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형주의 전운 (2)
며칠 후, 양양성 내의 한 객점.
마초와 비관은 객점의 내실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이 객점의 주인과 저녁 약속이 있는 것이다.
“대장군을 기다리게 하다니, 이자도 어지간한 자로군.”
“송구합니다, 형님. 곽가놈들이 이리 건방질 줄 몰랐습니다.”
비관도 이를 갈며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들의 욕을 했다.
마초에게 오늘 이 자리에 나와 달라고 부탁한 것은 비관이다. 마초는 처음에는 비관의 부탁을 거절하려 했었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거래가 있어서 내 위세를 빌려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빈백 아우, 나도 이제 대장군씩이나 됐으니 주변의 이목을 신경 써야 하네. 자네의 일에 일일이 끼어들기는 어렵네.”
“아이고 형님, 그냥 앉아서 술만 드시면 됩니다. 이 아우가 맹세코 형님께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허, 안 된대도.”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비관이 오늘 만나려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주자 마초의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만날 사람이 곽씨 형제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양양에서 큰 객점을 다섯 군데나 운영하는 젊은이들인데, 양양 근처의 장인(匠人)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합니다. 아마 이 일대 유협집단의 우두머리인가 봅니다.”
비관이 곽씨 형제를 만나려 하는 까닭은 이러했다.
비관은 장강을 따라 익주와 형주를 오가며 교역하는 선단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형주에서 이민족인 무릉만(武陵蠻)의 습격을 받아 배를 대거 잃었다.
그래서 형주에서 배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배를 발주한 것이 파군의 비가라는 소문이 돌자 양양 일대의 조선공들이 배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외지 사람인 제가 큰돈을 벌어 가면서 형편이 안 좋아진 형주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공들 뒤에 제 장사를 방해하려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게 이 곽씨 형제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곽씨 형제가 양양의 장인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으니 곽씨 형제의 말이라면 들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들을 만나서 도와 달라고 하려던 참입니다.”
“고작 그런 걸 하는데 나까지 필요하나?”
“이들이 워낙 콧대가 높아서 익주 별가이자 대성호족인 저를 잘 안 만나 주려고 하지 뭡니까. 대장군과 같이 가겠다고 하니 그제야 날짜를 잡아 주더군요. 형님께서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술과 음식만 드시고 계시면 다른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잠시 후.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두 청년이 들어왔다. 한 청년은 술을, 또 다른 청년은 나무로 만든 찜통을 들고 있었다.
“대장군과 비 별가를 뵙습니다. 곽독입니다.”
“곽준입니다.”
곽씨 형제는 요란한 인사치레를 하지 않았다. 살갑지만 비굴하지 않은, 그저 장사치가 손님을 대하는 정도의 예의로 마초와 비관에게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
마초는 두 청년에게 답례한 후, 찬찬히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이상한 녀석들이군. 아무리 봐도 왈패 같지는 않은데.’
곽씨 형제는 장인이 아니라 객점을 가진 상인들이고, 아직 20대의 젊은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장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크다면 사정은 뻔하다. 마초는 곽씨 형제가 무력으로 양양 저잣거리의 치안을 유지하고 이권을 점유하는 유협 집단의 우두머리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런데 협객이라기는 얌전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두 청년은 방금 전까지 부엌에서 객점 일을 하다가 온 듯했다. 둘 중에 더 눈에 띄는 것은 아우인 곽준이었다. 온몸에서 단련된 무공이 느껴지고 눈빛도 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마초가 지난 생에서 이름을 많이 들어 본 인물이기도 했다.
‘곽준은 내가 유 사군에게 귀부하고 나서 얼마 후 병으로 죽었지.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유 사군이 곽준을 크게 아꼈다고 들었다. 그가 선택한 인물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곽독은 젊은 나이에 죽었다. 곽준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 수백을 이끌고 유비에게 투항했는데, 유비가 익주를 점령할 때 불과 수백 명의 군사로 1만 유장군의 공격을 1년간 막아낸 명장이었다. 게다가 사람 보는 눈으로는 당대에 따를 자가 없는 유비가 아꼈다는 인물이니 그 인품이나 실력은 확실할 것이다.
