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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20화 (220/306)

220화. 노당익장 (2)

장사 외성이 떨어진 다음 날, 장사성 외곽의 한 포구.

마초는 상수 상류에 위치한 이 포구에서 장사 전투의 전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런 마초에게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단신으로 성을 떨어뜨리다니, 설마 황조군에 그런 터무니없는 맹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겉으로는 강하의 상인, 하지만 그 실체는 강동군의 무장으로 주유 휘하에서 활동하는 송겸이었다. 송겸은 숨이 턱까지 차서 마초에게 전황을 고했다.

“대장군, 이대로는 우리의 계획이 다 어그러지게 생겼습니다. 난전이 벌어지지 않으면 황조를 암살할 기회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대장군께서 도와주십시오.”

“뭐가 ‘우리의 계획’이라는 거야? 난전을 틈타 황조를 암살하겠다는 건 너희들의 계획이고, 나는 그저 그걸 눈감아주기로 했던 것 아니냐?”

“그런 한가로운 말씀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대장군께서도 뭔가 뜻이 있어서 장사에 머물고 계신 것 아닙니까? 아마 황조 암살을 예상하고 장사를 지원하기로 하셨겠지요. 장사에서 뭘 얻으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장사가 함락되면 대장군은 원하시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초가 능청스럽게 나오자 송겸은 발끈하며 마초의 속내를 말했다. 마초는 그런 송겸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무공은 별 볼일 없는 녀석이 강단은 있군.’

송겸 또한 오랫동안 오나라의 중신으로 활동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다. 그래서인지 마초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을 했다.

“그래서 그대들 강동군은 무슨 계책이 있는가?”

“외성을 수복할 것입니다.”

“외성을 수복하면, 장선군이 그걸 지켜낼 수는 있겠나? 황조군에 황충이 있는 이상, 그를 앞세워 외성을 공격하면 다시 한번 떨어지지 않겠나.”

“강동에도 맹장이 있습니다. 곧 그가 도착하면 강동군이 전면에 나설 것이고, 그때는 황충과 정면으로 싸워볼 만할 것입니다. 단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 문제입니다.”

황충과 대적할 만한 강동군의 맹장. 마초는 그게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태사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나 보군. 이거 생각보다 판이 커지겠는데.’

“좋아. 그러면 그대들은 나에게 무엇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인가?”

“잠시만 시간을 벌면 됩니다. 정체를 드러내고 황조를 찾아가십시오. 대장군이 사실 장사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는 걸 알면 황조군도 무턱대고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장군께서 모르는 척 사흘 정도만 공세를 늦춰 주시면, 그 안에 저희가 어떻게든…….”

“이봐. 그러면 내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마초는 쓴웃음을 지었다.

공식적으로 장사를 방문한 것은 가후다. 그마저도 이제는 장사를 떠나 형남의 다른 고을들을 돌아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초는 대외적으로 비관과 함께 장강을 따라 유람하며 돈벌이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 중인 장사에 갑자기 나타나고, 뒤이어 황조군의 공세를 늦춰서 황조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라고? 그럴 수는 없지.’

그랬다가는 천하 사람들이 장사태수 장선의 반란을 마초가 사주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 오해를 사면 향후 유표와의 외교 협상도 단단히 꼬이게 될 것이다.

“장사성 내부의 저희 쪽 사람이 알리기를, 내일이 되면 장사 내성의 수비병들이 외성을 탈환하기 위해 성문을 열고 나와서 공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장군께서 모습을 드러내셔서 잠시 동안만 싸움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황충을 막지 못하고 장사성의 군사들이 다 죽고, 우리 강동군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마초에게 부탁하는 송겸의 어조가 다급했다. 마초는 송겸의 말을 듣자 눈을 반짝 빛냈다.

“내일은 장사에서 공격한다? 그렇다면 일이 간단하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선군이 외성을 탈환하도록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예?”

송겸은 기가 막혔다.

“대장군. 성벽에 의지하면서도 단 한 명의 무장을 막지 못해 외성을 내준 장선군입니다. 무슨 수로 정면 대결로 황조군을 꺾고 외성 밖으로 밀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황한승(한승은 황충의 자) 때문이지. 그러니…….”

