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원술 토벌전 (1)
중나라 초대 황제 원술은 큰 곤경에 처해 있었다.
“유총에게 원군이 있다고?”
“그렇사옵니다, 폐하! 유총이 세 갈래 원군을 끌어들여 아군의 선봉을 무너뜨렸다 하옵니다!”
“에에이! 그게 무슨 발칙한 소리냐! 원군이 있으면 깨부수면 될 것이 아닌가? 경들은 짐이 직접 출진했는데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겠느냐!”
원술은 천자의 수레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왕 유총은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원술의 세력권과 인접한 예주 진국을 다스리는 제후왕이었다. 세력은 미미하지만, 물자가 풍족했으니 원술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며 원술군 내부에서도 적잖이 여론이 나빠졌으니, 원술은 이번 원정을 직접 지휘하여 진국의 풍부한 물자도 얻고 부하들의 불만도 가라앉히고자 했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술이 친정을 나섬과 동시에 허도의 천자 유협은 역적 원술을 토벌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조서를 받은 것은 사공 조조, 형주목 유표, 서주목 유비, 관중도독 마등, 근황대도독 황보숭이었다.
각각의 군웅들은 조서가 닿기 무섭게 원술의 근거지 수춘성을 향해 달려갔다. 원술은 하필 그 시점에 진국으로 친정을 나섰으니 수춘성을 향해 달리던 조조, 마등, 황보숭의 군사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선 것은 한 눈에도 기골이 장대한 맹장이었다.
“폐하, 어가를 겁박하는 발칙한 무리들을 신이 쓸어버리고 오겠나이다!”
“오오, 회남의 상장 기령인가! 과연 믿음직하구나. 허나 어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
원술은 그렇게 기령을 다독이고 자리에 앉혔다. 사실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혹시라도 저놈들이 어가까지 들이닥치면 낭패다. 아국의 장수들 중 가장 용맹한 게 기령이니,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짐을 호위하도록 해야 할 것이야.’
나름대로 심계를 쓴다고 생각한 원술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조조와 마등의 무리들이 감히 짐을 겁박하고 있다. 누가 나가서 이 치욕을 씻어 보겠느냐?”
“신이 죽기로 싸워 적을 무찌르겠나이다!”
“신을 보내 주십시오! 자신 있습니다!”
“오오, 좌장군 이풍과 우장군 악취인가. 좋다, 그대들이 나가서 저놈들을 쓸어버리도록 하라.”
원술은 기세 좋게 나서는 이풍과 악취에게 일군의 병마를 맡겨 적을 습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중나라 황제 원술은 중나라 대장군 장훈을 불러 말했다.
“대장군.”
“하명하시옵소서, 폐하.”
“퇴각해야겠다.”
“예?”
“아무래도 적이 많은 것 같다. 짐은 일단 퇴각할 테니, 대장군은 상황을 보고 있다가 이풍과 악취가 잘 싸우면 지원하고, 못 싸우면 짐을 따라 퇴각하라. 이풍과 악취가 이기면 짐에게 빨리 알리는 걸 잊지 말고.”
“아니, 폐하, 그게 무슨…….”
경악한 대장군을 뒤로하고 황제는 짐을 꾸려 퇴각 준비에 들어갔다.
한편, 전장으로 달려간 이풍과 악취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조조군 선봉대를 맞닥뜨린 이풍의 군사들은 상대의 빈틈없는 지휘에 눌려 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대열을 갖춰라! 물러나지 마라!”
이풍이 소리치며 병사들을 독려해 봤지만 허사였다. 조조군 선봉대는 군문에서 20년을 구른 이풍도 처음 볼 만큼 강한 부대였다. 병사 하나하나의 얼굴을 뜯어보면 아직 앳된 것이 신병이 태반인 듯했지만, 어찌나 강한 훈련을 받았는지 다들 민첩하게 자리를 찾아 들어가서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조조군 선봉대의 부장 조홍은 그런 이풍의 부대를 보며 조소를 띠었다.
“아, 옛날 생각나네. 동탁과 싸울 때 원술 저놈이 꾸물대지만 않았어도 이겼을 텐데. 그렇지 않소, 형님?”
조홍은 자신의 옆에 있는 희고 갸름한 얼굴의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봉대 대장 조인이었다.
“자렴(조홍의 자), 전쟁의 승패는 사람이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저 모든 싸움에 최선을 다할 뿐.”
