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마초 대 장비
마초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드디어… 장익덕과 겨룬다.’
마초는 일생 동안 숱한 명장들과 함께 싸워 왔다. 아버지이자 주군인 마등, 친구이자 수하인 방덕, 유비에게 귀부한 뒤 동료로 만난 조운, 황충, 위연. 그리고 회귀한 뒤 수하로 맞이한 서황, 장료, 감녕까지 수많은 명장들과 같이 싸워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장비에게 비견할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관우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와는 잠시 비무를 나눴을 뿐이다. 적어도 마초가 같은 편이 되어 전투를 치러 본 동료들 중 장비보다 뛰어난 장수는 없었다. 대군을 이끄는 통솔력, 작전을 세우는 군략, 그리고 일신의 무예 모두 마찬가지였다.
장비는 목을 양쪽으로 꺾으며 천천히 마초에게 다가왔다. 마초도 도철을 몰아 천천히 장비에게 다가갔다.
마초의 창이 더 길었다. 장비는 거리낌 없이 마초의 금마삭이 닿는 거리로 들어갔다.
“핫!”
마초는 지체 없이 출수했다. 금마삭이 장비의 가슴을 향해 날았다. 장비는 눈앞에 쌍신모를 세워 들고 있다가 마초의 금마삭이 날아오자 크게 접었다.
텅!
창대를 맞은 금마삭의 궤도가 옆으로 틀어졌다.
장비는 그대로 쌍신모를 한 바퀴 돌려 반대쪽 날로 마초를 베고자 했다. 그런데 장비의 생각과는 달리 쌍신모가 아래에서 뭔가에 맞은 것처럼 위로 크게 쳐올려졌다. 마초가 금마삭을 통해 청경을 써서 힘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오호라.”
장비는 여전히 무표정한 상태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초의 무예에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퍽!
퍽!
쌍신모와 금마삭이 몇 번을 어울렸다. 백마 도철과 흑마 표월오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격렬하게 땅을 박차며 움직였다.
나관중은 멀리서 손에 땀을 쥐고 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공이 없는 그에게는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찬 승부였다. 나관중은 옆에 있는 방덕을 보며 물었다.
“방 장군. 지금 전황이 어떻습니까? 주공이 우세한 것 맞지요?”
“글쎄. 뭐라 말하기 어렵군.”
방덕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응시했다. 마초와 장비가 이십여 합을 어울린 뒤 잠시 떨어지자 방덕은 얕은 숨을 내쉬고 나관중에게 말했다.
“맹기의 성취가 실로 놀랍군. 저 정도로 강해졌던가. 청경을 저렇게 자유롭게 쓰는 무인은 천하에 또 없을 걸세.”
“그, 그렇다면 아무리 상대가 장비라도 이길 수 있겠군요. 다행입니다.”
“그건 모를 일일세.”
방덕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얼핏 보기로는 마초가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저 장비라는 무장은 아직도 자신의 힘을 전부 쏟아내고 있지 않았다.
‘장비가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이 허명이 아니었군. 저 정도의 무인이었나.’
잠시 숨을 고르던 장비가 마초를 보며 물었다.
“그대는 몇 살인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가? 장유유서라도 따질 셈인가?”
“서량의 마초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네. 맞나?”
마초는 장비가 나이를 묻자 잠시 생각하고 답했다. 회귀한 이후로 대외적인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자신도 가끔 헷갈렸다.
“어디 보자. 올해가… 스물다섯인가?”
“이상하군. 그대가 사용하는 청경은 삼십 년 이상 수련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경지다. 혹시 불가에서 말하는 환생이라도 한 것인가?”
장비는 마초의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 마초는 장비가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건 알아줘야겠군. 삼십 년이나 되는 긴 꿈을 꾸면서 꿈속에서 실컷 수련했다고 해 두지.”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장비를 향해 금마삭을 겨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비는 설마 마초가 진짜로 삼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퍽!
다시 한번 창대와 창대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마초는 거침없이 청경을 쓰며 장비를 몰아붙였다. 장비는 쌍신모를 들어 마초의 공격을 적절히 방어했지만, 마초의 출수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장비의 출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묵묵히 마초의 공격을 막아내던 장비는 표월오를 몰아 한 번 크게 물러났다. 마초는 지체 없이 도철을 몰아 장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마초가 달려오자 장비의 고리눈이 번쩍 빛났다.
