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45화 (145/306)

145화. 신도 전투 (3)

방덕은 눈앞에 보이는 코끼리를 탄 장수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저 짐승을 화살로 쓰러뜨리는 건 무리다. 그러나 기수를 맞춘다면 얘기가 다르지.’

왼손의 각궁을 들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메겼다. 눈으로 코끼리 위의 기수, 옹개의 부장 마진을 좇았다. 달리는 말 위에 있으니 조준이 상하, 전후,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그러나 침상보다 말안장이 더 익숙한 방덕이다. 말의 고동을 느끼며 박자를 맞춘 후 백마가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 정점에서 잠시 멈추는 그 순간에 맞춰 시위를 놓았다.

깡!

화살은 마진의 몸을 가린 방패에 적중했다. 나무 방패를 뚫을 만한 위력을 가진 방덕의 강궁이었으나 마진의 방패는 쇠를 둘렀는지 화살을 막아냈다. 마진의 몸을 가린 방패수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코끼리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다른 기수가 얼른 방패수를 잡았다. 잠시 움찔했던 마진이 코끼리에 채찍질하자 코끼리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허, 이러면 도저히 잡을 방법이 없지 않나.”

터무니없을 만큼 강한 상대다. 방덕은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저놈을 둘러싸라! 살려 보내지 마라!”

화살이 통하지 않자 코끼리 위의 마진은 기세가 올라 소리쳤다. 마진을 호위하던 남만 기병 십여 기가 순식간에 달려 나와 방덕을 둘러쌌다. 저마다 제법 그럴싸한 창을 들고 있었다. 더운 날씨로 인해 갑옷이 좀 가벼운 것을 제외하면 한인 기병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새였다.

“곤란하게 됐군.”

말과는 달리 방덕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다. 방덕은 각궁을 집어넣고 안장에 매달고 있던 장병기를 풀어 손에 쥐었다. 긴 봉의 끝에 쇠사슬로 연결된 짧은 봉이 달린 무기, 나관중이 보여 준 14세기의 무기 중 방덕의 마음에 쏙 들었던 편곤이었다.

용감한 남만 기병 하나가 창을 뻗었다. 방덕은 몸을 틀지도 않고 날아오는 창을 왼손으로 낚아챘다. 그대로 오른손에 쥔 편곤을 크게 뿌리자 편곤에 맞은 상대의 몸통과 팔뚝이 터져 나갔다.

편곤의 궤적은 예측하기 어렵다. 긴 봉이 먼저 가면 뒤이어 쇠사슬로 연결된 짧은 봉이 따라온다. 손에 쥔 긴 봉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채면 짧은 봉이 순간적으로 공중에 멈추는데, 이때 편곤의 속도와 질량이 온전히 짧은 봉 끝에 실리면서 절륜한 파괴력을 만들어 낸다. 창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예측하기 어렵다.

퍽! 퍽! 퍽!

십여 기의 남만 기병들은 어느 순간에 맞는지도 모르는 채 방덕의 편곤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 어느 기병은 머리를 써서 방덕의 선수를 창으로 막고 반격하려고 했으나, 방덕이 긴 봉으로 창대를 후려치자 쇠사슬에 매달린 짧은 봉이 파고들어와 머리를 때렸다. 순식간에 말 열 마리와 사람 열 명이 바닥을 굴렀다.

“밟아라!”

코끼리 위의 마진이 소리를 질렀다. 편곤을 들고 날뛰는 방덕을 노리고 마진의 코끼리가 전진했다. 잠시 코끼리를 대적할 방법을 생각해 본 방덕은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발은 방덕이 탄 준마가 더 빠르니 이내 멀어질 수 있었다.

방덕은 80장 거리를 후퇴해 아군 진영으로 돌아왔다.

코끼리 한 마리에 기수는 도합 세 명. 하나같이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육중한 대형 방패로 몸을 가리고 있다. 코끼리에게는 화살이 통하지 않고, 기수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

“그러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방법이 없군. 법 군사의 말대로 그걸 준비해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소.”

방덕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옆에 있는 법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아보며 호령했다.

“전군, 화시를 준비하라!”

몇몇 병사들이 앞으로 나와 자루를 열었다. 산에서 채취한 송진이었다. 강족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화살에 송진을 듬뿍 묻혔다. 강궁을 쓰는 병사들은 화살에 기름 주머니를 매달았다. 화공의 준비가 끝나자 불씨를 든 병사들이 뛰어나와 곳곳에 불을 피웠다.

