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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38화 (138/306)

138화. 마초가 호표기 앞에 서다

낙수를 도하한 마초는 낙성을 우회해서 크게 돌았다. 목표는 낙성 옆에 위치한 군량고였다.

군량고를 지키던 장수 양회가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 호통을 쳤다.

“네 이놈들, 서량의 촌부들이 감히 익주의 정세에 개입할 셈이냐!”

“이런, 이런. 너희 유탄 공자도 낙양 출신인 건 알고 있냐? 유언 익주목은 형주 사람이고.”

마초는 양회를 보며 혀를 찼지만, 양회는 여전히 기세 좋게 떠들었다.

“닥쳐라! 네놈들이 우연히 낙수를 건너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군량고는 내주지 않겠다! 누가 나와서 내 칼을 받아 보겠느냐!”

칼춤을 추는 양회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마초는 옆의 감녕을 돌아봤다.

“흥패. 쏴 버려.”

“그렇게 하지요.”

감녕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활을 한껏 당겼다. 남방의 물소 뿔로 만든 수우각궁이었다. 감녕이 쥔 활은 산양의 뿔로 만드는 북방의 각궁보다 훨씬 크게 휘어졌다.

탕!

맑은소리와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양회를 향해 날아갔다. 양회는 황급히 몸을 돌려 화살을 피하려 했다.

퍽!

그러나 헛일이었다. 강궁에서 발사되어 힘이 실린 화살은 양회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양회는 왼쪽 어깨를 화살에 꿰이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겨우 몸을 일으킨 그에게 다시 한 발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퍽!

화살은 양회의 입으로 들어가서 목을 뚫고 나왔다. 선 채로 부르르 떨던 양회는 이내 고목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좋아. 적장이 쓰러졌다! 돌격하라!”

마초의 호령과 함께 군사들이 일제히 돌격했다. 장수를 잃은 유탄군은 오합지졸처럼 흩어졌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같은 익주 사람들끼리 죽고 죽일 이유가 없다!”

“관중도독의 밝은 덕을 따라라! 정의의 칼날로 난세를 쳐부수는 것이다!”

군사들을 휘몰아 군량고를 습격하는 엄안과 마대는 각자의 이유를 대며 수비병들에게 귀순을 권유했다. 승패가 갈린 이상 수비병들도 크게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마초군은 어렵지 않게 군량고를 손에 넣었다. 군량고를 태우는 연기가 밤하늘에 피어올랐다.

“주공, 이제 기습의 목적은 차고 넘칠 만큼 달성했습니다. 이대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관중이 마초에게 다가와 물었다. 마초도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오래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 빠져나간다.”

기습은 대성공이었다. 마초는 군사들을 수습했다. 다시 낙수를 건너 돌아갈 셈이었다.

그때, 마초의 눈썹이 움찔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예?”

나관중, 엄안, 감녕, 이감은 서로를 돌아봤다. 마초가 느낀 기척을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한 사람, 서량 출신인 마대만이 잠시 후 낌새를 채고 말에서 내렸다. 마대는 심각한 얼굴로 땅에 귀를 대 보고 일어났다.

“형님, 기병입니다. 숫자는 대략 오륙백 기, 전부 중기병입니다.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 기병이 진군해 올 때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말에 익숙한 서량의 무장들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마대의 말을 듣자 마초 일행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에게 기병은 백 기도 되지 않습니다. 중기병 오륙백 기가 오고 있다면 얼른 피해야 합니다.”

“고작 오륙백 기로 뭘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봉이 오륙백 기일 뿐, 틀림없이 그보다 훨씬 많은 보병들이 뒤를 따를 겁니다. 우리 병사들이 비록 용감하나 밤새 긴 싸움으로 지쳤으니 적의 기병을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마초는 손을 들어 수하들을 제지시키고 말했다.

“익주는 기병이 귀하다. 중기병만 오륙백 기라면 어지간히 끌어모았나 보군. 이대로 질서정연하게 퇴각한다. 만약을 대비해서 맨 뒤에는 나와 감흥패가 선다.”

“존명!”

마초는 부대를 재편하고 일행을 퇴각하게 했다. 그리고 감녕과 함께 최후미에 남았다.

울림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마초를 태운 절영은 불안한지 발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절영, 왜 그러느냐? 네가 느끼기에 보통 놈들이 아닌 것이냐?”

