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89화 (189/306)

189화. 개봉대전 (5)

깡!

금속성의 타격음이 울렸다. 유비가 왼손에 든 두 번째 검이 머리에 떨어지기 직전, 조조는 창을 힘껏 접으며 창날로 유비의 검을 쳐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유비의 좌검을 막자 곧바로 우검이 달려들고, 다시 우검을 막으니 이번에는 좌검이 달려들었다.

막아내는 조조 또한 녹록지 않았다. 이미 소년 시절에 십상시 장양의 집에 단신으로 쳐들어가 창을 들고 난투를 벌였던 몸이다. 유비가 날리는 한 초를 막을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깨어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조조의 창도 날카로워졌다.

퍽!

십여 초를 막아낸 후, 마침내 유비의 공세가 느려진 틈을 타 조조가 창을 크게 휘둘러 유비를 떼어냈다. 조조는 유비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현덕, 우리가 만난 게 이번이 세 번째인가. 자네는 만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군.”

첫 번째는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할 때였다. 두 사람은 서로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조조는 유비를 자신의 수하로 두고 싶었으나 유비는 여러 핑계를 대며 북방의 공손찬에게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세력을 꾸려 독립했다.

두 번째는 서주의 전장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한 조조가 서주 사람들의 시체로 회수의 물줄기가 막힐 만큼 대학살을 벌이던 때, 천하의 모두가 외면하는 서주로 유비가 찾아 들어왔다. 함께 천하를 노릴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은 이때부터 적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개봉 벌판에서 유비가 조조의 목을 노리며 세 번째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여전히 말이 많구나, 맹덕. 그렇게 입을 놀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아라.”

잠시 가쁜 숨을 고른 유비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조조는 하늘까지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하하하, 그 배포가 마음에 들었지. 그래, 나도 처음 만났을 때 짐작했네. 자네는 나와 같은 부류라는 걸 말이야.”

“무슨 해괴한 소리냐?”

조조는 반문하는 유비를 향해 손가락으로 눈을 두드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여기에 야심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일세. 자네는 내 밑에 있을 인물이 아니다, 아마도 나중에 골치 아픈 적이 될 것이다, 나도 짐작했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죽여 버리자니… 자네가 너무 재미있었어.”

조조는 옛날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비는 듣지 않았다. 타는 듯한 눈으로 조조를 바라보며 두 번째 출수를 준비했다.

“대한의 서주목으로 천자를 대신해 천자의 백성을 주륙한 죄를 묻겠다.”

“이런, 개소리는 집어치우게. 마맹기도 그렇고 요즘은 충신 흉내를 내는 놈들이 많군. 그렇게 눈으로 야심을 잔뜩 드러내 놓고 내가 사실 충신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나? 난세에 야심만만한 충신 따위는 없다네.”

“네놈이 뭐라고 하든…….”

“현덕. 자네는 천자의 충신으로 남을 인물이 아니야. 자네도 유 씨니까 황실의 머나먼 후예쯤 되겠지. 자, 이제 솔직해지게. 내가 주륙한 게 누구의 백성인가? 허도에 계신 당금 천자의 백성인가? 아니면…….”

조조는 창을 들어 유비를 겨눴다.

“지위도 기반도 없고 그저 싸우는 재주밖에 없으니, 그걸로 민심이라도 얻어서 자기 나라를 세워 보려는 간웅의 백성인가.”

입을 굳게 다물고 타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유비, 그리고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조조.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보며 대치했다.

유비는 곁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장비는 이미 조조의 수하들 중 이정을 쓰러뜨리고 전위와 우금을 비롯한 여섯 맹장들과 싸우고 있었다. 5대 1로 싸울 때 오히려 장비가 우세하던 전황은 전위가 끼어들자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장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무용을 발휘하며 여섯 맹장과 팽팽하게 겨루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장비가 불리할 것이다.

유비는 다시 조조를 보며 쌍검을 다잡았다.

“칼로 네놈 입을 다물게 하리라.”

