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81화 (181/306)

181화. 조가 전투

조가현의 원소군 군량고를 습격하는 작전은 마가군 총대장 마초가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부장으로 선택된 인물은 방덕과 마대였다.

“군량고를 태우는 일에 대군은 필요 없다. 단, 극히 빠르게 이동해야 하니 전원 경기병으로 편성한다. 말을 자기 몸처럼 다루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장수들만 데리고 갈 것이다.”

마가군에서 말을 가장 잘 타는 것은 당연히 마초다. 두 번째는 방덕이다. 세 번째가 누구인지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마초는 그들 중 마대를 선택했다.

마초, 방덕, 마대가 지휘하는 2천 기병대가 조가현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그들 말고 부득부득 우겨서 따라간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도대체 비서랑 선생은 왜 따라오는 겁니까?”

달리는 말 위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마대가 물었다. 나관중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핫하하하! 이 한 번 싸움에 관도대전이 끝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역사적인 현장엔 제가 꼭 있어야지요!”

마대와 방덕은 미오성에서 같이 맹세를 나눴기 때문에 마초와 나관중의 사정에 대해 대략 알고 있다. 원래의 역사에서 조조와 원소가 황하를 사이에 두고 벌인 큰 싸움이 관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여튼 위험하다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적의 복병이라도 만나게 되면 우리가 선생을 구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걱정이 많은 마대를 돌아보며 마초가 말했다.

“너나 잘해라. 나는 네가 더 걱정이다.”

시무룩해진 마대를 뒤로 하고 방덕이 마초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장문원이 같이 오지 못한 게 아쉽군. 말이라면 그 친구도 어지간히 잘 타는데. 혹시 적의 복병이라도 만나게 되면 큰 힘이 됐을 게 아닌가.”

“지난번 강동군과의 싸움에서 칼에 배를 찔리지 않았나. 괜히 끌고 왔다가 상처가 덧나느니 그냥 쉬는 게 낫지. 오히려 나는 그 녀석을 후방으로 빼고 싶은데 말을 안 들어서 못 빼고 있다고.”

장료는 지난 강동군과의 싸움에서 장흠과 진무를 베는 큰 공을 세웠다. 그 와중에 입은 상처가 깊어 당장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마초의 후방 철수 권유도 거부하고 회복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서 공을 세우면 장군직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 때문에 굳이 전장에 계속 남으려는 모양이었다.

마초가 이끄는 2천 기병대는 서쪽으로 크게 우회해서 황하를 건넜다.

이제 원소의 영역에 들어섰다. 조가현이 가까워질수록 군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마대도 마찬가지였다. 방덕은 태연해 보였지만 그 또한 속으로는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셋이서 달려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마초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난 생에서 서량 10군의 맹주가 되어 조조와 싸울 때 자신의 곁에 있던 최측근들이 방덕과 마대였다. 당시 적장이었던 서황이나 얼굴도 모르던 장료, 감녕, 순유, 법정 같은 인물들이 지금은 자신을 곁에서 보좌하고 있다. 게다가 조조와 연합군을 이뤄 싸운다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옛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조가현에 가까워졌다. 척후로 나선 강족 기병들이 길을 정확히 안내한 덕에 적을 만나지 않고 적진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마초는 도철에 탄 채 그대로 야트막한 산 위에 올랐다.

멀리 조가현이 보였다. 오래전 상나라의 수도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그저 평범한 시골 고을이었다. 현성의 외곽에 원소군의 둔영이 보였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 아래로 천 량이 넘는 수레들이 늘어서 있었다. 원소군의 군량이었다.

“좋아. 단숨에 들이쳐서 군량만 불태우고 떠난다. 불필요한 교전은 최소화하라.”

마초, 방덕, 마대가 이끄는 2천 기는 그대로 조가현 외곽의 원소군 둔영으로 달렸다.

최전방인 관도로부터 백 리가 넘게 떨어진 곳이다. 갑자기 나타난 기병대를 보고 어리둥절하던 원소군 병사들의 얼굴이 이내 경악으로 변했다.

“마가군! 마가군이다!”

“장군, 마가군의 습격입니다!”

마가군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자들로 가려 뽑은 2천 명이다. 원소군 치중대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선봉에 선 방덕은 군량 수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원소군 진영을 크게 가로질렀다. 그런 그의 앞을 원소군의 장수 하나가 막아섰다.