마초는 순간, 장비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비는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앞으로 굽히며 큰 동작으로 쌍신모를 휘둘렀을 뿐이다. 그 동작이 너무나 빨라서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였다.
콰직!
속도를 올린 장비의 모는 보이지 않았다. 마초는 본능적으로 금마삭을 들어 장비가 내리치는 일격을 막았다. 금마삭은 너무나도 쉽게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마초는 부러진 금마삭을 내던지고 치란을 뽑아 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들었나 보군. 장익덕, 그대의 모가 천하에서 가장 빠르다는 걸 알고 있다.”
부대를 지휘할 때는 빈틈없이 작전을 수립한다. 병장기를 휘두를 때는 상대의 기술에 맞추는 대처 능력과 빠른 속도를 살려서 싸운다. 장비의 전투 방식은 외모와는 사뭇 달랐다.
“알아주니 영광이군. 그보다 그 칼이 바로 쇠를 자른다는 천하제일 명도인가.”
마초가 들고 다니는 치란은 벌써 상당히 유명해져 있었다. 원술 토벌전이나 손책과의 진 전투 같은 큰 싸움에서 휘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는 장비가 마초에게 달려 들어왔다. 마초는 치란을 들었다 비스듬히 내리쳤다.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장비는 일격에 제압당할 것이다. 장비는 날아드는 치란을 피하지 않고 쌍신모를 비스듬히 세웠다.
“하지만 가벼워.”
무게에 속도를 곱하면 대강의 파괴력이 나온다. 치란은 극히 단단하고 예리하지만, 날이 가늘고 가벼운 탓에 무게로 인한 파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만한 예리한 절삭력을 보여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베는 각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병장기끼리 부딪히는 상황이 온다면?
드르륵!
장비가 앞으로 내민 쌍신모는 치란과 절묘한 각을 이루며 치란에 실린 힘을 흘려냈다. 치란이 쌍신모를 긁으며 흘러내렸다. 치란은 각이 어긋난 상태에서도 자루를 베어 내며 그대로 장비의 손을 노리고 파고 들어왔다.
그 순간, 장비는 쌍신모를 놓았다. 치란은 쌍신모의 창신을 타고 내려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장비의 왼쪽 장(掌)이 그대로 마초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흡!”
이번에는 마초가 고개를 크게 틀어서 장비의 좌장을 피했다. 장이 빗나가자 장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자 투구에 매달려서 나부끼는 풍성한 흰색 술이 손에 가득 잡혔다.
장비는 그대로 투구술을 잡고 사자 투구를 낚아챘다. 투구끈이 끊어지자 마초의 길고 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장비의 오른손이 허공에 떠 있는 쌍신모를 낚아챘다. 장비는 쌍신모의 끝을 잡고 그대로 마초의 얼굴을 찔렀다.
깡!
마초는 치란을 기울여서 쌍신모를 막았다. 장비의 쌍신모는 경도가 높은 철로 만들어 치란에 닿자 그대로 날이 쪼개졌다. 장비는 개의치 않고 쪼개진 쌍신모를 그대로 치란의 결을 따라 미끄러뜨렸다. 마초의 얼굴이 곧 꿰뚫릴 것처럼 보였다.
그때 마초가 치란을 놓았다. 장비가 시도한 찌르기는 공중에 떠 있는 치란을 따라 허공을 갈랐다.
병장기가 없어진 마초는 그대로 장비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갑옷 끈을 쥐었다. 청경의 수법으로 장비의 중심을 크게 흔들 셈이었다.
“핫!”
장비가 크게 기합을 지르며 힘을 썼다. 몸싸움을 벌일 때는 병장기를 들고 겨룰 때보다 완력과 체중이 훨씬 중요하다. 장비는 우세한 힘과 무게를 앞세워 마초의 청경을 버텨냈다. 마초가 놓아 버린 치란은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땅바닥에 꽂혔다.
장비는 무기를 들고 있다. 마초는 무기를 놓쳤다. 몸싸움을 벌여 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권이나 장으로 일격을 넣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깝다. 위기였다.
그때, 마초는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었다.
펑!
