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지과위무(止戈爲武)
쏴아아아.
황하 유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겨울비가 거세게 내렸다. 장합은 짧게 한숨을 토했다. 하얀 입김이 날렸다.
안량, 문추, 고람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북방 출신이다. 살을 에는 듯 건조한 추위는 익숙하지만, 뼛속이 시린 습한 추위는 익숙지 않았다. 장합은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게 오한이 들었다.
그런데 추운 것은 정말 날씨 탓일까.
장합은 서황을 구원하러 온 관우를 바라본 후 다시 아군의 장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투구로 얼굴을 가린 문추는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안량은 잔뜩 흥분해서 오한 따위는 느끼지 않는 듯했다.
“으하하하! 내가 너 같은 놈들을 한두 번 본 줄 아느냐? 그래, 남들보다 용력이 세니 유비 밑에서 이름을 좀 날렸겠지. 그런데 그러다 난전에서 어디 한 곳 찔리면 순식간에 이름값만 남은 퇴물이 되는 거다. 얼마 전에 새파란 마초에게 단기접전에서 패하고 그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지?”
“그렇다.”
“핫, 네놈 상태는 안 봐도 뻔하다, 관우. 네놈의 무공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바로 퇴물 관우가 죽는 날이구나!”
신나게 떠든 후, 관우를 향해 돌진하려는 안량을 문추가 제지했다.
“잠깐.”
“뭐냐, 문추?”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하지 마라. 저자가 거느린 병력이 적으니 정공법을 쓰면 이길 수 있다. 일단 대극군으로 포위할 테니 적절한 시기에 선등군을 이끌고 들이쳐라.”
“네놈 혹시 또 공적만 가로채려는 건 아니겠지?”
“입씨름할 때가 아니다. 잊었는가? 저자는 관우다.”
문추가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안량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허나 관우의 목은 나의 것이다.”
“마음대로 해라. 대극군!”
문추가 긴 극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것을 신호로 문추가 거느린 대극군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철갑을 두르고, 긴 극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대극군은 하북의 정예답게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관우가 이끄는 백이병들을 향해 진형을 넓게 펼쳤다.
관우는 전진하는 대극군을 보며 수염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들어 수신호를 했다.
“백이병. 전진하라.”
“우와아아아!”
관우가 이끄는 흰 투구 가리개를 쓴 부대, 백이병이 노도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백이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긴 극을 든 대극군에 충돌했다.
퍽!
방패로 상대를 치받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력질주로 대극군에 충돌한 백이병은 달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상대 병사와 함께 넘어져 버리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잠시 동안 땅바닥에서 뒤엉킨 후 다시 일어나는 것은 대개 백이병이었다.
“이놈들은 뭐냐? 왜 이렇게…….”
푹!
백이병의 활약을 보고 경악하던 대극군의 백부장 하나가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칼에 찔려 쓰러졌다. 방패와 칼로 무장한 백이병 도순수들은 하북의 수많은 전장에서 이름을 떨쳐 온 대극군을 말 그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관우는 백이병과 대극군이 충돌하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눈에 잘 띄는 녹색 전포를 입고 말도 없이 걸어서 전장을 주유하며 지휘 신호를 보내는 그였지만 어떤 병사도 그의 주위에 다가가지 못했다. 마치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전장을 활보하는 관우에게 한 기가 쏜살같이 돌진해 왔다.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네 이놈, 관우야! 하북의 고람이라는 이름을 알겠느냐!”
공명심에 눈이 충혈된 고람이었다. 대도를 꼬나쥔 고람은 있는 대로 말에 채찍질해서 관우에게 돌진했다. 관우는 그저 눈을 내리깔고 수염을 쓸고 있었다.
“저, 저놈이!”
사냥감을 뺏긴 안량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문추는 그저 말없이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고람과의 거리가 20장 안쪽으로 좁혀졌을 때 관우가 입을 열었다.
“난리를 틈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라(乘亂不祥).”
관우는 왼손으로 청룡언월도를 길게 잡았다. 말을 타고 돌진하는 고람은 순식간에 관우의 코앞까지 육박해 왔다. 전투의 흥분으로 한껏 상기된 고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을 때, 관우가 한 손으로 휘두른 청룡언월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고람은 대도를 들어 청룡언월도를 막았다.
쾅!
콰드드득!
