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신위천장군 (1)
마초는 백마 도철을 천천히 몰며 말머리의 각도를 조절했다.
도철의 머리는 호표기 진형 깊숙한 곳에 있는 여건을 향했다. 도철에 탄 마초와 호표기의 지휘자 여건 사이로 사십여 기가 끼어들어 대형을 갖췄다. 20기로 이루어진 부대가 두 부대였다.
호표기는 20기를 한 단위로 움직였다. 10기는 마초가 향하는 정면을 두텁게 막았다. 그리고 양 날개에 5기씩이 배치된다. 마초가 정면의 10기에 돌진해서 찌르고 베는 사이, 왼쪽의 5기와 오른쪽의 5기가 넓게 벌려서 마초를 포위하고 공격한다. 나무랄 데 없는 포진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감녕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대규모 전투를 위한 포진이 아닙니다. 기병대라기보다는 꼭 사냥꾼 같군요.”
대규모 전투라면 저런 포진을 훈련할 필요가 없다. 호표기 같은 소규모 정예 중기병은 그 자체로 충격을 가하는 역할만 담당하기 때문이다. 중기병들이 적장의 돌격을 받아내고 포위 섬멸하는 진형을 훈련했다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저 포진을 보니 알겠군. 저들은 아마 특정한 장수들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일 것이다.”
마초는 피식 웃었다.
호표기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저만한 정예들을 하나의 기병대로 운용하는 것보다 각각의 부대에 선봉장으로 세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조조는 대체 누구를 사냥하기 위해 이런 비효율적인 행동을 한 것일까? 아마 혼자 힘으로 전장을 뒤집을 수 있는 무장들을 노렸을 것이다.
그런 자라면 여포가 있다. 마초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며 조조와 여포의 치열한 연주 공방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조는 동탁 토벌전에서 이미 여포의 무위를 본 바 있다.
‘그러나 여포를 겨냥한 부대는 아닐 것이다. 지난 생에서 호표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여포가 죽은 다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호표기를 만든 목적은 뻔하다. 여포 수준의 무장이지만 여포가 아닌 자들이 목적일 것이다. 그런 자는 천하에 단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서주에서 관우와 장비에게 호되게 당했나 보군.”
마초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만 살짝 돌려 감녕에게 말했다.
“흥패, 나는 호표기를 지휘하는 놈을 잡겠다. 자네는 알아서 살아남아라.”
“예? ‘앞장서라’나 ‘엄호하라’가 아니라 살아남으라고요? 복파장군, 대체 나를 뭘로 보고…….”
“가자!”
마초는 투덜거리는 감녕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도철의 배를 박찼다.
도철은 귀찮은 듯 크게 푸드덕거리며 터덜터덜 걸었다. 정면에 있는 호표기들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거리가 20장 안으로 들어와서 적들이 창검을 쥔 손가락까지 보이게 됐을 때, 도철이 달리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큭…….”
도철이 내닫기 시작하자 공간이 찢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호표기 병사들의 굳센 얼굴에 당황이 떠오르고 이내 사라져 갔다. 호표기 병사들은 저마다 창검을 휘둘러 봤지만 도철은 이미 지나간 후였다.
타닥!
주인인 마초조차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도철이 1진을 돌파했다. 아비인 조황비전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도철은 망설임 없이 달렸다. 목표는 여건이었다.
여건에게 달려드는 도철을 향해 호표기 병사 하나가 길을 가로막았다. 작은 부대라면 선봉장이 되었을 호표기 병사는 능숙한 기마술로 마초에게 접근해서 창을 내질렀다.
휘익.
창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상대의 움직임을 본 도철이 옆걸음으로 비켜선 것이다. 마초는 그대로 손을 뻗어 호표기의 창대를 움켜쥐었다. 도철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 급격한 동작으로 바닥을 미끄러지며 제 자리에 섰다.
끼이익.
호표기 병사의 자세가 불안해지자 마초는 그대로 창을 낚아챘다.
“흡!”
우당탕!
