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원술 토벌전 (2)
“이랴!”
마초의 뒤를 따르는 오백 기의 군사들은 저마다 말에 채찍질해가며 원술의 본대를 향해 달렸다. 근황병의 근간을 이루는 장양과 단외의 군사들 중 나름 가려 뽑은 군사들이지만 마초를 쫓아가는 것이 버거웠다. 선두에 선 마초는 등자를 디딘 채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초를 태운 백마 도철의 걸음이 너무 빨랐다.
마초의 뒤를 따르는 법정은 있는 대로 말에 채찍질해서 간신히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대가 세고 몸을 잘 쓰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마초가 이끄는 기병대의 속도를 쫓아가는 건 정말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법정에게 놀라운 것은 언뜻 비실비실해 보이는 나관중이 능숙하게 말을 몰아 마초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비서랑 선생, 기마술은 언제 그렇게 연마했습니까?”
“아, 법 군사. 딱히 연마한 건 아니고, 그저 주공을 오래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리 되었습니다.”
나관중은 마초와 금철기들이 사용하는 단단한 고정식 안장과 등자를 쓰고 있었다. 나관중 자신이 전한 14세기 원나라 양식의 문물이었다. 원래부터 체력은 저질이었을지언정 부잣집 아들이라 말타기는 어지간히 능했던 나관중이다. 자신이 익숙한 14세기의 마구를 갖추게 되자 말 타는 솜씨가 여느 기병장수 못지않았다.
법정은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이 사람도 보통 문사가 아니다. 비록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지만 시문과 서예에 능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독특한 문물을 잘 생각해 낸다. 주공이 가장 신임하는 책사는 나도, 순 별가도, 황 군사도 아닌 이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재주라면 금세 마가군의 실질적인 이인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법정의 능력은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관중, 순유, 황권 같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전부 마초가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더 노력할 것이다. 나 또한 지지 않을 것이다.’
법정이 그렇게 결의를 다지는 동안 원술군 본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원술은 천자의 수레를 타고 있으니 기병이 마음먹고 달리면 금세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저 멀리 원술군의 후미가 눈에 들어올 만큼 거리가 줄어들자 마초는 팔짱을 풀고 말고삐를 잡았다. 그때 척후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급보! 아군에서 우리 말고도 원술군을 쫓고 있는 부대가 있습니다!”
“그래? 누구라더냐?”
“조조군의 하후연입니다!”
마초는 하후연의 이름을 듣자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나관중이 가까이 다가왔다.
“주공, 하후연은 조조군에서 가장 행군이 빠르다고 이름난 장수 아닙니까?”
“그래. 나는 실제로 상대해 봤는데 정말 빠르긴 하더군.”
“으음… 하후연과 공을 다투게 됐으니 이것 참 곤란하군요.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찌하긴 뭘 어찌해? 방법이 하나밖에 더 있나.”
마초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향해 호령했다.
“전군, 속도를 올려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원술을 향해 달린다!”
마초가 이끄는 오백 기의 군사들은 지체없이 원술의 본대를 향해 달렸다.
이미 대열의 후미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초군은 반 시진이 되지 않아 원술의 행렬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하후연도 비슷한 시점에 원술군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목표물을 쫓고 있으니 마초와 하후연은 멀리서나마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근접하게 되었다. 하후연 또한 마초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마초에게 물었다.
“복파장군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내가 왜 여기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역적은 우리 근황병이 잡을 터이니 하후 교위는 일을 그르치지 말라.”
“소장이야말로 사공의 명을 받아 역적을 쫓고 있으니 물러날 수 없소이다. 복파장군이나 소장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뭣이? 감히 황명을 받은 나에게 조맹덕의 명을 들이대?”
“조맹덕이라니, 사공이 복파장군의 친구입니까?”
옥신각신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후연은 이내 설전을 끝내고 똥 씹은 표정으로 병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귀속군(鬼速軍), 전속력으로 달려라!”
도깨비처럼 빠르다고 해서 귀속군이라는 이름이 붙은 하후연의 직할부대다. 대장이 심기가 불편하니 귀속군은 더욱 빠르게 원술군을 향해 달렸다. 말이 지칠 만큼 빠르게 달리니 이내 원술군 최후미 병사들의 혼비백산한 표정이 보일 만큼 근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후연이 먼저 원술군에 근접해 가니 초조해진 것은 마초다.
“에잇, 근황병! 더 빨리 달릴 수 없나!”
“무리입니다, 부도독. 벌써 십 리나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더 이상 속도를 올리면 말이 지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으음…….”
천하에 이름을 날린 기병대장 마초가 그런 이치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어지간히 빠르게 달려오기는 했지만 하후연의 귀속군이 조금 더 앞에서 출발했으니 아무래도 앞서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대로 공을 포기할 것인가?
“관중, 자네가 병사들을 이끌어라.”
