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83화 (183/306)

183화. 비장재래

마가군 원정대 5만의 군량 수송을 담당하는 것은 홍농태수 장기였다.

군량을 수송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다. 장기는 홍농에서 배를 띄우고 황하를 따라 군량을 운반했다.

이는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홍농은 지형이 험준해서 관중과 중원을 가르는 관문이 되는 곳이다. 홍농에 이르러서는 황하의 물줄기도 세 갈래로 갈라져 흐르게 되어 삼문협이라고 불렸다. 이 험준한 협곡을 통과해야 황하를 통해 관도의 전장까지 군량을 수송할 수 있는 것이다.

“용케 그런 협곡을 통과해서 왔군. 복파장군이 장 태수는 수완이 대단하다더니 헛된 말이 아니었어.”

군량을 인수하러 온 감녕은 혀를 내둘렀다. 장기는 겸양하며 같이 온 정은에게 공을 돌렸다.

“여기 계신 정은 장군이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정은은 마등이 젊은 시절부터 따르던 숙장이었다. 장안을 점령한 후, 마가군의 주력은 마초가 이끄는 젊은 장수들로 바뀌었고, 이후 정은이나 성의 같은 숙장들은 최전선의 일은 젊은 장수들에게 맡기고 조용히 후방의 단속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번 원정의 총대장인 마초는 보급을 극히 중시했다. 지난 생에서 조조와 싸울 때, 조조군의 보급선을 끊는 데 실패해서 결국 전쟁에서 패했던 교훈을 잊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보급선이 끊겨서 제때 식량이 도착하지 않으면 어떤 군대도 싸울 수 없다. 그러니 군량 수송의 호위도 정은 같은 노련한 무장들이 직접 나설 것을 요청했다.

장기와 정은이 이끄는 수송 행렬은 낙양 근처의 평음현에서 원정군에게 군량을 넘기게 되어있었다. 이때 군량을 수령하러 나서는 것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장수에게만 맡기도록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게 배를 다루는 데 능한 감녕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마초는 군량의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집착이라고 할 만큼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장기는 감녕과 같이 온 조조군의 장수들을 흘끔거리며 물었다.

“위수독(감녕의 현재 관직), 지난번에는 유명한 우금 장군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에 온 저 사람들도 꽤 이름난 장수들입니까?”

“그렇다고 하더군. 악진과 노초라는 장수들인데, 특히 저 몸집 작은 악진이라는 자는 조조가 직접 발탁해서 총애하는 장수라고 하오. 벌써 꽤 많은 공을 세웠다나.”

마초는 조조군에게 군량을 신세지지 않는 대신 이름난 장수들이 마가군의 군량 수송 호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관도를 지키는 조인과 유격전을 맡은 하후연을 제외한 장수들이 교대로 마가군의 군량 수송을 호위하러 나섰다. 처음에는 조홍이, 두 번째는 우금이, 이번 세 번째는 악진이 각각 부장과 함께 군량 수송에 나섰다. 마가군 측에서는 감녕과 장료가 교대로 담당하고 있었으니 군량 수송 호위로는 대단히 화려한 인선이었다.

“복파장군께서 워낙 보급에 들이는 정성이 각별하시니까요. 약속대로 한 달 후에 이곳 평음현으로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는 장 교위가 나와 있겠군요.”

“글쎄, 그 친구가 지난 싸움에서 상처를 크게 입어서 어찌 되려나 모르겠소. 앞으로 군량 호위는 내가 전담할 수도 있소이다. 장 태수,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는…….”

감녕이 은근한 눈빛으로 장기를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장기는 피식 웃으며 품 안에서 청동 병을 하나 꺼냈다.

“이것 말입니까?”

“으하하하! 우리 장 태수는 역시 보통 문관이 아니군! 실로 영웅호걸이야!”

감녕은 장기가 건네는 술병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자 온몸에 활기가 돌았다.

“이런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역시 마가군에 들어오길 잘했군.”

“술독은 가장 큰 배에 실어 놨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진중에서 군사들을 위무하는 데 쓸 물건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암, 그렇고말고! 혹시나 수량이 안 맞아도 장 태수는 모르는 일이지! 핫하하!”

