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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42화 (142/306)

142화. 우울한 곽가

성도의 유범과 낙성의 유탄이 대치하는 동안, 마초는 유격전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낙성을 습격한 마초의 별동대는 동주병 수장 장임을 베고 낙성의 군량고를 불태웠다. 이 와중에 파군의 금범군 수장 감녕이 살아서 마초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유탄군 사이에 큰 동요가 일었다. 호표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허저와 여건을 벤 것도 대단한 전과였다. 조조군이 익주 내전에 참전한 것은 비공식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저 ‘마초가 무예가 대단한 한중의 장수를 벴다’ 정도로만 알려졌으나, 내막을 아는 유탄 본인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광도현을 약탈하던 남만병들을 제압한 것도 큰 성과였다. 장료가 주포를 베고 남만병 선봉대를 흩어 버리자 남만병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서량에서 원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진퇴양난이었다. 고민하는 유탄에게 모사 팽양이 진언했다.

“공자, 지금 승부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습격을 당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지 않소?”

“그러나 아직 병력은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나중에 서량병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일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지금 우세한 병력을 활용해 회전을 벌여야 합니다. 설령 마초의 무용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아군 둘을 잃을 때 적군 하나를 죽이면 결국 우리가 이기는 싸움입니다.”

팽양은 그런 논리로 유탄을 설득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아직 옹개가 이끄는 남만병들이 남아 있지. 마초의 군사들이라고 해 봐야 수적과 이민족을 긁어모았을 뿐이다. 용맹하기로 이름난 옹개의 직속 부대라면 마초군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좋소, 팽 선생의 말에 따르겠소.”

유탄은 결국 회전을 선택했다.

병력이라면 여전히 유탄이 두 배가 넘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동주병의 잔당 등현과 유탄의 심복 고패가 앞장섰다.

게다가 유탄이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오씨 형제가 이끄는 오가군이 내 편에 섰다. 그들이라면 무지막지한 서량 놈들과도 한 번 붙어 볼 만하지.”

오씨 형제란 사촌지간인 오의와 오반을 말한다. 이들 또한 동주병처럼 수년 전 난리를 피해 익주로 들어온 연주의 대호족이었다. 유언은 이들 오씨 형제를 거두고 익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들이 이끌던 가솔들은 오씨 집안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서 그 자체로 강력한 무력 집단이었다. 오씨 형제의 누이동생인 오현이 유언의 셋째 아들 유모와 혼인하면서 오씨 집안은 익주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오현과 혼인한 셋째 유모가 갑자기 광증을 앓더니 폐인이 될 줄은 몰랐지.”

수년이 지난 지금은 유범, 유탄, 유장 외에 또 한 명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고 있었다.

냉혹한 기질의 아버지 유언을 대신해서 유모의 일가를 돌봐 온 것이 유탄이었다. 형 유범은 조정의 관리였으니 익주의 일은 자세히 알지 못했고, 아우 유장은 사람됨이 영민하지 못해 이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야심을 숨기고 있던 유탄만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우의 병에 괴로워하는 인자한 형의 모습을 연기한 것이다.

“그 유모가 며칠 전 낙성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모의 처남이자 오현의 오라비인 오의와 오반은 사람됨이 굳세고 무예에 능했으니 갑주만 걸치면 그대로 훌륭한 장수가 되는 인물들이었다. 원래 두 사람은 사돈지간인 유씨 형제의 일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 모든 관직을 사양해 왔으나, 궁지에 몰린 유탄이 눈물로 호소하자 결국 은의를 잊지 못하고 협기를 발휘하여 유탄의 편에 서기로 했다.

유탄은 오씨 형제에게 결정적인 순간 유범의 진영을 습격하는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고패와 등현, 오의와 오반, 그리고 옹개와 고정. 내게 아직 이렇게나 많은 용장들이 있다. 아무리 형님에게 마초가 있다 한들 지지 않을 것이다!”

유탄은 주먹을 불끈 쥐고 그렇게 부르짖었다.

* * *

성도, 익주목의 치소.

이곳에서는 유범의 주재 하에 군의가 한창이었다. 마초군의 군사 황권이 먼저 말했다.

“적군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병력의 우세를 믿고 회전을 통해 승패를 가름하려는 듯합니다.”

황권은 큼직한 두루마리에 그려진 지도를 놓고 상황을 설명했다. 익주라서 그런지 전투 지도도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군이 성도가 포위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신도현 부근에서 적을 요격해야 합니다. 적들은 이곳의 너른 평야로 아군을 이끌어낼 생각인 듯합니다.”

적들이 선택한 전장은 성도 북쪽의 신도현, 낙성에서 성도로 향하는 최단 거리에 있는 성이다. 가만히 황권의 말을 듣고 있던 이감이 말을 이었다.

“옹개의 움직임을 봐도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남쪽 광도현에 있던 옹개의 남만병들이 동북쪽으로 크게 우회해서 성도에 접근하지 않은 채 북상하고 있습니다. 신도현 근처에서 유탄군과 합류할 계획이라고 보면 앞뒤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도현에서 대열을 정비한 후 남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신도현에서 접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의 뒤를 칠 의도라고 보입니다.”

이감과 황권의 말을 들은 유범의 부하 왕루가 이어서 말했다. 왠지 어두운 얼굴이었다.

“게다가 유탄 공자에게 오가군이 합류했다고 합니다.”

“오가군이?”

“아니, 오씨가 사돈 집안인 유씨의 일에 끼어든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을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범은 그런 중신들을 진정시켰다.

“그만들 하시오. 둘째가 평소에 셋째의 가솔들을 보살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싸움이 끝나면 그들 또한 익주의 중신으로 받아들일 것이오.”

