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군영전여포(群英戰呂布) (2)
“꼴을 보아하니…….”
여포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백마 탄 청년 장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수가 걸친 은빛 갑옷의 양식을 보니 소속을 알 수 있었다.
“천자를 지키는 우림군이군.”
그렇다면 백마를 타고 선두에 선 장수는 우림군을 통솔하는 우림중랑장일 것이다. 여포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천화극을 잡았다.
비장(飛將).
또는 천하제일인.
너무나도 높은 명성으로 인해 이제는 전장에서 마땅히 창을 맞댈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은 여포다. 그러나 청년 장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철창과 방천화극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며 부딪쳤다.
깡!
지켜보는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꼭 돌풍이 불어서 눈을 찌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병사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여포는 제 자리에 있었고 청년 장수는 한 장 거리를 밀려나 있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천자를 지켜야 할 놈이 마초와 함께 싸우고 있나. 뭐 하는 놈이냐?”
“성상 폐하의 명을 받아 역적을 토벌하러 온 우림중랑장. 그리고 복파장군 마초의 의형제.”
척.
조운은 철창을 들어 여포를 겨눴다.
“상산의 조자룡이다.”
다닥!
조운의 백마, 백룡이 바닥을 굴렀다. 정면의 조운이 흰 전포를 휘날리며 그대로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왼쪽에서는 두 자루 사각철간을 든 감녕이 돌진했다. 오른쪽에서는 장료가 장검을 뽑아 들고 접근하고 있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위와 오와 촉한을 대표하는 세 맹장이 동시에 말을 몰아 여포를 노리고 거리를 좁혀 왔다.
텅.
여포는 무인도를 바닥에 던졌다.
무거운 무인도는 투장에 적합하지 않았다. 오직 난전에서 칼날의 손상 없이 적병들을 참살해서 적진을 무너뜨리는 목적으로 맞춘 무기였다. 장수를 상대할 때는 길고 예리한 방천화극이 훨씬 효과적인 무기였다.
깡!
철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든 여포가 조운, 장료, 감녕과 3대 1의 투장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4년 전의 마초에게 뒤지지 않는 놈들이…….”
병장기를 잡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여포는 그 중의 어느 순간보다도 빠르게 손을 놀렸다. 여포의 손에 들린 방천화극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왼쪽을 찌르고, 오른쪽을 벴다.
그러나 전황은 유리하지 않았다. 감녕의 사각철간에는 여포의 방천화극도 받아낼 수 있는 힘이 실려 있었다. 장료의 장검은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치명적인 살초를 발출했다. 조운의 철창은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셋인가.”
까앙!
여포는 방천화극을 크게 휘둘러 장료를 먼저 떨쳐냈다. 움직임을 미리 읽는 장료의 칼이 가장 위험했다. 뒤이어 파고드는 조운의 철창을 피하기 위해 몸을 크게 틀었다. 철창은 여포가 쓴 봉시관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두 개의 깃털 중 하나에 맞았다. 사방으로 깃털이 흩날렸다.
턱.
그리고 그사이, 감녕이 여포의 팔을 잡는 데 성공했다. 두 자루 사각철간 중 좌철간을 여포의 팔에 끼운 것이다.
“됐다, 부러뜨려 주마!”
감녕은 기세 좋게 외치며 힘을 썼다. 지렛대의 원리를 쓸 수 있도록 제대로 팔을 얽고 있는 힘껏 비틀었다.
그런데 여포의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힘으로 버틴 것이다.
“제길, 그렇다면!”
감녕은 그대로 우철간을 들어 여포를 쓸어 갔다. 여포는 우철간을 피하기 위해 감녕의 왼쪽 방향으로 돌았다.
다다닥.
적토마가 제자리에서 작게 맴돌며 방향을 바꿨다.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감녕은 잠시 휘청거린 후,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잠시 3대 1의 난전을 벗어나 숨을 고르는 여포의 곁으로 부장 이추가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든 물건을 여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온후, 받으십시오!”
분수를 건너며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맡겨 둔 활과 화살통이었다.