방덕은 멀리 날아가는 가벼운 화살을 골라 송진을 듬뿍 바른 후 불을 붙였다. 목표는 80장 밖의 코끼리 기수였다. 먼저 화살의 조준선을 코끼리 등 위의 마진에게 정렬한 후, 그대로 살짝 들어서 하늘을 겨눴다.

탕.

시위를 떠난 화살이 하늘로 날았다. 공중에서 40장 거리를 날아간 화살은 거기서부터 완만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화살이 80장의 거리를 날아가자 화살촉이 코끼리 등 위의 마진에게 닿았다.

퍽!

곡사로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마진의 몸을 관통하고 코끼리의 잔등에 박혔다. 화살대가 송진을 듬뿍 먹어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부우우우!

잔등에 불이 붙은 코끼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마진이 이끌던 남만병들은 자신들이 끌고 온 코끼리의 발에 밟혀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갔다.

불화살은 한 대가 아니었다. 강족 기병들이 저마다 쏴붙이는 불화살이 어지럽게 날았다.

“으악, 으아아악!”

화공으로 남만병을 제압하는 데 방덕과 같은 신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뜨거운 불맛을 보고 통제를 잃은 코끼리들은 최강의 무기에서 최악의 적으로 돌변했다. 강족의 화살에 맞아 죽는 사람보다 코끼리에 짓밟혀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

“흥.”

맹획은 다시 한번 장도를 들어 옹개를 겨눴다.

“진작 투장을 받았으면 이럴 일이 없지 않았나?”

자신도 모르는 새 옹개의 이마에 핏대가 불거졌다.

전황이 극도로 좋지 않았다. 갑자기 기병을 이끌고 나타난 방덕이라는 장수는 곡사로 코끼리 기수를 맞추는 신궁이었다. 게다가 그가 이끄는 강족 기병들은 코끼리 부대가 가장 취약한 화공이라는 약점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었다. 화공이 아니었더라도 멀리서 활을 쏘고 빠르게 도망치는 궁기병은 코끼리와 남만병 조합인 옹개의 부대에 최악의 상성을 지닌 적이다. 숫자까지 삼천에 달하니 당해 낼 방법이 없었다.

이제 승전은 어렵다. 그렇다면 첫째로 옹개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 둘째로 패전한 후 남중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남중의 지배권에 방해가 되는 맹씨의 혈통을 끊어 놓는 게 좋지.’

백상의 안장 위에서 잠시 맹획을 내려다보던 옹개는 자신의 뒤에 앉은 코끼리 기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 꼬마를 짓밟아라.”

기수들이 채찍질을 하자 다른 코끼리보다 훨씬 큰 백상이 움직였다. 그대로 맹획을 짓밟겠다는 의도였다. 맹획은 재빨리 말을 몰아 백상을 피했다.

“옹개, 끝까지 비열하구나.”

“닥쳐라. 남중은 숙후(옹치) 이래 대대로 옹가가 물려받아 온 봉토, 네놈 따위가 넘볼 수 있는 땅이 아니다.”

“흥, 마치 남중이 네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저 땅의 힘을 빌려 살아갈 뿐이다.”

맹획은 백상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면서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옹개는 분이 치밀어 옆에 앉은 기수에게 외쳤다.

“활을 다오. 내가 직접 저 꼬마를 죽일 것이다.”

퍽!

그러나 옹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수의 입을 뚫고 화살이 튀어나왔다. 뒤에서 누군가 화살을 쏜 것이다. 옹개가 돌아보니 백마를 탄 방덕이 활을 들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옹개가 이를 부드득 갈며 활을 들어 방덕을 겨눴지만 방덕의 두 번째 화살이 더 빨랐다. 방덕이 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백상의 잔등에 꽂혔다. 이번에는 불화살이었다.

뿌우우우우!

등짝에 불이 붙은 백상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옹개는 튕겨져 나갈 뻔했지만, 겨우 신형을 수습해 백상에서 뛰어내렸다. 불화살을 맞은 백상은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킨 옹개의 앞으로 맹획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흥, 이제 투장을 받아들이겠느냐?”

“오냐.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가르쳐 주마.”

옹개는 핏발이 선 눈으로 맹획을 노려보며 병장기를 들었다.

유탄의 편에 서서 익주 내전에서 한 몫 단단히 잡기 위해 참전한 싸움이다. 그러나 맹획의 부대가 예상보다 강했고, 때맞춰 방덕의 원군이 나타나며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이제는 패색이 짙었다. 옹개 자신 또한 여기서 죽을 수도 있고, 만약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은 위세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이 꼬마를 죽이고 돌아가리라.’

