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72화 (172/306)

172화. 조호이산(調虎離山)

수춘성.

하후돈은 얼마 전 부임한 부장이 올린 작전계획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부장을 올려다봤다. 그는 키가 무척 커서 팔척장신의 하후돈보다도 한 뼘이 더 컸다.

“헛, 맹덕 형님이 유능한 부장을 붙여 준다고 해서 얼마나 유능하기에 그러나 했는데, 진짜 유능하구만. 자네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만총, 자는 백녕이라 합니다.”

만총은 공손하게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하후돈은 흡족하게 웃으며 만총의 어깨를 두들겼다.

“만백녕이 아주 복덩이야. 그래, 시간도 모자랐을 텐데 이런 계획은 어떻게 짰나?”

“부임하는 길에 먼저 수춘성 주변을 정찰해서 지형부터 파악했습니다. 장수 된 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만총은 별일 아니라는 듯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하후돈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만총이 혹시 모를 남방에서의 위협에 대비하여 준비한 계책은 빈틈이 없었다.

‘보통 놈이 아니군. 행정에 능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용병의 재주는 그 이상이구나. 오래 살기만 하면 삼공까지도 할 만한 재목이 아닌가?’

전쟁터에서는 용맹하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병사들로부터는 신임이 두터운 하후돈이다. 그러나 용병의 재능만은 썩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도 같은 친족이라 해도 중요한 싸움에서는 조인이나 하후연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토록 용병에 능한 젊은 만총이 부장으로 있어 준다면 그런 자신의 약점이 완벽하게 보완되는 것이 아닌가.

“맹덕 형님이 나를 잊지 않았군. 이런 복덩이를 주다니.”

그런데 조조가 하후돈에게 붙여 준 부장은 만총뿐만이 아니었다. 하후돈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또 다른 젊은 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화(조순의 자), 설마 네가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구나. 자효(조인의 자)를 따르지 않고.”

“저와 조자효가 형제간인 건 사사로운 일이고, 형제가 같이 사공을 섬기는 건 나라의 일입니다. 자효 형님은 하후 장군과 같은 국가의 큰 동량이고, 저는 이제 첫 출진을 하는 장수에 불과한데 어찌 전장을 고를 수 있겠습니까?”

조인의 아우이자 조조의 육촌 아우인 조순이었다. 조순은 어려서부터 대담하고 무예에 능해 모든 일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조순이 첫 출진을 하는 장수다운 씩씩한 태도로 대답하자 하후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라면 호표기를 맡길 만하지. 맹덕 형님이 고민을 많이 하셨구만.”

조순은 장재가 있고 성정이 곧으며, 무엇보다 조조의 친족이다. 그러니 그 또한 오래 산다면 삼공까지 할 만한 재목일 것이다.

용감한 조순과 지혜로운 만총. 지금 조조의 휘하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이들을 부장으로 맡게 된 하후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성의 방어는 만총이, 호표기의 육성은 조순이 맡아 줄 것이다. 자신은 굳이 나서서 젊은이들을 방해하지 않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하후돈의 계획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문제를 맞게 되었다.

“회수의 영채가 함락됐다고?”

전령의 보고를 듣는 하후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습니다! 강동군의 진무라는 놈이 야음을 틈타 아군의 영채를 들이쳤습니다. 놈들은 그대로 회수를 따라 영천 방향으로 북상했습니다!”

강동군이 수춘성 근처의 영채를 공격했다. 그리고 선봉에 선 진무는 수춘성을 지나쳐 회수를 따라 영천으로 북상했다.

영천은 조조군의 근간을 이루는 영천 호족들의 근거지이다. 게다가 영천군 안에는 허현이 있다. 지금 천자의 황궁이 있는 곳, 그래서 허도라고 불리고 있는 바로 그곳이다.

“설마 허도를 직접 노리는 것인가? 완전히 미친놈이구나.”

하후돈의 미간이 꿈틀거릴 때, 부장 만총이 나서서 전령에게 물었다.

“적이 수춘을 지나쳐 영천으로 향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만총 장군.”

“적병의 수가 몇이나 되던가?”