마초는 송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악당 같은 웃음을 지었다.

“황한승이 없다면 어떻겠나? 장선군도 싸워볼 만하지 않겠나?”

“그야…….”

송겸은 침을 꿀꺽 삼켰다.

‘황충과 그가 이끄는 형주자사부의 최정예들이 없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그러나 무슨 수로 그들을 막는다는 말인가?’

“대장군. 무슨 복안이 있으십니까?”

“있지.”

마초는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봤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감녕이 쓴웃음을 지었다.

* * *

이튿날.

내성에 갇힌 장선군은 황조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다.

내성은 외성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다. 그래서 황충이 쏘는 노포에 십여 발을 맞으면서도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다. 묵가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부서지는 성벽을 수리해서 성을 지켜냈다.

“또 모르지. 노포가 황한승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부서지지 않았으면,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내성마저 무너졌을지도.”

“장선군의 병사들은 그자가 당기는 활을 천근노라고 부르더군요. 진짜 장력이 천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해가 떨어진 후, 장사성을 둘러싸고 흐르는 상수를 따라 마가군의 배 십여 척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마초와 감녕은 그중에 한 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신으로 성문을 열어젖힌 인물은 천하에 딱 세 명입니다. 주공이 태원성을 열었고, 관운장이 수춘성을 열었고, 그리고 그 황충이라는 자가 장사성을 열었지요.”

“왜, 겨뤄보고 싶나?”

마초가 묻자 감녕은 씩 웃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여포와의 싸움 후, 좋아하는 술도 줄이고 무공 수련에만 전념해 온 감녕이다. 황충의 무용담을 듣자 호승심을 숨기지 않았다.

“나도 생각 같아서는 자네에게 맡기고 싶지만… 이번에는 참아 달라고. 나중에 황충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실컷 대련하게 해 줄 테니까.”

“대련과 승부는 다르단 말입니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감녕이지만, 여전히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마초는 웃는 낯으로 투덜거리는 감녕을 달랬다.

‘감흥패와 황한승이 겨룬다면… 승패를 가늠하기 어렵겠지.’

황충은 이 남방에서 상대를 찾기 힘든 용장이다. 그를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제압하려면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마초 자신이 나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감녕은 이미 마가군의 주축 무장이고, 황충은 앞으로 마가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인물인데 두 사람이 겨루다 한 명이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쏴아아아.

멀리서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감녕은 돛대 위에 매달려 망을 보는 병사와 수신호를 교환한 뒤 말했다.

“왔습니다.”

장사성의 남문은 상수의 강변으로 이어져 있다. 하루 종일 육지에서 북문과 동문을 공략한 황조군이, 야음을 틈타 상수를 따라 남문 방향으로 별동대를 보내 장사성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초와 감녕은 송겸이 가져다준 정보로 적의 기동을 미리 예측하여 매복하고 있었다. 물싸움에 능하지 못한 마초 대신 수적단 두목 출신인 감녕이 이 매복을 지휘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망을 보던 병사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거리 30장!”

“돛을 올려라!”

감녕은 적이 듣거나 말거나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펄럭.

감녕과 마초가 탄 대장선에 호롱불이 켜지고 비단 돛이 올랐다. 뒤이어 작은 배들이 노를 저으며 황조군의 선단을 향해 거세게 육박하기 시작했다.

몰래 상수를 따라 이동하던 황조군 선단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적의 매복이다!”

“전투를 준비하라!”

양쪽 군사들이 내는 어지러운 함성이 전장을 뒤덮었다. 그 모습을 보던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감녕에게 물었다.

“무슨 야습이 이렇게 요란해?”

“금범군은 숨는 법이 없습니다. 물 위에서라면 더욱 그렇지요.”

감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씩 웃었다. 비단 돛에 호롱불까지 켠 마가군의 대장선은 적의 대장선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노잡이들이 한 번 노를 저을 때마다 뒤집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좌우로 크게 기울었지만, 용케 뒤집히지 않았다. 감녕은 그런 급격한 기동을 지휘하면서도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철썩.

철썩.

쾅!

마가군의 대장선이 정면에 있는 충각으로 황조군의 대장선을 들이받았다. 배의 크기는 황조군 대장선이 훨씬 컸지만, 정면으로 측면을 들이받았으니 마가군 대장선의 선수가 황조군 대장선의 옆구리에 꽂힌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딸그랑.

