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신위천장군 (2)
마초가 자신을 호치라고 부르자 허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백치처럼 순수한 자. 조조군 병사들이 자신을 두고 수군대는 별명이다. 마초가 이 별명을 말했다면 이미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머리 쓰는 일에 그리 능숙하지 않은 허저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초, 그대는 극히 위험한 인물이군. 그러니 살려 보낼 수 없다.”
“호치.”
마초는 허저의 말을 도중에 끊고 도철의 고삐를 쥐었다.
“네놈을 살려 보낼 수 없는 건 나다.”
도철이 콧김을 내뿜으며 땅을 몇 번 찼다. 길고 튼튼한 다리에 힘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다.”
마초의 나지막한 말과 함께 도철이 땅을 박찼다.
허저와의 거리는 50장. 보통의 경우 창칼이 아니라 활로 교전하는 거리다. 그러나 도철은 아비 조황비전에게 물려받은 속도로 공간을 찢듯이 달렸다. 숙련된 사수가 화살을 시위에 올릴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도철은 허저에게 육박했다.
부우웅.
허저는 대도를 눕힌 채 달려오는 마초를 쓸었다. 마초는 왼손에 쥔 금마삭을 높이 들었다. 허저의 대도가 마초의 몸에 닿으려 하는 순간, 위에서 떨어진 금마삭이 허저의 대도를 후려쳤다.
퍽!
금마삭이 정확한 순간, 정확한 지점을 타격했다. 나무로 된 금마삭의 창대는 말 위의 마초가 휘두르자 천 근짜리 철퇴 같은 힘을 발휘했다. 허저의 대도는 더 이상 궤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푹 꺼지듯이 떨어졌다. 마치 곧 땅에 처박힐 듯했다.
“흡!”
그러나 대도는 떨어지다 말고 공중에서 멈췄다. 허저가 그저 팔 힘으로 멈춰 버린 것이다. 대도를 쥔 허저의 오른팔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팔꿈치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삐그덕거렸다.
퍽!
다시 한번 타격음이 울렸다. 날아드는 대도를 제압한 마초가 그대로 금마삭을 옆으로 휘둘러 허저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허저의 투구 쓴 머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크게 꺾였다.
동시에 도철이 옆으로 걸었다. 방금 전까지 도철이 있던 자리를 허저의 대도가 베고 지나갔다. 머리에 받는 타격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러 베는 일격이었다.
부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무거운 대도가 울었다. 공격을 피한 마초는 도철을 움직여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다시 금마삭을 들어 허저를 겨눴다.
첫수가 막히자 허저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파군의 연회장에서 습격했을 때 마초는 허저의 생각보다 더 잘 싸웠다. 결국 마초가 지닌 신병 의천검의 위력 앞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살면서 누구보다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여포처럼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했을 뿐, 실력 대 실력의 대결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정식으로 무장을 갖추고 말 위에서 자신 있는 병장기로 붙으면 마초를 이길 것이다. 그것이 허저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직접 상대해 본 말 위의 마초는 허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허저는 당혹감을 숨기며 마초를 노려보았다. 잠시 신경전을 벌이면서 머리에 받은 충격을 회복할 참이었다.
마초는 그런 허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쓰러지지 마라, 호치.”
“무슨 소리냐?”
“한 수로 끊어내기에는 너와 나의 악연이 너무나 깊다. 그러니 조금 더 버텨라.”
허저의 눈에 핏발이 섰다.
“마초, 네놈이 나를 능멸할 셈이냐? 나는 패국 호사들의 수장, 지금 나에게 가한 모욕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모욕이라. 한가한 소리를 하는군.”
마초가 도철을 몰아 크게 돌았다. 허저는 분노에 찬 눈으로 마초를 쏘아보며 몸을 돌렸다.
“지난 생에서 네가 나에게 앗아간 것들. 그 십 분의 일만 오늘 돌려주마.”
30장 정도로 충분히 거리가 떨어지자 마초는 제 자리에 멈췄다. 금마삭의 자루 끝에 달린 끈을 어깨에 걸치고 창대를 왼쪽 겨드랑이로 단단히 잡았다.
“간다.”
마초가 말하자 도철이 내달렸다. 공간을 지우는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마초와 허저 사이에 있던 30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저는 자신의 눈앞에 마초가 불쑥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를 태운 거대한 백마는 그만큼 빨랐다. 그러나 마초는 불쑥 나타난 게 아니다. 30장의 거리를 달려 온 것이니 가속도까지 붙어 있었다. 허저의 눈이 잠시 마초를 인지한 바로 다음 순간, 허저의 가슴에 금마삭이 박혔다.
