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마초 대 손책
마초의 군막.
“제정신이라면 허도를 습격한다는 생각을 할 리 없지. 손책은 야망에 눈이 멀어 미친놈이다. 아마 회담장에서 나를 기습할 생각이었을 거야.”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마초는 갑옷과 옷가지를 훌훌 벗어 던지고 나신을 드러냈다. 무장치고 가늘어 보이던 몸은 옷을 벗으니 서역의 조각상처럼 균형 잡힌 근육질이었다. 남들보다 긴 다리와 유독 발달한 등의 근육이 도드라졌다. 칼날과 화살로 인해 여기저기 난 상처는 흉측함 대신 거친 남성미를 더했다. 누구라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몸이었다.
촤아아.
마초는 열을 식히기 위해 찬물을 뒤집어썼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은 후 다시 비단옷을 걸쳤다. 그리고 화로 옆으로 다가가 나관중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우를 볼모로 잡히게 됐으니 생각이 좀 바뀌었겠지.”
“주공, 하지만 손책은 군사를 잘 부리는 인물이고 강동에서 인망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제거하는 게 좋다.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나관중을 보며 마초가 씩 웃었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나. 다만 전쟁이 끝난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지.”
“이 전쟁이 끝난 다음이요?”
“원소를 물리치면 다음 상대는 조조다. 손책은 조조의 후방에 위치한 적이고, 하후돈을 참살하며 조조와 씻을 수 없는 원한을 지었지. 적의 적이니 잘 써먹을 수 있지 않겠나.”
“으음… 그러면 진짜로 손책과 강화를 할 생각이시군요. 나중에 조조의 뒤를 치기 위해.”
“그래, 모든 건 그가 하기에 따라 달렸지. 그래도 아우를 볼모로 잡히면 좀 얌전해지지 않을까?”
마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호상에 앉아서 깍지를 낀 두 손을 머리 뒤에 두었다.
곧 마가군의 장수들이 군막으로 집결했다. 양군이 아직 대치 상황에 있으니 유사시 군사를 지휘할 방덕을 제외하고 전원이 군막에 모였다.
황권과 나관중이 마초의 양옆에 앉았다. 마대와 월길이 그 뒤에 시립했다. 장료와 감녕은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잠시 후 손책이 들어왔다. 평복 차림의 마초와는 달리 갑옷에 투구까지 쓰고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강동의 호랑이가 꼴이 말이 아니게 됐군.”
마초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손책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마초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대만 없었어도 천하를 호령했을 텐데.”
손책이 마초의 맞은편 자리에 앉자 뒤이어 수행원들이 들어왔다. 작은 키의 젊은이 하나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의 장한들이었다. 마초는 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많이도 데려왔군. 설마 진짜로 기습할 셈인가?’
손책이 기습한다면 그때는 그때대로 상대해 줄 셈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들어온 인물을 보니 아무래도 진짜 회담을 할 생각인 듯했다. 이제 17~8세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체격은 건장했는데 다리가 짧고 상체가 길었다. 미남은 아니지만 관상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각진 턱과 고집스러운 콧날을 가지고 있었다.
“저 공자는 누구신가?”
“손권, 자는 중모. 파로장군(손견)의 차남이자 토역장군(손책)의 아우입니다. 복파장군을 뵙습니다.”
볼모가 되기로 한 손권은 마초를 보며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인사했다. 훗날 오나라 황제까지 오르는 그지만, 지금은 그저 덩치만 큰 소년이었다. 마초는 웃으며 손권을 맞았다.
“잘 오셨소. 대강의 사정은 토역장군께 들으셨을 것이오. 비록 시작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공자께서 이번 기회에 넓은 천하를 견문하고 강동으로 돌아간다면 훗날 더 좋은 일이 되지 않겠소?”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손권을 군막 밖에서 대기하게 했다. 군막 밖에는 강족 무사들이 잔뜩 늘어서 있으니 혹시라도 손책이 허튼짓을 할 경우, 손권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손책은 계속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초는 그런 손책의 표정을 관찰하다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겨뤄 보니 강동군에는 참으로 맹장이 많더군. 손 장군을 따라온 귀공들도 어지간한 용사들일 것이오. 내 기억해 둘 것이니 한 분씩 이름을 알려 주시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거한이 손책을 슬쩍 바라봤다. 손책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한이 공수하며 말했다.
“주태, 자는 유평. 양주 구강군 출신입니다.”
