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46화 (146/306)

146화. 익주 내전에서 승리하다

“복파장군의 명을 받듭니다!”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두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둘 중 키가 큰 소년은 이곳저곳이 뻗친 까치집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키가 작은 소년은 눈을 다 가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었다. 마대와 왕평이었다.

“우리가 이미 죽음을 각오했거늘, 복파장군은 관례도 올리지 않은 아이들을 내보내 우리를 욕보일 셈이오?”

오의가 발끈했다. 옆에서 사촌 동생 오반이 그런 오의를 달랬다.

“형님, 진정하십시오. 복파장군이 말하길 우리가 이기면 물러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전투의 승패를 뒤집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상대가 어리다고 화만 낼 일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겠느냐? 게다가 만약 저 소년들이 무공이 뛰어나다면…….”

“그때는 포기하는 거지요. 별수 있습니까?”

오반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던 오의도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마초에게 말했다.

“복파장군, 허나 군문에 든 이상 노소가 없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니 두 소년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소이다.”

“마음대로 해. 지면 투항하는 거나 잊지 말고.”

마초는 오의의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오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대도를 들고 있었다.

“진류의 오의다. 그대들 중 누가 나와 겨루겠나?”

“후후, 후후후후…….”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까치집처럼 뻗친 머리를 한 마대였다. 마초를 흉내 냈는지 왼손에는 창을 들고, 허리춤에는 장도를 차고 있었다. 올해 열아홉이니 이제 소년이라고 불리기도 머쓱한 나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아서 마가군과 마씨 집안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존재였다.

“이 장도는 뽑을 수 없다.”

“무슨 소리냐?”

“관서의 사자가 날뛰고 있어서 말이지.”

“뭐… 뭐라고?”

“그러니 창으로 상대해 주마. 울어라, 나의 창아!”

마대는 말을 달려 오의에게 똑바로 달려 들어갔다. 오의는 눈을 부릅뜨고 대도를 들어 마대를 내리쳤다.

탕!

“아니, 이런…….”

오의는 경악했다.

마대는 그대로 창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 오의의 대도를 옆에서 쳤다. 마대가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곳에 힘을 가하자 오의가 위에서 아래로 쓰는 힘이 마대가 유도하는 길로 빠져나갔다. 오의의 대도는 길을 잃고 마대의 옆에 있는 허공을 내리쳤다. 마초가 특기로 삼는 청경의 기법을 흉내 낸 것이다.

마대는 오의의 창을 흘려보낸 뒤 5척 장도를 뽑아 들고 외쳤다.

“난세를 꿰뚫는 정의의 칼날이여!”

“아니, 방금 전에 그 장도는 뽑을 수 없다고…….”

오의가 미처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마대의 칼날이 번득였다.

퍽!

오의가 탄 말의 머리가 잘리고 오의가 땅바닥을 굴렀다. 마초가 서황과 겨룰 때 창으로 허초를 넣고 장도로 말머리를 베서 이겼다는 무용담을 듣고 마대가 자기 나름대로 개발한 초식이었다.

“이 마대,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다!”

낙마해서 땅을 구르는 오의를 향해 자기 멋에 취해 맥락 없는 말을 외치는 마대를 보며 마초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은 무공은 이미 대성했는데… 저렇게 정신을 못 차려서 과연 장수로 써먹을 수 있을까?”

같이 당번병을 시작한 맹획은 이미 어엿한 장수가 되었다. 그러나 마대에게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초는 이러다 마대가 왕평에게도 추월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왕평 쪽을 바라봤다. 사실 역사상의 왕평은 마대나 맹획이 아니라 마초 자신과 견줄 만한 명장이었으니 이대로라면 언젠가 마대를 추월할 것이다.

왕평과 오반은 제법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왕평은 무예 자체는 뛰어났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고 평민 출신이라 기마술이 너무 떨어졌다. 말 위의 왕평은 창을 들고 날카롭게 찔러 오는 오반의 견실한 공격을 받아 내기도 급급했다.

“쳇, 그렇다면!”

왕평은 몸에 맞지 않는 창을 던져 버리고 익숙한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오반에게 달려 들어가다 별안간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무슨 짓이냐?”

창끝으로 계속 왕평을 좇던 오반은 왕평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창을 내질렀다. 왕평은 급히 몸을 틀어 창을 피했다. 손도끼는 어느새 왕평의 손을 떠나 있었다.

퍽!

왕평이 몸을 틀며 던진 손도끼가 오반의 말 목에 박혔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르자 기마술이 뛰어난 오반도 이내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왕평은 낙마한 오반을 향해 뛰어들어 손도끼를 휘둘렀다. 오반도 지지 않고 장검을 뽑아 왕평과 수를 교환했다. 손도끼와 장검이 부딪히며 몇 차례 불꽃이 튀었다.

