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87화 (187/306)

187화. 개봉대전 (3)

여포와 관우는 잠시 대치하며 서로를 응시했다.

통성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모를 수는 없었다. 여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관우가 대답했다.

“헛된 이름이 퍼졌군. 뭐라고 하던가.”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자. 그리고 그 힘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

팟.

적토마가 달렸다. 여포는 그대로 관우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적토마는 가속이 붙으며 첫 걸음보다 두 걸음, 두 걸음보다 세 걸음째에 점점 더 빨라졌다. 거리가 좁혀지자 여포는 달려오던 기세를 실어 방천화극을 내질렀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쾅!

폭음이 울렸다. 가까이 있던 군사 몇몇이 귀를 막았다. 쇠와 쇠가 부딪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도 강렬한 소리였다.

끼기긱.

여포는 청룡도에 부딪힌 방천화극을 옆으로 돌렸다. 월아가 아래를 향하도록 각도를 조정한 후 그대로 청룡도의 자루를 따라 방천화극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방천화극이 튕겨 나갔다. 관우가 청룡도의 자루를 돌리며 화경을 시전한 것이다. 다음 순간 관우는 청룡도를 뉘어 여포의 허리를 쓸어 갔다.

쾅!

다시 한번 폭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여포가 방천화극을 세워 청룡도를 막았다. 적토마는 비틀거리며 두세 발짝 물러났다.

물러나는 여포를 바라보며 관우가 수염을 쓸었다.

“반은 맞았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건 맞네.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고작 만 명이라고 하던가.”

두 사람은 가만히 선 채 다시 한번 대치했다. 여포는 이내 웃음을 보였다. 한껏 광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이 더욱 영준했다.

여포는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한번 적토마를 몰아 관우에게 달려 들어갔다.

깡! 깡! 깡!

연달아 파열음이 울렸다. 첫 번째 공격만큼 강한 힘이 실리지 않았지만, 훨씬 빠른 찌르기였다. 여포의 방천화극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관우의 빈틈을 노리고 연달아 찔러 갔다. 관우가 자신의 다리를 노린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청룡도의 자루로 쳐냈을 때, 적토마가 가속하며 여포가 관우의 뒤로 돌았다.

퍽!

여포가 관우의 등을 노리고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그러나 관우는 청룡도를 등 뒤로 늘어뜨려 공격을 막았다. 두 사람은 병장기가 부딪치고 떨어진 후, 다시 한번 일합을 겨뤘다.

쾅!

세 번째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마구 피었다. 흙먼지가 잦아들었을 때, 여포와 관우는 다시 한번 떨어져서 대치하고 있었다.

여포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방천화극의 월아가 종잇장처럼 접히고, 자루는 한눈에 보일 만큼 휘어져 있었다. 내구력에 초점을 맞춰서 휘어지더라도 깨지지 않도록 정련한 방천화극이지만 82근이나 되는 청룡도의 무게가 문제였다. 아무리 단단한 무기라도 훨씬 더 무거운 무기로 여러 번 내려치니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만인적이라는 말도 부족하군. 너에게 어울리는 칭호를 주마.”

여포는 휘어 버린 방천화극을 땅에 내던졌다. 그리고 관우를 향해 두 팔을 벌려 보였다.

“내가 바로 천하제일인이다. 이 자리에서 나를 꺾으면 천하제일인의 칭호는 너의 것이다. 배짱이 있다면 와서 가져 보거라.”

관우는 그대로 말을 달렸다. 여포의 적토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관우가 탄 말 또한 마초에게 받은 서역의 준마였다. 준마는 여포와 적토마, 관우의 공방을 견뎌내느라 지쳐 있었지만, 힘을 쥐어짜서 빠르게 돌진했다. 관우가 82근 청룡도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거리가 좁혀들지 않았다. 적토마가 옆걸음을 치며 관우와의 거리를 벌렸다. 관우가 말머리를 다시 여포 쪽으로 고정시키고 말의 체중이 앞으로 쏠렸을 때, 여포가 안장에 걸어 둔 또 하나의 무기를 꺼냈다. 여포가 방천화극이나 무인도 이상으로 잘 다루는 무기, 대궁이었다.