“좋은 생각이군. 하지만 조금 늦었네.”

조조군의 후미에서 백마를 탄 장수 한 명이 달려 나와 조조와 유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가 나타나자 조조는 씩 웃고, 유비는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수는 백마 위에서 유비를 향해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조운이 유 사군을 뵙습니다.”

“자룡, 자네가 어찌 된 일인가. 어째서 조조를 지키기 위해 나섰느냐는 말이다.”

조운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 얼굴로 유비에게 대답했다.

“사군, 저는 황상 폐하를 지키는 우림중랑장입니다. 대장군 원소는 폐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하면 천자를 바꾸려 할 것입니다. 지금 폐하를 위해서는 조 사공이, 그리고 복파장군이 승리해야 합니다. 제 처지를 헤아려 칼을 거둬 주십시오.”

조운은 충의지사다. 유비와도 인연이 깊다. 그리고 본래 강호 출신이라 조조처럼 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고관들을 미워한다. 그러니 조조를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서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자를 위해서는 조조가 지금 패하면 안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비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천자께서 자네에게 조맹덕을 지켜 달라고 하시던가?”

“복파장군이 먼저 표를 올리고 폐하께서 승인하신 것입니다. 복파장군은 제게도 따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유 사군이 조 사공의 목을 직접 노릴 가능성이 높으니 양쪽 다 피를 보지 않도록 제가 막아 달라고 청하더군요.”

“복파장군… 마초.”

마초는 이 전쟁에서 중요한 국면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춘에서 관우를 투항시키고, 백마에 관우를 보내 서전을 승리로 이끌고, 손책의 허도 기습을 저지하고, 관도에서 원소군을 대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조조를 칠 것을 예상하고 막을 방법을 강구해 뒀군. 마치 이 전쟁이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듯하구나.’

장비와 여섯 맹장, 유비와 조조. 팽팽한 힘의 균형이 이뤄지고 있던 전장에 조운이 가세하며 저울추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래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 유비에게 6대 1로 열심히 쌍신모를 휘두르고 있던 장비가 소리를 빽 질렀다.

“대형! 빨리 결단하시오! 나보고 조자룡이까지 껴서 7대 1로 싸우라고 할 셈이오!”

“이런… 제길.”

유비는 칼을 집어넣었다. 조운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조조를 향해 말했다.

“맹덕, 우리의 오랜 벗이 청하니 오늘은 물러나겠다. 그러나 알아 둬라. 네놈이 내 사람들을 건드린 이상 언젠가 너와 나,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

“하하하, 그래.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충신이나 지사보다도 협객 흉내가 가장 좋겠지. 백성들이 이해하기 쉬우니까. 이런 걸 보면 자네는 참 영리해.”

“조맹덕, 이 새끼가.”

칼을 넣고 돌아서던 유비는 고개를 돌려 조조를 쏘아봤다. 자제심이 사라지니 원래 습관대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머리에 야심만 가득 찬 네놈은 이해 못 하겠지. 그래, 네놈 말대로 나는 원래 밑바닥이다. 건국? 좋지. 나는 유 씨니까 잘 되면 제후왕도 할 수 있겠지. 아니, 나도 사낸데 기왕이면 왕이 아니라 천자를 해 보고 싶지. 그런데 말이야.”

유비의 얼굴에 은은한 분노가 떠올랐다. 조운은 욕설을 퍼붓는 그의 얼굴 어딘가에서 귀티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처럼 낙양의 대궐 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으스대며 살아 온 놈들은 이해를 못 하더군. 협(俠)은 은원부터 씻는다. 야심은 그다음이다. 그러니 똑똑히 들어라. 내가 살아 있는 한 네놈은 천하를 얻지 못한다.”

유비가 등을 돌렸다. 조운은 유비의 뒷모습을 보며 포권했다. 잠시 쓴웃음을 지으며 유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조조도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장비를 둘러싼 여섯 맹장들도 각자 손을 멈췄다. 장비는 쌍신모를 표월오의 안장에 걸고 조운과 눈인사를 나눈 후 유비의 옆으로 다가왔다.

