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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98화 (198/306)

198화. 늑대사냥

전장에 나가서 적병과 칼을 맞대면 몸이 굳어버리는 마철이다. 하지만 적과 칼을 맞대지 않아도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십 년이 넘게 쌓아 올린 궁술을 발휘하는 것이다.

저벅. 저벅.

마철은 두 발짝을 전진하며 다시 한 대의 화살을 메겼다.

마휴가 시신이 되어 돌아온 그 날부터 수만 번 반복해서 연습했던 동작이었다. 언젠가 원수를 만났을 때 쓰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저자가 여포. 천하제일의 무장. 그리고…….’

“둘째 형님의 원수.”

마철이 한껏 화살을 당겼다. 마치 백파적 앞에서 얼어붙었던 과거가 거짓말인 것처럼, 마철은 침착하게 여포를 겨눴다.

타앙.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았다. 체격과 힘은 마초보다 더 좋은 마철이다. 평범한 무사들이 당기기도 힘든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이 여포를 향했다. 여포는 방천화극으로 자신의 목을 가렸다.

깡!

화살은 방천화극의 월아를 맞췄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들지 않았으면 그대로 목을 뚫었을 것이다.

저벅. 저벅.

마철은 또다시 두 발짝을 전진했다. 그리고 다시 한 대의 화살을 메겼다. 그 모습을 보는 여포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졌다.

마철을 상대하는 사이 조운은 여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뒤쪽에 널브러진 감녕과 장료도 마가군 군사들이 다가와 업고 도망치고 있었다.

타앙!

마철이 다시 한 발을 쏘아붙였다. 이번에는 적토마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퍽!

화살이 다시 한번 방천화극에 걸려 부서졌다. 이번에도 섬뜩하리만큼 정확한 조준이었다. 그리고 마철이 점점 전진하는 만큼, 점점 더 쳐내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여포는 적토마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대궁에 화살을 재워 멀리 보이는 마철을 겨눴다. 동시에 마철도 네 번째 화살을 장전하고 여포를 겨눴다. 두 사람은 동시에 시위를 놓았다.

퍼억!

퍼억!

두 번의 파열음이 울렸다.

여포와 마철이 날린 화살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마철의 화살은 형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산산이 부서지고, 여포의 화살은 그대로 날아서 마철의 활을 부수고 마철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부러진 활줄에 닿은 마철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여포의 화살이 스치고 간 왼쪽 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다.

“돌격하라.”

여포는 마철이 무력화된 것을 보자 다시 전황을 확인했다.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이 분수를 건너 마가군을 마구 도륙하고 있었다. 태원 벌판으로 되돌아오는 여포군 8천을 막기 위해 마가군 2만이 분수를 둘러싸고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여포의 활약으로 전원이 분수 도하에 성공했고, 이제 사기가 올라 마가군을 오히려 태원 벌판으로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싸움의 세계에 들어선 이래 30년 만에 맞는 최대의 위기. 그러나 여포는 자신의 용력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여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적토마 위에 올랐다. 마철은 담담한 표정으로 칼을 빼 들고 여포가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포는 그대로 적토마를 달려 마철을 향했다.

두두두두.

그때, 마철의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묵직한 소리로 봐서 마가군 중기병이었다.

여포가 그들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마가군 중기병대의 가운데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양쪽으로 분열한 기병들 사이에서 한 장수가 달려 나왔다. 어떤 기병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장수는 순식간에 여포와 마철 사이의 공간에 끼어들었다. 거대한 백마에 탄 채, 장도를 차고, 긴 창을 비껴 잡고, 품이 큰 비색 전포를 휘날리며, 사자 투구를 쓰고 있었다. 활을 차고 편곤을 든 방덕과 대부를 비껴 잡은 서황이 장수의 양옆에 섰다.

마철이 장수를 불렀다.

“형님!”

마초는 여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신 마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구나. 어째서 여포에게 맞서 싸웠느냐. 전장에서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힌 것이냐.”

“조자룡 장군이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보다 조 장군이 훨씬 귀중한 전력이니 제가 활로 엄호하여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네 힘으로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철. 네가 스스로의 용맹만 믿고 너보다 강한 상대에게 달려드는 걸 보니…….”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마가의 사내가 됐구나. 앞으로는 무장으로 일군을 이끌게 될 테니 조금 더 신중하게 처신하여라.”