그러나 82근의 무게는 막지 못했다. 청룡언월도는 고람의 대도를 그대로 아래로 밀어붙였다. 마치 역기를 놓친 역사처럼, 고람은 자신의 대도에 그대로 깔렸다. 제일 먼저 팔이 꺾였다. 팔꿈치에서는 피와 함께 부러진 뼈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쇄골이 부러졌다. 이어서 어깨가 부러지고 척추가 으스러졌다. 그다음에는 말의 등뼈가 부러지고 말의 다리뼈가 부러졌다. 그렇게 바닥에 깔리자 이번에는 사람과 말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찰나의 순간 수십 개의 뼈가 수백 조각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렇게 일합을 나누자 고람과 그의 말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온몸의 뼈가 뒤틀려 튀어나왔으니 원래의 형상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열대의 곤충처럼 기묘한 모양으로 변해 바닥에 누운 사람과 말은 다행히 일격에 절명하여 큰 고통을 느끼지 않은 듯, 달려오던 표정 그대로였다.
단 일격으로 고람이 땅에 들러붙은 시체가 되자 안량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저, 저놈이… 인간이 어떻게…….”
“허명이 아니었군. 계획을 수정한다. 대극군, 백이병과 싸움을 멈춰라. 전원 관우만을 목표로 삼는다.”
문추가 지시를 바꾸자 대극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백이병들을 내버려 두고 관우만을 목표로 삼아 긴 극을 치켜들고 둘러쌌다. 백이병을 상대하는 전선으로는 안량의 선등군 병사들이 뛰어나갔다. 하나같이 날랜 몸놀림을 한 병사들이었다.
관우는 자신을 향해 극을 쳐들고 있는 병사들을 묵묵히 응시했다. 그들은 자신보다 훨씬 작고 가늘었다. 마치 봉황의 그것처럼 길고 뚜렷한 눈매에 아주 잠깐 동안 슬픔이 스쳤다.
“어쩔 수 없구나.”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잡은 청룡언월도가 우측상단으로 크게 솟았다.
“이야아아!”
오장쯤 되어 보이는 병사 하나의 기합 소리를 신호로 수십 명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관우는 한껏 길게 잡은 청룡언월도를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휘둘렀다.
퍽!
뒤이어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또 한 번 휘둘렀다.
퍽!
열 명일까, 스무 명일까. 청룡도가 두 번 번뜩이자 셀 수 없는 병사들의 몸이 망가졌다. 베인 것과도, 찔린 것과도, 맞은 것과도 다른 흔적을 남기고 수많은 병사들이 절명했다. 무겁고 거대한 물건에 깔린 듯한 상처였다.
“흐… 흐으으윽!”
“으아악!”
청룡도에 닿은 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닿지 않은 자들은 저마다 입에서 괴성을 지르며 관우의 옆에서 비켜났다. 관우는 길고 뚜렷한 봉의 눈을 부릅뜨고 눈앞의 병사들에게 일갈했다.
“이로써 두려움을 안다면 패망하지 않을 것이다(知懼如是 斯不亡矣). 물러나거라.”
“으흐흑…….”
병사들의 눈에서 투지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관우를 보며 어린 시절 가위에 눌렸을 때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귀신이 들린 누이를 떠올렸다. 또 누군가는 흉년이 들었을 때 막냇동생의 손을 잡고 나가서 혼자만 돌아왔던 어머니의 표정을 떠올렸다. 누구도 사람과 싸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길을 열었다. 관우는 오른손으로 청룡언월도를 잡고, 왼손으로 수염을 쓸며 병사들 사이를 걸어 전진했다.
쿠르릉.
먼 곳에서 낮은 천둥소리가 울렸다. 겨울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끼었다. 대낮이지만 시야가 점점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묵묵히 서서 전장을 지켜보던 문추는 죽은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마치 선 채로 수레에 깔린 것 같군.”
투구 아래로 보이는 단정한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안량도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로 대꾸했다.
“병력 차이가 얼마가 됐든 저놈이 살아 있는 한 이기기 힘들겠군. 문추, 지금은 공적을 따질 때가 아니다. 협공을 해서 일단 저놈을 잡아야겠다.”
“동감이다. 장합, 함께 하거라.”
“알겠습니다.”
안량, 문추, 장합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후 세 방향으로 말을 달렸다.
관우는 정면의 문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관우가 다가오자 문추는 자신의 대극을 꺼내 들었다. 자루에 직각으로 붙은 과부분만 2자에 달하는 거대한 극이었다.
문추는 관우를 향해 천천히 달리다 갑자기 속도를 올렸다. 그것을 신호로 관우의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관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문추의 주변을 호위하는 정예병이었다.
관우는 오른손에 든 청룡도를 크게 한 번 돌렸다.
퍽!
청룡도가 지나간 곳에는 본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병사가 없었다. 몸이 으스러진 병사들은 마치 사람이 아닌 뼈 없는 생물처럼 기묘한 자세로 땅에 쓰러졌다. 대부분 즉사했기에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우가 청룡도를 크게 휘둘러 병사들을 제압하느라 빈틈을 보였을 때, 달려온 문추의 대극이 관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청룡도를 회수해서 막을 수 없는 시점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들어갔다.’
