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60화 (160/306)

160화. 관우 아세요

마초가 원술을 사로잡고 관우가 수춘성을 떨어뜨리자 다섯 제후들로 구성된 원술 토벌군은 유명무실해지게 되었다.

유표는 애초에 군사를 내는 시늉만 했으니 제외하고, 근황병은 원술을 잡아 허도로 복귀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2천 마가군도 홍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고, 회남 일대에 남은 원술의 잔당을 정리하는 것은 사공 조조가 맡게 되었다.

진왕 유총은 원술 토벌군이 해산할 때까지 몇 날이고 계속 연회를 베풀었다. 슬슬 장수들이 연회에 질릴 때쯤, 휴식을 만끽하던 마초에게 서주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조맹덕, 이놈은 하여튼 상종 못 할 놈이군. 그새 또 비겁한 꾀를 썼구만?”

서주에서 손책과 유비의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한 마초는 있는 대로 조조의 욕을 퍼부으며 행장을 꾸렸다. 조조를 만나러 갈 셈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관중은 불안한 표정으로 마초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주공, 주공! 이번에는 진짜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난번 일이 있으니 조조가 경계를 삼엄하게 할 거라고요.”

“허저도 죽었는데 조심하긴 뭘 조심해? 조조 제깟 놈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나?”

“조조 휘하의 맹장이 어찌 허저 뿐이겠습니까?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관중, 자네 마음은 알지만,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내가 허저 잡는 걸 봤잖아? 이제 천하에 내 칼을 받아낼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네.”

“그, 그래도…….”

“그래도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해서 청강검을 만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마초는 그렇게 나관중을 안심시키고 조조의 처소로 향했다.

원소의 남하를 저지할 때까지는 조조와 연합을 유지해야 한다. 당분간 조조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조맹덕이가 속이 시커먼 놈인 건 맞다. 나도 조심하기는 해야겠지.’

그래서 허리에는 청강검을 차고 있었다. 3척밖에 되지 않으니 누가 봐도 의장용으로밖에 안 보이는 짧은 칼이지만, 신독의 검은 철로 만들어 칼날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쇠도 자를 수 있는 천하의 명검이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이 청강검이 자신의 몸을 지켜 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조조를 찾아가 보니 걱정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조조는 호위도 없이 후원에서 탁상을 펴 놓고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마맹기 왔는가? 그런데 칼은 왜 차고 왔나? 또 칼부림을 하려고?”

“아니, 그야 뭐…….”

마초는 대충 말끝을 흐리고 조조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조는 그런 마초를 보며 씩 웃고 나서 쓰던 글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시구는 떠올랐을 때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

“하. 조공은 정무도 보고, 군사도 부리고, 병법서도 쓰면서 잘도 시까지 쓰는군요.”

“재능이 많으니 어쩌겠나.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재능이 자꾸 꿈틀거리는데. 나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라네.”

“하나 정도는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소? 조공은 한의 사공이고 곧 원소와 싸워야 되는 처지인데 시문까지 즐기는 건 과욕이 아닌가 싶소.”

“글쎄, 그게 쉽지가 않아서 말이야. 정무나 군사는 내가 아니라도 뛰어난 사람들이 있지. 이를테면 정무는 순문약(순욱), 싸움은 마맹기 자네처럼.”

조조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종이를 골똘히 노려봤다. 그러다 이내 시상이 떠오른 듯 어린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종이에 붓을 휘갈겨 나갔다.

“그런데 시문은 아마 내가 천하제일일 걸세. 지금이라면 나에게 근접하는 시인도 없을걸. 굳이 꼽자면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그 비서랑 선생, 그리고 장안에 가 있다는 채염 소저 정도일까?”

“그야 그렇겠지요.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런 시대에 시나 짓고 있는 문사가 얼마나 되겠소?”

“으하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네. 앞뒤 사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이렇게 결과를 내지 않나?”

조조는 크게 웃으며 자신이 쓴 시를 흡족하게 들여다봤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볼수록 기가 막혔다.

‘사람 목숨은 하찮게 여기는 자가 시문은 정말 사랑하나 보군. 하긴 관중이 말하기를 이 자의 시는 천 년 뒤에도 인기가 있다고 했지.’

오늘은 예술에 대해 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시를 다 쓴 조조가 붓과 벼루를 옆으로 밀자 마초는 바로 용건을 말했다.

“서주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요?”

“글쎄, 그건 손책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자는 꼭 자네처럼 용감하고 난폭해서 나는 그 속이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네. 둘이 아마 나이도 비슷하지?”

“조공, 나는 이미 조공이 개입한 걸 알고 있소.”