“혀, 형님!”

“뻔한 거짓말이지만 한 번은 속아 주마.”

어째서 여포에게 덤볐는가.

그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마휴의 원수를 마주하자 손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이다.

한편, 여포 또한 마초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부장 이추가 여포에게 다가와 여분의 무기와 봉시관을 올렸다. 여포는 무인도를 적토마의 안장에 걸었다. 조운, 장료, 감녕과 연이어 싸우느라 날이 빠진 방천화극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산발이 된 머리를 다시 틀어 올리고 봉시관을 썼다.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이 길게 꽂혀 있었다.

4년 만에 만난 숙적. 그러나 서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여포의 뒤로 마가군을 돌파한 고순과 함진영이 섰다. 그리고 마초의 뒤로는 태원 벌판을 가로질러 온 방덕과 서황, 금철기가 섰다.

마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료, 감녕, 그리고 조자룡까지 포함된 이 포진으로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뚫어냈나. 이래서 천하제일이라고 하는군.”

여포는 말없이 마초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이 어색해질 때쯤 대답했다.

“싸움을 제대로 할 줄 아는군. 내가 기주로 출병한 사이, 태원을 기습한다는 계책은 훌륭했다. 나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것도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는 부족하군.”

“그게 무엇이냐?”

“너는 나와 정면승부를 끝까지 피했어야 했다.”

여포는 담담했다.

마초도 처음에는 담담하게 그 말을 들었다. 그런데 조금씩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그러뜨리고 광인처럼 웃음을 지었다.

“으하하하! 하하하하하!”

한참 동안 웃은 뒤, 마초는 여포를 보며 말했다.

“여포, 난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맹장 셋을 돌파해서 이곳까지 온 너에게. 확실한 승리를 위해 계속 정면승부를 피했지만, 그럼에도 내 앞까지 와 준 너에게 말이다.”

마초의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담담하지 않았다. 푸른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느 때보다 강렬한 분노와 증오와 집념이 눈에 드러났다.

“병주의 주요 거점은 벌써 마가군이 제압했다. 너의 근거지 태원성도 떨어졌다. 너의 총희들은 나의 포로가 되었고, 네가 자랑하는 병주병은 이제 곧 와해될 것이다. 그리고…….”

척.

마초는 금마삭을 들어 여포를 겨눴다.

“네가 가진 불패의 기병대. 천하제일의 명성. 오늘 네 모든 것을 부숴 주마.”

척.

여포는 은은한 노기를 띠고 방천화극을 비껴 잡았다. 금방이라도 마초에게 돌진할 기세였다.

“금철기!”

마초는 여포를 노려보며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었다.

“돌격하라. 함진영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도륙하라.”

“우와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렸다.

금철기가 가장 먼저 함성을 질렀다. 뒤이어 흉노와 강족의 기병들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함성은 전장에 전염되었다. 조운을 따라온 우림군도, 법정이 이끌고 온 장안의 군사들도, 그리고 1년 가까이 황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른 마가군의 군사들도 함성을 질렀다. 함성은 태원 벌판을 가로질러 마가군의 군기가 올라 있는 태원성까지 번졌다.

서황이 지휘하는 금철기는 하늘 높이 세운 금마삭을 일제히 내려 정면을 향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고순이 지휘하는 함진영도 긴 창을 들고 금철기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마초와 여포가 여전히 대치한 채, 그들의 양옆에서 금철기와 함진영이 먼저 충돌했다.

쾅!

기병과 기병이 충돌했다. 전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금철기와 함진영은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퍽! 퍽! 퍽! 퍽! 퍽!

우두둑.

“으아악!”

창이 몸을 꿰뚫는 소리, 창이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군사들의 비명 소리.

승패는 싱겁게 갈렸다. 금철기의 압승이었다. 함진영은 마갑까지 갖춰 입은 금철기의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쭉쭉 밀려났다. 상대의 몸에 먼저 닿는 것도 긴 금마삭이었다. 금마삭이 적중하며 밀려나는 몸을 단단한 등자와 안장이 지탱했다. 금철기가 달리는 속도는 그대로 충격력이 되어 함진영에게 전달됐다.

보병을 상대로 한 싸움이라면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함진영이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량과 길이의 차이,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돌격력의 차이가 명확했다. 10년간 중원 최강으로 이름을 떨친 함진영은 금철기의 돌격 앞에 그대로 무너져 갔다.