마침 비관이 만나려는 인물이 곽준이라고 하니 따라 나온 것이다. 마초는 곽준을 마가군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비관은 마초의 눈치를 슬쩍 보고 곽씨 형제들에게 말했다.
“두 분 대협께서도 대강의 사정을 들으셨을 것이오. 이 비모의 상단이 배가 없어서 형주에 발이 묶여 있소이다.”
비관은 매번 막대한 양의 비단과 향신료를 형주에 내다 판다. 그리고 장강을 따라 형주까지 올라온 강동과 교주의 특산품으로 바꿔서 다시 익주로 돌아가 많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다. 제때 익주로 물건을 보내지 못하면 장사에 차질이 생긴다. 심지어 향신료나 건어물 같은 품목들은 통째로 못쓰게 될 수도 있다.
“두 분 대협께서 비모의 사정을 봐서 배 만드는 장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오. 비모는 형주의 부를 빼앗아 곳간을 채우기를 원하지 않소. 서로 간에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소이다.”
“으음…….”
형인 곽독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우 곽준이 웃으며 그런 비관에게 말했다.
“비 대인.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무슨 오해 말이오?”
“소인들은 협객이 아닙니다. 그저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대의 장인들과는 그저 친분이 있을 뿐, 소인들이 저잣거리의 왈패들처럼 그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협객이… 아니라고?”
비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체격은 둘 다 건장하다. 몸놀림을 보면 무공도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힘을 뽐내며 사는 자들 특유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옷이 검소하다. 남을 위압하려는 기세도 느껴지지 않아. 게다가 저잣거리의 협객이라면 맹기 형님 앞에서 쓸개라도 빼 줄 것처럼 비굴하게 굴었을 터.’
힘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힘에 민감하다. 마초는 대장군이고,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영웅이며, 천하제일인이라 불릴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마초 앞에서도 당당했다. 협객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곽씨 형제는 협객도 아니고 관리도 아니다. 그런데 무력도 권력도 없는 청년들이 어떻게 양양의 장인들 사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가?
곽준은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듣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비 대인의 배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인물이 있다 들었습니다.”
“뭣이? 그게 누구요?”
비관이 다급하게 물었다. 곽준은 여전히 여유 있는 태도로 먼저 음식을 권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며 천천히 이야기하시지요. 두 분 어르신도 손님이시니 우리 객점의 대표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귀하신 분들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견문이려니 생각하고 한 젓가락 드시지요.”
곽준은 자신이 들고 온 찜통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운데, 그 안에는 밀가루로 반죽한 듯한 동그란 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비관은 젓가락으로 동그란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밀가루 반죽 안에 갖은 채소와 육류, 장강의 민물고기를 비롯한 속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훌륭하군.”
한 입 베어 무니 육즙이 가득 퍼졌다. 얇은 밀가루 피와 풍성한 속의 어울림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음식이었다.
“이제 알겠군. 이런 훌륭한 요리를 만들었으니 객점이 번창해서 다섯 군데나 운영하게 된 것이었구려. 맹기 형님, 하나 드셔 보십시오. 대단히 맛있는… 맹기 형님?”
비관은 마초를 부르다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마초는 마치 찜통이 뚫어질 것처럼, 찜통 위에 놓인 음식을 쏘아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고 마초가 고개를 들었다. 마초는 곽준을 향해 물었다.
“북방에서는 못 보던 음식이군. 이 음식의 유래를 알려주게.”
“아, 이것 말입니까? 이 근처의 어떤 현인에게서 배웠습니다. 먼 남쪽의 이민족들 중에는 강에 홍수가 나면 사람 머리를 강에 던져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이 음식을 가르쳐 준 인물이 말하기를, 이민족들이 사람 머리를 닮은 음식을 제사에 대신 쓰게 해서 잔인한 풍습을 그치게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음식의 이름은…….”
“만두(瞞頭)겠군.”
마초가 푸른 눈을 반짝 빛냈다. 곽준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걸 대장군께서 어찌 아십니까?”
“방금 자네가 가짜 머리(瞞頭)라고 하지 않았나.”