콰직!
금마삭이 부러졌다. 허저의 30장 앞에 있던 마초는 잠시 사라졌다 허저의 30장 뒤에 나타났다.
마초가 허저와 교차한 아주 짧은 순간, 금마삭의 창날이 허저의 가슴에 박혔고 창대가 부러졌다. 마초의 손에는 부러진 창대만이 남아 있었다.
“크윽…….”
허저는 낙마하지 않았다. 육중한 체구, 남다른 근력, 그리고 완강한 정신력이 그가 말에서 떨어지는 걸 막아 주었다. 원래도 핏발이 섰던 눈은 더욱 충혈되어 곧 피를 쏟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허저는 자신을 스쳐 지나간 마초를 향해 힘겹게 말머리를 돌렸다.
“버텼구나.”
마초의 말투는 여전히 무심했다. 허저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창날을 내려다봤다. 어딘가 큰 혈관이 끊어졌는지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온몸에 힘을 줘서 버티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어지면 피가 솟구칠 기세였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허저는 남은 힘을 끌어 올려 대도를 그러쥐었다.
저 백마를 탄 마초는 땅 위의 마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땅 위의 마초도 천하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절정고수였지만, 말 위의 마초는 그 수준을 뛰어넘은 존재였다.
‘마치…….’
허저는 마초를 표현할 말을 생각해 봤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초는 그런 허저를 보며 다시 한번 말을 달렸다. 도철의 말발굽 아래 30장의 거리가 또다시 사라졌다.
콱!
마초의 손에 들린 부러진 창대가 허저의 가슴에 다시 박혔다. 본래 허저의 몸이라면 부러진 나무 창대가 박힐 리 없다. 그러나 상대는 도철을 타고 달려 온 마초였다.
두두두두두.
허저의 몸이, 그리고 허저가 탄 말이 마초와 도철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쭉 밀려났다. 허저는 두 번째 창이 몸에 박히는 와중에도 허리와 다리의 힘을 잃지 않아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부러진 창대에서 나무 파편이 튀며 상처를 헤집었다. 마초는 그대로 허저의 몸에 창대를 박은 채 다섯 걸음을 밀어붙였다.
“쿨럭!”
허저의 입에서 피거품이 튀고 눈동자가 흐려졌다.
그리고 다섯 걸음을 밀고 들어온 도철의 발이 멈췄을 때, 허저의 눈에 다시 번쩍 빛이 돌았다.
‘지금이다.’
첫 일격으로 상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희박한 확률의 승리를 바라느니 동귀어진이라도 확실히 하자는 심정이었다. 허저는 마초의 창이 자신의 몸에 박히는 것을 기다렸다. 두 번째 창을 받고 쓰러지지만 않으면 남은 힘을 쥐어짜서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크아악!”
허저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에 박힌 창대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 대도를 짧게 잡고 마초에게 비스듬히 내리쳤다. 이 거리에서라면 피하지 못할 터였다. 이제 대도가 마초의 어깨를 뚫고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깡!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대도가 갑옷을 베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초가 오른손으로 5척 장도를 들어 허저의 대도를 막았다. 마초의 얇은 장도는 무기가 지닌 질량의 차이 때문에 허저의 대도에 힘없이 튕겨 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얇은 장도의 검은 칼날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대도의 두터운 날을 절반이나 파고들었다. 허저의 대도에 실린 힘은 칼날이 쪼개지며 마초에게 닿지 못했다.
“이게 무슨…….”
“놀랐나. 치란(治亂)이다.”
마초는 장도 치란을 회수해서 높이 쳐들었다. 칼날에 흠집 하나도 나지 않은 상태였다.
허저는 더 이상 대도를 휘두를 힘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마초의 장도가 그리는 궤적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머릿속에 자신이 살아 온 스물여덟 해가 순식간에 스쳐 갔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돌아가고 싶던 그곳, 자신의 고향 패국 초현이 떠올랐다.
‘지금은 황폐하지만 원래는 산 좋고 물 좋은 동네였지.’
그리고 유독 큰 인물이 많이 나던 곳이다. 사람들은 고향의 옛 지명을 따서 큰 인물이 나는 고장을 풍패지향이라고 불렀다. 패국에서 난 수많은 인물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물은 역시 한을 개국한 고조 유방일 것이다.