“여몽, 자는 자명. 본래 이 근처 여남군에서 자랐습니다.”
“진무, 자는 자열. 여강 출신이올시다.”
그리고 장흠, 동습, 능조까지.
손책을 따라온 여섯 장수 모두 지금까지는 무명이다. 그리고 모두가 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강동의 맹장들이기도 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휘하의 맹장들을 다 데려온 것이다.
하나씩 그들의 이름을 듣던 마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손책. 무슨 생각이냐?”
마초가 불쑥 물었다. 손책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냐니, 그대야말로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강화를 하기 위해 볼모까지 데리고 왔지 않는가.”
“이 자리에 데려온 여섯 명이 전부 일당백의 맹장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강화 협상을 하는데 여섯이나 되는 맹장이 무슨 필요가 있나. 대체 뭘 하러 온 거냐?”
“하.”
손책은 노란 눈을 크게 떴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저 여섯 명이 전부 맹장인 건 어떻게 알았나?”
“내 말에나 대답해라. 이 자리에서 나를 기습이라도 할 셈이냐?”
“이런, 들켰군.”
손책은 마초를 보며 씩 웃었다. 군막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잠시 손책과 눈싸움을 벌이던 마초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완전히 미친놈이군. 불과 한 시진 전에 나와 투장을 벌여 패하지 않았나.”
“그래. 그 거대한 백마와 쇠를 자르는 장도가 있는 한 너를 이길 방법이 없겠더군. 그런데 백마는 군막 밖에 묶여 있고, 장도는…….”
손책은 손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 5척 장도 치란은 군막의 구석 벽에 걸려 있었다.
“저기에 걸려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도 해 볼 만하지.”
한 시진 전의 투장에서는 명확하게 마초가 우세했다.
그런데 마초는 긴 창과 5척이나 되는 장도를 주무기로 쓴다. 손책은 마상 전투가 아니라 좁은 군막 안에서의 난전이라면 짧은 직도를 주무기로 쓰는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맹장이 여섯 명이나 같이 있으니 수적으로도 유리하다.
‘7대 7이지만 우리가 우세하다. 우리는 일곱 명 전원이 무사. 반면 마초의 수하들 중에서 무공이 있는 건… 마초, 실눈을 한 녀석, 방울을 달고 있는 녀석, 까치머리의 소년, 강족 청년, 그리고 밤송이 수염을 한 군사까지 여섯 명. 얼굴 하얀 서생은 무공이 없다.’
손책은 평온한 얼굴로 개전을 예고했다. 잠시 헛웃음을 짓던 마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깥에 네 아우가 있다. 네가 싸움을 걸어서 지면 네 아우는 죽는다. 설령 이기더라도 매우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그렇겠지.”
“싸울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아우를 데려오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대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에 따라 진짜 강화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하나가 죽으면 서로에게 뒤를 맡기기로 한 사이다. 쩨쩨하게 목숨 따위에 연연할 것 같은가.”
“야망을 위해 형제의 목숨을 걸겠다는 거냐? 한심한 놈이군.”
마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형제의 목숨을 걸었던 과거를 생각하는 것일까.
잠시 후, 마초가 눈을 뜨자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오냐. 덤벼라.”
그 말이 신호였다. 손책이 자리를 박찼다.
스르릉.
손책의 칼은 칼집에서 뽑히며 가슴을 저미는 듯한 소리를 냈다. 4척의 직도였다. 내구력 때문에 도신을 두텁게 만들었던 원래의 직도와는 달리 칼날이 가늘었다. 단 한 명의 적만 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마초는 여전히 호상에 앉아 있었다. 손책이 칼을 뽑아 달려들자 나직이 한 마디를 읊조렸다.
“흥패.”
깡!
멀찌감치 서 있던 감녕이 어느새 달려와 있었다. 감녕은 사각철간을 들어 손책의 칼날을 쳐냈다. 두 사람이 직도와 철간을 들고 잠시 대치하는 사이, 손책의 옆에서 주태가 칼을 뽑아 들고 뛰어들었다.
마초는 계속 호상에 앉아 있었다. 주태가 달려들자 다시 한 마디를 읊조렸다.
“문원.”
쨍!
어느새 미끄러지듯 다가온 장료가 주태의 칼날을 쳐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마초를 사이에 두고 장료과 주태, 감녕과 손책이 어지럽게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큭, 이런 제길!”
“형님에게서 더러운 손을 떼라!”
월길과 마대, 황권도 각자 칼을 뽑아 들었다. 장흠과 진무, 동습이 각각 그들을 상대했다.