원래의 역사에서는 이때까지 유비가 서주에서 버티지 못한다. 유비에게 객장으로 있던 여포가 배신하며 조조, 여포, 유비가 서주를 둘러싸고 혼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초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뀐 후, 서주목 유비는 꿋꿋하게 조조의 공세를 버티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조조는 후방에 유비를 둔 채 원소와의 일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책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손책은 광릉의 진등에게 가로막혀서 곤란을 겪었지. 이번에는 광릉을 쉽게 돌파한 걸로 봐서 조조가 뭔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조조는 마초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에 따르면 내가 익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주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인가.”

“다 아는 사이끼리 말 돌리지 마시오. 유 서주는 불과 지난달까지 같이 원술을 토벌하던 우군이오. 그런데 조공은 원술이 잡히기 무섭게 연합을 파기하고 손책을 충동질해 유 서주의 뒤를 쳤소. 이러니 내가 조공과의 연합을 무슨 수로 믿겠소?”

“으흠, 만약 내가 서주에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자네의 걱정도 이해가 가네. 그렇다면 나는 서주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끝까지 부인해야겠군. 하하하!”

마초는 능청을 떠는 조조를 보고 청강검을 뽑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참았다. 그렇게 깔깔거리던 조조는 이내 진지한 눈을 하고 마초를 보며 말했다.

“마맹기, 내가 유현덕을 후방에 남겨 두고 원소와 싸우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건 사실일세. 손책이 유현덕을 친다면 걱정을 더는 것도 사실이지. 이 일로 가장 큰 득을 보는 건 나니까 자네의 의심에도 일리가 있네. 그래, 내가 유현덕을 배신했을 수도 있겠지. 이 일을 획책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일을 사전에 알았는데 모르는 척 넘어갔을 수도 있고.”

조조는 정치인다운 화법으로 말했다. 자신에게 씌워지는 혐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은근히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는 한편 슬쩍 자신의 혐의를 축소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아직 정치인이 아닌 마초는 조조의 말을 듣자 어이가 없었다. 조조는 품 안에서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서주에 심어 둔 간자가 올린 보고일세. 최근 하비성에 청주 상인들이 부쩍 많이 드나든다고 하지. 무슨 뜻이겠나?”

“청주자사 원담이 유 서주와 긴밀히 교류하고 있다?”

“원담을 벼슬길에 천거한 게 바로 유현덕일세. 지금 천하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 유현덕 또한 선택해야 하지 않겠나. 조조인지, 원소인지.”

원담은 대장군 원소의 큰아들이다. 유비의 추천을 받아 관직을 시작했지만, 사람됨이 영 시원찮은지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원소의 장남이니 청주 자사라는 높은 관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 서주가 원소의 편에 서는 정황이 보여서 조공이 먼저 쳤다는 것이구려.”

“이 사람아,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는 손책이 친 게 아닌가?”

마초는 쪽지를 읽지도 않고 탁상에 놓았다. 어차피 진위 여부조차 의심스러운 보고니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조조의 우려는 분명히 일리 있는 것이었다. 조조와 원소 중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유비는 원소를 선택할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서주를 두고 조조와 긴 싸움을 치르며 더욱 갈등이 깊어진 상황인 것이다.

‘아니,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유 사군은 절대 조조의 편에 서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초는 조조에게 말했다.

“조공 입장에서는 시기가 절묘하게 되었구려. 원술이 수춘성에 틀어박혀 있었으면 토벌이 끝나기도 전에 연합을 깼다고 배신자의 오명을 크게 썼을 텐데.”

“그런데 자네가 원술을 사로잡아 줬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이런 제길…….’

사실 따지고 보면 원술이 진국으로 친정을 나온 게 문제다. 마초가 아니었으면 하후연이나 다른 무장들에게 어차피 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조조가 놀리는 걸 들으니 마초도 화가 치밀었다.

“4년간 죽도록 열심히 뛰었는데 엉뚱한 원본초나 조맹덕이 내 덕을 보는군. 그래, 조공은 유 서주와 손책 중 누가 이길 것이라 보시오?”

“그거야말로 예측하기 어렵군. 처음에는 아무래도 유현덕이 더 강하지 않을까 했네만… 자네도 알다시피 유현덕의 주력군이 수춘성에 있지 않나? 손백부 입장에서도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걸세.”

“그렇다는 건, 조공은 손책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책을 지원해서 서주를 치라고 부추긴 거요? 조공은 매번 이 마모를 놀라게 하시는군. 하여튼 이래서 출세 이전에 인간이 돼야 해.”

“거, 사람 참.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지 말라니까.”

“이제 수춘성은 어찌할 작정이오? 연합이 깨졌으니 수춘성을 점거한 유비군의 장수가 격렬하게 저항할 텐데.”

