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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74화 (174/306)

174화. 강동의 호랑이, 관서의 사자 (1)

손책이 수춘성을 떨어뜨렸다.

이 사실은 봉화를 통해 나는 듯 빠르게 허도로 전달되고, 뒤이어 숭산의 마초에게도 전해졌다.

마초는 그대로 남쪽을 향해 출진했다. 황하 전선에 투입된 서황과 관우, 본진을 지키는 순유를 제외한 다른 장수들이 전부 마초와 함께했다. 마초의 군사들이 허도까지 이르렀을 때, 수춘성이 함락되고 하후돈과 조순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순이라면 원래의 역사에서 호표기의 대장이던 자가 아닌가. 조맹덕이도 참 상종 못 할 놈이군.”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어쩐지 황하의 전장에서는 호표기가 보이지 않았다. 조순을 보내 수춘성에서 몰래 호표기를 육성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호표기는 천하 용장을 잡기 위해 육성하는 부대다. 조조가 잡으려는 천하 용장이 누군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관중도 한숨을 쉬었다.

“아마 전쟁이 끝나면 주공과 싸울 것으로 보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속이 시커먼 놈이야. 그런데 엉뚱한 손책이 쳐들어와서 호표기는 물론 하후돈까지 잃었으니 지금쯤 길길이 날뛰고 있겠군.”

“문제는 손책이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원래의 역사에서도 많은 승리를 거뒀지만, 그것은 강동의 호족들과 태수들을 상대로 쌓은 전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광릉의 진등을 꺾고, 서주에서 유현덕을 패퇴시키고, 이제 하후돈까지 참살한 후, 허도로 진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이상합니다.”

“글쎄, 조조군 내부에 손책의 간자가 있는 것 아닐까. 아니면 원래도 이 정도의 실력이 있었는데 다 펼치지 못하고 요절했던 것일 수도 있지.”

원래의 역사에서 손책이 다 꽃피우지 못했던 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초는 손책군의 동향에 대한 보고서를 읽으며 말했다.

“손책의 군사는 많아야 1만일 것이다. 그 정도의 군사로 허도를 직접 치려고 한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휘하 장수들의 무용이겠지요. 손책군의 장수들 중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태사자와 황개뿐입니다. 그 외의 인물들은 철저히 무명이지요.”

마초와 나관중은 역사서의 기록과 마초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손책군에 누가 있을지 추측했다. 주유는 강동을 진수하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주태와 장흠, 진무, 능조 정도는 함께 있을 것 같았다. 전부 오나라의 공신들이었다.

“어쩌면 여몽까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하여튼 명성은 없어도 실력은 쟁쟁한 녀석들이 있을 테니 그들의 무용으로 전황을 뒤집을 생각이겠지.”

“그렇지만 마가군에는 그 이상으로 맹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힘 싸움으로 손책과 맞설 예정이시지요?”

마초는 나관중의 말을 듣자 피식 웃었다.

“글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신중해야겠지. 내 힘을 자랑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한 명의 장수도 잃지 않고 완벽하게 손책을 이기는 게 먼저다. 그러자면 기다려야겠지.”

빠르게 진군하자면 얼마든지 진군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거리를 진군할수록 군사들이 지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마초는 묵묵히 지도를 보다 한 점을 짚었다. 얼마 전 원술을 격멸한 예주 진국이었다.

“이곳이 좋겠군. 진국에서 손책과 싸울 것이다.”

손책의 목표가 허도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예상되는 진격로도 확실하다.

마초는 선택한 전장은 허도의 지척에 위치한 진국이었다. 이곳까지 손책을 끌어들인 후, 한판 싸움을 벌일 생각이었다.

* * *

7일 후, 예주 진국.

마초는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국 도성 인근의 벌판에 진을 쳤다. 회수와 영수를 따라 북상하다 보면 닿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손책의 기세는 매서웠다. 수춘성을 돌파한 뒤 신현, 영음현, 항현의 세 고을을 연이어 함락시키며 진격해 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쾌진격이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적진을 돌파하다 보면 군사들에게도 그만큼의 피로가 쌓이지.”

마초는 근처의 언덕에 올라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손책의 강동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연이은 승전으로 피로를 잊었겠지만, 눈앞에 자신들의 세 배나 되는 마가군이 나타나면 피로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첫 전투에서 밀리기라도 한다면 누적돼 있던 극심한 피로가 강동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손책의 군사는 1만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1만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림잡아도 8천은 넘어 보였다. 저들 중 약 2천 기가 기병일 것이다.

반면 마초의 군사는 3만. 게다가 기병만 7천에 달한다. 손책의 강동군 이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한 서량병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정석적인 포진이군. 중군을 손책이 이끌고, 좌우에 빠른 부대를 배치해서 포위 공격을 노리겠다는 것인가.”

