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84화 (184/306)

184화. 회전의 결의

관도.

금빛 갑옷을 입은 원소는 거대한 수레에 앉아 전장을 바라봤다. 요새의 성벽을 오르는 자신의 군사들이 돌과 화살에 맞아 죽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군사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군사들은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성벽을 올랐다.

“대장군, 별동대에서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쥐 같은 인상의 모사 곽도가 원소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원소는 곽도를 보며 물었다.

“뭐라 하던가.”

“남쪽으로 우회한 여 병주의 부대가 황하를 건너는 데 성공했사옵니다. 함진영이 벌써 남쪽 성벽에 갈고리를 걸었다 하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을 넘기지 않겠군.”

적장 조인은 관도의 요새를 다섯 달이나 지켜냈다. 그러나 원소군의 총공세가 시작된 이상, 그의 영웅적인 항전도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곽도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아부했다.

“그렇사옵니다. 조조나 마초 같은 무리들이 어찌 대장군의 위엄에 대항할 수 있겠사옵니까? 길게 끌 필요가 없는 싸움이옵니다. 관도를 떨어뜨리고, 내친김에 허도까지 진군해서 대장군의 위엄을 밝히시옵소서.”

원소는 곽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계속 관도의 요새만을 응시했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달콤한 말로 자신을 높여 주는 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빠져들면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원소는 그러한 이치를 알고 곽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걸로 전화위복이 되었군. 공칙(곽도의 자), 단기 결전을 주장한 그대의 공이 크다.”

“신은… 아니, 저는 그저 대장군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아뢴 것뿐이옵니다. 어찌 공이라 하겠사옵니까?”

원소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굳이 드러내서 곽도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저수나 전풍은 능력이 좀 있다고 건방진 태도를 고수하지. 그들도 곽도를 좀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처음 마초가 한 달 치 군량을 불태웠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는 원소도 깜짝 놀랐다. 서둘러 발해와 남피에서 군량을 수송하도록 했지만, 군량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열흘 정도는 식량이 모자라서 군사들이 굶주릴 것이다. 그동안에는 싸움을 전혀 할 수 없으니 당분간 수세에 몰리게 될 판이었다.

마초가 조가현의 군량을 불태우자 저수와 전풍은 장기전을 주장했다. 어차피 하북의 우월한 생산력을 등에 업고 있는 원소다. 황하 이남에서 계속 대치하면 조조는 삼하 지방 일대의 수확을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서주는 쑥대밭이 되었고, 예주는 원가의 옛 근거지였으니 반란을 획책하면 응할 만한 호족들이 많다.

그렇게 되면 조조는 연주에서 나오는 군량만으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하북 4주를 장악한 원소가 우세할 수밖에 없는 판세다. 저수와 전풍의 의견은 정론이었다.

그러나 곽도와 봉기는 이런 정론을 반박했다.

‘그들은 단기 결전을 주장했지.’

조조군을 정면에서 격파하여 대장군 원소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병주목 여포가 처음으로 움직여서 마가군의 군량을 태우는 데 성공하면서 곽도와 봉기의 의견에도 힘이 실렸다. 이제 적들도 똑같이 군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원소의 선택은 단기 결전이었다. 새 군량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군량이 떨어지기 전에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다. 대군을 단번에 집중시켜 관도를 뚫어내고 허도로 진군한다. 허도를 포위하기만 하면 허도 인근의 곡창 지대에서 얼마든지 군량을 징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대장군으로서의 위엄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마초의 존재가 더 문제다.’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마초를 철수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가군은 머나먼 장안에서 왔으니 싸움이 길어졌을 때 사자를 보내 회유하면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조를 정벌한 이후가 문제였다. 마초에게는 서량의 날랜 병사들과 재건된 관중 평야의 생산력이 있다. 배후의 익주는 철저하게 마초의 편에 설 테니 후방의 위험도 없다. 천혜의 요새 함곡관에 기대고 있으니 뚫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골치 아픈 것은 그의 나이다. 그는 나나 조맹덕보다 훨씬 젊으니.’

이번 싸움에서 이겨서 중원을 통째로 얻더라도 마초를 제거하지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마초가 함곡관을 틀어막고 한 세대에 걸친 싸움을 벌인다면 자신의 아들들이 마초를 당해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장기전으로 조조를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마초가 초장기전을 벌인다면 문제가 커진다.’