마초가 한 번 힘을 쓰자 호표기 병사가 낙마하여 바닥을 굴렀다. 마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앞으로 달렸다. 호표기 제 2진의 병사들이 쫓아 왔지만 달리는 도철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도철은 그렇게 단 두 번의 접촉만으로 호표기 사십 기의 진형을 뚫었다. 이제 도철과 마초의 앞에는 여건만이 남아 있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활을 꺼내 드는 여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조황비전처럼 빠르고 절영처럼 영리한 말이지. 놀랐나? 여건.”
마초는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여건에게 말을 걸었다. 마초가 자신의 본명을 말하자 여건의 눈이 커졌다.
“복파장군, 어떻게…….”
“네놈들 하는 짓이 대담하구나. 이 먼 익주에서 나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익주의 내전에 개입하다니. 곽가의 생각이겠지.”
마초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여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초는 사공(조조)을 만나본 적도 없을 텐데 내 정체를 짐작하고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군.’
그러나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체를 들켰다면 더욱 마초를 살려 보낼 수 없었다.
여건은 활을 한껏 당기고 다가오는 마초를 겨눴다. 나름대로 중원에서 이름난 활 솜씨다. 이런 근거리에서는 확실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마초는 개의치 않고 여건을 향해 돌진했다.
“이렇게 달려가다 화살을 맞은 적이 있었지.”
마초와 여건의 거리가 10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여건이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정확히 마초의 목 아래, 가장 피하기 어려운 부분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마초의 오른손이 번득였다. 마초는 안장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5척 장도, 치란을 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퍽!
화살은 그대로 공중에서 두 동강이 났다. 부러진 화살촉의 궤도가 바뀌며 마초의 투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살촉이 긁히며 불꽃이 튀었으나 사자 투구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마초 또한 흔들림 없는 눈으로 계속 여건을 응시했다.
“같은 실수는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치란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건이 활을 버리고 칼을 뽑아 드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여건의 표정에는 체념이 떠올라 있었다. 마초는 망설임 없이 치란을 들어 여건의 어깨를 내리쳤다.
콰드득!
치란이 여건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갑옷과 살과 뼈가 베이고, 다시 갑옷이 베이는 감촉이 마초의 손에 전달되었다.
마초는 그대로 치란을 휘두른 채 여건을 지나쳐 달렸다. 잠시 후, 대각선으로 베인 여건의 상체가 땅으로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 * *
후방에서 호표기의 진형을 감독하던 곽가는 눈을 의심했다.
피와 땀으로 육성한 호표기다. 그런데 그 사이로 마초가 단기필마로 쳐들어와서 호표기의 진형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마초를 태운 백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빠르고, 영리했다. 전방에서 호표기를 지휘하는 건 무예에 능한 여건이지만 마초에게 단 1합을 버티지 못하고 두 조각 난 시신이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곽가는 속 안의 뭔가를 씹어 뱉듯이 욕설을 토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아직 사공이 패업으로 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가… 내가 여기서 실패할 수는 없다!’
허도에서 천자를 모시고 있는 조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한나라 최고의 권력자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천자를 처음 봉대할 때는 조조가 올리는 문서에 옥새만 찍는 허수아비 역할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소년 천자가 생각보다 강단이 있었다. 자기 손으로 근황병을 모아 이각을 토벌했으니 어지간히 명망도 있었다. 조정에 가진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천자가 영민한 모습을 보이자 원래부터 조조를 따르던 영천 호족들 사이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영천 호족의 수장인 순욱 같은 자들은 가끔 천자의 사람인지, 조조의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언행을 하며 곽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어떤 모략에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사공이 내부의 적들을 딛고 패업을 이루려면 나라도 굳게 버텨야 한다는 말이다!”
곽가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옆에 있는 거한을 돌아봤다.
“중강. 준비는 되었소?”
허저는 곽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마초와 겨룰 때는 연회석상에서 서로 단병을 들고 싸웠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마상에서 각자 자신 있는 병장기를 들고 겨룰 것이니…….”
허저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애병을 빙글 돌렸다. 창처럼 긴 자루를 가진 대도였다. 대도가 바람을 찢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외다.”