손책의 포진을 확인한 마초는 마가군의 포진을 지시했다.

“계획대로 간다. 좌군!”

“방덕이 여기 있습니다, 소주공.”

좌군을 이끄는 방덕은 마초에게 공수한 뒤 군사들을 이끌고 천천히 강동군 진영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방덕의 군사들이 다가오자 상대의 진영이 꿈틀거렸다. 곧 강동군의 우군을 맡아서 마가군 좌군과 맞서 싸울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이거 옛날 생각이 나는구만. 문대(손견의 자) 대형을 따라 서량 놈들과 싸우던 시절이 있었지.”

웃통을 벗어 던지고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황개였다. 아직 수춘성 전투에서 화살에 맞은 상처가 다 낫지 않은 듯 여기저기 붕대를 하고 있었지만 고집스럽게 상체의 맨살을 노출하고 있었다.

마초는 다시 오른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군.”

“예에.”

“뭐야, 목소리에 왜 힘이 없어?”

“그야 독립 부대를 지휘하는 건 처음이니까요.”

마초는 우군의 지휘를 맡긴 장료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엄살은. 부대 지휘라면 여포 휘하에서 많이 해봤잖아? 자네 실력은 다 알고 있으니까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예, 뭐 그래야죠.”

우군의 지휘관으로 발탁된 장료는 기운이 없었다.

‘대체 교위 벼슬로 얼마나 부려 먹으려는 거야?’

마초는 그런 장료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 활약하면…….”

“활약하면?”

“아마 장군이 되지 않을까? 잡호장군 자리 정도는 줄 수 있을걸.”

“으흠, 그러면 봉록은요?”

“글쎄, 천 석은 넘게 받겠지?”

장료는 봉록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실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복파장군. 이 장료가 반드시 저 강동 놈들을 격멸하겠습니다!”

“봉록을 더 받고 싶으면 그래야지. 단 무리해서 적진을 돌파하지는 말도록. 우리에게는 세 배의 병력 우위가 있다. 그저 교착 상태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유리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사실 부대 지휘 능력도 괜찮습니다.”

장료는 자신 있게 말했다. 장료가 원래의 역사에서 보인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마초는 피식 웃으며 장료에게 우군을 맡겼다. 뒤이어 강동군의 좌군이 장료를 상대하기 위해 나왔다.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쏴라!”

첫 번째 충돌은 좌군 쪽에서 일어났다. 방덕이 이끄는 마가군 좌군이 황개의 강동군 우군과 충돌한 것이다.

방덕의 지휘 아래 궁기병들이 쏘는 화살이 어지럽게 날았다. 궁기병들은 연달아 세 발을 쏜 후 뒤로 빠지고, 뒤이어 큼지막한 방패를 든 중보병들이 전열로 나섰다.

황개의 대처는 침착했다. 방패를 앞세워 최대한 피해를 줄인 뒤 빈틈없는 지휘로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접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살만 교환하고 있으면 결국 활이 많은 놈들이 유리하지.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상대하려면 난전이 낫다.”

부대가 한 번에 무너지는 공격은 일제사격과 돌격이다. 난전이 되면 일제사격과 돌격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싸움이 길어질 수 있다. 황개는 궁기병 사격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방덕의 부대에 접근했다.

“난전을 걸 셈인가. 그렇다면 이쪽은 주력이 아니군.”

방덕은 그렇게 중얼거린 후 호령했다.

“궁기병, 다시 활을 쏴라! 후퇴하며 적에게 공간을 내줘도 좋다. 최대한 많은 화살을 퍼부어 적의 포진을 흔든다!”

방덕의 지시를 받은 궁기병들은 황개의 부대 앞으로 달려 나가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접근했다. 활을 쏜 뒤 물러나고, 다시 활을 쏜 뒤 물러나며 조금씩 충격을 누적시켰다. 그 과정에서 황개의 부대는 계속 전진하며 조금씩 공간을 차지해 가고 있었다.

반면 우군의 장료는 그새 강동군 좌군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방패와 칼을 든 마가군 도순병들이 강동군의 1열과 교전하는 것을 보고만 있던 장료는 강동군 1열이 조금씩 마가군 도순병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호령했다.

“2열! 3열! 창을 들어라!”

퍼퍼퍼퍽!

2열에 있던 창병들이 일제히 창을 뻗었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1열 도순병들의 사이로 창이 튀어 나가자 기세 좋게 전진하던 강동군 1열의 병사들이 창에 찔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이어 2열보다 훨씬 긴 장창을 든 3열이 머리 위로 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2열이 자세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창을 내려쳤다.

퍼퍼퍽!

“으아악!”

2열과 3열에 창의 길이에 따라 두 종류의 창병을 배치하고 동시에 운용해서 한 번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전술이었다. 장료가 지휘하는 창병들은 강동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장문원이 말로는 귀찮은 척해도 단단히 준비했군. 저만한 재주를 썩히며 검객 노릇만 하자니 재미가 없었나.”

