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96화 (196/306)

196화. 군영전여포(群英戰呂布) (1)

꿀꺽, 꿀꺽.

여포는 적토마 위에 앉아 마유주를 들이켰다. 그의 앞으로 분수가 가로놓여 있고, 선봉에 선 군사들이 분수를 건너고 있었다.

분수의 건너편에서는 마가군의 군사들이 도하하는 여포군을 들이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가벼운 차림의 흉노 기병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뒤이어 비단 전포를 두른 중기병대가 도착할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중기병대도 달려오고 있었지만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 보였다.

“장(張), 그리고 감(甘)이라.”

여포는 달려오는 마가군들이 세운 깃발에 쓰인 글자들을 무심하게 읽었다. 깃발이 또 하나 있었지만,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적장의 이름을 쓴 것이리라. 감씨 성을 쓰는 장수는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장씨 성을 쓰는 이는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온후.”

고순이 옆으로 다가와 여포를 불렀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법이 없는 그였지만, 지금은 잔뜩 핏대가 선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우리 군사들 삼 분의 일이 강을 건넜습니다. 놈들이 달려오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니, 우리가 절반쯤 강을 건넜을 때 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알고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이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들이친다.

이는 병법의 기본이었다. 여포가 없는 사이 본거지 태원을 습격한 마가군은 어느새 성벽에 마가군의 군기를 걸어 놓고 있었다. 성 밖에 나와 있는 1만 병주병들은 양쪽에서 공격하는 마가군에 고전하고 있었다.

지금 태원 벌판에 집결한 마가군의 수는 약 4만, 반면 여포군의 수는 태원성의 수비병과 여포가 이끌고 회군한 군사들을 다 합쳐도 2만이 채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전황을 뒤집지 못한다면, 여포 자신과 수하들은 하루아침에 근거지와 병력을 잃고 초라한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다.

“고순.”

“예, 온후.”

“적진에 장료가 있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온후, 그 말씀은…….”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열 것이다. 그동안 함진영과 함께 강을 건너라.”

여포는 그렇게 말하고 고순에게 자신의 대궁과 화살통을 건넸다.

여포의 대궁은 뿔로 만든 각궁이었다. 각궁은 물에 젖으면 접착제가 풀어진다. 강을 건너는 동안 젖게 될 테니 맡기는 것이다.

“…존명!”

활을 받아든 고순은 여포에게 군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여포는 잠시 동안 전황을 살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끝나자 다시 마유주가 든 가죽 부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마지막 한 방울의 마유주까지 사라졌다. 여포는 가죽 부대를 옆으로 던지고 적토마의 배를 걷어찼다.

이히힝!

적토마는 앞발을 들어 올리며 한 차례 울부짖은 후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포의 옆으로 병주병들이 스쳐 지나갔다. 봉시관에 꽂은 두 가닥 깃털이 거세게 흔들렸다.

강기슭에 닿은 적토마는 크게 뛰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콰앙!

첫 번째로 착지한 곳은 강에 띄워 놓은 뗏목이었다. 뗏목이 쓰러질 듯 휘청거렸지만 적토마는 어렵지 않게 균형을 잡았다. 안장에 올라타 있는 여포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쾅! 쾅! 쾅!

적토마는 순식간에 세 개의 뗏목을 밟고 도약했다. 그리고 군사들이 도하하기 위해 띄워 놓은 부교를 디딤돌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럴 수가 있는가?”

강의 저편에서 달려오던 흉노 기병들이 장탄식을 했다. 말에 익숙한 그들이지만 여포와 적토마 같은 기동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부교를 딛고 달리던 적토마는 발밑이 불안정하자 크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강 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착지했다. 진령산맥의 산양과 같은 동작으로 하나의 바위를 더 타고 넘은 적토마는 바위가 없어지자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푸아악!

물보라가 일었다. 수심은 1장을 넘었으니 얕지 않았다. 적토마의 거체가 온전히 물에 잠기고, 그 위에 탄 여포의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적토마는 여포를 태운 채 강바닥을 딛고 달려서 강기슭에 도달했다. 숨이 차오르기 전에 적토마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이어 가슴팍이, 다리가, 마침내 피처럼 붉은 전신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아직 흉노 기병들은 접근해 오기 전이었다. 강 반대편에서 이를 악물고 여포의 도하를 기다리던 병주병들이 저마다 크게 외쳤다.

“온후께서 오셨다!”

“비장(飛將)이 함께 한다!”

여포가 강을 건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태원 벌판에 집결한 병주병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마가군의 기습을 받아 절망에 빠져 있던 군기(軍氣)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십 년 전, 여포가 정원을 배신하고 동탁을 선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한 전장에서 승리하며 천하제일이란 명성을 얻은 병주병들이다. 여포의 존재가 알려지자 병주병들의 얼굴에 저마다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리 불리해 보이는 전투라도…….’

