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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36화 (136/306)

136화. 낙성 기습 (2)

감녕은 눈앞에 보이는 대장선을 향해 날아올랐다. 뱃전을 딛고 박차 오르자 감녕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대장선에 탄 병사들은 뛰어오르는 감녕을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서 붉은 비단옷이 흩날렸다. 감녕의 도약은 부드럽고 유연해서 마치 바람을 탄 나뭇잎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도약의 높이는 생각보다 훨씬 높아서, 보는 이들이 이제 가라앉겠거니 하는 시점에도 가라앉지 않고 계속 상승해 결국 대장선의 갑판에 닿았다.

딸그랑!

요란한 방울 소리가 울렸다. 잠시 넋을 잃고 도약을 바라보던 동주병들은 소교들의 불호령에 정신을 차리고 갑판에 착지한 감녕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어허!”

감녕은 어린아이를 어르는 것 같은 태도로 동주병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창을 걷어냈다. 허리에는 활과 전통을 차고 있었지만, 손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손이었다.

퍼퍽!

감녕이 손으로 잡아채서 거꾸로 잡고 휘두르는 창대에 동주병들이 쓰러져 나갔다. 창날에 찔린 병사는 없었다. 그러나 한 명씩 창대에 맞을 때마다 살이 터지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비명 소리가 어지럽게 섞인 소음이 울려 퍼졌다. 좁은 갑판 위였지만 감녕의 주변에는 순식간에 원형의 공터가 생겼다. 그 바깥에는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동주병들 때문에 움직일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갑판 위 동주병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어 감녕에게 다가왔다. 퍼렇게 날이 선 직도를 치켜든 건장한 사내였다.

“건방진 놈! 이 홍농의 유괴가 상대해 주마!”

“홍농의 유괴? 너도 관중에서 넘어온 동주병이냐?”

“비록 난세를 피해 파촉에 몸을 의탁하고 있지만 나는 본래 관중의 협객으로 홍농사협으로 불리던 몸. 익주 촌놈이 힘을 좀 쓰니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이 유괴가 있는 배에 쳐들어온 이상 살아서 내리지 못할 것이다!”

유괴는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다. 말씨를 들어 보니 관중의 홍농군 출신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감녕은 유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하. 협객을 자칭한다면 네놈도 본래 강호의 인물인가 보군. 유 익주(유언)가 동주병을 받아들인 건 벌써 오 년 전인데, 그때부터 벼슬을 했던 거냐?”

“그렇다! 이 몸이 바로 광한군 도위니라!”

“강호인의 몸으로 관직을 받는 게 영 꺼려졌었는데… 이거 나만 빼고 다들 하고 있었잖아?”

감녕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유괴를 향해 다가갔다. 유괴는 직도를 높이 들어 감녕을 향해 내리쳤다.

퍽!

그러나 유괴의 직도가 미처 감녕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감녕의 오른 주먹이 유괴의 안면을 향해 날았다. 유괴의 몸은 누군가 뒷덜미를 잡고 잡아당긴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권에 맞은 안면에서 피와 이빨이 어지럽게 날았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선창에 처박힌 유괴는 그저 꿈틀거릴 뿐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그쯤 되자 어떤 병사도 감녕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감녕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죽지는 않았을 거다. 이대로 전투에서 빠지면 목숨은 살려 주마. 너희 대장을 데리고 전장을 빠져나가라.”

“간이 크구나.”

감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약간 쉰 저음의 목소리가 뱃전에 깔렸다.

고물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홀쭉한 사내였다. 손에는 짧은 창을 들고 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깊게 패인 주름과 큼직한 칼자국을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이 어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심드렁하던 감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감녕은 눈앞의 상대를 응시했다. 팔척장신에 철창을 들고 칼자국이 있는 사내. 감녕이 전투 전 전달받은 적장의 정보와 일치했다.

“그대가 장임인가. 역시 이 배가 대장선이었군.”

“그러는 네놈은…….”

장임은 눈앞의 상대를 위아래로 훑었다. 비단 돛을 올린 배에서 갑자기 난입한 이 사내는 붉은 비단옷을 입고 구리 방울을 단 채 엄청난 무위를 뽐냈다. 그렇다면 익주에서 칼로 밥을 먹는 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금범대협 감녕은 마초의 손에 죽었다던데, 헛소문이었나?”

“아아, 금범대협은 죽은 게 맞아. 이제는 관중도독부의 위수독이다. 어엿한 관리라고.”

마초가 감녕의 죽음을 숨긴 것은 이런 대담한 기습을 위해서였다. 기습에 성공한 이상 더 숨길 필요가 없었다. 감녕은 장임을 향해 씩 웃고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철간을 다오!”