“보이느냐. 함진영이 갖고 있던 불패의 이름은 이제 끝났다.”

“그런 것 같군.”

여포는 선선히 인정했다. 그리고 적토마에 채찍질해서 마초를 향해 달렸다.

“그러니 네놈을 베서 바로 되찾아 주마.”

“오냐. 오너라.”

마초는 겨드랑이에 금마삭을 끼고 도철의 배를 박찼다.

* * *

적의 대열을 뭉개는 금철기의 선봉에는 방덕이 서 있었다. 방덕은 활 대신 편곤을 빼 들고 적진을 돌파해 들어갔다.

방덕이 가는 곳마다 함진영의 대열이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그러자 뒤쪽에서 지휘하던 함진영의 대장이 달려 들어왔다. 온통 검은 감주를 입고 장검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방덕은 적장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병주의 상장 고순이다. 상대해 주마.”

“글쎄, 나도 그러고 싶지만, 고순은 꼭 자기가 상대해야 한다고 우기는 자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방덕의 등 뒤에서 한 기가 옆으로 빠져나왔다. 8척의 거구인 그는 자루가 긴 도끼를 움켜쥐고 고순을 향해 달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서황.”

오랜만에 호적수를 다시 만난 고순은 즐거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씩 웃는 고순에게 서황이 말했다.

“그날, 장평관에서 가리지 못한 승부를 내러 왔다.”

“기다렸다.”

고순은 방패를 단단히 세워 들고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달려오는 서황을 맞이했다.

깡!

선공을 취한 것은 고순이었다. 서황은 대부를 들어 고순이 휘두르는 장검을 막았다. 금철기와 함진영이 난전을 벌이는 가운데에서 서황과 고순은 순식간에 이십여 합을 교환했다.

그때까지는 승부가 팽팽했다. 그러나 삼십 합이 가까워 오자 조금씩 우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황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 고순이 병장기가 부딪힐 때마다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죽겠군.’

고순은 말을 크게 달려 멀어진 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었다.

까앙!

고순의 장검이 날았다. 서황은 어렵지 않게 대부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고순의 목표는 서황의 몸이 아니라 그가 든 대부였다.

고순은 장검으로 서황의 대부를 견제한 뒤, 바로 방패를 눕혀 서황의 몸통을 향해 휘둘렀다.

퍽!

그러나 방패는 서황에게 닿지 못했다. 서황이 손으로 방패의 모서리를 잡은 것이다. 굵은 팔뚝에 핏줄이 잔뜩 솟아 있었다.

서황은 그대로 대부를 접었다. 고순은 대부의 무게와 서황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다.

퍼억!

서황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부가 한 번 번뜩이자 고순이 탄 말의 목이 하늘로 날았다.

우당탕!

목을 잃은 말과 함께 고순이 바닥을 굴렀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난 고순은 서황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4년 전에도 그대와는 격차가 있었지. 내가 꽤 많이 늘어서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대의 무공은 더욱 고강해졌군.”

말 위에서 고순을 내려다보며 서황이 물었다.

“그대만 한 무사가 어째서 불의한 주인을 섬기는가.”

“불의라. 무엇이 의고 무엇이 불의인가.”

고순은 서황을 보며 씩 웃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군문에 들었다. 모시던 동탁 장군이 상국이 되니 잘 먹게 되었다. 부하들까지 잘 먹이려다 보니 온후가 가장 대우를 잘해주더군. 그대가 섬기는 의로운 주인은… 내게 밥을 주지 못했다.”

난세에 흔한 이야기다. 서황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원한다면 복파장군께 탄원해 주겠다. 그대를 살려서 크게 쓰라고 말이다.”

“하하하하!”

고순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무장의 삶이다. 하지만 계속 그것만 좇다 끝나 버리면 내 삶이 너무 볼품없지 않은가. 내 비록 태어날 때는 병주의 거렁뱅이였지만 죽을 때는 명문 사족들처럼 죽을 것이다.”

말을 끝낸 고순은 칼을 내던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순의 눈에 전장이 들어왔다. 자신이 직접 조련해서 숱한 무용담을 만들어 온 함진영이 금철기의 돌격에 참살당하고 있었다. 고순은 입을 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온후의 충신으로 남겠다.”

서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순의 뒤로 다가갔다. 곧 대부가 번뜩이고 고순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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