여포는 활을 잘 쏘고, 웅의료는 공놀이를 잘 한다(布射僚丸).
천자문에 남아 2천 년 동안 전해지는 말이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땅에 박아둔 채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대궁에 거대한 화살이 걸리고,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상황을 파악한 적토마가 재빨리 옆걸음으로 조운, 장료, 감녕과 거리를 벌렸다.
“제길, 내 뒤로 숨어!”
감녕이 맨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자루 사각철간으로 여포의 화살을 쳐내 볼 셈이었지만, 성공할지는 자신이 없었다. 평음현에서 군량을 빼앗길 때 여포의 대궁이 가진 위력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죽더라도 다른 두 사람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복파장군이 여포와 싸울 일이 있으면 한 번 목숨을 던지라고 했었지.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게 되겠군.’
화살이 날았다.
여포가 겨눈 것은 감녕이 아니었다. 화살은 그대로 감녕이 타고 있는 말의 가슴팍에 맞았다.
펑!
화살에 맞은 말의 가슴팍이 터져 나갔다. 장력이 몇백 근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 활이었다. 말은 그대로 몸통에서 머리가 분리되고, 감녕도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감녕의 등 뒤에 숨어서 달리던 장료는 감녕을 밟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말머리를 틀었다.
“제기랄!”
“장문원, 무슨 멍청한 짓이냐!”
감녕은 쓰러진 채로 노호성을 터뜨렸다. 자신을 짓밟지 않으려다 여포에게 일격을 가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여포는 다시 한번 대궁에 화살을 메겼다. 그리고 몸을 좌측으로 틀었다. 왼쪽에서 철창을 겨눈 조운이 달려오고 있었다.
장료가 그대로 달려왔으면 활을 한 발 더 쏘지 못하고 방천화극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끼이익.
시위가 팽팽히 당겨졌다. 다행히 한 발을 더 쏠 시간이 있었다. 여포는 다가오는 조운을 향해 활을 겨눴다. 접근전 거리에서 날리는 화살이니 빗나갈 리 없다. 아우를 잃고 사자 같은 기세로 달려들던 마초도 이 일격으로 제압했던 바 있다.
탕!
여포가 시위를 놓았다. 달려오던 조운은 그대로 몸을 틀었다.
퍼억!
시위를 떠난 화살이 조운의 몸을 길게 스치며 선혈이 튀었다. 여포가 쏘는 화살은 창이나 다름없었다. 조운은 이 일격으로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조운은 그대로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선혈이 사방으로 튀고, 한 손으로 쥔 철창이 아슬아슬하게 여포의 얼굴에 닿을 만큼 뻗어 왔다. 상산창술 절기 일신시담이었다.
퍽!
조운의 창끝이 뭔가를 맞췄다. 여포가 머리에 꽂고 있던 산새의 깃털이 완전히 부서져서 어지럽게 흩날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 흐른 후.
“화살을 맞으면서 반격한 것이냐. 온몸이 담 덩어리로 된 놈이구나.”
여포의 맑은 저음이 울렸다. 조운은 배의 상처를 부여잡고 간신히 신형을 수습해 고개를 들었다.
여포가 보였다. 조운의 절기에 맞아 봉시관이 깨지고 두 자루 깃털을 모두 잃었다. 항상 단정하던 매무새가 흐트러져 칠흑 같은 장발을 제멋대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두두두두.
뒤에서 말이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료가 분명했다. 여포는 서두르지 않는 듯, 하지만 빠른 동작으로 활을 집어넣고 땅에 박아둔 방천화극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장료가 공격을 읽어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방천화극을 오른손으로 뿌리듯 크게 휘둘렀다.
퍼억!
장료는 분명히 검을 세워 방천화극을 막았다. 그러나 방천화극에 실린 여포의 힘은 감당할 수 없었다.
“크윽!”
장료의 몸이 안장에서 붕 떠서 뒤로 날았다. 발에 걸린 등자 때문에 말까지 균형을 잃었다. 장료와 그의 준마는 그렇게 다시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
바로 일어나려던 장료는 여포의 힘을 받아낸 충격 때문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여포는 낙마한 감녕과 장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여전히 정면의 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절기 일신시담을 갖고 있어서 반격에 능한 조운을 어떻게 잡을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함진영.”