“흡!”

난전을 제압한 것은 왕평이었다. 왕평은 자신의 왼팔과 오반이 장검을 쥔 오른팔을 얽은 뒤 오른손의 손도끼로 오반의 장검을 내리쳤다.

쨍!

금속성의 소리가 울리며 오반의 장검이 부러졌다. 그 와중에 왕평의 손도끼도 손잡이에서 도끼날이 빠져나갈 만큼 큰 손상을 입었다. 왕평은 미련 없이 손도끼를 버린 후 비수를 뽑아 들었다.

퍽.

낮은 타격음과 함께 승부가 났다. 왕평의 비수가 오반의 허벅지에 꽂힌 것이다.

익주의 호걸로 이름난 오씨 형제, 오의와 오반이 마초를 수행하는 무명의 두 소년에 의해 패했다. 마초는 그제야 여유 있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약속대로 자네들은 투항하도록 하게. 설마 이름 높은 오씨 형제가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복파장군, 그대가 우리를 이토록 욕보일 줄은…….”

마대에게 패한 오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왕평에게 패한 오반이 오의를 달랬다.

“형님, 복파장군은 우리 힘으로 당해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현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만 둡시다.”

누이동생 오현의 얘기가 나오자 이를 갈던 오의도 이내 고개를 떨궜다.

“좋소, 우리 오가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겠소. 패장은 말이 없으니 처분은 복파장군께서 알아서 내려 주시길 바라오.”

“이 사람아, 그럴 땐 가족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탄원해야지. 하여튼 곧 죽어도 자존심은…….”

마초는 오의에게 핀잔을 주고 병사들을 돌아보며 호령했다.

“오의, 오반 두 장수를 모셔라! 이들은 촉 땅의 호걸이니 한 치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이 싸움에서 이긴 후, 두 장수와 화해의 술잔을 들 것이다.”

* * *

신도 벌판으로 출진한 마초군은 1만 8천, 유탄군은 4만. 거기에 옹개가 이끄는 남만병 1만을 더하면 1만 8천 대 5만으로 큰 전력 차가 있었다. 적당히 소모전을 벌이면 유탄이 질 수 없는 전력 차였다.

그러나 전황은 유탄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옹개의 남만병은 맹획과 감녕이 이끄는 별동대에 저지당하고, 방덕이 이끄는 3천 기병대가 강유관을 넘어 신도 벌판에 등장하며 전황을 바꿔 놓았다. 옹개는 맹획에게 패해 목숨을 잃었다.

마초군 본대의 옆을 찌르려던 오의와 오반은 마대와 왕평에게 패해 저지당했다. 중군끼리의 싸움은 황권의 빈틈없는 지휘로 마초군이 계속 이득을 보고 있었다.

전황이 결정적으로 마초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유탄군의 중군 대장 고패가 죽은 다음이었다. 중군을 이끌고 분투하던 고패의 진영으로 실눈을 한 평범한 외모의 마초군 장수 한 명이 슬그머니 잠입했다. 고패는 눈 깜빡할 새 가슴에 칼이 박혀 절명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적장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걸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장료, 자는 문원.”

고패가 죽은 후 흔들리는 중군으로 방덕이 이끄는 강족 기병대가 짓쳐들어왔다. 처음에는 화살로 중군을 견제하던 방덕은 적진이 크게 흔들리자 편곤을 뽑아 들고 돌격했다. 동주병을 이끌고 중군에서 끝까지 버티던 등현은 방덕의 편곤에 맞아 낙마했다. 난전 중에 말에서 떨어져 죽기 직전까지 몰린 그를 철리길이 산 채로 붙잡았다.

이민족 기병을 상대해 본 경험이 부족한 익주의 군사들이다. 강족 기병대가 중군을 유린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대열이 붕괴되었다.

유탄은 신도현성의 성벽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5만 대군이, 익주 제일의 맹장들이 고작 2만도 되지 않는 적병을 당해내지 못하다니! 저 서량 놈들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구나.”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는 유탄에게 모사 팽양이 다가왔다.

“공자, 일단 한중으로 피신하시지요. 그곳에서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팽 선생, 마가군의 서황이라는 놈이 한중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지 않나? 만약 한중이 떨어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중원으로 피해야겠지요. 사공 조조가 우리를 박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공부가 우리 편을 들다가 체면을 단단히 구긴 일도 있으니 말입니다.”

유탄과 팽양이 그렇게 모의하는 사이, 그들의 뒤에 불쑥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적장이었다.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적장을 보고 유탄과 팽양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장군부 행령군 이감입니다. 유탄 공자를 모시러 왔습니다.”

“흐…흐하하하!”

유탄은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익주의 주인이 되어 보려던 꿈은 이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한참을 목이 메인 소리로 웃던 유탄이 이감을 보며 말했다.