“예! …예? 제가요? 주공은 뭘 하시려고요?”
“그야 뻔하잖아. 나 혼자 원술을 때려잡고 있을 테니 늦지 말고 따라와!”
“예? 주공!”
마초는 경악하는 나관중을 뒤로 하고 마초는 도철을 몰아 똑바로 원술군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도철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병사가 있을 리 없으니 단기필마였다.
지난 반 시진의 행군이 다른 말들에게는 전력 질주였지만, 도철에게는 가볍게 몸을 데우는 정도의 속도였다. 도철은 실로 오랜만에 가진 힘을 다 쏟아내 달릴 수 있었다. 도철이 땅을 박차자 마초의 얼굴로 거센 풍압이 몰아쳤다.
휘이잉—
“큭…….”
조황비전에 타고 장수와 싸울 때, 도철에 타고 허저와 싸울 때에 이어 세 번째. 안장의 등받이가 등허리를 때리고, 몸이 뒤로 밀려 나가는 듯한 가속감이 찾아왔다. 마치 눈앞의 공간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두두두두.
근황병의 선두에 서 있던 마초가 혼자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옆으로 하후연이 이끄는 귀속군의 병사들이 휙휙 지나갔다. 추월하는 마초를 보는 귀속군 병사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먼저 간다, 귀속장군.”
마지막으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의 하후연까지 추월했다. 이제 마초의 눈앞에 원술군의 병사들이 보였다.
퍽!
마초는 그대로 원술군의 후미에 충돌했다. 왼쪽 겨드랑이에 낀 금마삭이 그대로 중나라 근위병을 꿰뚫었다. 반작용에 의해 마초의 몸이 한껏 뒤로 밀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등자와 고정식 안장을 준비했으니, 마초는 등자를 딛은 채 안장의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고 충격을 버텼다.
퍽! 퍽!
도철은 적병을 꿰뚫으며 생기는 반작용의 힘을 무시했다. 마초가 적병을 창으로 꿴 상태 그대로 전진하며 밀어붙였다. 금마삭은 후미 1열 근위병의 몸을 뚫고 들어가 2열과 3열 근위병을 연이어 꿰뚫었다.
창 한 자루에 세 사람이 꿰이는 모습이 아주 드문 건 아니다. 꼭 마초 같은 용장이 아니더라도 장창을 든 정예 기병이 보병을 상대하면 어쩌다 만들어지는 그림이었다. 기병에 맞서는 보병들은 다닥다닥 열을 지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망치는 적군의 후미에 선 보병을 꿰뚫고, 말이 그 힘 그대로 밀어붙여서 도망치는 세 사람을 꿰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술군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경악했다.
“저, 저자가 누구냐?”
“저 사자 투구를 보십시오! 마초, 마초가 틀림없습니다.”
“우린 다 죽었습니다!”
원술군의 병사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마초는 피 묻은 금마삭을 다시 뽑아 들고 대열의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공포에 질린 원술군 병사들이 양쪽으로 비켜서서 자기도 모르는 새 길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다. 비켜서면 살 수 있다.”
“비켜서지 마라! 길을 열어주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여기저기서 소교들이 고함을 질렀지만, 병사들에게는 이미 먹히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마초를 막아서다 요행히 산다고 하더라도 이미 하후연과 나관중이 이끄는 두 갈래의 기병대가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도철을 탄 마초가 난입하자 원술군의 후미가 둘로 갈라졌다. 마초는 갈라진 길을 달려서 대열 중앙의 화려한 수레를 향했다. 원술이 타고 있는 어가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망해 가는 나라에도 한 명의 충신은 있는 법이다. 기골이 장대한 무장 하나가 마초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내가 바로 회남의 기령이다.”
기령은 대도를 뽑아 들고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마초를 막아섰다.
마초는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기령은 마초를 두 쪽 내겠다는 듯 대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기령의 대도가 정점에서 낙하를 시작하는 순간, 동시에 마초는 금마삭을 들어 다가가는 기령을 향해 찔렀다.
퍽!
베는 대도와 찌르는 삭. 어느 쪽이 상대에게 먼저 닿을지는 자명한 일이다. 마초의 금마삭은 그대로 기령의 대도 사이를 뚫고 안면을 파고들었다. 기령은 간신히 몸을 틀어 목숨만은 건졌다. 그런데 무기가 얽히는 사이 금마삭의 창대에 닿은 오른 손목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부러졌나.”
상대가 천하에 이름 높은 마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거대한 백마를 탄 마초는 기령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쩡.
기령은 미련 없이 대도를 바닥에 던졌다. 어차피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대신 아직 멀쩡한 왼손으로 검을 뽑아 틀어쥐었다. 마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일격을 안길 생각이었다.