순식간에 열 자루 칼이 어울려 불꽃튀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관중은 혼비백산해서 군막의 구석으로 물러나 있었다.
‘아직 두 명이 보이지 않는군.’
그렇게 생각하던 마초는 별안간 고개를 옆으로 크게 틀었다.
쐐액!
마초의 머리가 있던 자리로 비도가 날았다. 비도를 던진 것은 단단한 체격의 무사였다.
“그대가 능조인가.”
“그렇소.”
마초는 천천히 일어나서 능조 쪽으로 다가갔다. 주먹을 쥔 능조가 두 팔을 교차하자 주먹 사이로 세 자루씩, 도합 여섯 자루의 비도가 솟았다. 능조는 눈으로는 마초의 푸른 눈을 마주 보며 교차한 두 팔을 힘껏 뿌렸다. 여섯 자루 비도가 마초를 향해 날았다.
팟!
비도는 허공을 갈랐다. 마초는 자세를 낮춘 채 능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마초의 눈동자가 발하는 푸른 빛이 허공에 길게 그어진 것처럼 보였다. 능조는 손에 남은 비도를 한 바퀴 돌려 역수로 잡았다.
그러나 비도로 마초를 찍으려 했을 때, 이미 마초의 팔이 자신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있었다.
콰직!
“크윽!”
마초가 팔을 한껏 돌리자 겨드랑이를 제압당한 능조의 상체가 크게 숙여졌다. 어깨 관절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싸움의 흥분 때문인지 아픔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제길, 그렇다면!”
능조는 제압당하지 않은 왼손으로 또 다른 비도를 꺼내 들었다. 마초를 이기는 건 무리더라도 발에 비도를 박아서 부상을 입히는 건 가능할 것이다. 능조가 마초의 발을 노리고 출수했을 때, 별안간 마초의 다리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퍽!
우드득!
무릎차기에 맞은 능조의 머리가 크게 뒤로 꺾였다. 순식간에 앞으로 꺾였다가 다시 뒤로 꺾이게 된 오른쪽 어깨에서는 다시 한번 불쾌한 소리가 났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통증을 느끼지도 못한 채, 능조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제 6대 6인가.’
맨손으로 능조를 제압한 마초는 다음 상대를 찾았다. 여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공! 칼을 받으십시오!”
그때, 여몽의 새된 고함이 울렸다. 여몽은 군막 한켠에 걸린 치란을 낚아채 손책을 향해 던졌다.
“흡!”
손책은 칼을 한 번 크게 휘둘러 감녕을 떨쳐 내고 한 바퀴 크게 굴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여몽이 칼집째 던진 치란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팟.
손책은 그대로 치란을 뽑아 허공에 한 바퀴 돌렸다. 무게중심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칼날에 떠오른 검은 물결무늬가 섬뜩한 빛을 뿜었다.
“마초, 그대는 실로 천하 용장이다. 그러나 너무 방심했군. 내가 이 칼을 얻은 이상 우리가 우세하다.”
깡!
주태가 칼을 크게 휘둘러 장료를 떼 내고 손책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흠, 진무, 동습, 여몽, 그리고 큰 부상을 입은 능조까지 비틀거리며 손책의 곁에 섰다.
마초의 옆으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감녕과 장료, 마대, 월길, 황권이 차례대로 마초의 옆에 섰다. 군막 한켠으로 피해 있던 나관중도 부리나케 달려와 대열에 합류했다.
“하하.”
마초는 낮게 웃으며 왼손을 내밀고 감녕을 바라봤다.
“흥패, 철간을 한 자루 빌려주게.”
감녕은 말없이 왼손에 든 좌철간을 내밀었다. 마초는 감녕이 내미는 각진 쇠몽둥이를 들어 허공에 몇 번 휘두른 뒤 어깨에 걸쳤다.
“손책. 네가 빼앗은 그 칼이 천하제일의 명도인 것은 맞다.”
마초는 마치 남의 일처럼 칼에 대해 얘기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손책도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석 장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좋은 칼을 들면 나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철간을 눈앞에 세웠다. 손책은 씩 웃으며 마초를 향해 내달렸다.
“너야말로 착각하지 마라, 마초. 칼의 힘, 말의 힘, 서량 군사들의 힘… 네가 그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아버지의 힘. 그건 네 힘이 아니다.”
