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62화 (162/306)

162화. 납오장질(納汚藏疾)

오랫동안 서주를 다스린 서주목 도겸이 죽은 후 서주를 물려받은 것은 객장으로 있던 유비다.

유비와 그의 사람들은 전투에 능했다. 천하에 이름 높은 조조군이 상대라도 싸울 때마다 승패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조조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매년 서주에 쳐들어와 십만이 넘는 사람들을 도륙해서 서주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뜨내기 주제에 서주목이 된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앞세워 그런 조조의 군사를 막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서주의 유력자들은 유비를 지지했다. 하비성의 대부호 미축, 태산의 군벌 장패, 그리고 동성현의 명사 노숙 같은 이들이었다. 그보다 더 열광한 것이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군웅이 백성을 수천 명 정도 죽여도 아무 소문 거리도 되지 않던 시대, 약탈조차 하지 않고 꿋꿋이 조조군에 맞서 싸우는 유비는 서주의 백성들에게 신화 속의 영웅처럼 보였다.

“그러니 도겸의 잔당인 네놈들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됐겠지. 그래, 조맹덕에게 붙어서 천하 영웅을 배신해 보니 기분이 어떻더냐?”

하비성, 서주목의 치소.

백문루라는 이름이 붙은 높은 누각에 한 사내가 매달려 있었다. 유비가 손책과 싸우러 나간 사이 유비를 배신하고 하비성의 문을 걸어 잠근 조표였다. 옆에는 조표와 같이 배신에 찬동한 구 도겸계 호족들이 줄줄이 오라에 묶인 채 꿇어앉아 있었다.

“손 장군, 이게 무슨 짓이오? 우리들은 조 사공께 투항했으니 이제 사공부의 사람이외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소?”

조표는 자신을 묶은 장본인 손책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맹군인 줄 알았던 손책이 하비성에 입성하자 돌변해서 조표와 구 도겸계 호족들을 포박한 것이다.

손책은 턱을 들어 올렸다. 깎아놓은 듯 우뚝한 콧날을 더 세우고, 옆으로 긴 눈을 갸름하게 뜬 채 조표를 내려다봤다. 그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는 노란색이라 마치 호랑이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네놈들의 뒤에 조맹덕이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

“아니, 그게… 손 장군도 조 사공과 뜻을 같이하시는 몸이 아닙니까? 저희를 붙들고 이러실 게 아니라…….”

퍽.

“끄악!”

손책의 주먹이 얼굴에 꽂히자 조표는 있는 대로 비명을 내질렀다. 잘못해서 혀를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손책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조표의 얼굴을 뭉개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끄으윽… 손 장군! 손 장군! 용서하십시오!”

퍽.

퍽.

퍽.

“으헉, 으허헉…….”

조표의 몸이 축 늘어지자 손책은 비단 수건으로 주먹을 닦고 주변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이자들을 전부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라. 말은 준비되어 있느냐?”

“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손책을 수행하던 장흠과 진무가 포권하며 대답했다. 손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놈들은 유 서주를 배신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의 봉지를 팔아넘긴 놈들이다. 저잣거리에서 광릉, 동양, 우이의 백성들을 학살하도록 사주한 게 바로 이놈들이라고 포고하라.”

“알겠습니다. 그다음에는 계획대로…….”

“사지를 찢어 죽여라.”

손책이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자 다 죽어가던 조표는 다시 깨어나서 고래고래 악을 쓰기 시작했다. 묵묵히 갈 길을 가던 손책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뒤로 돌아서 다시 조표를 향해 다가왔다.

“손책, 이 천하의 패륜… 으억!”

조표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손책이 칼자루로 조표의 턱을 후려친 것이다. 턱뼈가 부서지며 조표의 아래턱은 지지하는 힘을 잃고 축 늘어지게 되었다. 혀는 자연스럽게 길게 입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손책은 자로 잰 듯 정확한 동작으로 조표의 혀를 잘라 바닥에 내던졌다. 조표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와 마른하늘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잊은 게 있군. 사지를 찢기 전에 전부 혀를 잘라라. 이상한 소리를 떠들지 못하도록.”

“존명!”

