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금마초 (1)
개봉 벌판에서 전투가 시작된 후 조조군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싸웠던 것은 조홍이 이끄는 우군이다. 오전 내내 원소의 좌군과 접전을 벌이고 하북철기의 돌격까지 막아낸 우군의 병사들은 다들 기진맥진해져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조조군의 후미에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움직였다. 우군의 조홍과 조인에게도 그 모습이 보였다.
“자효 형님, 마초가 움직이나 보오.”
황금 투구를 쓴 조홍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투구를 눌러 썼다.
총 병력에서 열세에 있는 조조군이 전력을 쏟아붓는 것은 단 한 번,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을 때.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판단이 섰다.
“내가 가겠다. 청주병, 내 뒤를 따르라.”
조인은 조홍과 황권에게 우군을 수습하도록 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부대인 청주병들만 이끌고 원소를 향해 전진했다. 귀순한 황건적들과 그들의 자식들로 구성된 부대다.
대열의 최후미에서 달려오는 병사들이 원소군에게 닿으려면 아직 이 각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원소군이 대열을 갖추지 못하게 묶어 놓는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청주병들은 저마다 눈을 빛내며 조인의 뒤를 따랐다.
원소가 있는 중군을 지키는 장수 여상은 눈을 찌푸리며 전방을 응시했다. 키보다 큰 장검을 들쳐멘 조인이 청주병들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조인… 미친 건가? 고작 2천 정도의 병력으로 스무 배나 되는 우리 군에 돌진할 셈인가?”
원소군은 난전을 벌이는 조조를 잡기 위해 7만이나 되는 본대를 전진시킨 상태였다. 이제 원소의 중군에 있는 병력은 주력이 빠져나간 4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인이 이끄는 2천 청주병에 비하면 여전히 대군이었다.
청주병이 원소군 중군에 충돌했다. 하북철기를 막아내고 지친 군사들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세가 맹렬했다. 조인은 그 선두에서 애병 팔척검을 휘두르며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보다 못한 여상은 활을 들어 조인을 겨눴다.
탕!
그러나 조인은 팔척검을 비스듬히 기울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여상 쪽을 한 번 쓱 쳐다본 조인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주변의 군사들만 계속 베고 있었다. 무시당한 여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놈… 어디 이 화살도 막아 보거라!”
여상은 분노해서 연거푸 화살을 쏘아 제끼기 시작했다. 빗나가는 것이 절반, 조인의 칼에 걸리는 게 절반이었다. 여러 발을 쏘며 화살이 점점 정확해지자 조인도 이내 여상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아주 허튼 녀석은 아니군. 패국의 조인이다.”
“막아라! 극으로 저놈의 말을 노려 낙마시켜라!”
여상은 조인이 다가오자 호위하던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군사들이 저마다 긴 극을 들어 조인의 말을 걸어 떨어뜨리려 했다.
퍽!
그러나 조인이 팔척검을 한 번 휘두르자 조인을 노리던 극의 자루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문관 같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괴력이었다. 조인은 자신의 말을 노리는 병사들을 너무나 쉽게 돌파하고 여상에게 치달았다. 여상은 조인이 팔척검을 치켜들자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으, 으어어…….”
퍼억!
조인이 수평으로 휘두른 검에 여상의 상체가 하체에서 분리되어 하늘을 날았다. 상체의 잘린 단면에서 뭔가가 길게 늘어지며 주변에 지독한 악취를 뿌렸다. 여상은 상체만 남아 허공을 날며 입을 뻐끔거려 뭐라 말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기 전까지 잠시 살아서 땅바닥을 구르던 몸은 이내 말발굽에 짓밟혀 형체도 없이 짓이겨졌다.
여상을 벤 조인은 원소군 중군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대신 그대로 옆으로 달렸다. 그의 목적은 원소군의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것이었다.
여상의 빈자리를 막기 위해 급히 달려온 무장은 저수의 아우 저곡이었다. 저곡은 큰 소리로 군사들을 독려했다.
“흐트러지지 마라! 조인이 가는 방향은 신경 쓰지 말고 반대 방향의 대열을 잘 유지하라!”
멀리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조인은 그 기병대가 돌진할 길을 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조인이 아무리 용맹해도 혼자서 4만 대군의 대열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다. 조인이 쓸고 가는 좌측은 흐트러지더라도 처음 돌입했던 자리를 기점으로 우측을 잘 수습하면 전체 대열은 무사할 것이다.’
그것이 저곡의 계산이었다.