거룻배에 남아 있던 금범군 부하들이 그물에 든 사각철간 두 자루를 들어 올렸다. 부하들 중 힘 잘 쓰는 이가 몸을 빙글 돌리며 사각철간을 감녕이 있는 대장선 위로 내던졌다. 강맹하게 날아간 사각철간은 그러나 장사에게도 무거웠는지 갑판에 떨어지지 못하고 뱃전 끄트머리에 맞으며 겨우 배 안으로 들어왔다.

쾅!

사각철간에 닿은 뱃전 끝의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그만큼 무거운 병기였다. 그런데 감녕은 아무렇지도 않게 두 자루 사각철간을 집어 들고 부지깽이 휘두르듯 양손으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상대하기는 너무 강한 놈이군. 제대로 붙어 봐야겠다. 어디 그 녀석보다 나은지 한번 보자.”

감녕은 얼마 전 자신의 몸에 칼을 찔러 넣은 실눈의 청년, 장료를 생각했다. 생사결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끝까지 승부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상대였다. 이 장임이라는 자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 보이니 장료와 비교해 보고 싶었다.

장임은 자세를 낮추고 철창을 겨눴다.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두 발은 미끄러지듯 바닥을 쓸며 일 척 거리를 수시로 왕복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창 한 자루만큼 줄어든 순간, 장임이 바닥을 구르며 창을 찔렀다.

깡!

감녕은 사각철간을 들어 장임의 공격을 막았다. 요란한 쇳소리가 울렸다.

장임의 공격은 단순한 창 찌르기가 아니었다. 웅혼한 내공이 실려 있어서 감녕을 뒤로 밀려나게 했다. 장임은 거기서 뱃전 바닥을 다시 한번 발로 굴렀다. 요란한 파열음이 울리며 감녕이 또다시 밀려났다.

감녕은 위태롭게 휘청거리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장임은 지체 없이 감녕이 피신한 곳으로 철창을 찔러 왔다. 철창과 철간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보통 사람들이 나무 장대와 곤봉을 휘두르는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병사들은 넋을 잃고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다.

한바탕 용과 호랑이 같은 어울림이 끝난 후 두 사람이 떨어졌다. 장임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만한 솜씨를 가지고 서량 군벌의 밑으로 들어가다니. 익주를 서량 군벌에 통째로 넘길 참이냐?”

“그러는 너야말로 관중에서 꽤나 이름이 있었나 본데, 왜 익주까지 와서 힘 자랑을 하는 거냐?”

장임과 감녕은 서로를 향해 쏘아붙였다. 익주 출신으로 외지인의 수하로 들어간 자와 외지 출신으로 익주 토착 정권에 붙은 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관중은 생지옥이다. 동탁이 다스리는 관중이 어떤 곳인지 네놈이 짐작할 수 있느냐? 평화로운 익주니까 너처럼 수적 놀이나 하면서 협객이라고 으스대며 사는 것이다.”

장임은 감녕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는 수백 명의 무리를 거느린 홍농의 협객이었다. 동탁의 폭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무리는 어느새 수천을 헤아릴 만큼 커졌다. 그쯤 되자 불의한 권력자와 한 판 붙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기롭게 도전한 장임의 무리들을 토벌하기 위해 온 것은 동탁의 부하 이각과 곽사였다. 그들이 이끄는 서량병들은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이라 마치 수천 명이 한 몸인 것처럼 움직였다. 의분으로 가득하던 협객들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렇게 처참하게 패하고 피난하러 온 자신들을 받아 준 것이 죽은 익주목 유언이었다. 장임은 유언에게 입은 은혜를 갚고 싶었다. 유언에게 다 갚지 못한 은혜는 유언의 생전에 그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던 둘째 공자 유탄에게 갚을 작정이었다.

감녕은 장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들은 것과 다르군. 관중은 이제 옥토가 되었다던데.”

“헛소리. 부모가 자식을 팔아서 먹거리를 사고, 남의 무덤을 파서 옷을 구하던 곳이다. 게다가 지금 그 땅을 점거한 것은 짐승 같은 서량 군벌. 그런 땅이 이렇게 빨리 옥토가 될 리가 없다.”

“나도 가 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장임, 살아남으면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감녕은 그렇게 말하며 장임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장임은 충혈된 눈으로 감녕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감녕은 심호흡을 하며 우철간을 안쪽으로 휘둘러 장임의 창을 쳐냈다. 동시에 좌철간을 장임의 팔뚝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타격을 가하기에는 거리가 짧았다.

그러나 좌철간을 팔뚝에 접촉한 채 힘을 쓰자 장임의 중심이 흔들리며 몸이 크게 기울었다.

“이놈이!”

장임은 노호성을 터뜨리며 신형을 수습하고 철창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감녕이 먼저 자리를 잡고 우철간으로 장임의 하단을 쓸어 간 후였다.

