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낙성 기습 (1)
유범이 익주목을 이어받겠다는 뜻을 보이자 성도의 정세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익주의 토착 호족들, 유언 때부터의 구신들은 두 패로 갈라져서 각각 유범과 유탄을 지지했다. 유범은 조정에 강력한 끈이 있고, 서량 마가군과도 긴밀한 사이이다. 그러나 그는 원칙주의자라 호족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유탄은 호족들의 이권을 보장하였으나, 그의 인품이 모자란 점과 조정이나 서량 마가군과의 사이가 경색되는 것을 우려하는 호족들이 있었다. 호족과 구신들은 어느 쪽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지켜줄 수 있을지 계산해서 유리해 보이는 쪽에 섰다. 결과는 대략 반반이었다.
유탄은 형 유범과 몇 차례 크게 충돌한 후, 스스로 허도의 조정에 상표하여 자신을 익주목으로 추천하겠다고 선언하고 성도를 떠났다. 유탄이 향한 곳은 성도 인근의 광한군 낙현, 낙성이었다. 유탄을 지지하는 이들의 병력이 낙성으로 모여들었다.
북쪽의 부현에 주둔하는 동주병의 수장 장임은 북쪽의 관문 수비를 수하들에게 맡기고 직접 낙성으로 합류했다. 한중의 장로 또한 유탄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자신의 아우 장위와 수하 장수 양앙을 보내 유탄을 돕게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유탄을 지지하는 각군 태수들의 병력이 속속 낙성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을 다 합치면 5만에 달하는 대군이 낙성에 집결하게 될 것이다. 유탄은 이 병력을 휘몰아 성도로 진군할 셈이었다.
“형님이 조정에서 큰 벼슬을 했지만, 이곳은 익주다. 익주에는 익주의 방식이 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공자께서 익주의 주인이 되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유탄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병사의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익주 최고의 무력 집단인 장임의 동주병, 장로의 천사군, 옹개의 남만병들이 그의 편에 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탄의 모사 팽양은 그런 유탄에게 계속 바람을 넣었다.
유탄의 세력은 남쪽에도 있었다. 남중 호족 옹개가 이끄는 남만병들은 강수를 거슬러 성도로 북상했다. 1만이 넘는 남만병들이 성도 인근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인근 마을을 약탈하며 성도에 틀어박힌 유범과 마초를 계속 도발했다.
“복파장군. 이제 곧 부현에 모인 5만 적병이 밀고 내려올 것이오. 남중에서 올라오는 1만 남만병도 문제요. 반면 우리는 성도의 수비군과 파군의 군사들을 다 모아도 2만 정도에 불과하고, 무장과 훈련 상태도 적들보다 좋지 않소.”
유범은 판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흔들리는 성격이 아니다. 대의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버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우와 내전을 치르는 일은 심력의 소모가 심했다. 유범의 얼굴은 며칠 새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마초가 대답했다.
“이제 곧 서량에서 두 갈래 군사가 내려올 겁니다. 한중과 검각이 공격을 받을 테니, 한중의 천사군과 장임 휘하의 동주병들은 주력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적의 집결 속도가 빠르오. 이대로라면 며칠 안으로 낙성에 5만 대군이 집결을 끝내고 밀고 내려와서 성도를 포위할 것이오. 한 번 포위를 당하면 끝이오. 그 전에 남만병들을 공격해서 기세를 꺾어야 하지 않겠소?”
옹개가 이끄는 남만병은 1만이다. 성도의 군사들을 다 모으면 병력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마초는 고개를 저었다.
“남만병은 미끼입니다. 일부러 우리가 나오도록 하여 회전을 유도하고자 민가를 약탈하고 있는 것이지요. 남만병과의 회전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용맹하여 두 배의 군사도 당해낼 수 있고, 산과 숲에 익숙하니 일제히 흩어지며 퇴각하면 추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문을 열고 남만병과 회전을 벌이는 그 순간, 낙성에서 군사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듣자 하니 한중에서 보낸 원군 중에는 근본을 알 수 없는 기병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선봉이 되어 들이치면 회전을 하기 위해 나간 아군이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진퇴양난이구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소? 아무래도 서량의 원군이 오기 전에 성도가 포위될 것 같으니 말이오.”
마초는 이번에도 계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던 그 방식이었다.
“먼저 공격합니다.”
