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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58화 (158/306)

158화. 서주의 풍운 (1)

원술이 마초에게 붙잡혔다.

안 그래도 어지럽게 도망치던 중나라 군사들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기가 완전히 꺾였다. 망한 나라의 군령이 효력을 발휘할 리 없으니 중나라 군사들은 저마다 셋씩, 다섯씩 짝을 지어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그들을 독려하던 장수들도 허탈함에 검을 떨어뜨렸다. 항복하는 자가 태반이고, 도망치는 자가 그다음이며, 끝까지 저항하는 자들은 찾기 힘들었다.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원술을 붙잡은 마초는 곧이어 달려 온 하후연의 귀속군에게 원술의 신병을 인도했다. 하후연을 바라보는 마초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후 교위, 역적 원술은 내가 사로잡았네. 그대에게 돌아갈 공이 없는 게 아쉽군. 역적의 호송이라도 맡아서 작은 공이나마 세우도록 하게.”

“흥, 관서의 사자라고 불리는 분이 아까는 놀란 고양이처럼 튀어 나가시더군요. 그렇게 공을 다투고 싶었습니까?”

“하하하, 내가 이미 천하에 이름이 높거늘 무엇 때문에 그대와 공을 다투겠는가? 그저 그대가 원술을 먼저 잡으면 일을 그르칠 것 같아 서두른 것뿐이네.”

사실은 하후연에게 공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지난 생에서 여러 번의 전투를 거치며 감정이 많이 상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초 또한 지난 생부터 합산하면 50에 접어든 나이다. 싫은 사람을 상대하려니 거짓말이 능구렁이처럼 나왔다. 하후연이 발끈하는 것도 당연하다.

“복파장군, 내가 무슨 일을 그르친다는 말입니까?”

“원술은 산 채로 허도로 압송해서 폐하의 위엄을 알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대는 성미가 급박하니 자칫 원술을 죽일까 걱정해서 내가 서두른 걸세.”

“내가 원술을 왜 죽입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자는 때가 되면 꿀물을 찾을 테니 떨어지지 않게 주도록 하게.”

마초는 웃으며 하후연에게 대답하고 자신의 진으로 돌아갔다. 하후연은 그런 마초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이제 20대 중반에 불과할 텐데, 가끔 오십 줄의 중늙은이 같은 모습이 보인단 말이야.’

그러나 마초가 회귀한 것을 알 리 없는 하후연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원술이 진국을 치러 나왔다 붙잡혀 버리자 원술 토벌전도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마초는 근황병을 이끌고 진국의 도성에 입성했다. 일부 장수들이 원술의 잔당을 소탕하는 한편으로 조조군, 마가군, 근황병의 수뇌부들은 진국 도성에 모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할 참이었다.

진국에는 반가운 손님이 와 있었다. 장안의 소식을 가져온 황권이었다.

“황 군사가 어쩐 일이오?”

“장안에서 복파장군이 지시하셨던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중간보고를 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황권은 부군사장군으로 거기장군부에 소속되어 마가군의 군무를 맡아 보고 있다. 군사장군 법정이 태학 설립 문제로 잠시 관중도독부로 전임되어 있으니, 지금 마가군의 실질적인 군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황권이었다.

새롭게 모병하는 군사들의 편제, 치중대의 수레 건조 계획, 그리고 새로 도입하는 장비의 채택 등이 논의되었다. 특히 나관중이 제안한 등자와 고정식 안장은 끊임없이 개량되고 있었다. 황권은 마초에게 세 가지 종류의 개량된 마구 시제품을 내밀었다.

“포원이 기존의 마구를 개량했습니다.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복파장군께서 결정해 주시길 청합니다.”

마초는 황권이 가져온 세 가지 시제품 중 하나를 집어서 채택을 결정했다.

“더 잘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저렴한 값에 빠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 이걸로 합시다. 지금은 금철기와 몇몇 장수들만 쓰고 있지만, 결국 나는 마가군의 모두에게 이 새로운 마구를 보급할 생각이오.”