문추는 그렇게 생각했다.
쾅!
그리고 쇠와 쇠가 부딪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청룡도를 미처 회수하지 못한 관우는 왼팔을 들어 팔뚝으로 대극을 막았다. 쇠로 된 자루를 팔로 막았으니 팔이 부러져야 하겠으나 관우의 표정은 초연했다.
“하북의 문추. 대단한 무위로구나.”
“관우…….”
관우의 등 뒤에서 안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안량과의 거리, 관우가 청룡도를 회수하는 시간, 자신이 발출할 수 있는 초식. 문추는 재빠르게 계산을 끝낸 후 대극을 끌어당겼다. 이제 곧 대극의 자루에 직각으로 붙은 2척의 과가 관우의 팔뚝을 벨 것이다.
‘내 대극을 어떻게 막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과에 걸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턱.
그러나 대극이 뭔가에 막힌 듯 자신의 몸쪽으로 당겨지지 않았다. 대극을 팔로 막은 관우는 팔을 통해 문추의 힘을 읽고 역이용하고 있었다.
“이놈, 화경을…….”
상대의 힘을 읽어서 역이용한다는 화경. 무예가 입신의 경지에 달해야만 쓸 수 있다는 절초다. 화경이 극에 달하면 팔순 노인도 팔척 장사의 손가락을 잡고 허공에서 한 바퀴 돌릴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지만 문추 또한 그런 경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설마 9척 장신의 관우가 그런 경지에 올라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휘릭.
대극은 문추의 손에서 빠져나와 관우의 팔뚝을 타고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관우는 허공에서 문추의 대극을 낚아채 왼손에 들었다.
“이토록 무위가 대단하니, 내 가진 힘을 모두 써도 허물이 되지 않겠구나.”
그 말을 남기고 관우는 왼손에 쥔 대극을 몸쪽으로 당겼다가 바깥쪽으로 길게 뿌렸다. 대극에 붙은 과는 앞쪽의 문추가 아닌 뒤쪽을 향해 있었다.
퍽!
뒤에서 달려오던 안량은 황급히 말에서 뛰어내렸다. 안량이 땅바닥을 구르고, 관우가 휘두른 대극은 그대로 안량이 타고 있던 말 머리를 뚫었다.
우당탕!
사람이 휘두른 병장기에 맞아 말이 일격에 절명해서 바닥을 굴렀다. 관우는 대극을 놓았다. 그리고 땅바닥을 굴러 일어난 안량을 보며 말했다.
“안량, 그대의 무위도 대단하구나. 그토록 높은 경지에 이른 자가 어찌하여 어질지 못한 주인을 섬기는가.”
“닥쳐라, 이놈!”
안량은 이를 갈며 양손에 하나씩 수극을 뽑아 들고 관우에게 달려들었다. 관우와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안량은 기습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이놈과 정면승부로 이기는 건 무리다.’
그러니 기습적인 하체 공격을 통해 활로를 뚫어 볼 셈이었다. 안량은 낮은 자세로 파고들기 위해 무릎을 한껏 굽혔다. 그때, 관우가 무심하게 내민 청룡도의 자루 끝이 안량의 무릎에 닿았다.
콰직!
안량의 체중을 내쏘기 위해 한껏 굽혀져 있던 무릎에 청룡도의 자루가 닿자 그대로 무릎 뼈가 부서졌다. 안량의 시야에 자신의 정강이뼈가 무릎 위로 튀어나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윽고 시야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무릎이 부서졌으니 옆으로 쓰러져 땅을 구르게 된 것이다.
“크아아악!”
안량의 비명 소리를 뒤로 한 채 문추는 두 번째 대극을 뽑아 들고 관우를 찍어 갔다. 관우는 안량의 무릎을 찍은 자세 그대로 몸을 돌리며 문추를 향해 청룡도를 휘둘렀다.
쾅!
청룡도와 대극이 부딪혔다. 문추는 대극으로 청룡도를 정확히 막았다. 그러나 청룡도에 실린 힘이 문제였다. 철갑을 둘렀으니 500관이 넘는 문추의 몸이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허공을 날았다. 문추는 한참을 날아가서 절벽에 처박혔다.
쾅!
“컥…….”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절벽에 처박힌 문추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얼굴을 다 가리던 투구는 깨져서 땅에 떨어졌다. 수려한 30대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내상을 깊게 입은 문추에게 다가가던 관우가 문득 발을 멈췄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안량이 외발로 힘겹게 일어나 관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 손의 수극을 지팡이처럼 짚고 간신히 걸으면서도 투지를 드러내는 그를 향해 관우가 말했다.