“밤이라 확실치는 않으나… 일단 큰 배가 열 척, 작은 배가 삼십 척 정도였습니다.”

만총은 잠시 적의 수를 계산한 후, 하후돈을 제지했다.

“고정하십시오, 장군. 그 정도면 적병은 많아도 천여 명 남짓. 허도의 금군은 물론이고 영천의 주둔군과도 대적하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하지만 그놈들이 수춘을 지나쳐 영천 방향으로 갔다고 하지 않나?”

“이는 우리를 끌어내려는 손책의 계교일 것입니다. 병법에 호랑이를 유인해서 산에서 나오게 하라(調虎離山)고 하였습니다. 손책은 우리가 다급하게 수춘성을 나서면 우리의 뒤를 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하후돈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말이 옳네. 그런데 손책이 우리의 뒤를 친다면 어떻게 할 것이라 보는가?”

만총은 창밖으로 보이는 북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부임한 후, 저 북산에서 매일 때마다 봉화를 올리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봉화가 오르지 않았지요. 이미 북산도 손책의 손에 떨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손책의 계산은… 우리의 주력군이 성을 나섰을 때 북산에 매복시킨 병력들을 움직여 성을 탈취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아 주면 됩니다. 아장 하나를 보내 늙고 병든 군졸들로 진무를 쫓는 척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주력은 성내에 매복합니다.”

“적을 이 수춘성으로 끌어들여 싸우겠다는 것인가.”

적들이 아무리 수춘성의 지리를 깊게 조사했어도 수춘성 주둔군만큼 지리에 능할 수는 없다. 수춘성이 전장이 되면 손책이 아니라 하후돈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북산의 지형상 많은 군사들이 매복할 수는 없습니다. 적병의 수는 삼천 남짓일 테니, 충분히 수춘성으로 끌어들여 격멸할 수 있습니다.”

“좋네. 그러나 손책이 고작 삼천 병력만으로 수춘성을 치러 오지는 않았을 걸세. 구원군이 있을 텐데.”

“구원군이 온다면 어디로 올까요. 아마도 이곳일 것입니다.”

만총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의 한 점을 가리켰다. 수춘성의 남문이었다.

“수춘성에서 가장 뚫기 쉬운 곳은 남문입니다. 실제로 작년에 관우가 단기로 남문을 뚫은 적이 있지요.”

하후돈은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

“옳거니! 남문 밖의 숲에 호표기를 매복시켜 뒀다가, 적들이 남문 공성을 시작할 때 뒤를 끊으면 되겠군!”

“바로 그렇습니다.”

“좋아. 만백녕 자네에게 지휘를 일임한다. 저 건방진 강동의 애송이에게 중원의 병법을 가르쳐 주게.”

“존명!”

만총은 힘있게 군례를 올렸다.

‘나를 믿어주는 윗전이 있고, 뜻을 펼치기 적합한 병력과 물자가 있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만총은 병법을 깊이 공부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충분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남방에서의 공세는 십 년이라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 * *

수춘성 인근 북산, 원래 조조군의 진지였던 곳.

일단의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을 점령한 황개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수춘성에서 진무 장군을 쫓기 위해 한 무리의 군사들이 떠났습니다. 건무장군 하후돈의 군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오호, 하후돈이 직접 나섰어? 그렇다면 수춘성은 무주공산이겠군.”

전령의 보고를 받은 황개가 씩 웃었다.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내고 자신이 즐겨 쓰는 쇠몽둥이, 철편을 손에 쥐었다.

“하후돈의 병법이 엉망인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잘 속는군. 좋아, 그러면 이제 계획대로 수춘성의 동문을 넘으면 되나?”

황개는 그렇게 말하며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병사들 틈에 섞여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손책이 있었다.

“넘으려면 아재 혼자 넘으시오. 공복 아재는 화살에 맞아도 안 죽지만 병사들은 아니라고요.”

손책은 피식 웃고 황개의 앞으로 나왔다. 병사들 사이에 섞여 있던 여몽과 주태, 능조가 걸어 나와 황개와 나란히 섰다.