여포의 대궁에 거대한 화살이 걸리고 시위가 한껏 당겨졌다. 뒷걸음질을 치는 적토마 위에서 활을 당긴 여포는 달려오는 관우를 겨냥한 뒤 활을 살짝 숙이며 시위를 놓았다.

쾅!

20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 대궁에 직격당한 관우의 준마는 그대로 목 위가 폭발하듯 사라졌다. 먼저 눈치채고 말 위에서 뛰어내린 관우가 청룡도도 놓치고 바닥을 굴렀다. 흙투성이가 되어 일어난 관우에게 두 번째 화살이 날아들었다.

퍽!

“아니!”

침묵에 싸여 있던 군사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관우가 몸을 돌리며 여포가 날린 두 번째 화살을 잡아낸 것이다. 관우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그리고 다시 여포 쪽으로 몸을 돌린 관우에게 세 번째 화살이 날았다.

퍽!

화살이 관우의 두건 쓴 이마에 적중했다. 화살은 관우의 이마를 맞고 허공으로 높이 떠올랐다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눈이 좋은 사람에게는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화살촉이 찌그러진 것이 보였다.

관우는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진 채, 오른손에 화살 한 대를 쥔 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과…관공!”

“관공!”

여기저기서 비명처럼 관우를 부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로 젖혀진 관우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 땅을 적셨다. 여포는 적토마를 세우고 무심하게 네 번째 화살을 메겼다.

“삶에도, 싸움에도 머리를 쓸 줄 모르는 놈이군.”

여포가 네 번째 화살을 당겼다.

퍽!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젖히고 있던 관우가 왼손을 뻗어 네 번째 화살을 잡아냈다.

“아니!”

“저, 저놈은… 죽지 않는가?”

이번에는 여포군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드득.

관우의 양손에 잡힌 두 자루 화살이 부러졌다. 관우는 뒤로 젖혀진 고개를 바로 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여포가 날린 화살은 두건에 둘러진 쇠테에 맞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죽거나 중상을 입어야 하지만 관우는 단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을 뿐,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온후, 받으십시오!”

인상을 찌푸리는 여포를 향해 부장 학맹이 달려와 두 번째 방천화극을 던졌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리고 오른손에 방천화극, 왼손에 무인도를 뽑아 들고 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관공!”

관우에게도 누군가가 집어 던진 청룡도가 날아들었다. 관우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팔을 뻗어 청룡도를 다시 쥐었다. 보지 않아도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관우 근처에 청룡도를 들어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서황밖에 없었다.

쾅!

다시 한번 충돌이 일어났다. 여포는 무인도를 들어 관우를 쓸어 갔다. 흔적도 없이 사람의 몸을 날리는 무인도의 참격을 관우는 한 손으로 쥔 청룡도로 받아냈다. 뒤이어 날아드는 방천화극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화경을 써서 방천화극을 뺏으려 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놓칠 뻔했으나 힘을 끌어올려 방천화극을 뒤로 뽑아냈다. 월아에 손이 잘리기 직전 관우는 방천화극을 놓았다.

적토마에 탄 여포와 땅을 딛고 선 관우 사이에 승부가 이어졌다. 땅이 패이고 흙먼지가 일었다. 그렇게 이십여 합이 되자 여포의 두 번째 방천화극이 망가졌다. 여포가 적토마를 달려 멀어져 세 번째 방천화극을 받았다. 그 사이 관우는 서황의 준마로 갈아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청룡언월도, 왼손으로 서황의 대부를 휘두르며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관우와 여포가 다시 삼십여 합을 어울렸다. 합 수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이 쥔 네 개의 병장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퍽!

결국 서황의 준마도 버티지 못하고 방천화극에 맞아 목이 날아갔다. 관우는 다시 바닥을 굴렀다. 피투성이가 된 관우를 향해 적토마 위의 여포가 무인도를 내리찍었다.

펑!

