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마초 대 여포, 최종전
누각은 크다. 여포와 마초 사이에는 10장의 거리가 있었다.
여포는 몸을 묶은 밧줄을 끊어내자 그대로 마초를 향해 내달렸다. 달리면서 양손으로 올가미를 잡아채자 올가미를 붙들고 있던 여섯 명의 군사들이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스르릉.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치란이 뽑혔다. 마초는 치란을 몸 앞에 세워 여포를 겨눴다. 여포는 무기도 없이 그런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마초가 찌른 치란이 여포의 가슴팍을 길게 긋고 지나갔다. 치명상을 피한 여포는 그대로 몸을 돌리며 마초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마초는 그대로 힘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치란을 쥔 손을 여포 쪽으로 밀어붙였다. 여포도 치란에 베이는 것을 피하려다 보니 두 사람은 한 바퀴 빙글빙글 돌게 되었다.
턱.
두 사람의 발이 멎었다. 마초는 동시에 청경의 수법으로 여포의 중심을 흔들었다.
팟.
여포의 몸 중심이 흔들리며 두 사람이 잠시 떨어졌다. 마초는 지체 없이 치란을 들어 여포의 배에 찔러 넣었다. 치란을 여포가 입은 찰갑을 뚫고 벌써 선혈이 낭자한 몸통에 박혀 들어갔다. 마초는 그대로 치란을 뒤집어 올려서 여포의 몸을 세로로 크게 베려 했다.
쾅!
그러나 그 전에 여포의 주먹이 마초의 머리로 날았다. 마초는 고개를 숙여 투구로 주먹을 받아냈다. 여포는 개의치 않았다. 손가락이 다 부러지면서도 있는 힘껏 마초의 투구 쓴 머리를 후려쳤다. 사자 투구가 빙글빙글 돌며 허공으로 날았다.
마초는 이를 악물고 땅을 굴러 일어났다. 이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고개를 드니 여포가 배에 치란이 꽂힌 채 마초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상황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 괴물 같은 놈.”
마초와 여포는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는 나와 같다.”
여포는 그렇게 말하며 배에 박힌 치란을 뽑았다. 피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여포는 뱃속에서 밖으로 비어져 나오려는 뭔가를 손으로 집어넣고 옆에 걸린 횃불을 들어 상처를 지졌다.
치이이익.
상처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봉합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엉성한 봉합을 마친 여포는 치란을 한 손에 들고 마초를 향해 걸어왔다.
마초는 등에 메고 있던 의천검을 뽑아 들었다.
“너와 같다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그런데 네놈 입으로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군.”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너 또한 나처럼 살육과 투쟁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자다.”
“성 셋 가진 종놈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그래. 세간에서는 나를 두고 성이 셋이라 말한다. 투쟁을 위해서라면 아비라도 거리낌 없이 내버렸기 때문이지. 그런데…….”
파르르.
여포의 관에 꽂힌 산새의 깃털이 떨었다. 마치 웃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는 다른가?”
팟.
마초는 여포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먼저 달려들었다.
깡!
여포가 휘두른 치란과 마초의 의천검이 부딪혔다. 여포는 손가락이 부러진 손으로 칼을 쥐다 보니 베는 날의 각을 맞추기 까다로워 옆면으로 의천검을 후려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치란의 날이 깨지고 이가 크게 빠졌다.
“그래, 나도 너와 같은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싸움에 미쳐서 가족까지 희생시킬 만큼. 하지만.”
퍽!
마초는 뒤이어 여포의 반대쪽 주먹을 막아냈다. 청경의 수법을 써서 힘을 바깥쪽으로 흘리고, 역으로 바깥쪽에서 외력을 가해 손을 잡아챘다. 두 사람은 한 손으로 서로가 쥔 칼을 맞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 싸움을 벌이는 형세가 되었다.
“나는 굴하지 않을 것이다.”
퍽!
마초의 의천검이 치란을 쥔 여포의 왼 손목을 찍었다. 치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여포의 근육이 의천검을 양쪽에서 물어서 칼이 빠지지 않았다. 마초는 그대로 의천검을 놓고 권으로 여포의 가슴을 후려쳤다.