옹개는 왼손으로 등나무 방패를, 오른손으로 극을 들었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근육질의 상체가 불뚝거렸다. 눈앞의 맹획은 자신보다 키는 크지만 몸 두께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무예를 조금 익혔다 한들 자신이 질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

맹획은 장도를 두 손으로 잡았다. 왼손을 배꼽 앞에 두고 칼날을 비스듬히 세워 상대의 목을 겨눴다. 몸의 힘을 칼끝에 실어 단단한 쐐기를 만드는 마가도법의 기본자세였다.

선수는 옹개가 출수했다. 오른손의 극을 대각선으로 크게 휘두르자 맹획이 뒤로 물러났다. 맹획은 상대가 헛치는 틈을 타서 뒤에 있는 왼발을 힘차게 밀었다. 몸의 힘을 칼끝에 실어 옹개를 꿰뚫을 셈이었다.

퍽!

그러나 맹획이 발출한 칼끝은 옹개의 등패에 닿자 그대로 미끄러져 나갔다. 등패의 묘한 곡선이 맹획의 찌르기에 실린 힘을 옆으로 흘렸다. 맹획의 자세가 휘청이고, 옹개는 극을 빙글 돌려 맹획의 다리를 찍었다. 맹획의 왼쪽 다리에서 피가 튀었다.

“간신히 다리가 잘리는 것은 면했구나. 어디 얼마나 버티자 보자.”

옹개는 극을 휘둘러 맹획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강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맹획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늘어 갔다.

옹개와 맹획이 투장을 벌이는 곳으로 방덕이 다가왔다. 방덕은 맹획이 밀리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화살을 꺼냈다. 그때, 맹획과 방덕의 눈이 마주쳤다.

‘흥, 도움은 필요 없다.’

‘진심인가?’

‘당연하지.’

방덕은 피식 웃고 화살을 거뒀다. 맹획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켜볼 셈이었다.

붕!

계속 밀리던 맹획이 칼을 한 번 크게 휘둘러 옹개를 떨쳐 냈다. 옹개는 맹획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서량 놈들에게 도법을 조금 배웠다고 이리 기고만장한 것을 보니 뻔하군. 지금까지는 적당히 강짜를 부려도 주변의 모두가 받아 줬겠지. 그건 네놈이 맹씨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옹씨의 혈통인 내 앞에서는 그 고집이 통하지 않는다.”

“흥.”

맹획은 대답하지 않고 칼을 치켜들었다. 왼발을 뒤에, 오른발을 앞에, 왼손을 눈썹 앞에, 오른손을 머리 위에 올린 마가도법의 상단 자세였다.

“맹씨의 꼬마, 만용을 부리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전장을 우습게 보지 마라. 오늘 네놈이 목숨을 잃는 건 어리석게 만용을 부린 탓이다. 5년 전, 그리고 지금, 만용 때문에 두 번이나 패하는 것이다.”

“시끄러워.”

탁.

맹획이 뒷발을 밀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왼쪽 다리는 큰 추진력을 내지 못했다. 앞에 둔 오른발은 반보도 가지 못해 다시 땅을 밟았다. 옹개는 바로 등패를 앞세워 전진해 왔다. 맹획의 힘 빠진 일격을 흘려 내고 극으로 마무리할 참이었다.

그때 맹획이 자세를 바꿨다. 왼발이 반보 앞으로 가며 오른발이 뒷발이 되었다. 상처 입은 왼쪽 다리 대신 멀쩡한 오른쪽 다리가 힘을 쓰고, 오른발이 힘차게 땅을 박찼다. 실패하면 뒤가 없는 우상단 자세였다.

콱!

맹획은 오른발을 밀어 한 발 더 전진하며 옹개의 등패를 그대로 몸으로 들이받았다. 동시에 위로 치켜든 5척 장도가 떨어졌다. 맹획의 장도는 등패를 무시하고 그 너머에 있는 옹개의 어깨에 바로 떨어졌다.

퍽!

맹획의 장도가 옹개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우상단에서 내려친 것이니 지금 맹획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맹한 수였다. 옹개의 어깨에서 피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옹개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맹획의 칼이 어깨를 가르고 몸통 깊숙한 곳까지 닿아 있었다. 입에서는 피거품이 흐를 뿐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드득.

맹획이 칼을 뽑아냈다. 옹개는 몇 번 비척거리다 이내 땅에 쓰러졌다. 맹획은 쓰러진 옹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죽으려면 조용히 죽을 것이지 잔말이 많구나. 내가 고작 두 번 졌다고 못 일어날 줄 알았더냐?”

잠시 후, 장대에 매달린 옹개의 목이 내걸렸다.

“맹획 두령이 옹개를 벴다!”

“옹개는 죽었다! 모두 항복하라!”