감녕은 크게 웃으며 장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후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감녕이 군량과 물자의 수량을 확인하자 장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군량만 수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파장군께서 한 인물의 호위를 명하셨습니다.”

“아아, 대강 들었소. 여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여포군의 군리였다가 귀순했던 진의록이라는 자가 있는데, 군량을 횡령하다 요참형을 당했습니다. 이번에 호위할 인물은 죽은 진의록의 처입니다.”

“하여튼 복파장군도 참. 전쟁터에 첩을 데려오면 데려오는 거지, 뭘 이렇게 비밀리에 호송하는 거야? 태양부인이 그렇게 무섭나?”

“그런 목적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중원의 어떤 명사하고 같은 고향 사람인데, 과부가 되어 생활이 어렵게 됐으니 복파장군이 그 명사에게 소개해 주려는 모양입니다.”

“그래?”

감녕은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적습! 적습이다!”

감시병이 요란하게 소리쳤다. 감녕, 장기, 멀리서 말을 타고 있던 정은, 그리고 악진과 노초의 표정이 일시에 변했다. 북쪽 벌판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제길, 관도의 원소군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위수독,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한참 동쪽에 있는 관도에서 여기까지 돌아올 정도면 진작에 황하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군의 보급을 끊는 게 중요하다지만, 낙양 인근의 고을들을 들이치지 않고 굳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동쪽에서 온 군사들이 아니라는 건가?”

어쩌면 적은 동쪽에서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이 올 만한 곳은 한 곳. 북쪽의 병주다.

흙먼지는 생각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속도를 보니 기병이었다. 눈이 좋은 감녕이 보니 희미하게 ‘여(呂)’자 깃발이 보였다. 예상대로 병주목 여포 휘하의 군사들이었다.

“빌어먹을. 여포가 움직였군.”

감녕은 술병을 내던지고 수우각궁을 들었다.

조조군과 마가군의 장졸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 준비를 갖췄다. 정은이 이끄는 마가군이 왼쪽으로, 악진과 노초가 이끄는 조조군이 오른쪽으로 벌렸다. 그 사이에는 강이 있었다. 달려오는 적군을 양쪽에서 포위하기 위한 포진이었다.

감녕이 이끄는 금범군은 배 위에서 저마다 활을 들고 있었다. 정은, 악진, 노초가 땅 위에서 싸우는 동안 물 위에서 궁시로 지원할 계획이었다.

달려오던 여포군이 양쪽으로 분열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정은의 마가군을, 다른 한 무리의 군사들이 악진과 노초의 조조군을 상대했다.

“섣불리 맞서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창을 세워 적의 돌격을 막아라.”

마가군을 지휘하는 정은은 군사들이 진형을 유지하도록 단속했다. 그 또한 거친 서량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정은이 단단히 진을 짜고 버티자 정은을 상대하는 여포군의 장수 학맹은 쉽게 진을 뚫지 못했다.

조조군과 상대하는 쪽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작은 체격에 볼품없는 외모를 한 악진이 선봉에서 철창을 휘두르자 그 사납다는 병주병들이 그대로 쓸려나갔다.

“으윽!”

“으악!”

악진의 주위에 순식간에 철창에 맞은 시체들이 쌓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노초가 군사들을 휘몰아 공격하자 오히려 여포군을 조금씩 밀어붙이게 되었다.

배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기는 감녕을 보며 말했다.

“복파장군께서 군량 호위에 들이는 노력이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보니 까닭을 알겠군요. 이대로라면 여포군의 습격을 격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오. 장 태수는 일단 치중대를 이끌고 상류 쪽으로 피하시오.”

감녕은 벌써 전통 하나를 다 비울 만큼 맹렬한 기세로 활을 당기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금범군들도 마찬가지였다. 금범군의 지원사격은 급습을 당한 마가군과 조조군에게 큰 힘이 되었다. 돌진한 여포군은 전원 기병이니 활을 쏘는 입장에서 큼직한 과녁이 되었다. 반면 말을 달려 강을 건널 수는 없으니 여포군으로서는 배 위의 금범군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전황이 마가군과 조조군에 유리하게 돌아갈 때였다.

