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91화 (191/306)

191화. 금마초 (2)

마초가 이끄는 금철기가 대장군 원소의 코앞까지 쳐들어왔다. 여상, 저곡, 공손독, 곽조, 여위황, 한거자, 수원진, 장의거까지 여덟 장수가 쓰러졌다.

대장거에 높이 앉아 이 소식을 들은 원소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5년 전 마초를 봤을 때, 다른 이들은 그가 어리고 만용에 가득 찼다고 했으나 나는 한눈에 그의 장재를 알아봤었다. 언젠가 천하제일의 무장이 될 재목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조차도 그를 과소평가했던 것인가.”

마초가 이끄는 기병대가 용맹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열 배나 많은 군대의 대열을 부수고 돌파할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알았다면 개봉 벌판에서 회전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장기병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곳을 전장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원소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전방을 바라봤다. 마초의 금철기가 다가오는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대장거의 밑을 내려다보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곽도와 봉기가 벌벌 떨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꿈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20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이렇게 궁지에 몰렸을까.

“내가 권세에 취해 초심을 잃었구나.”

원소는 자조적인 말투로 내뱉었다. 당장 이길 수 있을 줄 알고 성급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 백마에서 맹장들을 잃은 것도 성급했기 때문이었고, 군량을 잃은 것도 성급하게 조가에 군량을 쌓아 뒀기 때문이었다. 개봉 벌판에서 회전을 택한 것도 성급했기 때문이었고, 조조가 중군을 이끌고 전진하자 그를 잡겠다고 주력을 내보내서 본영을 허술하게 만든 것도 성급했기 때문이었다.

명문가의 얼자로 태어나 하북에 공업을 쌓아 올리기까지 너무나도 힘든 세월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천하가 보이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잠시 잊어버렸다.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인내와 기다림이었다.

마초는 용맹하고 조조는 지략이 뛰어나다. 그러나 강적은 항상 있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패인은 원소 자신이 자만에 빠져 인내와 기다림을 잊어버린 것이다.

“대장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사 전풍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수와 더불어 자신에게 꾸준히 직언을 하다 눈 밖에 난 신하였다.

“퇴각한다. 살아남아서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원소의 눈빛은 맨손으로 하북을 제패한 젊은 시절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우리에게는 하북 4주가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으나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조맹덕을 이길 수 있습니다.”

퇴각을 결심한 원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 4주의 우월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조조를 압박한다.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내 몸이 버텨 줘야겠지. 그리고… 만약 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경우, 후계자 자리를 탐내 기반을 흔들 위험인물도 미리 제거해야 할 것이다.’

원소는 대장거에서 내려 말에 올랐다. 오만한 권력자가 아니라 냉혹한 군웅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주변의 장수들을 모아 놓고 같이 퇴각할 자와 남을 자를 정했다. 그리고 남아서 시간을 끄는 임무를 맡은 자들의 수장으로 젊은 청년 장수를 지명했다.

“현사(원담의 자). 대장군의 부월을 너에게 넘긴다. 이 싸움은 네가 총대장이 되어 마무리하도록 하라.”

“이런 빌어먹을.”

화살받이 임무를 맡은 원소의 장남 원담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뒈질 때가 되니까 장남을 찾는군. 참으로 원본초다운 방식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양어머니를 위해서 6년 상을 치르고, 자기 피를 이어받은 장남은 자기 대신 뒈질 자리로 내몰고.”

“장 공자, 그 무슨 무례한…….”

“전 선생도 잘 들으시오. 부디 아버지를 잘 보필해 뜻을 이루시오. 그리고 새 나라를 세우면 종실전에 내 얘기를 한 줄 써 주시오. 고조 원소의 장남 원담은 평생 아버지한테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 대신 적을 상대하며 효를 다하고 죽었다고. 기왕이면 마초와 100합을 싸웠다는 얘기도 넣어 주면 좋겠군. 으하하하!”

자포자기한 원담의 광소가 울려 퍼졌다. 원소는 원담을 외면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원담은 원소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내 재주가 눈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나를 패륜아 취급했지. 그러나 똑똑히 알아 두십시오. 아버지는 틀렸습니다! 나는 오늘 효자로 죽을 것이니 아버지가 성공하면 나는 건국의 영웅이 될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효를 다한 자로 남을 것입니다!”

한참을 낄낄거리던 원담은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말에 올랐다. 그리고 군사들을 인솔해 전투 대형을 취했다. 멀리서 이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원담은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사시오.”