“어이고, 우리 형님은 아주 그냥 살아 있는 손자병법서야. 7년 전 원술이란 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화가 나오. 내 손으로 원술을 때려잡고 싶단 말이오.”
“원술의 본대 쪽으로는 하후묘재가 진군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의 임무는 적의 구원병을 격파하는 것이다.”
“쳇, 원술의 본대를 쳐야 전리품을 얻는데…….”
유독 돈을 밝히는 조홍은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투덜거렸다. 조인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이풍의 진을 살피다 별안간 말을 몰아 뛰어나갔다.
“어어, 형님? 어디 가시오?”
“허점이 보이는구나.”
조인은 그 말만을 남기고 쏜살같이 말을 몰아 이풍의 부대를 향해 달렸다. 조홍은 그런 조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하여튼 형님은 꼭 문관처럼 생겼으면서 보기와 달리 재빠르다니까. 저 재주로 조금만 재물에 관심을 두면 큰 부자가 될 텐데.”
자신과는 달리 재물에 별 관심이 없는 조인이 안타까운 조홍이다.
잠시 후, 군사들을 독려하던 이풍은 단기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조인과 마주쳤다. 조인은 잠시 대열에 틈이 벌어진 것을 이용해서 절묘한 기마술로 진과 진 사이를 뚫고 육박해 왔다.
“웬 놈이냐!”
“의랑 조인, 자는 자효.”
“의…랑? 문관이냐?”
이풍은 어이가 없다는 듯 조인을 쳐다봤다. 말은 그럴싸하게 잘 타지만 체격은 약간 마른 듯 평범했다. 인상도 그저 선비처럼 차분했다. 아무리 봐도 맹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감히 문관 따위가 중나라 좌장군 이풍에게 덤빌 셈이냐!“
이풍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조인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조인은 대꾸하지 않고 등에 지고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수백 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검처럼 칼날이 두터운 검이었다. 다른 점은 손잡이의 끝부터 칼날의 끝까지 8척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다. 길이도, 너비도, 두께도 일반적인 장검의 두 배에 달하는 검이 조인의 손에 들렸다.
부우웅!
조인은 자신의 애병 팔척검(八尺劍)을 허공에서 한 번 돌려 등에 메었다. 이풍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앞으로 달려 나갔다.
‘외모와는 달리 기운은 센 모양이군. 그러나 저런 거대한 검은 보기에만 그럴싸하지 허점이 많다. 저놈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창으로 찔러 떨어뜨려 주마.’
그것이 이풍의 생각이었다. 이풍은 재빠르게 달려 나가 조인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등에 팔척검을 메고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조인은 이풍이 창을 출수하자 비로소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퍼억!
조인이 휘두른 팔척검은 그대로 이풍의 창을 두 동강으로 잘랐다. 검이 닿는 곳에 있던 사람과 말도 동시에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총 여섯 조각이 된 창과 사람과 말이 바닥을 굴렀다.
조인은 검을 집어넣고 말에서 내렸다. 침착하게 이풍의 목을 잘라 말안장에 매다는 그에게 주변의 병사들이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인은 그대로 말을 달려 조홍이 있는 조조군의 진영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중나라 좌장군 이풍이 고혼이 될 무렵, 원술의 명을 받고 출전한 또 한 명의 장수가 있었으니 우장군 악취였다. 악취는 마가군을 맞닥뜨려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적병들은 숫자가 적다! 계속 활을 쏴라!”
마가군의 수는 총 2천. 조서가 내린 후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급하게 홍농 방면군만 끌고 왔기에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마가군이 비록 서량의 강병이라지만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 악취의 생각은 그랬다. 실제로 악취가 비 오듯 화살을 퍼붓게 하자 마가군은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도 방법이 있지.”
마가군을 이끄는 방덕은 그렇게 말하고 좌중의 한 장수를 돌아봤다. 모든 장수들의 눈이 방덕을 따라 한 장수에게 쏠렸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는 실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맹장 한 명이 적진에 쳐들어가 적장의 목을 벤다. 이 위험한 임무는 그렇게 장료에게 배당되었다.
“왜 나한테는 자꾸 험한 일만 시키는 거야? 더러워서 진짜… 확 승진해 버릴까?”