쾅!

감녕이 탄 배의 돛대가 폭발하듯 부서져 나갔다. 나뭇조각이 쏟아지며 감녕과 장기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 돛대가 부서진 배는 뒤집힐 듯 기울었다가 겨우 수평을 회복했다. 그리고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이런 제길!”

감녕은 이를 악물고 여포군 쪽을 바라봤다.

진중의 한가운데로 한 장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가 올라탄 거대한 말은 털빛이 피처럼 붉었다. 머리에 쓴 작은 관에 매달린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손에 쥔 활은 길이가 6척에 달하는 대궁이었다.

감녕은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무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자들 중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포인가.”

감녕의 입가에 호승심으로 인한 미소가 걸렸다. 손으로는 수우각궁에 화살을 재서 여포를 겨눴다.

여포도 감녕만큼 눈이 좋았다. 화살을 날려 돛대를 부러뜨린 후, 돌아서려던 여포는 감녕이 지지 않고 화살을 메기자 제 자리에 멈췄다.

탕.

감녕이 시위를 놓자 화살이 날았다. 보통의 활은 닿을 수 없는 거리다. 그러나 여포와 감녕의 활은 보통 활을 한참 상회하는 강궁이었다. 물소 뿔로 만든 수우각궁에서 쏘아진 화살이 여포를 향해 날았다. 동시에 적토마가 살짝 움직였다.

휭.

여포는 그대로 적토마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감녕의 화살은 정확히 여포의 미간을 노렸지만, 적토마가 옆으로 한 치 움직이자 화살도 딱 한 치 차이로 빗나갔다.

그리고 여포가 두 번째로 당긴 화살이 날았다. 단창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한 화살이었다. 화살은 감녕이 손을 쓸 수 없는 곳에 맞았다. 뱃전이었다.

쾅!

군량 수백 석을 싣고 돛까지 달고 있는 큰 배의 허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감녕과 장기는 그대로 배의 바닥을 굴렀다. 화살에 맞은 곳으로 황하의 누런 흙탕물이 마구 들이쳤다. 허리가 부서진 배는 다시 한번 빙글 돌며 천천히 가라앉아 갔다.

“이런 제길, 침몰하겠군.”

감녕과 장기는 그대로 물에 뛰어들었다. 옆의 배에서 군사들이 다가와서 두 사람을 끌어 올렸다. 다른 배로 옮겨 가서 다시 전장을 보니, 여포의 가세로 인해 전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퍽!

“컥…….”

전장으로 눈을 돌린 장기에게 처음 보인 것은 여포의 방천화극이 정은의 가슴을 꿰뚫는 모습이었다. 서량에서 잔뼈가 굵은 숙장은 여포와 몇 합을 어울리지도 못하고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절명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뽑아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정은의 피가 흩뿌려졌다. 이어서 여포를 뒤따르던 성렴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군사들을 이끌고 마가군을 들이쳤다.

“끼헤헤헤! 효장 성렴이 여기 있다! 건방진 마가군 놈들, 그동안 얼마나 늘었나 보자!”

성렴은 여포의 휘하 중에서도 특히 용맹해서 효장이라 불리는 자였다. 크게 화상 자국이 있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창을 휘둘러 마가군 병사들을 쓸어 갔다.

여포는 성렴에게 전장을 맡기고 다시 조조군 쪽으로 말을 달렸다. 조조군을 상대하는 건 건장이라 불리는 위월이었다. 얼굴에 죄수의 문신을 한 거대한 체격의 위월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풍기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조조군을 지휘하는 작달막한 악진과 겨루면서 좀처럼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핫!”

깡!

악진이 철창을 크게 휘둘러 위월을 떼어 놓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극을 들어 다시 악진에게 돌진하려던 위월은 여포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잠자코 무기를 거두고 길을 비켰다.

“여포.”