조조군의 후미에서부터 달려온 기병대는 원소군 중군에 근접한 뒤 300장 거리에 정렬해서 숨을 골랐다. 숫자는 전부 5천 정도로 보였다. 저마다 무기가 정련하고, 말에도 갑옷을 입혔으며, 긴 창을 들고, 서량 마가군이 쓰는 신식 등자와 안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기병대 사이에는 눈이 푸른 자, 코가 우뚝한 자, 수염이 덥수룩한 자 등 이민족들이 적잖이 끼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장수들처럼 비단 전포를 두르고 있었다.
“저들이 금철기인가.”
원소군에는 관도 전투에서 맹위를 떨친 금철기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저곡과 병사들은 저마다 긴장하며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금철기들이 전장 근처에 정렬해 있는 사이, 그들 중 1천 기가 따로 빠져나와 저곡을 향해 먼저 돌진했다. 1천 기의 선두에 선 것은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이었다.
저곡은 그가 올린 군기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아, 아니… 근황대도독 황보숭?”
방금 전에는 조인이 황건적 출신 청주병들을 이끌고 전열을 어그러뜨리더니, 이번에는 황건적의 난을 토벌한 노장 황보숭이 나타난 것이다.
“대한 태위 황보숭이다. 감히 맞서겠느냐!”
황보숭은 전설 속의 영웅이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는 것만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자들도 있었다. 저곡은 이를 악물고 돌진하는 황보숭을 향해 창을 곧추세웠다.
“황보 태위, 이렇게 한 수를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 리 앞에 황상 폐하가 계신데, 감히 병장기를 드는 것이냐.”
황보숭은 흰 머리와 수염을 휘날리며 창을 비껴들고 돌진했다.
깡!
황보숭과 저곡의 창이 한 번 엇갈렸다.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을 구른 것은 저곡이었다.
“근황병!”
“우와아아!”
황보숭의 뒤를 따라 그가 직접 조련한 근황병 기병대 1천이 밀어닥쳤다. 근황병들은 처음 돌진한 곳을 기점으로 우측으로 내달리며 원소군 병사들을 찌르고 벴다. 원소군의 병사들은 좌측으로 달리는 조인과 우측으로 달리는 황보숭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원소군의 대열이 크게 흐트러지자 후방에 도열한 금철기들은 저마다 금마삭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금철기의 총지휘관 마초가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드디어 내 차례로군.”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냈다.
방덕과 하후연은 적의 우군을 잘 견제했다. 조홍과 황권, 장료는 적 좌군의 공세를 잘 버텼다. 관우와 서황은 여포와 병주병들의 습격을 저지했고, 조조와 그 휘하의 맹장들은 유비의 기습을 버텨내며 원소군의 본대를 넓은 전장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중군에 남은 병력이 4만으로 줄었을 때, 조인과 황보숭이 먼저 뛰어들어 적의 대열을 망가뜨리며 길을 열었다.
이제 연합군이 마지막까지 아껴 둔 최강의 패를 꺼낼 차례였다. 중군을 뚫고 원소를 직접 치기 위해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서량 금철기와 함께 마초가 나섰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빛을 받아 사자 투구가 빛나고 품이 넓은 비색 전포가 휘날렸다.
마초는 도철을 몰아 대열의 앞으로 나섰다. 허리에 5척 장도 치란을 차고, 손에는 금마삭을 든 마초가 수신호를 보냈다.
“돌격하라.”
그 말과 함께 4천 금철기가 일제히 달렸다. 이미 대열이 망가지고 장수가 둘이나 목숨을 잃은 원소군은 금철기의 돌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콰직!
첫 번째 충돌은 창이 아니라 말발굽으로 일어났다. 제대로 방패를 세우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이 금철기의 말발굽에 짓밟힌 것이다.
콰드드득!
“우와아아!”
잔뜩 흐트러져 있던 원소군의 대열은 금철기의 우레 같은 함성과 함께 그대로 뚫리기 시작했다. 마갑까지 입은 중기병이 달려오는 속도를 살려 충돌하자 원소군은 대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금철기의 돌격을 바라보는 원소군의 모두가 경악했다.
긴 창을 쓰는 돌격기병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기동성과 작전수행의 범용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무거운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미래의 문물인 고정식 안장과 단단한 등자, 겨드랑이에 끼우는 마삭으로 무장하여 충격력을 최대화한 돌격기병은 궁기병이 다수인 이 시대의 기병 운용 개념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이 시대의 누구보다 돌격기병을 잘 다루던 마초가 30년의 전장 경험을 가진 채 회귀하고, 천 년 후의 세상에서 전생한 나관중이 착상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부대였다.