마초는 도철을 몰아 전장을 길게 한 바퀴 돌고 다시 기령의 앞으로 돌아왔다. 원래 그대로 기령을 짓밟고 지나가려 했었다. 그러나 기령의 저항이 생각보다 완강했다.
이번에는 마초가 먼저 말을 걸었다. 방금 전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던 마초지만 한 수를 나눠 보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량의 마초다. 기령이라고 했나?”
“그렇다.”
“천자를 참칭하는 역적 밑에 있기는 아까운 인재군. 다음 한 수로 승패가 날 것이다. 내가 이기면 내 밑으로 와라. 이름을 날릴 기회를 주마.”
“거절한다. 오갈 데 없던 시절 원가의 은혜를 입어 살아난 몸, 그저 여기서 주군을 위해 죽을 뿐이다.”
기령의 눈은 침착했다. 불안도,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초는 그런 그를 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원공로에게도 충신이 있었구나. 알았다.”
기령의 눈은 설득이 안 되는 자의 눈이다.
마초는 그대로 도철을 몰아 기령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적어도 고통 없이 보내 주마.’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기령은 더욱 또렷한 눈으로 마초를 응시했다. 왼손에 든 검은 마초의 복부를 노리고 있었다.
아직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약간 멀다고 느껴질 때, 마초가 먼저 출수했다.
마초는 왼손의 금마삭을 던지듯이 앞으로 찔렀다. 팔이 쭉 펴지고, 창이 쭉 뻗고, 그럼에도 창날의 끝과 기령의 몸 사이에 한 자의 거리가 남았을 때, 도철이 한 발을 내디디며 그 거리를 좁혔다.
퍽!
마초는 창날이 기령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더욱 빠른 동작으로 창을 회수했다. 권법가의 주먹처럼 끊어친 창날은 정확히 기령의 가슴이 있는 곳에 모든 힘을 쏟아내고 마초의 품으로 돌아갔다.
기령의 손가락이 풀리며 왼손에 쥐었던 검이 땅에 떨어졌다. 가슴에는 팔뚝이 드나들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회남의 맹장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절명했다.
원술이 바로 앞에 있다. 뒤에서는 하후연이 공을 다투며 쫓아오고 있다. 그러나 마초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말 위에서 절명한 기령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 서서 아무 고민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
‘지난 생에서 관우에게 항복을 권유받은 방영명이 이런 표정이었을까.’
마초는 손을 들어 기령의 눈꺼풀을 쓸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살아 있는 것처럼 말 위에 앉아 있던 기령은 마초가 눈을 감겨 준 뒤에야 균형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히…히이이익!”
중나라 황제 원술은 체통도 잊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가에 탄 채 초조하게 창밖을 내다보던 그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사자 투구를 쓴 푸른 눈의 청년 장수가 어가의 옆에서 달리며 창 너머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눈높이로 봐서 그가 탄 말은 어지간히 키가 큰 것 같았다.
원술의 눈은 기령의 눈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한 지역을 제패한 군웅인데 아무런 기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마초는 피식 웃어 버리고 도철을 몰아 어가의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인상을 쓰고 회전하는 수레바퀴를 쳐다보던 마초는 금마삭을 들어 수레바퀴 사이에 찔러 넣었다.
푹.
콰직!
회전하는 바퀴 사이로 들어간 금마삭은 잠시 후 바퀴살에 걸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네 바퀴로 가야 하는 수레가 왼쪽 앞바퀴만 구동이 멈췄다. 어가는 결국 그쪽으로 크게 기울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우당탕!
어가가 전복되고 원술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를 지켜야 할 시위들은 그저 절망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원술이 평소에 어지간히 인심을 잃은 모양이었다.
‘결국 이자에게는 기령뿐이었나.’
마초는 쓴웃음을 짓고 엉금엉금 기는 원술에게 다가갔다.
“대한 복파장군 근황부도독 마초가 중나라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자, 장군! 짐이 장군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드릴 수 있소. 여기서 짐을 보내 준다면 온 천하가 장군의 것이오! 승상? 대장군? 아니면 제후왕? 뭐든지 말만 하시오!”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글쎄, 그대에게 그런 게 있을까.”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뒤편을 흘긋 돌아봤다. 귀속군이 원술군 후미의 병사들을 마구 살육하며 어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에 서 있는 하후연은 명마를 탄 마초에게 공을 빼앗긴 것이 화가 났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돼 있었다.
어차피 원술의 압송은 하후연에게 맡기려 했다. 그런데 막상 원술을 사로잡는 공은 마초가 가로챘으니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후연이 원술을 어지간히 핍박하겠군.’
마초는 피식 웃고 품 안에서 가죽 물통을 하나 꺼내 원술에게 던졌다.
“이, 이게 무엇이오?”
“그대는 내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지. 꺼내서 마셔라.”
원술은 우두커니 마초를 바라보다 이내 가죽 물통을 열었다. 안에는 꿀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