평상시 왈패 같은 태도로 손책을 대하던 강동군의 장수들은 군령이 떨어지자 큰 소리로 일사불란하게 대답했다. 혀를 잘린 조표는 허공에 매달린 채 몸부림을 치며 입에서 피를 비처럼 쏟아냈다. 그런 조표를 바라보던 호족들은 소변을 지리는 자와 거품을 물고 실신하는 자가 태반이었다.

* * *

수춘성.

유비가 서주에서 쫓겨나 하북으로 향하자, 원술 토벌군의 일원으로 이곳을 점거했던 유비의 상장 관우는 수춘성에 고립되게 되었다.

조조는 아끼는 장수들을 보내 수춘성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관우의 저항은 완강했다. 조인, 하후연, 우금, 악진이 차례대로 수춘성을 두들겼지만, 관우가 지키는 수춘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성문을 열고 나오는 관우를 막지 못하고 애꿎은 인마만 숱하게 상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조조군은 약속한 스무날이 다 되도록 수춘성을 떨어뜨리지 못했지. 이제 우리 차례다.”

수춘성 외곽의 군영. 마초는 주변에 모인 마가군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숱한 강적들과 싸워 온 마가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조조군을 통해 전해들은 관우의 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관중이 대답했다.

“심지어 어제는 적장 관우가 조조군의 본영에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정예병 수십 명이 관우 한 사람에게 목숨을 잃었답니다.”

“나도 들었네. 우금의 군막을 바로 기습했다지?”

“그렇습니다. 우금 장군은 다행히 야간 순찰을 돌던 중이라 관우를 맞닥뜨리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으흠. 그게 다행인가? 관가놈도 싫지만 조조군의 장수도 싫은데.”

마초는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법정이 대답했다.

“수춘성은 평지에 지어져서 방어측이 불리한 성. 게다가 병력 차가 열 배에 달하니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 병가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관우가 지키는 수춘성은 그런 상식을 깨고 있습니다.”

“그래. 무엇보다 수시로 관우가 나와서 조조군 진영을 휘젓고 가는 게 문제다. 만약 장수가 하나 죽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관우 입장에서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겠지.”

수춘성을 공략하는 조조군의 장수들은 모두 천하가 알아주는 맹장들이다.

그러나 난전에서 관우를 만난다는 것은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조조 휘하의 맹장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조군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스무날의 말미를 약속했습니다. 복파장군, 계획대로 하시겠습니까?”

마초는 자신에게 묻는 법정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직접 간다. 싸우지 않고 수춘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법정은 그런 마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복파장군께서 하시는 일은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나중에 뜯어보면 항상 조리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뜻하신 대로 되리라 믿겠습니다. 그러나 복파장군,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전장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관우는 성정이 오만하기로 이름난 자가 아닙니까?”

“효직(법정의 자)의 걱정은 내 알겠으나 너무 염려하지 말게. 나에게 관우를 설득할 자신이 있네.”

마초는 그리고 나서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관가놈을 설득하는 게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만약 관우가 협상을 거부하고 뒤통수를 칠 경우도 대비하셔야 합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맹장들을 거느리고 가십시오.”

“협상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적장을 피하지 않는다.”

마초는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아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듯한 태도다. 대강의 내막을 아는 나관중이나 방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법정과 황권, 장료와 감녕은 마초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나관중이 끼어들었다.

“이번 협상에는 서황 장군도 따라갈 테니 법 군사께서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과거부터 관우와 구면이었다.

마초, 서황, 그리고 나관중.

수춘성에 들어가 관우와 강화 협상을 할 세 사람이 결정됐다. 세 사람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던 법정이 어렵게 입을 뗐다.

“복파장군, 허나 혹시라도 돌아오시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 둬야 합니다.”

“아아, 그럼 장안으로 철군해. 방영명이 인솔하도록. 이건 군령이니 어길 생각은 하지 마라. 그리고 내 유언장은…….”

마초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렇지. 내 집무실에 걸어 놓은 화살통 속에 있으니까 읽어 보라고. 별일 없이 돌아오면 읽지 말고.”

“아니 복파장군, 그 나이에 유언장을 쓰신다는 건… 혹시 죽음을 각오하고 가시는 겁니까?”