* * *

마초를 꼭지점으로 추행진을 이룬 금철기는 그대로 원소군을 돌파했다.

원소의 친위대는 몸을 돌보지 않고 마초에게 달려들었지만, 선두에 선 마초가 휘두르는 금마삭을 피할 수 없었다. 뒤에서 지휘하는 고간은 화살을 쏴서 마초를 저지하도록 했지만, 무예가 입신에 경지에 다다른 마초는 화살을 쳐내고, 피하며 그런 고간을 농락하듯 움직였다.

“마초, 저자는 어떻게 저런 무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마초의 무위는 분명히 상식을 초월해 있었다. 금철기만으로도 막기 어려운데 마초가 선두에 서서 길을 뚫으니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원소군의 여섯 장수가 순식간에 마초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때 원담이 도달했다.

“원재(고간의 자) 형님,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어서 피하시오.”

“현사, 그게 무슨 소리냐? 어르신께서는…….”

“그 어르신이란 작자는 이미 내뺀 지 오래요! 효자의 이름은 나 혼자 가질 테니 형님은 살아남아서 어르신 곁에 있다가 내 제사나 지내 주시오. 이곳은 내가 지휘하겠소.”

원담의 뜻은 완강했다. 고간은 하늘을 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마초… 이 굴욕은 반드시 되갚아주마!’

복수를 다짐한 고간은 사촌 아우에게 군례를 표하고 단신으로 퇴각했다.

얼마 후, 마초의 금철기가 원소군에 충돌했다. 친위대를 위시한 원소군의 정예병들은 완강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버텼다. 원담도 손수 칼을 휘두르며 군사들을 독려했다.

“물러서지 마라!”

처절한 항전이었다. 그러나 진짜로 승산이 있었다면 원소가 퇴각하지 않았으리라.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원소군 병사들은 전부 금철기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원담이 금철기의 돌격에 밀려난 곳은 원소가 버리고 간 대장거 옆이었다. 말도 잃고 피투성이가 되어 저항하는 원담의 앞으로 마초가 나섰다.

“그대가 원담인가.”

“그래, 내가 바로 원소의 장자 원담이다. 나와 백합을 겨뤄 보자꾸나.”

원담은 삶을 포기한 듯 칼을 들어 마초를 도발했다.

“아들을 화살받이로 세우고 본인은 도망가다니, 원본초도 인성이 조맹덕과 다를 바 없군. 그러니 둘이 친구인가.”

마초는 피식 웃으며 주변의 군사들에게 지시했다.

“원 공자를 모셔라. 전장이지만 예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존명!”

금철기의 병사들이 말에서 내려 원담을 포박하기 위해 다가왔다. 원담은 악을 쓰며 저항했다.

“이놈들, 감히 내 몸에 손을 댈 셈이냐! 썩 꺼져… 커억!”

퍽! 퍽!

금철기들은 원담이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창대로 후려친 뒤 쓰러져 있는 원담을 포박했다. 서량의 금철기에게 그 정도까지는 전장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인 것이다.

원담이 장렬히 전사하려던 의지와 달리 두들겨 맞고 밧줄로 묶이는 동안, 마초는 원소가 타고 다니던 대장거에 올랐다. 건물의 2층 높이쯤 되는 곳에 옥좌를 본떠 만들어진 자리가 있고 그 옆에 대장군(大將軍) 원소(袁昭)라고 새겨진 거대한 대장기가 꽂혀 있었다. 마초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치란을 뽑아 한 번 휘둘렀다.

퍼억!

치란이 한 번 번뜩이자 대장기의 굵은 깃대가 두 쪽으로 잘렸다. 마초는 잘린 대장기를 들어 수레 밑에 있는 부장에게 던졌다.

“월길, 너는 이 대장기를 들고 조조에게 가라. 원소가 20만 대군을 버리고 혼자 퇴각했다는 소식도 같이 전해라.”

“예, 주공!”

월길은 씩씩하게 대답한 뒤 대장기를 들고 개봉 벌판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강족 기병대가 월길을 호위했다. 꺾은 대장기를 나부끼며 달리는 월길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원소군의 사기를 바닥에 떨어뜨릴 것이다.

금철기에게 붙들린 원담은 그때까지도 계속 악을 쓰고 있었다.

“죽여라! 나를 죽이란 말이다!”

“거 되게 시끄럽네.”

마초는 사자 투구를 벗어 원담의 머리를 몇 대 후려쳤다.

까앙! 깡!

“으어억…….”

원담은 머리에서 피를 쏟아낸 뒤에야 잠잠해졌다. 마초는 원담이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단단히 재갈을 물리게 했다.