손책은 왼발로 땅을 박찼다. 거기서부터 만들어진 힘은 발목,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의 관절이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더욱 가속됐다. 마지막으로 손책의 손목이 크게 돌았다. 손가도법 절초 호포였다. 이번에는 천하제일 명도 치란을 통해 발출됐다.
마초는 자신의 칼을 들고 짓쳐 오는 손책을 향해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리고 철간을 세워 날아오는 칼날을 맞이했다.
그리고 철간과 치란이 맞닿는 순간, 마초가 청경을 시전해서 손책이 가하는 힘의 방향을 바꿨다. 이번에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었다. 손책이 힘을 가하는 바로 그 방향, 손책의 전면이었다.
호포를 통해 칼날을 한껏 가속시켜 정면으로 힘을 쏟아내던 손책이다. 마초가 그 힘을 받아서 더욱 가속시키자 손책이 휘두른 칼날은 오히려 더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칼을 휘두르는 손책의 몸은 중심을 잃고 칼에 딸려 가게 되었다.
“크윽!”
손책이 앞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몸이 중심을 잃었으니 칼날이 무사히 목표물을 찾아갈 리 없다. 마초는 허공을 베고 지나간 치란의 도신 옆에 사각철간을 밀착시키고 그대로 칼날을 따라 밀어쳤다.
쾅!
철간은 손책의 쇄골을 쳤다. 요란한 파열음이 귀를 때렸다. 손에 분명히 감촉이 왔으니 쇄골이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손책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초는 그런 손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들과 대적해 온 나다. 네 눈에는 내 명도와 명마만 보이고 내가 겪은 싸움들은 보이지 않더냐.”
“크윽…….”
“주, 주공!”
“주공!”
강동군 장수들이 저도 모르게 손책을 불렀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손책이다. 마초의 명도까지 빼앗았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몽은 이를 갈았다.
‘명마, 명도… 그런 것들이 큰 의미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마초가 이 정도였던가.’
단신으로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수 있는 무장을 세간에서는 천하 용장이라고 부른다. 지금 천하 용장으로 거론되는 것은 네 명.
천하제일인 여포.
만인적(萬人敵)이라 불리는 관우와 장비.
그리고 서량의 마초가 있었다.
마초는 쇄골이 부러진 채 한쪽 무릎을 꿇은 손책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너를 살리고자 했다. 오늘 내게 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구나. 어째서 이렇게까지 무모한 것이냐.”
원교근공, 먼 곳의 상대와 화친하고 가까운 곳의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그러니 앞으로 조조와 싸우게 됐을 때를 대비해 손책을 살려서 조조의 후방을 견제하고자 했다.
손책은 허도를 직접 노린 역적이다. 그와 강화를 하는 것은 근황부도독으로서 마초의 정치적 입지에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자가 싫지 않았다.’
손책은 원래의 역사에서 마초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보다 더 빠르게 천하를 노렸다. 그리고 마초만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래서 원수처럼 싸우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중상을 입은 손책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보였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무모하냐니, 그걸 몰라서 묻느냐.”
너는 천하가 갖고 싶지 않은가.
손책은 대답 대신 마지막 힘을 쥐어짜 치란을 휘둘렀다. 쇠도 자르는 장도다. 맞출 수만 있으면 평복을 입은 마초의 몸은 두 조각이 날 것이다.
퍽!
콰드득!
마초는 철간의 끝부분으로 치란을 막았다. 치란은 철간을 세로로 쪼개면서 파고들어 왔다. 그러나 손책이 무릎을 꿇은 채 휘두른 칼이니 몸의 힘이 온전히 실리지 않았다. 불꽃을 튀며 철간을 베어 내려가던 치란은 결국 철간의 자루에 한 치 못 미친 곳에서 멈췄다.
쿵.
마초는 그대로 철간을 내던졌다. 철간에 박힌 치란이 같이 땅바닥을 굴렀다. 마초는 그대로 손책의 멱살을 붙들고 번쩍 들어 올렸다. 손책이 마초의 팔을 잡고 힘을 써 봤지만, 청경을 쓰는 마초에게 손책이 쓰는 힘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목숨은 뺏지 않겠다. 하지만 군웅으로는 끝내 주마.”
공중에 들어 올린 손책을 보는 마초의 눈이 어딘가 쓸쓸했다. 마초는 그대로 두 발짝을 걸어가 손책의 얼굴을 화로에 처박았다.
쾅!
치이이익.
뭔가가 타는 소리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아주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뒤이어 얼굴에 화상을 입은 손책의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