화공으로 코끼리 부대가 와해되고, 총대장 옹개는 죽었다. 옹개가 이끌던 남만병들은 하나둘씩 병장기를 내던지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 * *

마초군의 전투 지휘를 하고 있는 황권에게 연이은 승전보가 전해졌다.

“방덕 장군과 법정 군사의 3천 기병이 강유관을 넘어 신도 벌판에 도착! 옹개군의 코끼리 부대에 화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맹획 두령이 적장 옹개와 투장을 벌여 참살! 대승입니다!”

황권은 고개를 끄덕이고 영을 내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잠시 후 아군의 3천 기병이 전장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 위치를 사수하면 우리의 승리다!”

익주 벌판에 나타난 강족 기병들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익주의 장수와 병사들은 궁기병과 맞서 싸워 본 경험이 극히 적다. 방덕이 이끄는 기병대가 들이닥치면 유탄군의 진형은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군은 큰 피해 없이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황권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군의 좌익 쪽을 바라봤다. 적의 우익에서 나오는 별동대를 요격하기 위해 마초와 장료가 달려간 곳이었다.

한편, 좌익 쪽으로 달려간 마초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유탄군의 별동대를 이끌고 아군 진영을 습격해 온 오씨 형제였다.

“오의, 그리고 오반. 협행으로 이름 높은 그대들이 설마 유탄의 편에 설 줄은 몰랐군.”

오의와 오반은 마초의 지난 생에서 같이 유비를 섬겼던 동료들이다. 인품이 호방하고 기개가 있어 마초뿐만 아니라 모두의 신망이 깊던 인물들이다. 나관중이 알려 준 이후의 역사에 따르면 둘 다 장수하여 각각 거기장군과 표기장군까지 오른다고 했다.

지난 생의 동료를 적으로 만난 마초의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의가 나서서 말했다.

“복파장군께서 소생들을 잘 봐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오. 그러나 우리 오씨 가문은 유탄 공자께 큰 은혜를 입은 몸. 은인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을 헤아려 주시오.”

“답답한 사람들이군. 가문을 위한다고? 이봐, 내가 있는 한 유탄은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참전했는가? 그것도 개전 초기도 아닌 이 막판에?”

“우리 가문이 유탄 공자에게 은혜를 입었으니까. 유탄 공자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나서서 죽는 것이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오.”

“이 멍청한 놈들아!”

오의의 말을 듣던 마초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의와 오반은 물론 곁에 있는 장료조차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마초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오의와 오반을 가리키며 외쳤다.

“가문의 명예 때문에 죽겠다니 그게 무슨 돼먹지 못한 소리냐? 부모, 형제, 처자가 죽는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네놈들은 칼 밥을 먹는 자들이니 그렇다고 치자. 누이동생은 어떻게 할 셈이냐? 가문을 위한답시고 광증 환자에게 시집보내 청상과부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이제 오라비까지 잃게 만들 셈이냐? 그까짓 명예가 대체 무엇이기에!”

가족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다른 목표에 매진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꿈을 좇다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은 오씨 형제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마초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한참 열변을 토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오반이 나섰다.

“복파장군의 뜻은 잘 알았소. 그러나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르니 그리 노하실 일이 무엇이겠소? 이곳에서 검을 맞대서 승부를 냅시다. 우리는 죽을 준비가 돼 있소.”

오반이 담담하게 말하자 마초는 더욱 화가 나서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소리를 질렀다.

“이 정신 나간 놈들, 네놈들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죽고 싶으면 알아서 목을 찔러 뒈질 것이지, 이길 수도 없는 상대에게 뛰어드는 건 무슨 막돼먹은 짓거리냐!”

마초는 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리다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해야 투항하겠는가? 나와 투장을 해서 지면 투항하겠는가?”

“말씀드렸다시피, 설령 복파장군이라 해도 우리는 그저 죽기로 싸울 뿐이오. 우리는 오가의 사내이니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물러서지 않소이다.”

“그놈의 자존심… 좋아, 이렇게 하세.”

마초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내 아장들 중에 관례도 올리지 않은 소년이 둘 있네. 그들과 겨뤄서 자네들이 이기면 내가 책임지고 물러나지. 자네들이 유탄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준다는 말일세.”

오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복파장군, 장난이 지나치시군요. 군문에는 허언이 없소이다.”

“허언 같은가?”

마초가 오의를 노려봤다. 오반이 나섰다.

“하면, 우리가 질 경우의 조건은 무엇이오?”

“살아서 투항해라. 나에게 하던가, 유범 중랑장에게 하던가 마음대로 해.”

오의와 오반은 마초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마초는 오의와 오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마대, 왕평. 저 두 놈을 두들겨 패서 내 앞으로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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