멍하니 고향 생각을 하며 떨어지는 칼날을 바라보던 허저의 눈에 새삼 마초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무나 젊고 아름다운,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사내였다. 그 모습을 보자니 허저의 뇌리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패국의 큰 인물인 고조 유방과 싸웠던 사내. 마초의 모습은 마치 역사서 속의 그 사내를 떠올리게 했다.
“패왕…….”
퍽!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마초가 휘두른 치란이 떨어졌다. 허저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았다. 허저가 탄 말은 다리가 부러졌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허저의 머리는 땅을 몇 번이나 구르고서야 멈췄다. 가슴에 두 개의 창이 박힌 목 없는 시신이 땅에 쓰러졌다.
마초는 땅에 떨어진 허저의 머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생에서 저 머리 하나를 얻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가.’
마초는 짧은 한숨을 토했다.
“목숨을 내주면서 반격을 했군. 실패했지만 훌륭한 수였다.”
허저가 어떤 사내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었다. 만약 허저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다면 자신이 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초는 쓸쓸한 표정으로 허저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상식 밖의 무용을 보자 천하의 호표기들도 주춤거리고 있었다. 마초는 손짓으로 아군 병사들을 불러 허저의 시신을 수습하게 했다.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후하게 장사지낼 것이다.”
“존명!”
마초는 잠시 허저의 시신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역시 호치보다는 호후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내다.”
* * *
마초군의 거센 반격에 호표기는 결국 퇴각했다. 무엇보다 허저가 마초에게 참살당하는 것을 보고 기세가 꺾인 것을 만회할 수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병사들과 장수들이 마초를 둘러싸고 짧은 환호를 올렸다. 마초는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엄청난 대승이었다. 지난 생의 은원도 깨끗하게 청산했다. 그러나 허저가 마지막 순간 보여 준 기백을 생각하면 환호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주공, 괜찮으십니까!”
나관중은 호들갑스럽게 마초의 안부를 물었다. 마초는 나관중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져 피식 웃음을 보였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도철이 다 했지.”
마초는 농담까지 던질 만큼 여유가 있었다. 나관중은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제가 싸움은 잘 모릅니다만… 오늘 주공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제까지 와는 차원이 다른 무위였습니다.”
“그런가.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 왔으니 좀 늘기는 했겠지.”
마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래 수련을 조금씩 쌓다 보면 어떤 계기로 한 번에 실력이 느는 형태로 성과가 나타난다. 이번 허저와의 대결이 그런 계기가 되어 준 모양이었다.
“마치 패왕 같았습니다! 앞으로는 서량패왕이라는 칭호를 밀어 보는 게 어떨까요?”
“패왕? 항우 말인가?”
마초는 나관중의 과도한 찬사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량패왕은 좀… 마대 녀석이나 쓸 법한 말이잖아. 너무 유치해.”
그쯤에서 그만뒀으면 좋았겠지만, 나관중은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패왕 항우가 죽기 직전에 읊었다는 절명시였다.
“우희야, 우희야, 너를 어쩌면 좋으리!”
계속 듣고 있던 마초는 절명시를 듣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잠깐, 그런데 항우는 결국 싸움에 져서 죽었잖아?”
“아니, 뭐 그렇긴 합니다만…….”
“재수 없으니까 패왕 타령은 그만하라고. 다른 이름 뭐 좋은 거 없어? 자네 특기잖아.”
잠시 생각하던 나관중은 이내 뭔가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가 삼국지연의에서 마초에게 붙여 줬던 그 이명이었다.
“신위천장군(神威天將軍).”
“신위…천장군?”
“그렇습니다. 참으로 주공께 딱 어울리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도 좀 손발이…….”
“역시 비서랑 선생! 이제부터 형님을 신위천장군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마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15세 병인 그의 취향에 딱 맞는 과장된 칭호였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려다가 포기했다.
마대가 한 번 꽂힌 이상, 이제 곧 진중에서 자신의 별명이 신위천장군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서량패왕보다는 좀 나으니까.”
마초는 군사들을 수습해 다시 낙수를 건넜다. 장임을 꺾어 동주병을 와해시키고, 호표기를 퇴각시키며 여건과 허저의 목을 얻었다. 유탄군의 군량고를 불태우고, 정예 부대들을 정면에서 짓밟아서 연합군의 사기까지 떨어뜨렸다.
더할 나위 없는 대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