퍽!

감녕의 철간이 장임의 다리를 쓸고 지나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쇠몽둥이에 맞은 다리는 순식간에 옷 위로 티가 날 만큼 부어올랐다. 베인 곳도 없는데 피가 흘러서 바닥을 적실 정도였다.

단 일격에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장임은 이를 악물고 정신력으로 간신히 서 있을 뿐이었다. 감녕은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역시 그 녀석만큼 강하지는 않군.”

감녕은 혼자 중얼거리며 두 자루 사각철간을 바닥에 던졌다.

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 조각이 튀며 뱃전이 주저앉았다.

“승부가 났다. 모두 항복하라. 장임 대협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다.”

장임은 생각했다.

‘터무니없이 강한 놈이구나. 설마 여기서 대장선이 저놈의 습격을 받을 줄이야…만약 이 전투에서 우리 동주병들이 쓰러지면 유탄 공자는 승기를 빼앗긴다. 혹시 동주병들이 마초에게 귀부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 감녕이라는 사내가 노리는 것도 그것인 듯했다.

장임은 이내 결심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잠시 등을 보인 감녕에게 달려들었다. 손에는 비수를 뽑아 들고 있었다. 장임이 거의 접근했을 때, 감녕은 몸을 홱 돌려 장임과 눈을 마주쳤다. 눈에는 분노도, 당혹감도 없었다. 그저 담담한 아쉬움만이 전해졌다.

퍽!

감녕은 장임이 휘두른 비수를 팔뚝으로 받았다. 선혈이 튀었다. 감녕이 팔뚝의 각도를 조절해 비스듬하게 힘의 방향을 돌려내자 장임이 휘두른 비수는 실려 있던 힘의 대부분을 소실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힘은 감녕의 근육에 제압당했다. 비수는 근육에 물려 움직이지 않았다.

“허.”

장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잘생긴 청년이 가진 완력은 평생을 협객으로 살아 온 그도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장임은 자연스럽게 감녕을 그가 평생 봤던 무사들 중 가장 강했던 이와 비교했다.

‘이 정도면 곽사보다 더 강하겠군. 익주에 이런 터무니없는 놈이…….’

감녕은 칼에 찔리지 않은 왼손을 장임의 쇄골 위에 갖다 대었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목숨은 빼앗지 않겠으나 무공은 폐하겠다.”

그 말을 남기고 감녕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억센 손가락이 쇄골을 꽉 쥐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눌렀다.

우두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장임의 오른쪽 쇄골이 탈골되었다. 맨손으로 쇄골을 뺀 것이다.

쇄골이 외력에 의해 강제 탈골되었으니 오른쪽 어깨는 시간이 지나도 예전과 같은 완력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임의 끔찍한 비명과 함께 대장선에 탄 동주병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감녕은 뒤이어 장임의 부장들을 하나씩 쳐 나갔다. 지휘 체계가 마비되자 동주병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 틈을 타서 아군의 군사들이 낙수를 건넜다. 선두에는 큼직한 방패로 몸을 가린 마초가 서 있었다.

* * *

성도 북쪽의 낙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쪽의 광도현에서도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남중에서부터 북상한 옹개는 1만이 넘는 남만병을 이끌고 인근의 광도현에 주둔했다. 자연스럽게 약탈이 일어났다. 특히 현성 내부에 들어간 2천 병력은 매일같이 물자를 징발하고, 저항하는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욕보이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이 시대의 전쟁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현성의 약탈을 주도하는 것은 옹개의 부하 주포였다. 그날도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민가에나 들어가서 갖은 범죄를 저지르고 나오던 주포에게 헐레벌떡 전령이 달려왔다.

“급보! 적의 습격입니다!”

“뭣이? 성도로 향하는 가도는 모두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지 않느냐? 절대 수천이나 되는 적이 습격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수천이 아닙니다, 장군! 적의 수는 삼백입니다!”

적이 삼백 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자 주포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신의 선봉대가 이천에 달하고, 그것도 누구 못지않게 용맹한 남만병들이다. 그런 자신들을 불과 삼백 기로 기습한 상대가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어떤 놈이 명을 재촉하는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장군, 삼백 기의 선두에 귀신같은 놈이 있습니다. 우리 병력만으로는 당해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피하시는 게 상책입니다.”

“닥쳐라! 대체 어떤 놈이기에 삼백 기로 이천을 상대한다는 말이냐?”

주포는 전령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아무래도 이 전령은 졸개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모양이었다. 주포는 직접 상대를 제압하기로 결심하고 갑옷을 입고 창을 비껴든 채 말에 올랐다. 삼백 기를 이끄는 적장을 찾아서 한 창에 꿰뚫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전장에 도착하자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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