패업이란 한 세대에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원소는 빠르게 결단을 내린 뒤 군사를 휘몰아 밤낮없이 관도로 달렸다. 다행히 조조군이나 마가군보다 먼저 관도에 자리잡고 총공세를 취할 수 있었다.

원소군 총병력 20만의 절반인 10만 대군이 관도를 포위하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제 악전고투하던 조인도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잠시 후, 성벽 위에 함진영의 깃발이 올랐다. 원소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숭산, 조조의 군막.

원소가 관도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조조군과 마가군의 장졸들은 말없이 숙영지를 걷어내고 병장기를 챙겼다. 관도가 뚫렸다면 허도까지는 텅 빈 벌판이다. 원소군은 단숨에 허도로 남하할 것이다. 이제 전군이 원소군을 막기 위해 동쪽으로 진격해야 하는 것이다.

조조의 군막에서는 군의가 열리고 있었다. 상석에는 조조가 앉았다. 그 아래로 조조군의 정욱과 하후연, 조홍, 그리고 마가군의 순유와 방덕, 서황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초는 멀찌감치 떨어져 팔짱을 낀 채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군막의 가운데에는 상처투성이가 된 조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전황을 고하고 있었다.

“여포가 이끄는 함진영이 남쪽 성벽을 공략하기에 결국 막지 못했습니다.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왔으니 죄를 청합니다.”

“자효(조인의 자), 고개를 들어라. 요새가 함락당하는 상황에서도 절반이 넘는 수비군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이는 온전히 그대의 공이다.”

“송구합니다.”

조조는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조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자화(조순의 자)도 죽고, 원양(하후돈의 자)도 죽었다. 하지만 아직 네가 살아 있지 않느냐. 네가 죽지 않았으니 틀림없이 적을 깨뜨릴 비책이 생길 것이다.”

조조는 그렇게 말하고 군사 정욱을 보며 물었다.

“적이 내려온다면 어디를 전장으로 해야 하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허도에서 농성하는 것입니다. 허도는 천자께서 계신 황도이니 적도 허도를 공성하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또한 성벽에 의지해 적과 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허도 북쪽의 이곳.”

정욱은 지도상의 한 점을 짚었다. 관도에서 허도까지는 그저 벌판이었다. 유일하게 작은 고을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개봉에서 적을 맞아 회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조조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마초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는가, 마맹기. 병주목 여포가 가세하며 원소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네. 관도의 방어선이 뚫렸으니 이제 원소의 20만 대군을 맞아 싸우는 일만이 남았네. 마가군도 입장을 다시 결정하게.”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 있던 마초는 고개를 들어 조조를 보며 말했다.

“조공은 이 마초가 설마 전황이 불리하다고 도망칠 것이라 보시는가.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소.”

“끝까지 같이 싸울 셈인가.”

“아니, 나는 우리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하였소.”

마초는 팔짱을 풀고 전장의 지도 쪽으로 다가갔다. 군막 안 모두의 시선이 마초에게 모였다.

“사공부와 관중도독부는 국적 원소를 토벌하기 위해 일시 휴전하고 힘을 합치기로 하였소. 나는 맹세를 지킬 것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원소와 싸우는 것이 아니오. 원소와 그를 따르는 20만 역적들을 짓밟아서 황하 너머로 다시 쫓아내는 일이오.”

쭈그리고 앉아 조인을 격려하던 조조가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네는 언제나 호기롭군. 자네 생각도 들어보세. 어느 곳을 전장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개봉 벌판에서 싸워야 하오.”

“어째서인가.”

“허도는 저지대에 세워진 평지성이라 방어력이 높지 않소. 게다가 농성하기에는 아군의 수도 적지 않으니 식량이 문제가 될 것이오. 우리가 허도에 갇혀 있는 사이 원소에게 포섭된 호족들이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오. 회전이 마땅하오.”

“꼭 내 생각과 같군.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마가군의 군량 보급을 끊은 자. 그리고 원소가 관도를 떨어뜨릴 수 있게 별동대를 이끌고 관도의 성벽을 넘은 자. 여포가 문제였다.

“회전에서는 여포가 이끄는 병주병들이 위력을 발휘할 걸세. 물론 우리에게도 자네가 이끄는 서량 기병이 있지만, 병력의 수가 적군이 많네. 똑같이 강력한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다면 회전에서 병력의 열세를 뒤집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말일세.”

“막을 수 있소.”

마초는 힘있게 말했다. 조조를 비롯해 정욱, 하후연, 조홍, 조인,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장수들의 시선이 마초에게 쏠렸다.