허저는 그 말을 남기고 말에 채찍질하며 달려 나갔다.
* * *
“창을 가져오너라!”
마초는 뒤쪽의 본진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말 위에서 쓰려면 긴 병장기가 유리하다. 포원이 만들어 준 5척 장도 치란은 갑옷과 투구를 무 베듯 자르는 천하의 명도였지만, 칼로만 싸우기에는 마초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 너무 많았다. 타고 있는 말에도 절대적인 우위가 있으니 긴 창으로 찌르고 빠지는 게 체력을 온존하며 싸우기 좋을 것이다.
체력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지휘자 여건을 벴지만 통솔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뒤쪽에서 누군가 계속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뒤쪽의 지휘자는 틀림없이 곽가일 것이다. 그리고 곽가의 곁에는 허저가 있을 것이다. 지난 생에서, 그리고 이번 생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숙적이다.
“형님!”
호표기의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온 마대가 마초를 향해 창을 던졌다. 꽤 먼 거리였지만 도철은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 마초가 창을 받기 편한 위치를 찾아 들어갔다.
척.
마초는 가볍게 한 손만 뻗어서 창을 낚아챘다. 창대의 뒤쪽에 끈이 달려서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만든 긴 마상창, 금철기의 제식 병기 금마삭이었다.
마초는 오른손으로 장도 치란을, 왼손으로 금마삭을 비껴들고 뒤를 돌아봤다. 마대, 엄안, 이감이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감녕은 아예 호표기를 서넛씩 한꺼번에 붙들고 상대했다. 벌써 사각철간에 십여 기가 넘는 호표기의 머리가 뭉개졌다. 천하의 호표기들도 자신들과 정면으로 붙어서 압도하는 상대는 처음 보는 듯, 감녕을 상대하는 얼굴에 저마다 당황과 짜증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다. 조금씩 줄여야 한다.’
곽가가 끌고 온 호표기는 오백을 헤아린다. 벌써 상당수가 줄기는 했지만, 아직 사백이 넘게 남아 있었다.
도철의 기동력을 활용해 호표기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마초 자신뿐이다. 마초는 도철을 몰아 호표기의 주위를 빙글 돌며 금마삭으로 한 명씩 찔러 떨어뜨렸다. 강력한 무장을 사냥하기 위해 만든 호표기의 진법은 마초에게 통하지 않았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호표기가 도철의 발을 따라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정예병이라도 뚜렷한 수확 없이 동료들이 계속 쓰러지면 동요할 수밖에 없다. 마초는 침착하게 하나씩 호표기를 쓰러뜨려 나갔다. 잡히지 않는 마초를 보며 이내 호표기들도 초조해질 것이다.
‘상대가 먼저 흔들릴 때까지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때.
“마초.”
먼발치에서 누군가 마초를 불렀다. 큰 소리도 아니었고, 자주 듣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마초는 그 목소리를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돌아보니 역시 그 사내가 서 있었다. 8척이 넘는 키에 장정의 다리통보다 굵은 팔뚝, 아름드리나무 같은 거대한 몸통.
허저를 바라보는 마초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튀었다. 입꼬리는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다. 온몸의 피가 솟구치는 듯한 흥분이 찾아왔다.
“네놈이 먼저 찾아올 줄이야.”
허저는 천천히 말을 몰아 마초에게 다가왔다.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자루가 긴 대도를 들고 있으니 호위무사가 아니라 용맹한 무장의 모습이었다. 호표기 병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길을 비켰다. 허저는 대도를 들어 마초를 가리켰다.
“인사가 늦었군. 패국 사람 허저, 자는 중강이라고 한다. 파군에서 내지 못한 승부를 이곳에서 청한다.”
“으하하하!”
마초는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만약 이 사내가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조의 목을 벨 수 있었을까. 관서의 패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버지와 아우들, 아내와 자식들이 죽지 않았을까.
나관중 앞에서는 온갖 초연한 척을 다 했지만, 정작 아직까지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신이 우스워서 마초는 한껏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마초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뿜었다.
“오냐, 호치 너를 죽여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