‘온후가 선봉에 서면 뒤집을 수 있다!’

부우웅.

여포는 무인도를 뽑아 들었다. 강한 적장과 겨루는 상황을 대비해서 길고 예리한 방천화극을 새로 맞췄지만, 혼자서 적진을 파괴할 때는 여전히 무인도가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적토마는 늪과 진흙에 발이 빠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흉노 기병대 쪽으로 내달렸다. 기병이 움직이기 불편한 저습지였지만, 적토마는 흔들림 없이 적군을 향해 질주했다. 흉노 기병들이 미처 일제 사격의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무인도를 휘두르는 여포가 충돌했다.

쾅!

폭음이 울렸다. 무인도가 가는 곳에 있던 세 명의 기병은 그대로 몸이 터져 나갔다. 여포는 지체 없이 무인도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콰앙!

이번에는 네 명의 몸이 폭발하듯 터졌다.

작달막한 말을 탄 흉노 기병이다. 여포가 거대한 적토마 위에서 거대한 무인도를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이 시체가 되어 뒹굴었다. 순식간에 적진 가운데로 뛰어드니 흉노가 자랑하는 활 솜씨도 발휘할 수 없었다.

흉노 기병을 이끌고 있는 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놈은… 곽거병인가?”

여포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표는 자신도 모르게 흉노에 전해져 내려오는 재앙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온후의 뒤를 따르라!”

“우와아아!”

먼저 도하해 있던 여포군 일부가 여포의 뒤를 따라 흉노 기병들을 향해 달렸다.

본래 기주에서 조조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수행하기 위해 여포가 선발한 군사들이다. 여포군 중에서도 가장 싸움에 능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포가 선두에서 적진을 부수고, 병주의 정예병들이 그 뒤를 따르니 이미 기세가 흐트러진 흉노 기병들이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빌어먹을… 아버지에게 뭐라고 고한다는 말이냐!”

표는 자신의 군사들이 궤멸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뿌렸다. 이대로 여포와 생사결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개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표는 어금니를 깨물고 살아남은 군사들을 수습해 퇴각을 지휘했다.

흉노 기병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흩어졌을 때, 마가군의 군사들이 도착했다. 무장 사정이 좋은 마가군이라 저마다 갑주와 무기가 번쩍번쩍 빛났다. 그중에서도 전원이 비단 전포를 맞춰 입은 중기병대가 선두로 나섰다.

“금철기(錦鐵騎)인가.”

마초가 이끄는 금철기의 명성은 이미 병주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서량에서 장제를 상대로 그 위용을 떨치고, 관도 전투와 개봉대전에서 한 번 돌격으로 원소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 부대다. 초평(初平, 190~194년 쓰인 연호) 연간에 함진영이 있었다면 건안(建安, 196년부터 198년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연호) 연간에는 금철기가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병주병들의 사기가 한껏 올라 있지만, 함진영이 오기 전에는 금철기를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황을 파악한 여포는 천천히 적토마를 몰아 앞으로 나섰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적군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그 사이에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이 강을 건너 합류하는 것을 기다릴 셈이었다.

적진에서도 금철기 사이로 한 명의 장수가 말을 몰아 나왔다. 여포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장료.”

“온후.”

실눈을 한 장료는 웃는 낯으로 여포에게 군례를 올렸다. 여포의 봉시관에 달린 두 가닥 깃털이 가늘게 떨렸다.

“미오성에서 쥐새끼처럼 도망치더니 서량 마가군에 붙어 있었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복파장군이 봉록을 두둑하게 주더군요.”

여포는 무인도를 집어넣으며 뒤를 확인했다. 함진영이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으니 조금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다.

“네놈의 선조는 강성한 흉노와 싸워 이름을 떨쳤는데, 네놈은 퇴락한 흉노와 어울려 남을 섬기고 있군.”

“조상님이 괜히 애국한다고 너무 열심히 사시는 바람에 후손은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온후답지 않게 말이 많으시군요?”

장료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여포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두 가닥 깃털이 살짝 흔들렸다. 여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장료는 여포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료. 네놈은 예전부터 지모를 갖추고 있었지. 용맹은 천하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고.”

“그건 그렇지요.”

“네놈이 나고 자란 병주 땅에서 두 번째로 귀한 몸이 될 수 있었거늘, 서량 마가군의 개가 되어 내 앞을 가로막을 셈이냐. 가소롭구나.”