“그래, 마초는 나를 어떻게 할 작정이라고 하더냐? 이각에게 했던 것처럼 회라도 뜰 셈이냐?”

“그것은 복파장군이 아니라 유범 중랑장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다만…….”

이감은 유탄의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팽양을 흘긋 보며 말했다.

“유탄 공자가 잘못된 길로 가도록 부추긴 간교한 자들은 살려 두지 말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이감은 유탄과 함께 신도현의 성벽에서 내려와 성문을 열고 백기를 내걸었다. 손에는 팽양의 목이 들려 있었다.

성문이 열리자 신도 벌판의 유탄군은 너나 할 것 없이 항복했다. 대승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싸움이 마무리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마초가 신도현성에 입성했다. 이감과 시랑군 병사들이 성문 안쪽에 마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마초는 높이 솟은 상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덕, 장료, 감녕, 황권, 그리고 맹획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이 그 아래 시립했다.

마초는 가장 먼저 목만 남은 팽양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팽 선생. 우리는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악연이군.”

팽양은 재주가 없는 인물은 아니지만, 야심이 지나치게 크고 인품이 좋지 못하다. 지난 생에서 마초를 꼬드겨 유비에게 반역하려고 하다가 목이 잘렸던 팽양이다. 마초는 두 번째로 팽양의 수급을 보자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다. 욕심을 절제하고 성실하게 직분을 다 했으면 어느 정도 이름을 남겼을 만한 재주는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민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 마초는 짐짓 큰 소리로 호령했다.

“오늘 형제가 싸우게 된 것은 간사한 말로 유탄 공자를 꼬드긴 팽양의 탓이다. 팽양의 목을 성벽에 내걸어라. 이제 간신이 죽었으니 다시는 익주에 골육상쟁의 아픔이 없을 것이다!”

유범의 인품으로 미루어 보면 유탄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먼 변방으로 유배해서 조용히 살도록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자면 유탄을 대신해 무거운 정치적 책임을 질 만한 인물이 필요하지. 유탄의 꾀주머니 팽양이 알맞을 것이다.’

뒤이어 유탄이 끌려 나왔다. 과거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복파장군! 지난날 나에게 비단 십만 필을 얻어간 일을 기억하십니까? 부디 옛정을 생각하시어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이 와중에 돈 얘기를 하며 울부짖는 유탄을 보자 마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탄 공자는 내게 비단을 내어 준 일만 기억할 뿐, 마가군이 공자를 미오성에서 빼내 준 일은 기억하지 못하시는구려.”

“그, 그건…….”

“유범 중랑장에게 탄원할 때는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그저 죽여 달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는 편이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오.”

“저… 정말입니까? 정말 형님이 저를 살려 주신답니까? 만약 저를 죽이려 하면 어찌합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마초는 손을 저어 유탄을 끌고 가게 했다. 형제간의 일은 형제끼리 처리하도록 내버려 둘 셈이었다. 그러면서 이감을 불러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탄을 심문하여 사공부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 철저히 알아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유탄이 물러가고 또 다른 인물이 끌려 나왔다. 그 인물을 보자 마초의 눈살이 자기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이런, 저 사람은 조용히 처리하도록 미리 말을 해 뒀어야 하는데… 내 불찰이다.’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처결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변의 시선이 마초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뭐라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초는 끌려 나온 여인을 응시했다. 장로의 모친, 유언의 애첩, 그리고 지금은 유탄의 정부가 되어 있는 노씨였다. 쉰이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얼핏 봐서는 젊은 처녀와 다를 바 없는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대가 장로의 모친이 맞는가?”

“나를 왜 그렇게 부르십니까? 나는 그저 유탄 공자를 섬기는 여인일 뿐입니다.”

노씨는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초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패었다.

지난 생에서 잠시 장로가 다스리는 한중에 의탁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첩을 얻고 어린 아들도 얻었다. 마초가 유비에게 귀부하자 장로는 마초의 어린 아들을 손수 죽인 적이 있다. 즉 한중태수 장로는 마초에게 원수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이번 생의 은원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몸이다. 서황과 순유에게 굳이 한중의 지배권을 탐내지 말고 적당히 강화하고 끝내라고 지시한 것도 마초 자신이었다.

그런데 저 여인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장로와 원한이 쌓이게 생겼다. 저 여인을 잘못 다뤘다가는 마초가 장로의 원수가 될 지경이었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초는 노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그대는 이제 어떻게 하고 싶은가?”

“죽이십시오. 섬기던 사내가 저 꼴이 됐는데 어찌 첩이 혼자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런가. 알았다.”

마초는 더 묻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며 영을 내렸다.

“노씨를 참수하라.”

아무래도 장로와의 원한은 쉽게 끊어 내기 어려운 모양이다. 마초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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