악진은 심호흡을 하며 철창을 굳게 쥐었다. 부장 노초가 이를 악물고 그의 옆에 서서 같이 창을 겨눴다. 2장에 달하는 장창이었다.

여포가 탄 적토마가 돌진했다. 먼저 나선 것은 노초였다. 왼쪽에서 비스듬히 장창을 들어 여포를 겨눴다. 혹시 맞추지 못하더라도 여포의 자세를 흐트러뜨려 악진이 공격하기 쉽도록 만들어 줄 셈이었다.

여포는 지체 없이 방천화극을 뻗었다. 그리고 창끝으로 노초의 창끝을 맞췄다.

쾅!

창끝끼리 부딪치자 노초의 창이 터져 나갔다. 노초는 부러진 자루로 전달되는 거대한 힘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여포는 그대로 방천화극으로 휘청이는 노초의 몸을 뚫었다.

퍽!

노초는 입을 크게 벌렸지만, 폐가 상했는지 비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여포는 그대로 노초를 꿴 방천화극을 악진에게 휘둘렀다. 악진은 이를 악물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노초의 몸을 철창으로 쳐냈다.

우드득!

악진의 철창에 맞은 노초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악진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여포를 노릴 때, 여포는 이미 노초의 몸에서 방천화극을 빼내 치켜올리고 있었다.

방천화극을 들어 악진을 베려던 여포는 순간 화극을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퍽!

여포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이 방천화극에 맞아 공중에서 터졌다. 작고 빠른 배로 옮겨 탄 감녕이 육지 근처까지 다가와서 다시 화살을 날린 것이다. 몸은 강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눈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악진이 철창을 휘둘렀다. 여포는 한 손으로 방천화극을 들어 악진의 일격을 막았다.

깡!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튕겨 나간 것은 막은 여포가 아니라 휘두른 악진이었다.

“큭, 어떻게 이럴 수가…….”

악진은 상식을 깨는 여포의 무위를 보며 이를 갈았다. 여포는 악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감녕을 쳐다보고 있었다. 악진은 다시 한번 철창을 들어 여포에게 휘둘렀다.

깡!

다시 한번 방천화극으로 철창을 막은 여포가 악진을 내려다봤다.

“귀찮구나.”

여포는 철창과 맞부딪히고 있는 방천화극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방천화극에 닿아 있는 철창과, 철창을 쥐고 있는 악진의 몸이 같이 공중에 떠서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여포는 그대로 철창째로 악진을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퍽!

“컥…….”

땅바닥에 처박힌 악진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악진의 등을 중심으로 땅이 깊게 패었다.

뒤이어 여포가 적토마를 몰아 강 쪽으로 다가갔다. 적토마는 땅에 메다 꽂힌 악진을 무심하게 밟고 지나갔다.

우드득.

“크아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악진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여포는 악진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감녕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감녕은 고민하고 있었다.

‘화살을 날려도 쳐 내는 놈이다. 이제 어쩐다?’

화살이 통하지 않으니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다. 말도 없이 뭍으로 올라가서 적토마를 탄 여포와 육박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 여포에게는 대궁을 뽑아 화살을 날리는 방법이 있다. 감녕 자신이 한두 번은 피할 수 있겠지만, 만약 뱃전을 직접 노린다면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지. 놈이 활을 쏘지 못하도록 할 수밖에.’

감녕은 그렇게 마음먹고 여포의 화살통을 노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여포가 의외의 행동을 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든 손을 한껏 뒤로 당긴 후 감녕을 향해 내던졌다.

“아니!”

철로 된 방천화극이 화살처럼 빠르게 날았다. 감녕은 재빨리 활을 내던지고 사각철간을 들었다. 방천화극이 눈앞까지 왔을 때,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날아오는 방천화극을 후려쳤다.

퍽!

감녕의 사각철간은 한 개당 10근이 넘는 무거운 무기다. 감녕 본인 또한 완력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자신이 있었다. 감녕이 철간으로 방천화극을 후려치니 궤도가 틀어졌다. 방천화극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황하 밑으로 가라앉았다.

“제길, 완전히 터무니없는 놈이군. 용력이 이 정도라니.”