“예. 계속 온후의 곁에 있었으면 내 고향 병주에서 두 번째로 귀한 몸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온후를 따라 병주의 숱한 고을들을 떨어뜨리고, 사내는 전부 죽이고 여인들은 전부 욕보였겠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장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장료는 감긴 듯 가늘게 뜨고 있던 한쪽 눈을 크게 떴다. 뱀처럼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났다.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타닥!

그 말과 함께 장료가 말을 몰아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여포의 말과 함께 적토마가 땅을 박찼다. 목표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장료였다. 여포는 적토마를 타고 달리며 무인도를 길게 늘어뜨렸다. 무인도의 뭉뚝한 칼날이 땅바닥의 돌에 긁히며 불꽃이 튀었다.

끼이이익.

장료는 무인도를 끌며 다가오는 여포를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고수라면 예비 동작을 감출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장료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아래쪽이다!’

공격 방향을 읽은 장료가 말의 배를 차서 뒤로 물러났다. 여포는 땅에 끌던 무인도를 위로 크게 올려 쳤다.

부우웅!

여포가 한껏 올려친 무인도가 장료의 눈앞을 지났다. 풍압으로 눈이 아플 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장료는 여포가 허공을 헛친 것을 보고 장검을 들어 여포를 찌르려 했다.

그러나 적토마가 멈추지 않았다.

퍼억!

적토마는 여포가 허공에 무인도를 휘두른 순간, 가속해서 장료의 말을 들이받았다. 훨씬 무거운 적토마가 압도적인 속도를 살려서 들이받자 장료의 말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우당탕!

말과 함께 땅바닥을 뒹구는 장료를 향해 여포가 말했다.

“여전히 잔재주를 잘 쓰는구나. 말의 움직임까지는 읽을 수 없더냐.”

“크윽, 이런 제길…….”

여포는 그대로 장료를 향해 달려들어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때.

이히힝!

적토마가 땅을 미끄러지며 옆걸음을 밟았다. 어느새 여포의 곁으로 뛰어 들어온 무장 하나가 적토마를 노리고 사각철간을 휘두른 것이다.

딸그랑.

적토마 기습에 실패한 무장은 등자를 밟지도 않고 훌쩍 뛰어서 말에 올랐다. 옷깃에 매단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붉은 비단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미남이었다.

“쳇, 피했잖아?”

여포는 투덜거리는 감녕을 바라봤다.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평음현에서 군량을 뺏긴 그놈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군.”

감녕은 잘생긴 얼굴을 한껏 구기며 크게 웃었다.

“네놈 덕분에 남들이 무공을 세울 동안 실컷 드러누워 있었지. 오늘 네 목을 얻어서 만회하겠다, 여포.”

스윽.

여포는 무인도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오른손으로 방천화극을 쥐었다.

“용력에 제법 자신이 있나 보군. 두 놈이 한꺼번에 덤벼라.”

“말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다!”

감녕은 그렇게 외치며 여포를 향해 뛰어들었다. 다시 말에 올라탄 장료도 함께였다.

쩡!

무인도와 사각철간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여포는 감녕이 자신의 칼을 받아내자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나 지체하지 않고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무인도로 감녕을 밀어붙이며 방천화극으로 장료가 있는 오른쪽을 찌른 것이다.

슈욱!

장료는 몸을 크게 틀어 방천화극을 피했다. 그리고 등자에 한 발만을 걸치고 안장을 잡고 곡예사처럼 매달린 채,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팟.

여포의 팔뚝에서 피가 튀었다.

상처는 얕았다. 그러나 여포가 검상을 입는 걸 보자 병주병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여포에게 일격을 넣기 위해 자세를 흐트러뜨린 장료는 허점투성이였다. 그러나 여포는 그런 장료의 허점을 공략할 수 없었다. 왼쪽에서 감녕이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쩡!

여포는 감녕이 휘두르는 좌철간을 무인도로 받아냈다. 감녕은 뒤이어 우철간으로 여포를 쓸어 갔다.

다닥!

적토마가 잔걸음으로 땅을 미끄러졌다. 감녕의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장료와 감녕이 같은 상대와 싸우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마치 10년간 손발을 맞춰 온 것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4년 전의 마초, 방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무위였다.

하지만, 상대는 천하제일인 여포가 아닌가.

“둘이 덤비면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

여포는 맹장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감녕은 그런 여포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성(姓) 셋 가진 종놈을 상대하려면 맹장도 세 명이 필요하다더군. 그래서 한 명을 더 끌어들였지.”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여포는 멀리서 또 다른 한 기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빛 갑옷에 은빛 투구, 흰 전포를 두르고 백마에 앉아 철창을 쥔 청년이었다. 청년의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조(趙)자 군기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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