“그리 하려면 결국 10만 습은 만들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포원이 복파장군께 이걸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황권은 비단 천에 싸인 길쭉한 물체를 내밀었다. 손잡이까지 석 자 길이의 짧은 검이었다.

“천천히 만들어도 된다고 했는데, 그새 완성했나? 역시 포원의 솜씨는 알아줘야겠군.”

마초는 검을 뽑아 들었다. 2척 2촌의 새까만 칼날에 물결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나관중이 끼어들었다.

“주공, 이 칼날은 의천검이나 치란과 같은 문양 아닙니까?”

“아아, 신독의 강철을 녹여서 치란을 만들고 나니 쇠가 좀 남더군. 남은 쇠로 뭘 할까 하다가 포원에게 말해서 짧은 검이나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지. 나는 창을 자주 부러뜨리니까 보조 무기가 있는 게 좋지 않겠나.”

나관중은 침을 삼키며 보검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던 마초가 피식 웃었다.

“왜, 자네가 쓰고 싶나?”

“칼을 쓸 줄도 모르는데 보검이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그보다 칼 이름이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기대되는군. 무슨 이름이 떠오른 게 있나?”

“물론이지요. 이게 의천검을 본따 만들었으니… 청강검(靑釭劍) 어떻습니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하지. 자네가 이름을 붙이면 잘 된 적이 많으니까.”

마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명검 청강검이 명장 포원의 손으로 현실에 구현되는 것을 본 나관중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삼국지연의에 대해 모르니 그가 감동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마초는 다시 황권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 군사의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니 내가 멀리 나와 있어도 안심할 수 있겠군. 그 외에 별다른 일은 없소?”

“복파장군, 사실은 큰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황권은 얼마 전 거기장군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했다. 마초는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인상을 찌푸렸다.

“진의록이 요참형을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함곡관 근처에 아직 토벌되지 않은 백파적 장백기라는 자가 있는데, 진의록이 군량 일부를 몰래 빼돌려 그자에게 팔아넘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중도독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군량을 횡령하는 것과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각각 참수형에 해당하는 죄다. 진의록은 이런 죄를 한꺼번에 두 가지나 지었으니 마등이 격분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참수형으로 모자라서 허리를 베어 죽인 것인가.”

진의록은 여포의 수하에서 군리로 있다가 미오성 전투에서 마가군과 내통한 자였다. 여포가 진의록의 처를 탐냈기 때문이다. 이후 마가군의 군리가 되어 한동안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최근 관중이 재건되며 마가군의 재정이 넉넉해지자 재물 욕심에 눈이 멀어 화를 자초한 것이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나관중이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난 듯 끼어들었다.

“황 군사, 그러면 진의록의 처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글쎄요. 지아비가 요참형을 당해 과부가 됐으니 아마도 어렵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진의록의 처의 행방을 수소문해 주십시오. 만약 그 여인의 생활이 어렵다면…….”

거기까지 말하자 별안간 마초가 끼어들었다.

“돈은 내가 댈 테니 진의록이 받던 봉록만큼 재물을 내 주어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시오. 과연, 관중 자네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군.”

“그렇습니다. 만약의 경우 어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우리가 진의록의 처를 돌보는 게 낫겠습니다.”

진의록의 처 두씨는 미인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여포의 휘하에 있던 진의록은 조조군에 항복했는데, 이미 아이까지 딸린 과부였으나 어지간한 미인이었는지 조조의 첩이 되어 천수를 누린다. 심지어 조조가 아끼는 객장이 그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조조는 그 요청마저 물리치고 두씨를 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황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간 후 나관중이 마초를 보며 말했다.

“두씨가 그만큼 미인이라고 하니 나중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요. 혹시 압니까? 나중에 조조와의 협상에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이제 완전히 모사꾼이 다 됐군. 그런데 미인 과부를 조조놈에게 팔아 넘겨서 이득을 보려는 건 너무하지 않아?”