마초는 감녕에게 귀부를 권하면서 여포와 싸울 때, 목숨을 달라는 말을 했었다. 흔쾌히 승낙하기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마초가 여포에게 패한 뒤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었다. 감녕 자신 또한 무공이라면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포와 일대일로 겨뤄서 승부를 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감녕도 이제 깨닫게 되었다. 여포는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적토마가 감녕을 향해 달렸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감녕은 황당해하면서도 사각철간을 꽉 쥐었다. 상대가 여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강기슭에 다다른 적토마는 그대로 강 위로 뛰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먼 거리를 뛴 적토마는 기슭에 떠 있는 군량 운반선에 착지했다.

퍽!

운반선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며 물보라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물보라를 뚫고 적토마는 근처의 다른 운반선으로 뛰었다. 마침내 감녕의 근처에 있는 배까지 다가간 여포는 적토마에서 내렸다. 그리고 뱃전을 박차고 하늘로 높이 뛰었다. 이번 목표물은 감녕이 탄 배였다.

여포는 공중에 뜬 채로 등에 멘 대도를 뽑아 들었다. 여포의 힘을 받아내기 위해 날을 세우지 않아서 무인도라 불리는 칼이었다. 감녕은 사각철간을 머리 위로 들어 교차했다. 여포는 무인도를 들고 그대로 감녕을 찍었다.

쾅!

폭음이 울렸다. 감녕이 딛고 선 양 발 근처가 쪼개지며 배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여포는 가벼운 동작으로 반만 남은 배의 고물에 착지했다. 쪼개진 배의 중간에는 누런 황하가 흐르고 있었다. 여포의 무인도를 받아 낸 감녕은 황하 속으로 쏘아지듯 가라앉았다. 그가 가라앉는 궤적을 따라 긴 물보라가 일었다.

“큭…….”

어쨌든 베이지는 않았다. 두 자루 사각철간으로 무인도를 막아낸 감녕은 자맥질을 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무인도에 실린 여포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감녕의 몸은 한참 동안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간신히 몸을 수습할 수 있게 됐을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제길…….”

물이 누런 흙탕물이라 수면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각철간을 놓고 자맥질을 하던 감녕은 이내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물 아래를 바라보던 여포는 감녕이 올라오지 않자 고개를 들었다. 다음 배로 이동하려는 찰나, 여포의 발에 물컹한 것이 밟혔다. 사람의 몸이었다.

“아윽!”

배 밑에 숨어 있던 여인이 여포의 발에 밟혀 낮은 비명을 질렀다. 여포는 그대로 뱃전을 덮은 짚단을 걷어냈다.

배 밑에 웅크리고 있던 여인과 여포가 눈이 마주쳤다.

검소한 차림의 여인이었다. 눈자위의 주름을 보니 30대였다. 고대의 기준으로 한창 나이는 지난 셈이다. 며칠째 군선에 타고 황하를 따라 내려왔으니 옷차림은 지저분하고 얼굴은 여독으로 초췌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악조건을 뚫고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미인이었다.

“제기랄.”

미인은 입이 거칠었다. 여포는 가만히 미인을 바라보다 말했다.

“하동의 두혜. 이런 곳에서 찾게 될 줄은 몰랐군.”

“어머, 온후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는군요. 이런 빌어먹을.”

두혜는 여포를 향해 화사하게 웃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진의록과 살던 시절, 진의록의 상관 여포가 자신을 탐냈던 걸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사내들의 삶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활을 해 왔다. 이제 자신은 여포의 것이 될 것이다.

여포는 두혜를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고 다시 적토마를 몰아 강기슭으로 돌아갔다.

퇴각하는 마가군과 조조군을 성렴과 위월이 추격해서 수급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조조군 아장들은 퇴각 지휘를 포기하고 악진을 들쳐업고 피신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여포군의 다른 장수들은 군량 운반선을 불태우고 있었다.

5만 마가군의 한 달 치 양식이 황하 위에서 불타올랐다. 여포는 잠시 그 불꽃을 바라보다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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