“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이 여광이 상대해 주마!”

방덕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여광에게 달려들었다. 기세 좋게 나섰던 여광은 막상 방덕이 통성명도 없이 편곤을 휘두르며 돌진하자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쳤다.

“네놈은 어디에서 온 누구냐?”

“서량의 방덕.”

“뭐, 뭣이? 방덕이라면 설마 익주 내전에서 기병을 이끌고 검각을 넘었다는 미친놈…….”

퍽!

“끄아아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덕의 편곤이 여광의 머리를 후려쳤다. 여광은 그대로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절명했다.

대장 여광이 1합을 버티지 못하고 죽자 원소군의 사기는 급격히 기울었다. 방덕이 군사를 휘몰아 돌진하자 정신없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마대가 군량 수레를 향해 뛰어 들어갔다. 마대가 이끄는 군사들은 저마다 말 잔등에 섶과 기름을 잔뜩 싣고 있었다.

작전이 너무나도 쉽게 성공할 기미를 보이자 마초는 혀를 찼다.

“쯧쯧, 원소도 젊은 시절에는 용병에 능했다고 하던데 이제 게을러졌나 보군. 군량고의 방비가 이토록 허술할 수가 있나?”

손에 땀을 쥐며 전투를 지켜보던 나관중이 옆에서 말을 받았다.

“설마 적진으로 백 리를 달려와서 기습하는 부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원본초가 하북에서 공손찬, 장연 같은 강대한 이들과 싸워 이겼다지만 주공처럼 과감한 전법을 사용하는 무장은 처음 상대하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도 그러하네.”

이제 마대가 군량 수레에 불만 붙이면 성공이다.

그런데 그때, 군량 수레를 향해 다가가던 마가군 병사들의 발밑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촤르륵.

칼날이 달린 밧줄을 땅에 늘어뜨린 후 양쪽에서 잡아당긴 것이다. 순간 밧줄이 팽팽하게 솟구치며 칼날에 베인 병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순식간에 마가군 병사들의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 나가자 마대가 있는 대로 고함을 질렀다.

“비겁하게 함정을 파다니! 대체 어떤 놈이냐!”

퍽.

대답 대신 화살이 날아들었다. 수레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 무리의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당긴 것이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맞은 마가군 기병들이 쓰러져 나갔다. 복병의 숫자는 삼백 명 정도니 많지 않았다. 그러나 군량을 탈취하려는 적이 있을 경우, 반격하기 완벽한 위치에 매복하고 있었다.

멀리서 전체 전황을 살피던 마초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을 놓고 있었나. 매복하는 대형을 보니 제법 머리를 쓰는 자로군.”

그러면서 뿔피리를 불어 신호를 해서 마대를 불러들이려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부하들이 복병에 죽어가는 것을 본 마대는 분노에 눈이 멀어 있었다.

“적장은 나와라! 서량의 마대가 상대해 주마!”

마대는 왼손에 금마삭을, 오른손에 5척 장도를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평소 흠모해 마지않는 마초와 비슷한 무장이었다. 마초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대성한 솜씨로 창칼을 휘두르자 적병들 몇이 순식간에 시체가 됐다.

그렇게 마대가 적장을 찾고 있을 때, 수레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키가 8척이나 되는 장한이었다.

“네놈이냐!”

마대가 장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장한은 말도 타지 않은 채 마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얼굴에는 검은 탈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장한은 달려오는 마대를 바라보며 손에 든 병기를 한 손으로 천천히 돌렸다. 긴 자루 끝에 짧은 검과 같은 창날이 달린 모(矛)였다. 특이한 것은 날이 한쪽 끝에만 달린 게 아니라 자루의 양 끝에 달린 쌍신모였다.

부웅.

부웅.

붕. 붕. 붕.

마대가 장한에게 다가올수록 모가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마대가 코앞까지 육박해서 금마삭을 겨누자, 장한이 한 손으로 모를 휘둘렀다.

퍼억!

쌍신모가 번뜩이자 마대가 뻗은 금마삭의 자루가 허공에서 잘렸다. 그리고 뒤이어 마대가 탄 말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를 잃은 말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달려오던 말이 머리를 잃으며 급격하게 멈추자 마대는 공중으로 튕기듯 날아가게 되었다.

턱.