장료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말을 몰았다. 서량에서 귀부한 후 유독 장료에게는 위험한 임무가 많이 돌아갔다. 마가군의 장수들은 뭔가 개인의 무용을 발휘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장료를 먼저 찾았다. 마초도, 방덕도, 서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봉록이야 두둑하게 받지만, 이러다 엉뚱한 놈 하나 만나서 다치기라도 하면 끝장이잖아? 아무래도 이제 슬슬 연병과 지휘 솜씨를 보여줘야겠어.”
연병 같은 귀찮은 일을 맡기 싫어서 그냥 칼 잘 쓰는 검객으로만 행세하다 보니 검객으로만 대우하는 것 같았다. 장료는 이제 슬슬 현 직장에 자신의 능력을 더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지휘 능력을 보여주면 단숨에 장군의 자리에 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지금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장료는 적병이 모여 있는 곳을 요령껏 피해 가며 적의 대장기 근처까지 파고들었다. 멀리 악취의 깃발이 보였다. 장료는 심호흡을 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악취 장군! 전령입니다!”
“그래? 무슨 소식을 가져왔느냐?”
“그게 그러니까…….”
장료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악취에게 터덜터덜 걸어서 다가갔다. 마가군의 군복을 입고 있는 장료를 보고 수상하게 느낀 악취의 부하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장료를 가로막았으나 장료는 개의치 않았다.
“악취 장군이 적장 장료에 의해 전사했다는 소식이 곧 전해질 예정입니다.”
“뭐… 뭐라?”
“네 이놈!”
악취의 부하들이 장료를 향해 일제히 칼을 내리쳤다. 장료는 그런 그들을 굳이 상대하지 않고 지나쳤다. 슬쩍 보면 상대의 공격을 읽을 수 있는 장료다. 악취 부하들의 공격은 일제히 허공을 갈랐다.
푹!
“끄어억…….”
장료의 검 끝이 악취의 배를 파고들었다. 악취는 제대로 저항해 보지도 못한 채 기묘한 비명을 내며 말에서 떨어졌다.
“원한은 없으니 이해하시오. 그러니까 줄을 잘 섰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꼭 천자까지 참칭하는 역적 밑에 있어야 했나? 아무리 높은 관직이 탐나도 말이야.”
장료는 눈으로는 같은 직업 무장의 입장에서 악취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두 손으로는 악취의 머리를 잘라냈다. 몇몇 병사들이 그런 장료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1합을 겨루지도 못하고 허점을 찔려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악취의 목을 취한 장료는 말을 달려 돌아오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 자도 군문에 들 때는 꿈이 있었을 텐데 딱하게 됐군. 역시 이 일을 하려면 쉽게 지지 않는 안정적인 곳이 최고야.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마가군이 참 괜찮지.”
지금의 주군인 마초도 위험한 짓을 자주 벌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포처럼 제멋대로는 아니다. 장료는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 * *
“마가군도, 조조군도 잘 싸우고 있군.”
근황부도독 마초는 도철을 타고 언덕 위에 올라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인과 조홍이 이끄는 조조군은 군기가 엄정하고 용맹했다. 방덕과 서황이 이끄는 마가군도 수는 비록 2천에 불과하지만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다. 원술이 양쪽으로 원군을 보냈지만, 각각 어렵지 않게 격파한 듯했다.
예상은 했지만 원술군은 예상보다 더 약했다. 그러다 보니 후미에 처져 있는 근황병은 나설 자리가 없었다.
꼭 마초가 직접 공을 세우지 않더라도 마가군이 공을 세웠으니 참전한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그러나 마초는 가만히 행군만 하다 돌아가자니 아무래도 찜찜했다.
“참전만 하고 군공 없이 돌아가는 건 좀… 이번 생에는 피하고 싶은데.”
사실 마초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지난 생에서 유비군에 귀부한 뒤로는 전투에 참여하기만 하고 공은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때 정찰을 나간 월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주공, 주공! 원술의 수레를 찾았습니다!”
월길은 마치 마초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좋은 소식을 전했다. 마초는 월길의 보고를 듣자 씩 웃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중나라 황제 폐하를 뵈러 가 볼까.”
길고 검은 머리가 바람에 나부끼고 푸른 눈이 반짝 빛났다. 마초는 사자 투구를 들어 머리에 쓰고 금마삭을 비껴들었다.
“가자!”
마초의 호령을 들은 도철이 땅을 박찼다. 근황병 중 가려 뽑은 오백 기가 마초의 뒤를 따랐다. 목표는 원술이 탄 수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