금철기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돌진했다. 원소군 사이로 한참을 전진해서야 저항다운 저항에 부딪혔다. 원소군의 공손독과 곽조가 이끄는 부대가 측면에서 달려와 금철기를 막은 것이다.
“내 길을 막지 마라!”
마초는 그대로 도철을 몰아 달려 나가며 금마삭을 허공에 한 바퀴 돌렸다. 공손독과 곽조가 이를 악물고 그런 마초를 맞았다.
“이야아압!”
먼저 곽조가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창을 내질렀다. 옆에서는 공손독이 대도를 치켜들고 마초를 찍으려 하고 있었다.
마초는 금마삭을 거꾸로 잡고 창자루 끝을 곽조를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 곽조의 창날이 금마삭의 자루 끝에 닿는 순간, 청경의 수법으로 곽조가 쓰는 힘을 창에 담아 팽이처럼 몸을 돌렸다.
퍽!
마초는 곽조가 창을 내지른 힘을 받아 몸을 틀며 공손독을 찔렀다. 대도를 치켜든 공손독은 그대로 가슴을 관통당하고 눈을 부릅뜬 채 뒤로 튕겨 나갔다.
“아, 아니…….”
당황하는 곽조의 눈에 금마삭을 두 손으로 잡고 강하게 찌르는 마초의 모습이 들어왔다. 금마삭은 곽조의 몸에 닿기 직전 촌경의 수법으로 다시 한번 가속했다.
퍼엉!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폭음과 함께 몸통에 구멍이 뚫린 곽조가 힘없이 말에서 떨어졌다.
두 번의 출수로 두 명의 적장을 참살한 마초는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마초가 가는 곳으로 길이 열렸다. 뒤이어 금철기가 저마다 금마삭을 들고 적진을 종횡했다. 측면에서 나타난 구원군은 마초와 금철기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좋아, 다시 길이 열렸다!”
멀리 원소의 본영이 보였다. 군막이라기는 누각에 가까운 사치스러운 목조 건물과 수레인지 정란인지 알 수 없는 원소의 거대한 대장거(大將車)였다.
이번에 마초와 금철기가 달리는 길을 막아선 것은 한 무리의 기병들이었다. 3천가량이니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금철기에 비견할 만큼 무기와 갑주가 날카로워 보였다. 곽원의 하북철기와 비슷한 양식이지만 질은 그보다 월등히 좋았다.
마초는 정예 기병대가 나오자 푸른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원소의 친위대로군.”
주군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친위대는 가장 뛰어난 병사들로 이루어진다. 20만 원소군 중 가려 뽑은 이들이니 그 수준이 대단할 것이고, 의심 많은 원소가 자신의 호위로 둘 정도면 그 지휘관도 어지간히 믿을 만한 인물일 것이다.
마초의 앞으로 나선 지휘관은 검은 갑주를 차려 입은 청년이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기고 위엄 있는 얼굴이 원소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마초는 청년에게 물었다.
“원본초의 아들인가?”
“조카다. 어르신께서는 나의 외숙이 되신다.”
“그런가. 그대가 고간이로군.”
고간은 아들도 아닌 외조카지만 원소의 신임을 크게 얻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병주 방면의 총사령관을 맡아 원소의 아들들과 동격으로 대우받았다. 원소 사후 병주에서 독립 세력을 이뤘지만, 조조에게 패해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개인의 능력은 원소의 아들들보다 훨씬 뛰어났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고간은 마초를 보며 말했다.
“한 번 돌격에 모든 것을 걸었나. 천하 용장이라더니 과연 배포가 대단하군. 그러나…….”
고간은 진지하게 뭔가 말하려 했지만, 마초는 고간의 말을 끊어버렸다.
“여러 말 하지 말고 길을 비켜라. 나는 너희 어르신에게 볼일이 있을 뿐, 너와는 할 얘기가 없다.”
“…이런 대담한 작전은 실패했을 때의 위험도 큰 법. 여기서 그대가 죽는다면 그 즉시 아군의 승리가 확정될 것이다.”
고간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꿋꿋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그리고 주변의 네 장수에게 말했다.
“여, 한, 수, 장 네 장군은 가서 마초의 수급을 취하시오. 천하 용장이라 불리는 자니 정정당당한 투장을 할 생각은 버리시오.”
“존명!”
고간의 명을 받은 네 장수가 천천히 대열을 벌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초를 넓게 포위하는 모습이 4명이 같이 싸우는 데 어지간히 익숙해 보였다. 마초는 금마삭을 한 번 돌려서 비껴 잡고 금철기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추행진! 추행진이다!”