“하하,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항상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습관이 생겨서 말이야. 그렇다고 이번 협상이 위험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마초는 그렇게 웃으며 법정을 다독이고 길을 나섰다. 위풍당당하게 도철을 탄 마초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관중이 따르고, 맨 뒤에는 서황이 흰 바탕에 말 마(馬)자가 새겨진 깃발을 들었다. 서황이 탄 말은 뭔가 짐을 잔뜩 싣고 있었다.

나관중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앞의 수춘성을 바라봤다.

‘이 시대로 전생한 지 벌써 4년째.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데, 밝은 주인을 만나 관중의 난리를 평정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다. 게다가 관직과 명성, 적지 않은 봉록까지 얻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하지만…….’

관우를 만난다.

삼국지를 사랑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자, 나관중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그까짓 목숨의 위협 따위를 돌볼 때가 아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수춘성을 응시하는 나관중을 보며 마초는 혀를 찼다.

“저 표정 봐라.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만.”

“예? 이상한 생각이라니요?”

“뭐 제갈공명 얘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 것처럼 또 관가놈 생각을 하다 이성을 잃은 거 아니야?”

“아니, 주공.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관운장이 후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말입니다.”

나관중은 침을 튀겨 가며 관우의 인기에 대해 설명했다. 나관중이 살던 원나라 말기면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는 관우가 민간신앙의 신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다. 민심이 이러하니 원나라의 뒤를 이어 들어선 명나라는 관우를 황제로 추존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런 관우와 동시대를 살았던 마초는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뭐, 데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 팔을 째고 뼈를 긁어내는데 바둑을 뒀다고? 참 나… 마초가 이름값이 있으니 대련 한 판 해야겠다고 날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대체 왜 누구는 패륜아고 누구는 신이 되는 거야? 이러니 역사의 평가라는 걸 믿을 수가 있나. 혹시 여기 있는 내용도 다 거짓말 아냐?”

마초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손을 들었다. 손에는 노나라의 역사를 공자와 그 제자들이 정리한 책, 관우의 애독서 <춘추좌씨전>이 들려 있었다.

이 시대에 학문을 배우는 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떼는 책이다. 춘추좌씨전을 끼고 산다는 관우를 설득하기 위해 어릴 때 배웠던 춘추좌씨전을 부리나케 복습하고 온 마초다.

수춘성의 수비병들은 마초 일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관우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수가 나와 정중히 포권하며 일행을 맞았다.

“관 장군의 휘하에 있는 진도, 자는 숙지라고 합니다. 복파장군께서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관 장군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도 또한 마초가 지난 생에서 익히 알던 얼굴이다. 마초는 쓴웃음을 지으며 진도에게 답례했다.

“아, 숙지. 아니 진도 장군. 반갑소.”

“안으로 드시지요.”

진도는 절도 있는 태도로 마초를 성안으로 안내했다. 원술이 황궁으로 쓰던 건물이었다. 나관중과 서황이 뒤따랐다.

“성이 전혀 파괴되지 않았군요.”

서황이 말했다. 마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중나라 황궁이던 곳일세. 나라가 망했는데도 흔한 화살 자국 하나 없군.”

대체 얼마나 순식간에 싸움을 끝냈다는 말인가?

진도가 일행을 안내한 방은 원술이 서재로 쓰던 방인 듯했다. 필요 이상으로 사치스럽게 지어진 중나라 황궁에서 서재만은 딱 필요한 정도의 공간을 점유한 채 검박하게 지어져 있었다. 마초 자신도 서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원술의 서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마구간이나 첩들 거처는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은 인간이 서재만 검소하다니. 원술의 취향이 보이는군.”

“덕분에 장부가 기거하기 좋은 방을 얻었소.”

소리는 크지 않다. 그러나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바로 울리는 듯한 목소리.

마초와 나관중과 서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가의 저편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관우, 자는 운장. 그대들이 오기를 기다렸소.”

모습을 드러낸 관우는 무척 키가 컸다. 7척 8촌의 마초나 8척의 서황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니 아마 9척에 달할 것이다. 배까지 드리워진 석 자의 수염이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초는 물끄러미 관우를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초, 자는 맹기. 관공을 뵙고 싶었소.”