관우는 대부와 청룡도를 겹쳐서 무인도의 일격을 받아냈다. 관우가 딛고 선 땅이 크게 파였다. 뒤이어 방천화극이 관우의 몸통을 향해 날았다. 관우는 여포 쪽으로 한 발짝 파고들어서 월아를 피하고 철제 자루를 몸통으로 받아냈다.

뻑!

요란한 파열음이 울렸다. 관우는 개의치 않고 화경을 써서 여포를 크게 밀어냈다. 적토마가 땅을 미끄러지며 균형을 잡았다.

뚝. 뚝.

관우의 몸 여기저기서 흐른 피가 땅에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뤘다. 이마에 화살을 맞고 창대에 몸통을 맞았으며 두 번이나 낙마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그러나 관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여포는 눈앞의 상대를 보며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적토마가 없었다면 상처를 입은 것은 누구였을까. 여포는 관우를 보며 내뱉었다.

“미련한 놈. 이 시대에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남의 종으로 살아갈 셈인가.”

쿵.

관우는 청룡도를 땅에 짚으며 대답했다.

“무(武)에 일곱 가지 덕이 있지만, 그중 주군을 배신하고 양부를 죽이는 것은 없느니라.”

“너처럼 옛 서책에 쓰인 말을 들고 와서 천륜을 어겼다며 나를 능멸하는 놈이 한둘이었는 줄 아느냐. 사내로 태어났으면 큰 무리를 거느리고,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많은 계집을 취한다. 이것이 하늘이 정한 삶의 방식이다. 네놈이나 나나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핑계로 그저 그렇게 살아갈 테냐. 나는 무사로 살다 죽을 것이다.”

관우와 여포는 한참 동안 서로를 쏘아보며 말이 없었다.

일각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적토마가 잔등을 통해 자신이 약간 지쳐 있음을 전했다. 여포는 여전히 피를 흘리며 서 있는 관우를 보며 천천히 옆으로 돌았다.

‘승산은 분명히 나에게 있다. 그러나…….’

관우는 여포 자신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에 올라 있는 무사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포에게는 적토마가 있었다. 관우는 벌써 두 필의 말을 잃으며 상처를 입었고 많은 피를 흘렸다. 이제는 말도 없다. 적토마가 지쳤다지만 이대로 밀어붙이면 열에 일곱은 자신이 이길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열에 셋은?

‘원소를 위한 승리에 3할의 확률로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여포는 자신의 원래 목표물이었던 조조군의 본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조가 이끄는 본대는 좌군 방향에서의 기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장의 가운데로 전진하고 있었다. 여포군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멀어지면 관우가 지키는 대열을 뚫어도 전공을 세우기 쉽지 않다.

팟.

여포는 무인도를 집어넣고 방천화극을 학맹에게 던졌다. 학맹이 간신히 방천화극을 떨어뜨리지 않고 잡아서 갈무리했다.

“전원 퇴각한다.”

여포는 그 말을 남기고 말머리를 돌렸다. 다시 본영 방향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관우는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여포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여포의 병주병이 퇴각하자 서황과 왕평이 다가와 관우에게 청룡도를 받아 들었다.

“관공. 엄청난 승부였습니다. 단기로 여포의 돌격을 저지했으니 관공의 위명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글쎄, 싸움이 일각만 더 길어졌으면 어찌 됐을지 모르오.”

관우는 수건으로 머리의 상처를 싸매고 말에 올라탔다. 여포와 오십 합을 겨루니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관우는 잠시 눈을 감고 여포와의 대결을 복기했다. 그러다 보니 여포를 원수로 여기는 마초에게 생각이 미쳤다.

‘복파장군은 저자와 겨룰 셈인가.’

마초 또한 여포, 관우, 장비와 함께 천하 용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관우 자신과 비무를 하며 승패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여포와도 승패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여러 번 승패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다. 만약 마초와 여포가 단 한 번 겨룬다면 누구의 승산이 더 높을 것인가.

관우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여포의 돌격을 막아내는 사이, 조조가 이끄는 본대는 원소군 본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전투의 첫날부터 정면에서 힘 싸움을 벌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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