만두(饅頭)는 오랑캐의 머리(蠻頭), 또는 가짜 머리(瞞頭)라는 뜻의 ‘만두’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제갈량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밀가루 반죽으로 고기와 채소를 싸서 찌는 요리는 전 세계에 비슷하게 있으니, 이는 옛 사람의 이름을 빌려 음식의 유래를 그럴듯하게 꾸미는 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제갈량의 몰년으로부터 100년밖에 지나지 않은 서진시대의 문헌에서 만두는 제갈량에게 비롯된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으니, 만두의 유래를 마냥 꾸며낸 것으로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마초에게는 지난 생에서부터 익숙한 음식이기도 했다. 밤낮없이 정무에 힘쓰던 제갈량은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지 않고 승상부에서 자신이 고안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게 바로 만두였다.
그러니 곽씨 형제가 말하는 만두를 가르쳐 준 현인이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다.
‘이 녀석들은 제갈량과도 뭔가 연관이 있군. 좋아, 나중에 본격적으로 캐 봐야겠다.’
마초가 속으로 곽씨 형제와 제갈량의 연결고리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비관은 만두를 순식간에 대여섯 개나 먹어 치웠다. 그리고 마음이 급한지 곽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래서, 나에게 배를 팔지 말라고 한 인물이 누군가?”
“황가의 가주 황승언입니다.”
“뭣이? 황승언이 왜 내 장사를 방해한다는 말인가?”
“저희들은 그저 장사치일 뿐이니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허나 듣기로는…….”
“듣기로는?”
“황 대인이 익주 방면의 교역을 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익주와 형주 간의 교역은 비 대인이 꽉 잡고 계시니, 비 대인의 사정을 어렵게 한 다음에 슬슬 익주 교역에 끼어들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으음, 그 말이 맞다면…….”
“이제 곧 황 대인이 비 대인을 돕겠다고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배와 상단을 빌려주겠지요. 비 대인은 황 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번 교역을 마칠 것이고, 앞으로도 형주에서 배를 구할 일이 있으면 황 대인을 먼저 찾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거래 물목들을 하나씩 차지하려는 건가. 그렇게 나를 돕는다는 핑계로 익주를 오가며 익주 상인들과 안면을 트고, 결정적인 순간 나와 척을 지면서 자신이 직접 교역을 할 셈이군.”
비관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마초가 물었다.
“자네들은 그런 걸 어떻게 알았나?”
“저희들은 벗이 많습니다. 벗들 중 황 대인과 가까운 자가 있어 알려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네들은 그것을 왜 비빈백(빈백은 비관의 자)에게 알려주는 건가?”
곽씨 형제는 서로 마주보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둘 중 형인 곽독이 말했다.
“실은 대장군과 비 대인께 청을 드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이의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다.”
곽씨 형제는 의관을 정제하고 고쳐 앉았다. 아우인 곽준이 마초와 비관을 향해 말했다.
“실은 비 대인을 이 객점으로 모신 것도, 일부러 강짜를 부려서 대장군과 함께 오시도록 한 것도 전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 황승언 대인의 야심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곽씨 형제를 통하면 배를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은 저희가 냈습니다. 그래야만 이렇게 두 분과 마주 앉아 부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각오는 돼 있습니다. 그러나 대장군, 저희를 베시더라도 부디 이 말씀만은 들어 주십시오.”
마초는 곽씨 형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렇게 대담한 이들이 싫지 않았다. 손을 들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비관을 제지하고 곽씨 형제에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부탁하겠다는 일이 뭔가? 복수나 그런 거라면 미리 거절하지.”
“곧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전쟁이라. 이 형주에서 말인가?”
“그렇습니다. 강하태수 황조가 장사태수 장선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장사에서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둘이 전쟁을 한다면, 승패는?”
“황조가 이길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황조군은 장사를 얻으면 대학살을 벌일 겁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 나갈 것입니다.”
곽씨 형제의 눈빛은 진지했다. 형인 곽독이 말했다.
“대장군. 제가 비록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몸이지만, 어려서부터 몇 가지 병법을 익힌 바가 있습니다. 이는 옳은 싸움에 사용하고자 함이니, 저는 장사에 가서 황조에 맞서서 죽기로 싸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나에게 하려는 부탁은…….”
“황조가 출병을 한 달만 늦추도록 손을 써 주십시오. 대장군의 권력과 명성이라면 능히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는 기필코 황조의 공격을 막아내서, 장사에서 죽을 목숨들을 살릴 것입니다.”
곽독은 마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장사 땅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부디 대장군께서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