장한은 쌍신모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공중에서 마대의 멱살을 낚아챘다. 옷자락이 올라가며 드러나는 팔뚝은 어지간한 무장들의 두 배 굵기였다.

“커, 컥…….”

마대는 숨을 참으며 오른손의 장도를 들어 장한의 팔을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장한이 손아귀에 한 번 힘을 주자 의식이 흐릿해지며 자기도 모르게 장도를 놓쳤다.

“어윽…….”

마대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하자 장한은 손의 힘을 슬쩍 풀었다. 죽어가던 마대는 겨우 목숨을 건져 숨을 토했다.

마대가 그렇게 붙들려 있자 마가군 병사들은 저마다 장한에게 병장기를 겨누면서도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 병사들 사이로 도철에 탄 마초가 천천히 나왔다.

“그대가 도올인가.”

마초는 복잡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도올의 무위를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마초가 지난 생에서 알던 사람이었다.

도올은 일부러 꾸며낸 듯한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내 족제를 내려주겠나. 군사들을 상하게 하지 말고, 나와 단둘이 승부를 겨뤄 진퇴를 결정하자.”

도올은 탈을 쓴 얼굴로 잠시 마초를 쳐다봤다.

마초가 이끄는 마가군 기병대와 상대하면 자신의 병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애초에 마대를 인질로 잡고 마초에게 투장을 청해서 일대일로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마초가 먼저 자신에게 투장을 청해 왔다.

도올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대를 내려놓고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표월오(豹月烏)를 끌고 오너라.”

잠시 후, 부하들이 말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검푸른 갈기털이 난 거대한 흑마였다. 도올은 표월오에 올라타서 쌍신모를 들고 마초의 앞으로 나섰다.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방덕이 물었다.

“맹기. 저자의 무공이 심상치 않다. 협공해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는 게 낫지 않겠나.”

마초는 방덕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자는 내가 단기로 상대하겠다.”

여포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수련에 몰두했다. 수련의 성과는 허저와의 싸움을 계기로 나타났고, 관우와의 비무를 통해 또 한 번 나타났다. 지금의 마초는 지난 생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여포에게 복수할 수 있는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저자와 싸우면서 내 힘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해 볼 것이다.’

마초는 투구끈을 조였다. 품이 큰 비색 전포를 휘날리며 백마 도철을 몰아 도올의 앞으로 나섰다.

흑마를 탄 도올과 백마를 탄 마초가 잠시 대치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마초였다.

도철이 땅을 박차며 쏘아져 나갔다. 표월오에 탄 도올은 쌍신모를 돌리며 육박해 오는 도철과 마초를 응시했다. 마초는 금마삭을 내밀지 않고 비껴 잡은 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퍽!

마초의 금마삭과 도올의 쌍신모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창대를 맞댄 채 힘을 겨뤘다.

드드드득.

힘겨루기에서는 도올이 조금 우세한 듯했다. 쌍신모가 금마삭을 밀어붙이며 조금씩 전진하자, 마초는 도올이 쌍신모를 미는 방향 그대로 금마삭을 크게 접으며 한 바퀴 돌렸다. 상대의 힘을 읽고 역이용하는 청경의 수법이었다.

도올도 마초의 청경이 이 정도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크게 휘청였다. 마초는 금마삭의 자루 끝으로 도올의 얼굴을 찔렀다.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도올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틀어 자루 끝에 안면을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탈은 그대로 깨졌다. 깨진 탈 조각이 허공으로 날며 도올의 얼굴이 드러났다.

부릅뜬 고리눈에 밤송이 수염을 한 사내가 있었다. 예상대로 마초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그대를 다시 보는군.”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도철을 몰아 옆으로 돌았다.

장비, 자는 익덕.

여포, 관우, 마초와 함께 혼자서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수 있는 천하 용장으로 거론되는 무장이다. 지금은 변변한 근거지도 없이 하북의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는 신세였다.

장비는 얼굴에 흐른 피를 슥 닦고 표월오를 몰아 마초의 반대편으로 돌았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군. 투장으로 승부를 내려고 했는데 적장이 이토록 강하다니.”

“천하의 장익덕 장군에게 칭찬을 듣다니 영광인걸.”

“그러니 내 손속을 둘 수가 없는 것을 이해하게.”

장비는 그렇게 말하며 쌍신모를 반대로 고쳐 잡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