오른쪽 장으로 촌경을 발출했다.

펑!

정확히 들어간 촌경이었다. 몸통의 옆을 때렸으니 정면을 때린 것보다 충격이 더 클 것이었다. 황충의 몸이 들썩거리며 한 발짝 밀려났다.

황충은 굴하지 않았다. 왼팔을 뻗어 마초를 붙잡으려 했다. 마초 또한 왼팔을 뻗었다. 두 사람의 왼팔이 얽혔다. 황충의 팔은 마초의 옷깃 옆을 지나치고, 마초의 팔은 그대로 뻗어 들어가 황충의 쇄골을 움켜잡았다.

퍽!

마초는 왼손으로 상대의 쇄골을 누른 채, 몸을 한껏 기울여 오른쪽 무릎으로 몸통을 때렸다. 조금 전, 촌경이 들어간 그곳이었다. 보통의 무장이었다면 갈비뼈가 다 부러져서 중상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공격이지만, 상대가 황충이니 손속을 둘 수 없었다.

그래도 황충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크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귀가 떨어진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지 두건이 붉게 변했다.

“이제 끝을 내야겠군.”

저벅. 저벅.

마초는 그대로 황충을 향해 전진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할 셈이었다. 황충 또한 큰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마초를 향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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