“하후돈 밑에 머리 쓰는 친구 하나가 붙었다기에 한번 떠봤는데 진짜로군. 하지만 하후돈의 군기를 올린 게 실책이다. 추격대라면 더 적합한 부대가 있으니 말이야.”

하후돈의 진짜 임무는 수춘성에서 호표기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근에 호표기의 지휘를 맡을 만한 장수가 수춘성에 부임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총과 함께 조조의 친족 조순이 부임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틀림없이 조순이 호표기의 대장일 것이다. 진짜로 추격대를 보낼 생각이었으면 조순의 호표기가 나섰겠지.’

설마 자신이 이만큼의 정보를 알고 있을 줄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손책은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이고 전투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다가 문득 여몽을 보며 말했다.

“자명, 네가 한번 말해 봐라. 네가 하후돈이라면 어떻게 대비했겠느냐?”

“제가 하후돈이라면… 아무 생각이 없겠지요. 만약 제가 하후돈의 부장 만총이라면…….”

여몽은 지도를 훑다가 남쪽의 점을 짚었다.

“이곳, 남쪽의 숲에 호표기를 매복시켰을 것입니다. 북산에 매복한 소수 부대는 동문을 넘고, 강동군의 본대는 남문으로 올 것이라 믿겠지요. 아무리 봐도 그게 가장 이치에 맞습니다.”

“내 생각과 같구나.”

손책은 여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이 작달막한 청년은 매번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남문 쪽에 전령을 보내라. 남문의 숲을 정찰해 보고 수상하면 바로 연기를 피워서 신호하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연기가 올라오면 어떻게 할까요?”

“적의 최고 전력인 호표기가 성 밖으로 나갔다. 저들이 조호이산의 계에 걸렸으니, 우리의 이천 병력으로 수춘성 안에서 승부를 낸다.”

만총은 이미 북산 진지의 규모를 가지고 강동군의 규모를 예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수의 병력을 성내에 배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고려하지 못한 게 있지.’

손책은 황개와 주태, 여몽, 능조를 차례대로 돌아봤다. 황개를 제외하면 완전한 무명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천하에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맹장들이었다.

‘설마 남방의 촌뜨기 군벌이 이만한 맹장들을 거느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겠지. 이들의 무용으로 적의 계산을 뒤엎을 것이다.’

“주공. 그러면 남문 방향은 어찌합니까?”

능조의 물음에 손책은 웃으며 답했다.

“호표기라고 근사한 이름을 붙여 놨지만, 그 본질은 중기병이다. 중기병을 잡는 데는 역시 그 친구가 제일이지.”

* * *

수춘성 남문, 천오백에 달하는 호표기를 이끌고 숲속에 매복해 있던 조순에게 강동군의 정찰병이 발견되었다.

“조용히 처리하라.”

그리고 얼마 후,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자 남문 쪽의 강동군 병사들이 연기를 피웠다. 북산의 손책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연기를 본 손책은 동문을 넘어 돌입할 것이다.

강동군 병사들은 연기를 피운 후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호표기가 매복해 있는 숲에 불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르자 조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의 매복을 눈치 챈 것인가. 좋다, 호표기! 전군 돌격한다!”

호표기는 관우, 장비 같은 천하 용장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기병대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선봉장이 될 수 있는 용맹을 가지고 있으니 적들은 호표기의 돌격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매복을 눈치챘다고 해도 상관없다. 적장이 누구라도 상관없다. 호표기의 한 번 돌격으로 짓밟아 주마!’

그것이 조순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숲 밖으로 나온 천오백의 호표기를 맞이한 것은 강동군의 기병대였다. 숫자는 일천 남짓이니 호표기보다 오히려 더 적었고, 몸에 걸친 갑주도 더 가벼웠다.

그런데 저마다 남방에서 나는 물소의 뿔로 만든 수우각궁을 손에 들고 있었다. 강동군 기병대의 선두에 선 장수는 호표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신호했다.

“화살을 메겨라.”

천 명의 기병들이 일제히 시위에 화살을 얹었다. 천 자루 수우각궁이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장수가 손을 내렸다.

휘이이잉.