펑!
촌경이 터지자 여포가 쭉 밀려났다. 다시 치란을 집어 들고 달려오는 마초를 향해 여포가 주먹을 들었다. 순수한, 외공의 주먹이었다.
쾅!
주먹이 마초의 몸통에 명중했다. 마초는 그대로 뒤로 미끄러졌다.
마초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을 때, 여포는 손목에 박힌 의천검을 빼 들고 마초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퍼억!
여포는 의천검을 두 손으로 잡고 마초를 찔렀다. 마초는 고개를 틀어 의천검을 피하고 여포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청경을 쓰는 것보다 여포가 몸으로 부딪쳐 오는 게 빨랐다.
턱.
두 사람의 몸은 끝내 누각을 벗어나서 허공에 떴다. 그리고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콰앙!
마초와 여포가 기와지붕 위로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복파장군!”
“괜찮으십니까!”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지는 혈투에 군사들이 저마다 비명처럼 외쳤다. 감녕은 이를 악물고 그대로 밑으로 뛰어내렸다.
쾅!
근육질의 감녕이 내려서자 기와가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뒤이어 뛰어내린 장료가 몇 군데를 딛고 고양이처럼 착지해서 감녕의 옆에 섰다.
“제기랄! 주공, 무사하십니까?”
“오지 마라. 내 손으로 결말을 낼 것이다.”
마초는 손을 들어 감녕을 제지했다. 옆에 있던 장료가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지. 그냥 지켜보자고.”
“으음…….”
잠시 후, 의천검을 쥔 여포와 치란을 든 마초가 다시 격돌했다. 무공을 수련하는 이라면 보면서 황홀경에 빠질 만한 수준 높은 공방이, 그리고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처절한 공방이 몇 차례 오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십여 합을 겨뤘다. 치란과 의천검, 두 자루 신병이 전부 너덜너덜해졌다.
툭.
이를 악물고 대결을 지켜보던 감녕의 얼굴에 뭔가 떨어졌다. 눈이었다. 남방 출신인 그는 자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주르륵.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마초와 여포가 미끄러졌다. 두 사람은 그대로 기와지붕에서 뛰어 내렸다. 그리고 눈이 쌓여 가는 땅 위에서 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텅!
치란과 의천검이 충돌하자 의천검이 허공으로 날았다. 여포의 손가락이 하나 더 부러지며 의천검을 놓친 것이다. 마초는 그대로 치란을 휘둘러 여포의 옆구리를 깊게 벴다.
퍼억!
여포의 옆구리에 치란이 박혔다. 마초는 그대로 치란을 휘둘러 여포의 몸을 끊어내려 했다.
그러나 여포는 치란을 손으로 잡고 버텼다. 의천검과 여러 번 충돌하며 치란의 날이 뭉개진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포는 그대로 오른손을 들어 마초의 얼굴을 후려쳤다. 손가락이 다 부러졌기에 주먹은 쥐지 못하고 장저를 휘둘렀다.
퍽!
털썩.
묵직한 충격과 함께 마초가 무릎을 꿇었다. 장저에 맞은 왼쪽 눈두덩이 피로 물들었다.
후두둑.
여포가 자신의 옆구리에 박힌 치란을 뽑아내자 다시 한번 선혈이 쏟아졌다. 여포는 치란의 망가진 칼날을 왼손으로 잡고 마초의 얼굴을 향해 찍었다. 칼끝에는 아직 날이 살아 있었다.
콱!
그리고 마초는 오른손으로 치란을 받아냈다. 치란이 마초의 손바닥을 뚫었다.
여포가 칼을 뽑아내려 했을 때, 마초는 이미 왼손을 뻗어 여포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깃을 잡은 채 한 동작으로 왼쪽 무릎을 올려 여포의 몸통을 찼다.
뻑!
무릎이 제대로 들어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왼쪽 눈에 피가 들어와 시야가 흐릿했다. 마초는 굳이 안 떠지는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대신 가려진 왼쪽 시야를 향해 그대로 박치기를 날렸다.
뻐억!