“조공과 내가 이끄는 군사는 천하가 다 아는 정예병들이오. 아무리 병주의 기병대가 강력해도 진을 갖추고 싸움을 벌이면 상대할 수 있소이다. 문제는 선두에 서서 일신의 무용으로 진형을 어그러뜨리는 여포요.”

“여포를 막을 방법이 있는가.”

“일신의 무용으로 여포에게 뒤지지 않는 자가 내 군에 있소. 그를 여포를 막는 방패로 쓸 것이오.”

조조는 적잖이 놀랐다.

마초에게 여포는 아우를 죽인 원수였다. 마초 자신도 이제 천하 용장이라 불릴 만큼 무공이 원숙했고 강력한 서량 마가군까지 거느리고 있다. 회전에서 여포를 상대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 손으로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날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초는 의외로 침착했다. 다른 무장을 내세워 여포를 막아내고 자신은 별도로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네는 뭘 할 셈인가.”

“기병대장이 해야 하는 일. 나는 적진을 뚫겠소. 여포의 기병은 우리 마가군의 장수가 막아낼 것이고, 내가 이끄는 기병은 틀림없이 원소군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오. 나머지는 본대끼리의 싸움이오. 내가 기병 전력의 우위를 만들어 놓는다면, 조공께서는 아군의 두 배에 달하는 원본초의 본대를 격파할 수 있겠소?”

“농담이 지나치군.”

조조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나는 절대 본초에게 지지 않는다.”

관도를 중심으로 공방전을 벌이려던 전쟁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제 두 배에 달하는 적과 평지에서 회전을 벌여야 한다. 이 한 번 싸움에서 패배하면 바로 허도를 내주게 되고 천하의 대세는 원소에게 기울 것이다.

그러나 조조군과 마가군의 두 수장은 강렬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조조와 마초가 드러내는 호기는 군막 안의 사람들에게 전염되었다. 그날의 군의가 끝났을 때는 참석한 모든 장수들이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온 마초는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부상 치료를 하고 있어야 할 장료도 함께 있었다.

“문원,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았을 텐데. 계속 쉬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중요한 싸움에 어떻게 쉽니까. 게다가 감흥패도 반송장이 돼서 홍농으로 후송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녕은 여포와 싸우다 황하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것을 장기가 간신히 구출해서 홍농으로 데려갔다. 본인은 당장 복귀하겠다고 날뛰었지만, 마초는 감녕에게 어지럼증과 토악질이 나타난다는 얘기를 듣고 홍농에서 계속 정양하게 했다.

마초 자신도 여포와 싸우다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어지럼증이 낫기 전에 무리하게 활동하다 호거아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맞춰 조운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반송장까지는 아닌데, 하여튼 자네도 조심하게. 특히 무리해서 검을 들고 난전을 벌이는 일은 없도록 하게.”

마초는 그렇게 장료를 단속했다.

사실 맹장 하나가 아쉬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마초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쉬라고 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싸움에서는 관공의 역할이 중요하오.”

관우는 말없이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도 관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혜를 이곳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여포가 절세미인인 두혜를 죽였을 리는 만무하니, 여포를 꺾으면 되찾을 수 있겠지.’

관우가 젊은 시절 두씨 집안에 신세를 진 일이 있다고 들어서, 생활이 어렵게 된 진의록의 처 두혜를 관우에게 소개시켜 주려 했다. 그가 두혜를 첩으로 삼든, 은혜만 갚고 말든 거기까지는 마초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두혜가 이곳으로 오는 길에 여포에게 납치당해 버렸다. 마초로서는 두혜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꼬여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여포를 잡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군.’

마초는 월길에게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월길. 너는 이 서찰을 허도에 전해라.”

“알겠습니다. 근황병을 다시 모으시려는 거죠?”

“그래. 황보 대도독의 힘을 빌려야겠구나. 그리고 우림군도.”

순유, 황권, 방덕, 서황, 장료, 이감, 왕평, 마대, 월길, 철리길, 등지, 관우. 그리고 허도에서 지원군으로 출진할 황보숭과 조운.

개봉 전투에 나설 진영이 완성되었다. 저마다 마초와 깊은 인연으로 이어진 이들이었다. 마초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군의를 파했다.

며칠 후, 개봉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200년 전 후한이 건국된 이래 가장 크고 치열한 전투가 될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전투에 대해 생각하던 마초는 문득 여포를 떠올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어쩌면 이번 전투에서, 아니면 다음 전투에서.

여포와의 악연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마초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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