“네 사정은 딱하다만 그렇다고 네게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은 없다. 너는 조맹덕에게 넘길 테니 그리 알아라. 나도 이제 남들 평판을 신경 써야 하니 살려달라고 탄원은 해주마.”

마초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시 말머리를 전장 쪽으로 돌렸다.

‘원가의 원한이 나를 향하게 할 필요는 없지.’

원소는 통치를 잘했다. 하북을 다스리면서 나름대로 민생도 안정시켰고 이민족과의 관계도 원만했으며, 귀족 사회의 지지도 얻고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원가의 인물을 참살하면 원한을 사게 될 수 있었다.

‘그런 악명은 조맹덕에게 떠넘겨야겠다.’

마초는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나 조카 고간을 발견하더라도 절대 죽이지 않도록 부하들을 단속했다.

잠시 후, 마초는 금철기를 이끌고 온 길을 되짚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

* * *

월길과 강족 기병들이 원소의 대장기를 들고 전장을 달리기 시작하자 전황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꺾인 대장기를 본 원소군과 조조군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원소가 패주했다! 모두 항복하라!”

“너희들의 주군은 이제 전장에 없다!”

총대장 원소가 먼저 퇴각했다. 전장에서 난전을 벌이고 있던 좌군의 심배, 우군의 곽원, 선봉 순우경은 저마다 당혹했다. 본대를 이끄는 저수만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는가. 전군, 퇴각한다.”

아직도 병사 수는 원소군이 훨씬 많다. 제대로 된 지휘가 이루어진다면 조조군에게 패할 리 없다. 그러나 지휘부가 먼저 퇴각했으니 그 많은 병사들이 머리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대장군이 군사들을 버리고 퇴각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린 것인가. 마초가 대단한 무용을 뽐냈나 보군.’

7만의 본대를 이끄는 저수는 관도로 퇴각하는 것을 선택했다. 2만 좌군을 이끄는 곽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퇴각은 순탄치 않았다.

“적의 기병입니다!”

선두에 선 것은 복파장군 마초였다. 사자 투구를 쓰고 비색 전포를 휘날리며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마초를 보자 저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위엄 있는 자태와 용모로 명성을 얻었던 주군 원소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참으로 비단(錦) 같은 마초로구나. 어쩌면 천하를 손에 쥐는 것은 저 자일지도 모르겠다.”

마초는 비단 같은 용모로 원소군을 추격하며 마구 도륙했다. 추격은 저수와 곽원의 군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금철기의 말이 지쳐서 더 이상 달리기 어렵게 된 다음에야 멈췄다. 금철기가 달려간 길에 원소군 군사들의 시신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조조를 상대하는 심배와 순우경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우금, 악진, 주령, 이전에 하후연과 조인, 그리고 마가군의 방덕과 서황까지 가세해서 원소군을 포위했으니 섬멸을 피할 수 없었다. 난전의 끝에 순우경은 간신히 몸만 빼내 도망치고, 심배는 군사들에게 붙들려 조조 앞으로 끌려오는 신세가 되었다.

인재 욕심이 많은 조조다. 웃는 낯으로 심배를 회유했다.

“하북에 이름 높은 심정남을 이렇게 맞이하게 되는군. 승패가 이미 기울었거늘 내게 무슨 화살을 그리도 많이 쏘아 댔는가?”

“화살이 적어서 역적을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니라.”

“하하, 천자의 명을 받은 것은 나라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나를 섬기는 것은 어떤가?”

그러나 심배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자태에 위엄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조조도 더 이상 설득을 포기하고 심배를 참수하라 명했다.

“나를 북쪽으로 앉게 하거라! 내 주군께서는 북쪽에 계신다.”

심배는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당당했기에 많은 이들이 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은 전세가 기울자 바로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조조군은 그런 함진영을 구태여 쫓지 않았다. 섣불리 추격하다가는 막대한 피해만 입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조조군의 참모들은 고순이 조조군 본대 기습이 저지당한 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여포와 합류해서 병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고 싸움이 끝났다.

조조와 마초의 10만 연합군이 20만의 원소군을 대파했다. 전투 중간에 마초의 돌격을 견디지 못하고 지휘부가 도주한 것이 직접적인 패인이었다.

허도의 백수십 리 앞까지 진격했던 원소는 개봉 벌판에서 대패를 당하고 다시 북쪽으로 물러났다. 198년 음력 6월, 훗날 개봉대전이라고 불리는 싸움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