정확하게 머리로 여포의 얼굴을 받자 여포가 크게 휘청거렸다.
“이제 끝이다.”
마초는 그대로 씩 웃었다. 왼쪽 눈은 출혈 때문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뻘겋게 변해 있었지만, 오른쪽 눈의 푸른빛은 더욱 진해졌다. 꿰뚫린 오른손 대신 왼손을 허리춤에 가져가니 청강검이 손에 잡혔다. 마초의 손에 들린 2척 2촌의 청강검은,
콰드득,
하는 무미건조한 소리와 함께 여포의 갈비뼈 사이에 박혔다.
마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청강검의 손잡이를 잡고 촌경을 써서 여포를 때린 것이다.
쾅!
시원한 폭음과 함께 여포가 세 발짝 밀려났다. 청강검이 헤집은 몸통에서 갈비뼈가 돌출해 있었다.
여포는 고개를 숙인 채, 선 채로 비처럼 피를 뿌리고 있었다. 마초는 청강검을 다시 집어넣고 오른손에 박힌 치란을 뽑은 채 비틀거리며 여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치란을 들어 찌를 준비를 했다.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퍼억.
그러나 여포는 손으로 치란을 잡았다. 칼자루를 잡은 마초와 칼날을 잡은 여포 사이에 힘 싸움이 벌어졌다.
끼이이익.
그리고 마초는 눈을 의심했다.
여포의 손아귀 안에서 치란의 날이 조금씩 휘어지고 있었다.
“제길!”
오른손은 상처투성이고 왼손은 칼자루를 잡고 있다. 마초는 손 대신 발을 들어 여포를 걷어찼다.
동시에, 여포는 손에 든 무기를 마초의 목줄기에 꽂아 넣었다. 자신의 부러진 갈비뼈였다. 마초는 마지막 순간 목을 크게 틀어 간신히 치명상을 피했다.
퍽.
“컥…….”
여포가 뒤로 쓰러졌다. 목덜미에 갈비뼈가 꽂힌 마초도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초는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몸에 박힌 여포의 뼈를 뽑아내고 비단 전포를 찢어 지혈했다. 눈이 쌓여 가는 바닥 위로 두 사람의 선혈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마초와 여포는 엉망이 된 몸으로 눈밭 위를 걸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갔다.
퍽!
청강검이 여포의 목을 뚫었다. 여포의 입에서 피거품이 터져 나왔다. 수십 차례 창칼을 맞으면서도 계속 움직이던 여포의 발이 드디어 멎었다.
마초는 비틀거리며 비단 전포를 벗었다. 그리고 여포의 뒤로 돌아가 전포 자락을 목에 감았다.
콱!
마초는 올가미가 된 전포를 팽팽하게 당겼다. 비단 전포는 양쪽에서 여포의 목을 졸랐다. 여포의 눈에서 혈관이 터져 피가 흘렀다. 지나치게 힘을 쓰는 마초의 팔뚝에서도 혈관이 터진 듯 피가 흘렀다. 불뚝거리며 솟아 있는 힘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요동쳤다.
“여포. 내가 비록 너와 같은 부류로 태어났을지라도, 나는 그것에 굴하지 않는다. 너와는 달리 영웅으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지… 두…고…보…….”
“두고 볼 필요 없다. 이대로 죽어라.”
마초는 한참 동안 여포의 목을 감은 전포 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툭.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포가 끊어졌다. 마초가 크게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계속해서 날리던 눈발은 이제 폭설이 되어 마초의 몸 위로 내리고 있었다.
진작 부러져 있던 여포의 목은 옭아매던 것이 사라지자 힘없이 꺾였다.
198년의 마지막 날.
장안에 폭설이 내렸다. 천사도 신도 일부가 연말 재초를 틈타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진압되었다. 동시에 자오곡을 넘어 장안으로 향하던 한중의 천사군은 미리 대비하고 있던 방덕에게 격멸되었다. 장안의 도관에 숨어들었던 여포는 마지막까지 저항했으나 끝내 마초의 손에 죽었다.
새해 첫날부터 시작되어 꼭 1년을 끌어온 전쟁이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