마초는 절영을 달래며 물었다. 말의 진동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건 말이다. 그런 절영이 느끼기에 지금 달려오는 말들의 크기와 무게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일이 그쯤 되자 마초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지만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달려오는 적 기병대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무렵, 선두에 선 장수의 무장이 보였다. 검은 갑옷에 노란 무늬를 넣고 있었다. 그것을 본 마초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마초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옆에 묵묵히 서 있던 감녕이 마초를 슬쩍 보며 물었다.

“복파장군, 아는 부대입니까?”

“으음…….”

마초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호랑이의 얼룩무늬 같은 갑옷을 입은 기병대. 조조가 자랑하는 최정예, 호표기였다.

‘동관에서 싸워 본 적이 있지. 대단한 강병이었다. 그런 호표기가 이곳에 있다니…….’

호표기의 뒤를 따르는 보병들은 알 수 없는 한자들을 옷에 잔뜩 써넣고 있었다. 한중의 천사군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초는 상대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로의 천사군, 그리고 선봉에는 호표기라. 곽가가 용케 호표기를 한중으로 옮겼군.”

지금은 건안 2년(197년)이다. 아직 호표기가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하기 전이니, 사공부의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면 호표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곽가 또한 그것을 믿고 호표기를 익주까지 데려왔을 것이다. 익주 내전에서 유탄이 부린 기병대가 설마 사공 조조가 육성한 것이라고 짐작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마초는 퇴각을 멈추게 하고 호표기를 막아내기 위해 진형을 짰다.

“저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싸움이 끝나고 나서 설명해 주마. 지금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만 명심해라. 저들은 한 명 한 명이 선봉장이나 다름없다. 절대 1대 1 상황을 만들지 마라. 병사들은 5명 이상이 1기를 둘러싸서 공격하도록 하라. 장수들도 마찬가지, 절대 호표기와 단기 접전을 벌이지 마라. 지휘에 전념하고, 직접 싸울 때는 반드시 병사들과 함께 싸워라.”

마초는 장수들을 단단히 단속했다.

마초군이 진형을 짜는 동안, 호표기는 빠르게 육박해 왔다. 선두에는 여건이 서 있었다. 마초는 절영을 몰아 여건의 앞으로 나섰다.

“파군에서 죽이지 않고 살려 뒀더니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는군. 이제 네놈의 진짜 정체를 밝혀라. 누구를 섬기는 어떤 놈이냐?”

마초는 짐짓 모르는 척 여건에게 물었다. 그러나 여건도 아직은 진짜 정체를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때가 되면 알려 주겠소, 복파장군. 그대의 무용은 실로 절륜했으나 아쉽게도 여기까지요.”

여건은 그렇게 말하고 호표기에게 돌격 신호를 내렸다.

호랑이의 모습에서 따 온 검고 노란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마초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마초는 눈빛을 형형하게 빛낸 채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음을 지었다.

“오냐, 덤벼라.”

등자에 올린 발로 절영의 배를 차자 절영이 쏜살처럼 뛰어나갔다. 마초는 말 위에서 긴 창을 빙글 돌리며 고쳐 잡았다.

퍽!

첫 번째 충돌은 어김없이 호표기의 몸을 꿰뚫었다. 창은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두꺼운 갑옷과 근육질의 몸통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창에 찔린 호표기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입에서는 피를 토했다.

그리고 마초가 창을 뽑으려는 순간.

덥석.

창에 찔린 호표기가 마초의 창을 움켜쥐었다.

“아니?”

마초가 당황한 순간 양옆에서 다른 호표기들의 창칼이 비어져 들어왔다. 마초는 결국 몸에 꽂힌 창을 놓고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목숨과 바꿔서 마초의 창을 빼앗은 호표기는 말 위에서 한두 걸음을 더 걷다 이내 땅에 쓰러졌다.

마초는 창을 잃자 미련 없이 장도를 뽑아 들고 호표기를 찌르고 베었다. 이제 무예라면 화경의 경지에 이른 마초다.

그러나 호표기는 다른 기병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하나하나가 선봉장이다. 난감하군.’

하나같이 무예가 절륜했다. 게다가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았다. 한 명이 공격받으면 주변의 두세 명이 협격하는 솜씨도 대단했다.

마초는 지난 생에서 호표기를 상대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전법과 위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마초의 눈앞에 있는 197년의 호표기는 마초가 상대해 본 211년의 호표기보다 훨씬 강했다.

‘원래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한 부대였었나 보군. 설마 이 정도의 부대를 만들었을 줄이야…….’