마초는 그대로 갑옷 끈을 쥔 오른 주먹을 뻗어 장비의 가슴팍을 쳤다. 큰 소리가 터졌다. 주먹을 뻗는 거리는 일촌에 불과했지만, 다리부터 허리까지 온몸이 회전하며 힘을 더했다. 그리고 일촌을 날아간 주먹이 장비의 가슴팍에 적중했을 때, 마초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먹을 뒤로 뺐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갑옷 끈을 잡고 옥신각신하다 갑자기 손을 뒤로 빼는 걸로만 보일 법한 속도였다.
근접전이 벌어졌을 때 쓰기 위해 연마한 촌경(寸勁)이었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기령과의 대결 이후, 두 번째였다.
장비와 그를 태운 표월오가 그대로 세 걸음을 주욱 밀려났다.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던 장비는 이내 다시 신형을 수습하고 날이 깨진 쌍신모를 마초에게 겨눴다. 왼손으로는 빼앗은 사자 투구를 든 채였다.
“방심했으면 이대로 죽었을 것이다. 절초로군.”
“하, 그러는 그대야말로 대단하군. 그걸 맞고도 버티다니.”
마초는 땅에 꽂힌 치란을 다시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처음에는 여력을 남겨둔 채 충돌하고, 상대의 기세에 맞춰 점점 기세를 올려가며 싸웠다. 무공은 완전한 호각이었다.
이제는 두 사람 다 여력이 없다. 다시 한번 충돌하게 되면 생사결이 될 것이다.
마초와 장비는 잠시 팽팽하게 대치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장비였다.
“치중 천 대를 태우겠다고 마가군 차기 수장이 목숨을 걸 셈인가. 군량값치고는 너무 비싼데,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떤가.”
마초는 장비의 말을 듣자 씩 웃었다. 생사결을 하기에 판돈이 너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글쎄, 그러는 그대야말로 원본초의 치중 천 대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걸 셈인가. 만약 여기서 그대가 몸을 상하면 유 사군은 재기하기 어렵게 될 거요. 치중을 나에게 넘기고 그대는 실리를 챙기는 게 어떻소.”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객장 신세라는 게 상당히 서럽다네.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네.”
장비는 담담하게 말했다. 굳이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과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을 동시에 드러냈다.
마초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등 뒤의 방덕을 가리켰다.
“장익덕 장군. 하지만 마가군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오. 신궁 방덕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
“먼저 투장을 청해 놓고 협공을 할 셈인가. 명성에 금이 갈 텐데. 게다가 내가 족제의 목숨을 살려 줬으니 그대도 내 말을 들어 줘야 할 게 아닌가.”
장비는 무심하지만 조리 있게 말했다. 협상이 쉽게 풀리지 않자 마초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 얼굴로 조목조목 이치를 따지는 건 참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말로는 장익덕 장군을 못 당하겠군. 그러니 실리를 하나 드리도록 하지.”
“실리?”
장비가 반문하자 마초는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내 던졌다. 장비는 날아오는 주머니를 손으로 낚아챘다.
“이게 뭔가?”
“열어 보시오.”
장비는 잠시 물끄러미 마초를 바라보다 비단 주머니를 풀었다. 안에는 비단 천이 들어 있었는데, 두 조각으로 잘린 문서의 반쪽이었다.
“이것은…….”
“예주 각 고을의 지형과 인구수, 병력 배치, 현령들의 성향, 특이사항을 기록한 문서요. 단, 그대에게 건넨 것은 문서의 윗부분이라 목차만 적혀있고 내용이 적힌 아랫부분은 나에게 있소. 훗날 나를 찾아오면 나머지 반쪽을 주겠소. 두 장을 맞춰 보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정보가 될 것이오. 그걸 기반으로 예주에서 독립하시오.”
“이런 걸 내게 주는 이유가 뭔가?”
“장익덕 장군. 유 사군께서는 언제까지 원본초의 밑에 있을 생각이오?”
마초는 알고 있었다.
유비는 원래의 역사에서도 이때쯤 원소의 휘하에 든다. 조조에게 패해 근거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오래 있지 않았다. 조조의 후방이자 원가의 옛 근거지였던 예주에서 원가를 지지하는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유비는 황하의 전선을 이탈해서 예주로 간다. 친 원소 성향의 반란군을 규합해서 조조의 뒤를 치겠다는 게 핑계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소를 위해 일하는 대신 새롭게 기반을 잡아 다시 독립한다.