화살이 날았다. 물소 뿔로 만든 활은 잡병들이 쓰는 목궁보다 두 배는 멀리 화살을 날렸다. 분명히 호표기는 화살의 사거리 밖에 있었으나 수우각궁을 떠난 화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그런 호표기의 1열에 근접했다.

퍽!

화살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검고 노란 호표기의 갑주를 뚫었다. 사공 조조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육성한 호표기들이 사거리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개의치 말고 돌격하라! 한 번 근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천하의 호표기가 고작 강동군의 이름없는 기병대에게 당할 리 없다. 조순은 근접하기만 하면 호표기의 용맹을 앞세워 단숨에 상대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돌격을 해도 상대와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조순 장군, 적들이 활을 쏘고 도망가는 전법으로 아군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망치는 걸음이 돌격하는 걸음보다 빠를 수 없다. 다소의 손실을 감수하고 돌격한다!”

그러나 일은 조순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교전해 보니 상대 기병대는 엄청나게 많은 훈련을 쌓은 부대였다. 수우각궁으로 터무니없이 긴 사거리에서 화살을 퍼부은 뒤 일사불란하게 물러나서 호표기의 돌격 거리 밖으로 벗어났다.

마치 북방의 유목민 기병들 같은 움직임이었다. 반면 손에 든 무기는 남방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수우각궁이었으니 사거리가 유목민 기병보다 훨씬 길었다. 젊은 조순은 물론이고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일지라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강력한 궁기병대였다.

“이런 빌어먹을, 어디서 이런 놈들이…….”

이를 가는 조순 앞으로 적장이 천천히 말을 몰아 나왔다. 크지도 굵지도 않은 몸에 선비처럼 단정한 외모를 한 사내였다.

“그대가 조조의 족제 조순인가.”

“그렇다! 네 이놈, 남방 출신이 어디서 북방의 기마술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너를…….”

“동래의 태사자다.”

선비 같은 외모의 태사자가 수우각궁을 들어 한껏 시위를 당겼다. 보기와는 달리 힘이 장사인지 활은 단단히 고정돼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긴 팔을 한껏 젖혀서 끝까지 시위를 당기자 활이 잔뜩 드러눕고 시위는 다른 궁기병들의 두 배나 될 만큼 길게 뻗었다.

“동래? 흥, 북방 청주 출신인 놈이 강동까지 흘러가서 손책의 주구 노릇을 한다는 말이냐!”

조순은 태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아장이 넘겨주는 큰 방패를 들어 몸을 가렸다. 화살이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두꺼운 방패였다. 조순은 방패를 앞세운 채 말을 채찍질해 태사자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방패로 화살을 막은 뒤 한 창으로 꿰어 줄 생각이었다.

퍽!

태사자의 화살이 조순의 방패에 박혔다. 예상은 했지만, 태사자의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은 예상보다 더 강했다. 맞는 순간 말과 사람이 함께 휘청거릴 정도의 일격이었다. 버들잎 모양의 화살촉이 방패를 뚫고 조순의 팔뚝을 스쳐 피를 뿌렸다.

그러나 조순은 낙마하지 않았다. 화살의 힘에 밀려 크게 휘청거렸지만 이내 신형을 수습해 창을 곧추세웠다. 그의 창끝이 닿는 곳에는 태사자가 있었다.

태사자는 한숨을 쉬고 두 번째 화살을 들어 시위에 메겼다. 도끼날 모양의 화살촉이 달린 부형시였다. 촉의 무게가 열 냥에 달하니 통상의 중시(重矢)보다 열 배 무거운 화살이었다.

“목숨은 빼앗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구나.”

“이야아아!”

조순은 기합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열 발짝 안으로 줄어들었을 때, 태사자가 시위를 놓았다. 부형시가 날았다.

콰직!

태사자의 손을 떠난 부형시는 조순이 탄 말의 목을 베고 조순이 든 방패를 상하 두 조각으로 갈랐다. 사방으로 피가 흩뿌려졌다.

넋을 잃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 부형시에 맞아 목과 왼쪽 어깨가 사라진 조순의 시신이 천천히 땅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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