“하북의 안량. 그대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이놈…….”
퍽!
청룡도가 아닌 관우의 정권이 그대로 안량의 가슴을 쳤다. 안량의 몸은 조금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정확히 끊어친 주먹이라 안량의 가슴에서 힘의 전달이 멈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우의 정권이 몸에 닿음과 동시에 안량의 심장도 멈췄다. 관우는 선 채로 즉사한 안량을 잠시 내려다보다 문득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섰다.
휘이이잉!
방금 전까지 관우가 있던 자리로 한 자루 단창이 지나갔다. 관우는 몸을 돌려 단창을 던진 사람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대가 장합인가.”
“그렇소.”
장합은 묵묵히 두 번째 단창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죽겠군.’
안량과 고람이 죽었고 문추도 빈사 상태다. 내심 네 명의 장수들 중 자신의 실력이 가장 낫다고 자부하던 장합이다. 그러나 저 사내 앞에서는 그들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올해 치 봉록을 아직 찾아가지 못했는데, 알아서 잘 챙겨 주겠지.’
죽음의 순간에 생각나는 건 이루지 못한 꿈도, 먹지 못한 음식도 아닌 받지 못한 돈이었다. 장합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창을 던지기 위해 묵묵히 팔을 당겼다.
그때 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을 멈춰라.”
덜컥.
장합의 팔이 뒤로 당겨진 채 멈췄다. 팔뚝은 마치 뭔가에 걸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승부가 났으니 싸움을 여기서 끝낸다. 모두 창을 멈춰라.”
관우가 말하자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듯 창을 멈췄다. 장합은 다시 한번 창을 던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팔은 뒤로 당겨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관우가 방술을 쓰는 건가?’
그러나 그럴 리는 없다. 창을 던지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합은 있는 힘을 다해 기합을 넣었다.
“흡!”
그제야 비로소 몸이 움직였다. 장합은 창을 든 오른손을 떨구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잠시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드니, 관우가 백이병들을 향해 호령하고 있었다.
“안량 장군의 시신을 수습하거라. 후하게 장례를 치를 것이다.”
“존명!”
“문추 장군을 모셔라. 의원을 불러서 목숨을 살릴 수 있는지 살피도록 해라.”
“존명!”
하나같이 무뢰배처럼 사나워 보이는 사내들로 이루어진 백이병은 관우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군례를 올리고 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선등군도, 대극군도, 그리고 다른 원소군 병사들도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백이병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관우는 잠시 전장을 돌아본 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부장 진도가 끌고 온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그렇게 관우가 전장을 떠나려 할 때, 장합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나섰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밀려온 것이다.
“관공. 그대는 대체 무엇입니까.”
장합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저런 무위를 가진 자가 어째서 남의 밑에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거리의 유협으로 살았던 것일까. 어째서 조조나 마초에게 항복해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그저 객장으로 머무르는 것일까.’
자신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병졸이 되었고, 남들보다 잘살기 위해 장수가 되었다. 때로는 성공을 위해 독하게 부하들을 몰아치기도 하고, 악귀처럼 적군을 베기도 하였으며, 전쟁의 참상에 홀로 눈물짓기도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누구보다 인간답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장합이다.
그런 장합에게 이 관우라는 사내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자는 대체 무엇일까. 인간이기는 한 걸까.’
관우는 눈을 내리깔고 답했다.
“그저 무사다.”
“이 전장에 무사 아닌 자가 누가 있습니까.”
“좌전에 이르기를.”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말안장에 걸었다.
“무란 창을 멈추게 하는 것(止戈爲武). 나는 그저 옛사람의 가르침을 따라 창을 멈추게 하려는 자일 뿐이다.”
그 말을 남기고 관우는 말머리를 돌렸다. 진영으로 돌아가는 관우를 진도가 수행했다. 멀리서 서황이 나와 군례를 올리고 있었다.
장합은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옛사람의 가르침이라…….”
글을 배운 사람들 중 춘추좌씨전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장합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꼭 자신처럼 무장치고 학문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무장들이라도 어지간하면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는 게 춘추좌씨전이었다.
그런데 춘추좌씨전에 적힌 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무사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던가.”
장합은 낮게 탄식하며 멀어져 가는 관우를 바라봤다. 창을 멈추는 것이 무라고 말하는 저 사내는 싸움을, 난세를 끝내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그때, 뭔가 생각난 것처럼 관우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말 위에서 고개만 돌려 장합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람이 매번 옛사람의 가르침대로 살 수는 없는 일. 평소에는 그저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고, 인생에서 세 번이나 다섯 번쯤 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옛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면 될 걸세.”
백마 전투를 대승으로 끝낸 후, 청룡도를 놓은 관우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