“당연히 두씨 본인이 원할 때만 그렇게 해야지요. 만약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적당히 다른 재취 자리를 알아봐 주면 될 일입니다. 대단한 미인이라고 하니 재취 자리 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어차피 여인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두씨는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절세미인이니, 생계가 막막한 두씨를 후원해 주다가 그녀에게 뜻이 있다면 조조나 다른 권력자의 첩으로 보내 마가군이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만약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저 재취 자리를 알아봐 주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이용해 먹는 건 마가의 방식이 아니라고. 그 여인 스스로 권력자의 첩이 될 뜻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그냥 재취 자리나 알아봐 주세.”

“물론이지요. 과부와 고아를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건 조맹덕, 사마중달이나 할 법한 일이니 우리가 취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그 여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여야지요. 그 와중에 혹시나 이득을 볼 수 있으면 보는 거고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어쩌면 진의록의 처 두씨를 활용해서 큰 이득을 볼지도 모른다. 나관중은 역사 속 두씨의 행적을 더듬으며 그 희박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진국을 다스리는 진왕 유총의 치소, 진왕부에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한 군의가 열렸다.

진왕 유총은 꼿꼿한 자세에 제법 위엄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조조와 황보숭, 마초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에게 하나씩 정성껏 인사를 올렸다.

마가군의 대표로 온 방덕은 마초에게 마가군 대표의 자리를 양보하고자 했으나 마초는 웃는 얼굴로 사양했다. 근황병에 참가하는 동안은 근황부도독의 직분에만 충실할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작 2천 군사를 이끌고 온 20대의 방덕이 조조, 황보숭과 나란히 앉아 군의에 참석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방 장군이 나름 잘 어울리는데요.”

“얼굴이 겉늙었잖아.”

마초와 장료는 어색하게 앉아 있는 방덕이 들으라는 듯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항상 근엄한 서황도 조용히 웃음을 참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방덕은 인상을 팍 쓰고 사공 조조와 태위 황보숭 사이에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조조는 여유 있는 태도로 그런 방덕에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나서 좌중의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애써 주셔서 역적 원술은 잡았소. 이제 원술의 근거지인 수춘성의 공략만이 남아 있는데, 수춘성에 변고가 좀 생겼소.”

“변고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방덕이 묻자 조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천자의 조서는 우리에게만 내려온 게 아니오. 형주목 유표와 서주목 유비에게도 내려갔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유표는 예상한 것처럼 군사를 보내는 척 꾸물거리다 시간을 다 보냈는데, 서주목 유비는 좀 다르더군.”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옆을 돌아봤다. 조조의 부장 자격으로 와 있는 조인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원술이 이곳 진국으로 원정을 떠난 사이, 유비가 휘하 장수를 보내 수춘성을 쳤습니다. 듣기로 유비군의 장수가 단기로 수춘성의 성문을 열고 회남윤 양강을 벴다고 합니다.”

조인의 말을 듣자 이번에는 마초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수춘성이 이미 떨어졌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수춘성은 이미 유비군이 함락시켰습니다.”

“하, 유 서주의 군대가 그 정도로 강한가. 지금이라면 형편이 어려울 텐데.”

유비의 군사적 재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시기의 유비는 조조의 대학살로 황폐해진 서주를 기반으로, 몇 년째 조조의 공세를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 신세일 뿐이다. 그럼에도 조조가 공세를 잠시 멈추자 원술의 근거지 수춘을 단독으로 함락시키는 위용을 보인 것이다.

유비를 잘 아는 마초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년째 조조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기만 하던 유비지만 한 번 떨쳐 일어나니 너무나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대체 누구를 보내서 그런 위업을 달성했느냐는 것이었다. 마초는 조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춘을 떨어뜨렸다면 유 서주가 두 자루 명검 중 하나를 뽑았겠군. 그래, 수춘에는 둘 중에 누가 갔다고 하오?”

유비의 휘하에 두 명의 천하 용장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기로 수춘성의 성문을 열었다면 더욱 그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조인이 대답했다.

“관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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