오의와 오반은 나이는 젊지만 인망이 높았다. 중신들은 그런 인망 있는 자들이 유탄의 편에 선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마초는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유범은 마초를 보며 물었다.

“복파장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나가서 싸워야지요.”

마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웅성거리던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종사 왕루가 마초를 보며 물었다.

“복파장군, 그러나 지금 장안에서 원군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중과 가맹관이 공격받으면 유탄 공자의 연합 세력이 대거 이탈할 테니, 우리는 그때까지 성도에서 농성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왕 종사의 말도 옳소. 그러나 우리가 농성하는 동안 성도 인근은 쑥대밭이 되고 백성들은 말 못 할 고초를 겪을 것이오. 이제 유범 중랑장의 백성이 될 이들이니, 한시라도 빨리 싸움을 끝내는 게 이치에 맞소이다. 다음 달이면 볍씨를 파종해야 하니 그 전에 싸움을 끝내야만 할 것이오.”

외지인인 마초가 오히려 속전속결을 주장하자 익주의 중신들은 머쓱해졌다. 그들이라고 그런 이치를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열세인 병력을 가지고 회전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복파장군, 그러나 적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병력의 질도 상대 쪽이 우수합니다. 복파장군께서 야습을 통해 큰 전과를 얻은 것은 알고 있으나, 평지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익주의 중신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마초는 그들을 둘러보며 자신 있는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북쪽에서 전령이 왔소. 일이 내 계산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마초에게 들어 온 정보는 두 가지. 전부 그가 사전에 계산한 대로였다.

첫째, 순유와 흉노 군사들이 자오곡을 넘어 한중 평야에 입성했다.

둘째, 강유관을 지키는 맹달이 귀순했다.

전령이 닿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지금이 회전을 벌이기 딱 좋은 시점이다. 나가서 싸우다 보면 마초가 꾸민 대로 일이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잡아야 할 놈이 하나 더 있으니까.’

마초는 호표기에 둘러싸여 퇴각하던 곽가를 떠올렸다.

* * *

유탄군은 보무도 당당하게 낙수를 건너 신도현까지 진군했다. 고패와 등현이 앞장서고 오의와 오반이 뒤를 받쳤다. 한중에서 원군으로 온 양임과 호표기를 이끌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곽가도 함께였다.

그런 유탄군을 상대하기 위해 신도현으로 나온 유범군의 대장은 역시 마초였다. 그러나 묘하게 행군이 반 박자 늦었다. 결국 신도현성은 재빨리 움직인 유탄군의 손에 떨어졌다. 성안에서 보급과 휴식을 해결한 후 나와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승리를 거뒀다고 자만했구나, 마초. 이 신도현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유탄은 전황이 뜻대로 풀려나가자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제 이대로 마초와 맞서 싸우기만 하면 된다. 병력의 양이든, 질이든 유탄군이 우위다.

모사 팽양도 신나서 떠들었다.

“게다가 마초군을 꼭 격멸할 필요도 없지요. 그저 비등하게 싸우고만 있으면 됩니다. 하면 곧 옹개 공이 이끄는 남만병 1만이 마초의 옆구리를 들이칠 것입니다.”

기병이 귀한 익주에서 날랜 남만병은 기병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이렇게 전략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었으니 남은 것은 승리뿐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급보! 서량 마가군이 자오곡을 넘어 한중으로 진입, 남정성을 포위했습니다!”

“뭣이!”

한중에서 원군을 이끌고 온 양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한중이 떨어지면 그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유탄 공자, 송구하오나 소장은 한중을 구원하러 돌아가야겠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유탄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본거지가 공격받아 돌아가겠다는 양임을 막을 수도 없었다.

양임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곽가가 일어나 몸을 돌렸다.

‘마가군은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중을 치면 장로의 원군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장로군이 없이 우리 호표기만 단독으로 작전을 하는 것은 무리다. 내가 당했구나.’

곽가는 유탄과 양임에게 보이지 않도록 몸을 돌리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허중강과 여자각을 잃고, 결국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되었군. 완전한 실패다.’

게다가 죽은 줄 알았던 감녕이 살아 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만약 마초가 이기고 유범이 익주목이 된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책임을 물어 올 것이다.

만약 유탄이 이긴다면 다음 기회가 있다. 그러나 유범이 이긴다면 다음 기회는 없다.

곽가는 분노에 몸을 떨며 행장을 꾸렸다. 유범과 마초가 이긴다면 자신은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 놓을 셈이었다.

“한중에는 틀림없이 마가군의 뛰어난 책사가 있을 것이니 그를 잡는다. 그리고 호표기를 온존시켜서 무사히 허도로 보낸다. 내게 남은 과업은 이 정도로군.”

목숨은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처참한 실패가 너무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망과 통찰력에 허저와 여건, 호표기의 무력이 더해졌으니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초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영리했다. 또한 허저를 상대로 단병으로는 호각, 마상에서는 압도할 정도로 용맹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다 죽어가는 금범적 감녕을 되살려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 마초가 서량 마가군을 이끌고 중원으로 진출한다면 사공께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이제 곽가에게 자신의 안위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처형을 당하게 된다면 그 전에 조조 휘하의 모사들에게 마초에 대한 분석 결과와 대책을 전할 셈이었다. 마초를 제거해야만 조조가 패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모사가 마초를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곽가 자신보다 뛰어난 자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곽가보다 뛰어난 자라면 조조군 전체에 딱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순령군…….”

결국 순욱에게 자신의 실패를 낱낱이 고해야 한다. 곽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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