중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초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역사에서 조조 휘하에 수많은 명장들이 있었다. 조인, 장합, 서황 등과 함께 그중 최고로 거론되는 것이 장료다.

‘그러니까 전투 지휘를 맡기면 저 정도 할 줄 알았지.’

그때, 장료에게 적장이 다가왔다. 체격이 무척 큰 사내였다. 그가 들고 있는 철창은 길이는 길지 않지만, 무척 무거워 보였다.

“마가군의 장료인가.”

“그런데, 누구신지?”

적장은 다짜고짜 장료를 향해 철창을 겨누고 말을 달려 들어왔다.

“구강의 주태. 투장을 청한다.”

“후회할 텐데.”

장료는 씩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깡!

한껏 힘을 실어 휘두른 일격이 주태의 철창에 닿아 불꽃이 튀었다. 주태는 장료의 일격을 받아낸 뒤, 그 방향 그대로 철창을 빙글 돌린 후 장료의 얼굴을 찔렀다.

쉬익!

그러나 눈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장료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미리 돌리자 주태의 철창이 원래 장료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정확히 꿰뚫고 지나갔다.

“흠, 힘도 좋고 창술도 예리하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한 수 배우지.”

주태는 태연하게 대꾸하고 계속 철창을 휘둘러 장료를 압박했다. 장료는 중간중간 빈틈을 보고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주태의 창술 또한 경지에 올라 있어서 쉽게 당하지 않았다. 주태는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장료와 40여 합을 어울려 싸웠다.

정신없이 싸우는 좌군과 우군 사이로 수많은 전령들이 교차하며 오갔다. 마초가 의료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게 통신이라 마가군의 병사 수 대비 전령 수는 다른 군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그렇게 오가는 정보들을 순식간에 취합해서 작전계획을 내는 것은 군사 황권이었다.

“좌군, 아군 손실 경미. 적군 손실도 아직 경미합니다. 곧 난전이 벌어집니다.”

“우군은 난전이 벌어졌습니다. 장료 장군이 적장 주태와 투장을 벌이는데 우세하다고 합니다.”

“주태를 쉽게 제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원에게 적당히 싸우고 전선을 소강상태로 유지하라고 전하라. 필요하면 물러나도 좋다.”

“알겠습니다.”

마초는 좌군과 우군의 전황을 보고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군.”

방덕의 좌군이 상대하는 것은 부상에서 채 회복되지 않은 황개. 장료의 우군이 상대하는 것은 아직 무명인 주태.

적장 중 양익에 배치하기 가장 좋은 건 태사자다. 그러나 좌익에도, 우익에도 태사자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초의 근처에 있던 나관중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주공, 예상하신 대로 손책의 노림수는 중군인가 봅니다.”

“그래. 직접 중군을 이끌고 나를 쳐서 결판을 내려고 할 것이다.”

마초는 손책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손책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병사의 수는 3분의 1의 열세, 병사의 질도 높지 않다. 이제까지 그가 의지해 온 무장들의 용맹도 마가군의 방덕과 장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수장인 나를 직접 잡는 방법뿐이다.’

손책 또한 일신의 무예가 대단히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을 활용해서 자신과 승부를 내 보려고 할 것이다.

마초는 방덕과 장료에게 절대 서두르지 말 것을 거듭 강조했다.

“어차피 승부는 중군에서 갈린다. 약간의 이득만 취하며 버텨라!”

병력이 열세일 때는 적은 수의 손해도 치명적이다. 양익의 전황이 마가군에 유리하게 돌아갈수록 손책은 초조해질 것이다.

전투 개시 후 삼 각이 지났다. 장료와 60여 합을 겨룬 주태가 물러나고, 방덕을 압박하던 황개의 전진이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때.

두두두두.

강동군 중앙에서 한 무리의 병마가 달려 나왔다. 이천 정도로 보이는 기병대였다. 기병들은 여느 북방의 기병대 못지않은 속도로 마초의 군기를 향해 내달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맞수를 만났군.’

마초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푸른 눈이 타는 듯이 빛나고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도철을 데려오너라.”

마초는 이동용 말에서 내려 병사들이 낑낑거리며 끌고 온 도철로 옮겨 탔다. 금빛 갈기를 한 거대한 백마는 전장의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난폭한 동작으로 땅을 박찼다.

그 위에 올라탄 마초는 여느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은빛 갑옷에 비색 전포를 두르고, 풍성한 흰 술이 달린 사자 투구를 쓰고 있었다. 왼손으로 금마삭을 쥐고 겨드랑이에 끼우자 멀리서 달려오는 상대가 보였다.

돌진하는 강동군의 선두에는 붉은 두건을 쓴 장수가 있었다. 마초는 그를 향해 금마삭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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