감녕은 구리 방울 소리를 울리며 그대로 적선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황당해하는 황조군 병사들을 보며 씩 웃었다.

“장강에서 배를 부릴 거면 금범군에게 인사를 해야지.”

“아니, 금범적은 분명히 몇 년 전에 해산되었다고 들었는데? 금범대협 감녕이 마초에게 투항하면서…….”

“하지만 금범군의 잔당 일부가 남아서 장선군에 붙어 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겠지?”

능청을 떠는 감녕에게 부하들이 무기를 던졌다. 이번에는 사각철간이 아닌 더 거대한 무기였다.

터억.

감녕은 부하들이 던진 무기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돛대를 뽑아 만든 나무 봉이었다. 길이는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1장 8척에 달하고, 굵기는 봉이라기보다는 기둥에 가까울 정도였다.

감녕은 장팔범봉(丈八帆棒)을 가로로 눕혀서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황조군 병사들을 그대로 옆으로 쓸었다.

퍼퍼퍽!

“으아아악!”

1장 8척의 돛대에 맞은 병사들이 강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감녕이 장팔범봉을 몇 번 휘두르자 갑판 위에는 어느덧 황조군 병사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갑판이 제압되자 감녕은 장팔범봉을 높이 들었다 갑판에 꽂았다.

콰직!

그것이 신호였다. 대장선을 제압한 것을 확인하자 물 위에서 난전을 벌이는 마가군 병사들은 더욱 속도를 내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대장선을 취했다!”

“우와아아!”

이대로 밀어붙이면 생각대로 황조군의 야간기동 행렬을 제압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휘이이잉.

그때, 감녕이 제압한 대장선 옆의 작은 배에서 하늘로 명적을 쏘아 올렸다. 요란한 피리 소리가 전장에 울리자 황조군의 배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퇴각이라고?”

생각보다 물러나는 게 너무 빠르다. 감녕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대장선 옆의 작은 배에서 누군가 풀쩍 뛰어올라 대장선에 착지했다. 명적을 쏴서 퇴각의 신호를 보낸 그 장수였다.

콰앙!

장수는 요란한 폭음을 내며 대장선 위에 착지했다. 장수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큼지막한 배가 휘청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강에 아직 금범적이 남아 있었나.”

감녕은 장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수는 투구를 쓰지 않아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형주자사부 교위 황충이다.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으흠, 장선군 쪽에 붙은 금범군의 잔당이라고 해 두지.”

감녕이 황충 쪽으로 몸을 돌리자 허리춤에 매단 구리 방울이 따르르 울렸다. 황충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금범적 두령 감녕이었나.”

“그럴 리가? 감 대협은 지금 대장군 마초 휘하에서 관직을 하고 있는데, 설마 이런 싸움에 개입할 리가 있나?”

“눈속임은 집어치워라. 너희들은 배의 수를 늘려서 군사가 많아 보이게 꾸몄지만, 잘 살펴보면 실제 군사 수는 백여 명에 불과하다. 네가 가진 일신의 무위로 혼란을 만들어서 그 사실을 가리고 있을 뿐.”

황충은 어둠 속에서 습격을 당하면서도 적군의 상황과 감녕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녕은 그런 황충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형주의 황한승은 힘만 센 게 아니라 지모도 갖췄다더니, 진짜로군.”

“무슨 까닭으로 장선군을 돕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상대해 주마. 병장기를 들어라, 감녕.”

“나도 그러고 싶지만.”

감녕은 그렇게 말하고 한 발짝 옆으로 비켰다.

“그대의 상대는 따로 있어서 말이야.”

뚜벅. 뚜벅.

감녕이 비켜선 자리로 마초가 걸어 나왔다. 갑옷도 입지 않은 평복 차림에, 삿갓으로 눈을 감추고 있었다.

황충은 그런 마초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저 무명의 무사다.”

쿵.

마초는 무기를 들어 뱃전을 짚었다. 감녕에게 빌린 사각철간 한 자루였다.

“하지만 그대의 상대가 되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삿갓의 챙 사이로 푸른 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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