‘유 사군은 결코 남의 밑에 오래 있을 인물이 아니다. 틀림없이 지금부터 원소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가 갈 만한 곳은 예주, 그중에서도 무주공산인 여남군뿐이다. 마침 반란군을 규합해서 조조군의 후방을 노린다는 명분도 있을 테니.’
여남은 30개나 되는 현을 가진 큰 고을이니 충분히 새로운 근거지로 삼을 만한 곳이다. 아직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친 원소 성향의 호족들이 일으킨 반란이니 그 낌새는 이미 원소군에 흘러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유비가 예주 여남으로 떠나도록 정보를 주면 움직일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던 장비가 입을 열었다.
“그야 원본초의 곁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는 않겠지.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군. 그대는 무슨 재주가 있어서 우리 속을 이토록 꿰뚫어 보는가?”
“하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소. 어쨌든 그대들에게 나쁜 제안은 아닐 터. 이 정도면 치중대를 넘기고 물러날 만한 대가가 되지 않겠소.”
“그건 인정하지. 다만 한 가지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네.”
“말해보시오.”
“나는 자네 말을 따르고 싶은데, 우리 대형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 조맹덕의 몸에 칼을 한 번 꽂기 전까지는 못 움직인다고 할 걸세.”
“천하에 조맹덕 목을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겠소? 그런 건 알아서 하시오. 뭐, 혹시라도 유 사군 손에 조맹덕이 죽어버리면 그때는 어쩔 수 없고.”
“자네는 조조군과 연합 아닌가?”
“그러니 같이 싸울 때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오. 그리고 뒤통수를 칠 때도 최선을 다해야지. 당연히 조맹덕도 똑같이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빙글빙글 웃었다.
전쟁에서 이긴 뒤, 유비가 예주에 자리 잡는다면 조조의 뒤통수를 노리는 무서운 적이 될 것이다. 게다가 예주는 중원과 형주, 강동의 경계선에 있으니 강동군이 다시 재건되는 것도 견제할 수 있고, 형주의 유표도 견제할 수 있는 위치다. 어차피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마가군의 영역으로 삼기는 어려운 곳이니 유비에게 맡겨서 다른 군웅들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조맹덕이는 전쟁이 끝나면 나를 잡겠다고 몰래 호표기를 키우고 있었는데, 나도 이 정도 방비는 있어야지.’
그것을 위해 이감을 시켜 예주의 고급 정보를 준비하게 했다. 장비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일 것이다. 장비의 진짜 과제는 조조에게 복수하겠다고 벼르고 있을 유비를 설득하는 것이다.
“알았네. 대형께서 승인하시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또 하나…….”
“아아, 관운장 말인가. 그는 그대들이 기반만 잡으면 알아서 돌아갈 것이오.”
“운장 형이 떠나는 걸 허락해 줄 셈인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가 내 말을 듣겠소?”
“그건 아니지. 운장 형은 옛날부터 남의 말을 안 듣는다네.”
“나도 잘 알고 있소. 관운장은 유 사군이 다시 기반을 잡을 때까지만 내가 알뜰하게 쓸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시오.”
장비는 대답 대신 마초에게 빼앗은 사자 투구를 다시 던져 주고 말머리를 돌렸다.
마초와 장비의 싸움은 그렇게 협상으로 끝났다. 조만간 예주에서 친 원소파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면 장비는 어떻게든 유비를 설득해서 예주로 떠난다. 마초는 그때 예주의 기밀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조가현의 치중대는 마가군의 차지가 되었다. 장비가 군사들을 이끌고 물러나자 마초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군량에 전부 불을 질러라.”
화르르르.
조가현에 쌓여 있던 원소군의 군량에 불이 붙었다. 보름치는 될 만한 양식들이 한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하북을 장악한 원소군의 동원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조만간 황하 하류에서 수운을 통해 더 많은 군량을 운송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식량난이 올 수밖에 없다.
마초는 잠시 불타는 치중대를 바라보다 말머리를 돌렸다. 조가현의 원소군 군량을 노리고 달려온 2천 기병대는 별다른 피해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황하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