호표기 개인의 강함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여포군의 함진영이나, 자신이 만든 금철기보다도 개인의 자질은 더 뛰어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대규모 전장에서의 위력은 14세기 마구를 사용하는 돌격기병 금철기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개개인의 무예만은 더 뛰어났다.

‘게다가 이 움직임은 돌격기병의 것이라기보다는 북방 민족들의 것에 가깝다. 마치 누군가를 사냥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잡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인가?

고민보다 대응이 먼저였다. 마초는 정신없이 주변을 찌르고 벴다. 옆을 돌아보니 감녕도 심각한 얼굴로 사각철간 두 자루를 휘둘러 호표기들을 제압해 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병이라도 상대는 마초와 감녕이다. 결국 십여 기의 시체가 쌓이고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마초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장도를 바라봤다.

“갑옷을 베다 보니 날이 다 상했군. 바꿔야겠는걸.”

감녕은 날이 없는 철간을 무기로 쓰니 아직 멀쩡해 보였지만 마초는 사정이 달랐다.

먼발치에서 여건이 수신호를 하는 게 보였다. 여건이 지휘하는 호표기는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마초와 감녕을 압박하고 있었다.

‘여건, 보통 놈이 아니다. 일단 저놈을 제거해야겠군.’

마초는 큰 소리로 마대를 불렀다.

“치란(治亂)을 가져와라. 그리고 도철(饕餮)을 데려오너라.”

“예, 형님!”

마대가 기세 좋게 외쳤다. 잠시 후, 마초와 감녕이 서 있는 곳으로 마대가 달려왔다. 한 손에는 말 한 마리의 고삐를 잡고, 다른 손에는 칼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절영, 잠시 쉬고 있어라.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마초는 절영 대신 마대가 끌고 온 말에 올랐다.

거대한 백마였다. 절영보다도, 적토마보다도 더 큰 몸집에 근육이 불뚝거리는 말이었다. 털은 윤기가 흐르는 흰색이었다. 털 색깔과 달리 갈기는 눈부신 황금색이었다.

“도철(饕餮).”

마초가 백마의 이름을 불렀다. 올해 세 살이니 말의 나이로 청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한 번도 전장에 나가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백마는 잔등 위의 마초가 탐탁지 않은 듯 푸드덕거렸다. 마초는 그런 도철을 살살 달랬다.

“이번에 싸워야 하는 상대는 정말 강하다. 네 어미를 지키기 위해 내게 힘을 빌려다오.”

악인에게 아양을 떨고 선인을 잡아먹는다는 전설 속의 악귀, 도철의 이름이 붙은 백마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땅을 찼다. 그러다 절영이 다가와서 목을 맞대자 이내 결심이 선 듯, 마초를 태운 채 정면의 호표기를 응시했다.

“좋아. 부탁한다, 도철.”

마초는 절영과 조황비전 사이에서 태어난 백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마대가 가져온 칼을 꺼내 들었다.

본래 즐겨 사용하던 5척 장도와 비슷하게 생긴 칼이었다. 칼자루 끝에는 작게 사자 머리가 세공되어 있었다. 마초는 새로 얻은 5척 장도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가슴을 베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도의 칼날이 드러났다. 검은 칼날에 물결치듯 아름다운 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대장장이 포원이 황실의 보물 의천검을 참고해서 신독의 강철로 만든 장도였다.

먼 곳에서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다. 마초는 장도를 들어 동이 트는 하늘에 비췄다. 옅은 빛을 받자 칼자루에 새겨 놓은 글자가 보였다. 마초는 눈앞에 떠오르는 두 글자를 읽었다.

“치란(治亂).”

난세를 다스린다.

마초가 새롭게 맞춘 장도에는 마휴의 꿈이 새겨져 있었다.

먼발치에서 여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건의 근처에는 허저도 있을 것이다. 호표기가 다시 대열을 갖추고 전진해 왔다. 감녕이 마초의 옆으로 바싹 붙었다.

“복파장군,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하긴.”

마초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이 트면서 상대의 모습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검고 노란 갑옷을 걸친 기병들이었다. 마초가 입은 은빛 갑옷, 품이 큰 비색 전포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백마 도철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전면을 응시했다.

먼 익주에서 상상치 못한 난적을 만났다. 물러서기도, 나아가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러나 미오성에서 난세를 끝내겠다는 뜻을 세운 후부터 항상 이런 상황을 생각해 온 마초다. 진퇴양난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십 수백 번을 되뇌어 왔다.

마초가 대답했다.

“전부 짓밟고 진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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