관우는 오만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았다. 그저 포권하며 답례할 뿐이었다.

마초에게 짧은 인사를 남긴 관우는 서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넓은 천하에서 다행히 은공을 다시 뵙는구려. 서공, 그간 강녕하셨소?”

“오랜만입니다, 관공.”

“그대가 베풀어 준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 우는 지금 살아 있지 못할 것이오.”

“과찬입니다. 그저 일이 그렇게 됐을 뿐입니다.”

관우의 고향은 하동군 해현이다. 서황은 그곳에서 현위로 있다 양봉의 수하에 몸을 의탁했다.

서황은 관우와의 인연을 묻는 마초의 질문에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다.

‘현의 병사로 있던 시절 관운장의 편의를 봐준 일이 있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중앙 조정이 무너지니 지방 관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가렴주구가 되던 시대다. 백성들 중 힘 있는 자들이 관리를 때려죽이는 일이 흔하던 시대였다. 서황과 관우도 그런 일에 연루된 것이라고 추정됐지만, 자세히 말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다.

관우는 세 번째로 나관중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서랑으로 계신 나 선생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어디가 불편하시오?”

“으흑흑흑, 그렇지 않습니다, 관공! 너무 행복합니다!”

나관중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 관우 앞에서 흐느꼈다. 의외로 오만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관우의 태도를 보고 감동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 나의 관공은 그렇지 않았어!”

관우와 나눌 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마초는 허공에 대고 부르짖는 나관중을 보자 결국 뒷목을 잡았다.

“…저 친구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관공께서는 신경 쓰지 마시오. 그보다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아니, 잠깐만요!”

나관중은 서황이 잔뜩 들고 온 꾸러미를 꺼내 황급히 관우 앞에 내밀었다. 미리 준비한 예물이었다.

“이게 다 무엇이오?”

“평소 흠모했던 관공께 드리려는 작은 성의입니다. 관중도독부에는 익주에서 나는 좋은 비단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 비단 전포는 그런 최상등품의 비단에 귀한 공작석과 괴화로 색을 내서…….”

나관중은 비단 전포를 시작으로 준비한 예물들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었다. 관우를 앞에 둔 탓인지 말이 자꾸 꼬였다.

관우는 묵묵히 나관중이 가져온 예물들을 바라봤다.

분명히 누구라도 탐낼 만한 보물들이다. 특히 아름다운 녹색 바탕에 황금색으로 용이 수놓아져 있는 전포는 관우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이런 물건을 걸치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장 같은 자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관우는 나관중을 향해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예물이 무겁고 말이 달콤하니 이는 필시 나를 유혹하는 것이군(幣重而言甘 誘我也). 장부가 취할 바가 아니오. 가지고 돌아가시오.”

“하, 하지만 관공. 이것은 순수한 선물…….”

“가지고 가시오.”

관우가 단호하게 말하자 나관중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마초는 재미있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했다.

“강과 연못은 오물을 받아들이고, 산과 숲은 독충을 끌어안는다 하였소(川澤納汚 山藪藏疾). 군문에 든 자가 관공을 흠모하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겠소? 관공도 이제 따르는 이들이 많으니 도량을 보여 주시길 바라오.”

마초가 춘추좌씨전을 인용해서 말하자 관우는 잠시 마초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옛 은공과 인사나 나누라고 온 것은 아닐 터. 그대들은 세 치 혀로 나를 설복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정확히 보셨소.”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서공이 있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소. 그러나 복파장군, 관모는 이 수춘성에서 죽기로 결심한 지 오래외다. 그러니 헛된 힘을 쓰실 필요 없소.”

관우가 긴 수염을 한 번 쓸었다.

마초의 눈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좋소. 관공도 다망하실 테니 많은 시간을 뺏지 않겠소. 우리에게 반 시진만 내어 주시오.”

“반 시진이라. 무엇을 하실 생각이오?”

“설득이오. 반 시진 안에 이 마모가 관공의 생각을 돌려놓겠소.”

관우의 짙은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복파장군은 진심으로 관모가 항복하리라 생각하는 것이오?”

“물론.”

마초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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