“흐흐, 우리 대형은 가끔씩 멋지단 말이야. ‘내가 살아 있는 한 네놈은 천하를 얻지 못한다!’ 이런 말은 혼자서 몰래 연습하는 거요?”

“시끄러워. 또 실패했으니 노자경이한테 뭐라고 하지? 이런 제기랄…….”

“노자경도 은근히 꼴통이라 우리 마음을 이해할 거요. 그보다 이제 결심이 서셨소? 여남으로 떠나는 것 말이오.”

“그래.”

조조와의 문답 이후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일까. 유비는 단호했다.

“떠나자. 여남으로 가서 우리의 공업을 세우자. 그곳에 우리의 나라를 만들 것이다.”

은원이 먼저다. 야심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야심을 먼저 이루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은원도 있다.

‘때가 됐구나. 이제부터는 야심이 먼저다.’

결심을 끝낸 유비는 단호한 표정으로 먼 남쪽을 응시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비는 도올의 탈을 다시 뒤집어써서 표정을 감췄다.

* * *

유비의 별동대가 물러난 뒤, 조조군의 공세는 한층 더 격렬해졌다. 원소군의 우군을 이끌고 꿋꿋이 버티던 심배는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감하게 본대를 통째로 전진시켜 한 곳에서 수적 우위를 만든 조조의 판단 덕분이었다.

그리고 조조군이 원소의 우군을 거의 붕괴시켰을 때, 전장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공! 원소군 본대가 전진합니다!”

그 수는 어림잡아 7만, 엄청난 숫자의 원소군 본대가 개봉 벌판의 조조군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저들도 본대를 통째로 전진시켰군. 본대를 이끄는 건 누구냐.”

“총대장은 저수, 선봉에 순우경입니다!”

“원소군 최고의 인선이군. 알았다.”

조조는 전령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제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원소의 본대가 대략 7만, 심배의 우군이 2만이니 총 9만이다. 그리고 우리는 약 3만. 세 배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군.”

우금, 악진, 주령, 이전, 이통, 전위.

조조와 고락을 같이해 온 장수들은 저마다 굳은 결의를 내비쳤다.

“원소가 주력을 우리 쪽으로 투입시켰다. 계획대로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원소군의 주력을 붙들어야 한다.”

“존명!”

여섯 장수가 동시에 손을 모아 군례를 올렸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게 한 뒤 밀물처럼 몰려드는 원소군을 맞았다.

개봉 벌판처럼 탁 트인 평지에서 압도적인 병력을 활용한 포위전이다. 원소군에 신묘한 용병술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대형을 단단히 유지하고 압박해 들어가기만 하면 조조군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렵게 공세를 막으면서도 조조군 장수들의 눈에는 절망이나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다. 연신 군사들을 독려하는 조조의 표정에도 자신감이 드러났다.

‘평원에서 가장 위력적인 것은 기병. 그런데 곽원의 하북철기는 자효(조인의 자)가 막았다. 고순의 함진영은 묘재(하후연의 자)와 방덕이, 여포는 관우가, 유비는 내가 막았다.’

이제 원소에게는 대규모의 충격기병이 없다.

그러나 조조에게는 아직 한 장의 패가 남아 있었다.

원소가 본대를 전진시켜 조조를 직접 노리고 있으니, 원소를 직접 호위하는 병력은 크게 줄어 있을 것이다. 조조가 직접 미끼가 되어 원소의 맹공을 받아낸 후, 마지막까지 아껴둔 한 장의 패로 원소를 직접 찌르는 게 이번 싸움의 전략이었다.

조조가 고개를 들어 뒤를 보니 이미 대열의 최후미에서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마초에게 전령을 보내려고 했는데, 역시 빠르게 움직이는군.”

조조는 피식 웃으며 끝까지 아껴 둔 기병대가 아군의 최후미에서부터 전장으로 돌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선두에는 틀림없이 사자 투구를 쓴 장수가 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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