“수춘성은 규모는 크지만 평지에 지어진 성이니 적은 군사로 오래 버티기 어렵네. 내가 휘하 장수들을 보냈으니 수춘성은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질 걸세.”

조조는 여유가 있었다. 마초는 그런 조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되는 난세다. 배신을 이유로 조조를 탓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유비를 배신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나는 지난 생에서 유 사군에게 신세를 졌지. 그러나 지금은 천하를 놓고 겨루는 경쟁자니 지난 생의 사정을 돌볼 수 없다. 훗날 내가 천하를 평정한다면 그를 후하게 대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난 생의 원수 조조가 지난 생의 은인 유비를 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이번 생에 지켜야 할 사람들과 이뤄야 할 목표가 있다. 마초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실리를 취하기로 했다.

“좋소. 조공이 연합을 깬 것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소. 나는 사공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관중도독께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이 문제에 있어 나의 선언은 곧 관중도독의 선언과 같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그래, 조건은?”

조조는 빙글빙글 웃으며 마초에게 물었다.

아무 조건이 없을 리 없는 것이다. 마가군은 이 문제로 조조를 정치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물론 원소와의 싸움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이 정도 일로 벼랑 끝에 서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실리는 취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마초는 조조를 보고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었다. 눈은 웃지 않고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공이 수춘성 공략에 실패하면 마가군이 대신 수춘성을 갖겠소. 기한은 스무날. 그 안에 수춘성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마가군에게 수춘을 넘기고 물러나시오.”

“하하하하!”

조조는 배를 잡고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한참 동안 몸을 비틀어 가며 웃은 조조는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마초에게 말했다.

“이봐, 마맹기. 내가 너무 웃어서 미안하네. 그러나 젊은 혈기도 좋지만 세상 물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네. 수춘을 지키는 게 누군지 알고 있는가?”

“관우 아니오?”

“그럼 관우가 어떤 인간인지는 아는가?”

“아아, 남들만큼은 알고 있지.”

마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조조는 얼굴을 심각하게 바꾸고 마초를 보며 말했다.

“죽어.”

“무슨 말이오?”

“그러다 죽는다고. 자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자네에게 부하들을 잃은 내가 잘 알고 있네. 자네라면 용병의 재주도, 일신의 무예도 천하에 짝을 찾기 힘든 걸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상대는 관우라고.”

“상대가 관우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소.”

“으흠, 하긴 자네는 서쪽에만 있었으니 동쪽의 사정을 잘 모를 수도 있겠군. 관우는 천하 용장일세. 만약 그에게 10만, 아니 5만의 군사만 주어진다면 혼자서 온 천하를 벌벌 떨게 할 만한 인물일세.”

조조는 진지하게 마초를 말렸다. 마초는 지금 이 상황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났다.

“관우와 마초의 싸움을 조조가 말리는 건가?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그래서, 관우가 그렇게 대단한데 조공은 무슨 수로 수춘성을 떨어뜨리겠다는 거요?”

“숫자의 힘. 열 배의 병력과 여러 명의 맹장을 동원하는 것. 관우를 잡는 데 그 이상의 방법은 없네.”

“그래서 관우를 잡겠다고 누구를 보내셨소?”

방덕과 서황과 장료는 내 밑에 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하후묘재와 조자효, 악문겸과 우문칙. 내가 자랑하는 장수들일세.”

하후연과 조인, 악진과 우금은 전부 역사서에 굵직하게 이름을 남긴 조조 휘하의 명장들이다. 그런 명장들이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네 명이나 동원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초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로는 턱도 없겠군.”

“뭐라?”

“조공이야말로 관가놈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 열 배의 병력? 네 명의 맹장? 고작 그 정도로 관가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소?”

오늘 처음으로 조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번에는 마초가 여유 있는 표정을 보였다.

“약속한 대로 기한은 스무날이오. 그 안에 수춘성이 떨어지지 않으면 수춘 공략을 마가군에 넘기시오. 우리가 스무날 안에 수춘성을 떨어뜨리면 모든 포로와 전리품에 대한 처결권을 갖겠소.”

“마맹기. 나는 자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좋아하네만 이번만은 자네를 믿을 수가 없군. 근황병은 허도로 돌아갔으니 자네의 병력은 마가군 2천뿐일세. 그걸로 관우가 지키는 수춘을 떨어뜨리겠다는 말인가?”

“그저 두고 보시오. 내가 수춘성을 얻으면 가장 큰 덕을 보는 건 조공일 테니. 아, 나는 이번에도 남 좋은 일만 하게 되겠군.”

마초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조는 마초가 걸어서 후원을 나갈 때까지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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