마초의 수신호를 본 금철기가 쐐기 모양의 추행진으로 변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철기가 분열하는 동안 마초는 가장 왼쪽에 있는 여위황을 향해 도철을 몰아 달렸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장의거가 다급히 외쳤다.
“1대 1 상황을 만들지 마라! 마초를 포위해서 넷이 동시에 상대해라!”
그러나 마초는 장의거의 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여위황과 1대 1 상황을 만들었다. 도철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해서 여위황의 코앞까지 육박한 것이다. 경악한 여위황을 향해 마초가 금마삭을 던졌다.
퍽!
금마삭은 그대로 여위황의 가슴에 박히고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마초는 피거품을 내뿜는 여위황을 그대로 지나치며 등 뒤로 나온 금마삭을 잡아 뽑았다. 마초와 접촉도 없이 절명한 여위황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초는 금마삭을 허공에 휘둘러 피를 흩뿌리며 다음 목표물인 한거자를 향해 달렸다.
“타핫!”
한거자는 우렁찬 기합과 함께 무거운 철창을 내질렀다. 한 손으로 금마삭을 앞으로 뻗은 뒤 가만히 철창을 지켜보던 마초는 철창이 간격 안에 들어오자 금마삭을 철창에 갖다 댔다. 그리고 청경을 시전해서 한거자가 가하는 힘의 방향을 옆으로 바꿨다.
우당탕!
한거자는 옆에서 누가 밀치기라도 한 것처럼 옆으로 나뒹굴었다. 말과 함께 쓰러져서 땅바닥을 굴렀으니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마초는 한거자에 눈길을 주지 않고 다음 목표물을 찾았다.
수많은 전투에서 군공을 세워 여포, 관우, 장비와 함께 천하 용장이라고 불리는 마초다. 무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친위대로 뽑힌 장수들은 명확한 열세에도 충성스럽고 용감했다. 다음 목표물인 수원진은 긴 극을 휘두르며 마초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마초도 금마삭을 들어서 막을 수밖에 없는 빠르고 강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수원진이 내리치는 극이 금마삭에 닿는 순간, 마초는 금마삭을 내리며 청경으로 극에 실린 힘을 흘렸다. 방향은 아래쪽이었다.
“크윽!”
허공에 극을 크게 헛친 수원진이 휘청거렸다. 마초는 수원진과 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근접한 상태에서 병장기 대신 주먹을 들어, 촌경으로 수원진의 몸통을 후려쳤다. 몸 전체의 힘이 실린 주먹은 불과 1촌 남짓한 거리를 날아가서 수원진의 몸통에 적중했다. 마초는 그대로 주먹을 빠르게 뒤로 빼서 촌경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펑!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나고 수원진이 튕겨져 나갔다. 땅바닥을 구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수원진을 뒤로 하고 마초는 계속 말을 달렸다. 이제 마지막 한 명, 장의거만이 남아 있었다.
“핫!”
패배를 직감한 장의거의 눈이 충혈되었다. 그러나 장의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초를 향해 창을 찔렀다. 마초는 말없이 금마삭을 들어 창대로 창대를 받았다.
탁.
청경의 수법으로 힘을 뺀 마초의 창대는 장의거가 찌르는 창의 힘을 그대로 죽였다. 두 창이 허공에서 얽혔을 때, 마초가 창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웅혼한 힘이 실려 있었다.
쿵!
장의거는 마초가 내리치는 창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창과 마초의 창이 겹쳐진 채로 어깨를 얻어맞게 되었다. 나무로 된 창대에 맞은 장의거에게서 철창으로 맞은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컥…….”
견디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진 장의거를 도철이 무심히 짓밟고 지나갔다.
우드득.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장의거가 절명했다.
순식간에 네 장수가 쓰러지는 것을 본 고간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이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수준 높은 무공을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패왕 항우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고간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네 장수를 참살한 마초는 금철기의 선두로 돌아왔다. 금철기는 마초의 지시대로 추행진을 만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선두에 마초가 서자 금철기는 마초를 꼭지점으로 하는 거대한 쐐기가 되었다.
마초는 금마삭을 들어 원소의 대장거가 있는 방향을 겨눴다. 이제는 500장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금철기. 저 앞에 원본초의 본영이 있다. 우리가 저곳에 닿으면 이 싸움은 끝난다.”
푸른 눈이 반짝 빛났다. 마초는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올려 특유의 악당 같은 웃음을 지었다.
“나를 따르라. 전부 짓밟고 진군한다.”
마초의 명이 떨어지자 추행진을 이룬 금철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