여포가 별안간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순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함진영! 돌격하라!”
두두두두.
여포가 조운, 장료, 감녕과 3대 1로 싸우는 동안 여포군이 강을 다 건넌 것이다. 함진영이 선봉에 서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검은 갑옷을 입은 함진영 앞에, 이번에는 마가군 병사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온후께서 함께 하신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
전세가 뒤집혔다.
여포가 선봉에 섰으니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맹장 3인으로 이루어진 마가군의 함정을 깨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여포는 주변의 병졸에게 마유주가 든 부대를 건네받아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십여 장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아직 조운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운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묵묵히 그 모습을 보던 조운은 손을 들어 자신의 부대에 수신호를 보냈다.
“퇴각하라.”
여포의 무위가 조운의 상상 이상이었다. 조운 자신도 여포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출혈이 심해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이대로 맞서 싸워도 이길 수 없다. 일단 우림군의 전력을 보전해야 한다.’
지금 맞서 싸우면 개죽음만 당할 뿐이다. 계속 싸우다 보면 여포도 사람인 이상 지칠 때가 올 것이고, 그때쯤이면 마초가 달려올 것이다. 우림군의 돌격은 그때를 위해 아껴둘 생각이었다.
조운을 따라 달려온 우림군이 말머리를 반대로 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운은 그런 우림군의 맨 뒤에 섰다. 여포는 눈앞에서 조운이 멀어져 가는데도 그저 마유주를 마실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꿀꺽. 꿀꺽. 꿀꺽.
마유주 부대가 비자, 여포는 강을 건너기 전 그랬던 것처럼 빈 부대를 옆으로 던지고 땅에 박아둔 방천화극을 뽑아 들었다.
“장료. 그리고 방울 단 놈. 둘 다 골치 아픈 놈들이지. 하지만 가장 귀찮은 건 네놈이군.”
다다닥!
적토마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짧은 휴식을 끝낸 여포는 방천화극을 비껴 잡고 퇴각하는 조운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 나갔다.
“그러니 여기서 죽여야겠다.”
이길 수 없는 상대.
피할 수 없는 죽음.
그것이 적토마에 탄 여포의 모습을 한 채 조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무를 통해 벗을 만나고(以武會友), 벗을 통해 의롭게 된다(以友輔義).”
조운은 의종의 구호를 낮게 읊조리며 여포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의종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으니 여한은 없다. 다만 벗을 위해 한 가지만은 해 놓고 죽어야겠군.”
직접 상대해 본 여포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기는 것은 물론, 무사히 도망치는 것도 무리라고 보였다.
그러나 조운에게는 절기 일신시담이 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여포에게 큰 상처를 입힐 자신은 있었다. 여포가 중상을 입으면 또다시 전황이 바뀔 것이고, 곧 마초가 도착해서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조운은 철창을 비껴 잡고 여포를 맞이했다.
그때.
휘이잉!
뒤에서 날아온 화살 한 대가 조운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화살은 그대로 여포의 머리를 노렸다.
팟!
여포는 그대로 몸을 크게 틀어 화살을 피했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떤 놈이냐.”
엄청난 힘으로 당긴 활이다. 여포의 머리를 정확히 노릴 만큼 겨냥도 정확했다. 그리고 화살을 통해 섬뜩할 정도의 적의가 전해져 왔다.
여포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장수가 한 명 있었다. 말조차 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키만큼 큰 활을 들고 있었다. 8척의 장신에 체격이 건장해서 그런 활을 능히 당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푸른 눈동자를 보면 이민족과의 혼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보면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눈이 좋은 여포는 멀리서도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얼굴을 보니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놈과 닮았군.”
“드디어 만났구나, 여포.”
마초의 실력도, 마휴의 정신력도 갖지 못한 마등의 삼남.
마철은 푸른 눈을 부릅뜨고 여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화살을 메겼다. 원수를 마주하자 치솟는 분노가 머리를 차갑게 식혀 주었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