“먼저 공격한다니? 방금 남만병을 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남만병이 아닙니다. 적의 본대가 있는 낙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유범의 눈이 커졌다. 마초는 내쳐 말을 이었다.
“낙성의 바로 옆에 낙수라는 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성도가 낙성의 남서쪽 방향이니, 적들은 남쪽에서 낙수를 거슬러 올라오는 공격에는 단단히 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면 복파장군은…….”
“예, 낙수를 우회해서 북쪽에서 강을 따라 공격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적들이 병법을 안다면 낙수 북쪽의 포구를 싹 불태워 버렸을 것이오. 북쪽으로 병사들을 우회시킨다 한들, 배가 없는데 어찌 강을 따라 내려올 수 있겠소? 아무리 수전에 능한 장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오.”
“보통 장수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허나 제 수하 중에 그걸 할 수 있는 장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에게 맡기면 됩니다.”
마초는 자신 있는 웃음을 보였다.
“낙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을 성공시키고, 적장 몇을 참살하여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지요. 그렇게 되면 적들은 흐트러진 전열을 수습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할 것입니다. 그 와중에 북쪽에서 서량 마가군의 공격 소식이 전해진다면? 적들은 이익으로 뭉친 느슨한 연합입니다.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입니다.”
유범은 마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확신에 찬 눈빛과 당당한 태도를 보면 저 말이 허언이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지금 남만병에게 약탈을 당하고 있는 광도현의 주민들이 걱정이오. 무리인 줄은 알지만, 어떻게 그들을 저지할 계책은 없겠소?”
“남만병과 전면전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주 소규모의 병력으로 남만병에게 큰 피해를 주고 돌아온다면 적들도 긴장하느라 약탈을 마음껏 하지 못하겠지요.”
“남만병은 용맹하여 한인 군사들보다 더 강하지 않소? 소규모 병력만을 이끌고 그런 남만병들에게 치고 빠지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장수가 있겠소?”
마초는 이번에도 똑같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똑같은 대답을 했다.
“보통 장수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허나 제 수하 중에 그걸 할 수 있는 장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에게 맡기면 됩니다.”
* * *
낙수 근처의 어느 산.
야음을 틈타 산을 넘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있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나같이 웃통을 벗어부치고 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내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행군하느라 열이 나는지 드러난 상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이런 우라질!”
그들 중 하나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자 여기저기서 따라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내들은 십여 명이 한 조가 되어 머리 위로 작은 배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무 명이 간신히 탈 만한 크기의 작은 배였다. 배를 지지 않는 십여 명이 노와 삿대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장강에서 수적질만 십 년을 하면서 온갖 꼴통들을 다 봤지. 하지만 배를 들고 산을 넘으라는 미친놈은 처음 봤소!”
“이게 다 대형 탓이오. 대형이 마초를 쏘지 못해서 이 꼴이 됐지 않소!”
“마초가 말젖 먹고 자란 촌놈이라 그런지 무식하기 짝이 없소. 대형, 진짜로 마초를 계속 따라도 되는 거요?”
나룻배를 지고 산을 넘는 금범군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맨 앞 조가 짊어진 배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감녕은 뱃전을 탕탕 때리며 말했다.
“거 조용히들 좀 해라. 이제 너희들 주군인데 ‘마초’가 뭐냐?”
“이런 제에길…….”
금범군들은 입으로는 계속 투덜거렸지만 발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산길을 걸었다.
이 산을 넘으면 낙수 상류에 도착할 터였다. 감녕은 부하들이 짊어지고 가는 배 위에 앉아 마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니, 배를 지고 몰래 낙수 상류로 가라고요? 복파장군, 물싸움을 모른다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모르긴 뭘 몰라? 자네 관우 알지?
—관우가 누굽니까?
—아, 아직 관가놈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기 전인가? 하여튼 관우라는 녀석이 있어. 내가 긴 꿈을 꾸었는데, 자네가 부하들과 함께 배를 지고 이동해서 그 관우의 진영을 습격하지 뭔가?
마초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사실 마초는 지난 생에서의 경험으로 익양 대치 때 40대의 노련한 감녕이 배를 지고 이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감녕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어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렇게 마초의 특명을 받은 감녕은 부하들을 이끌어 배를 지고 낙수 상류로 이동했다. 장강에서 잔뼈가 굵은 금범군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어찌어찌 배를 지고 낙수 상류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돛을 올려라.”
감녕이 지시했다. 사실 노를 저어 이동하는 작은 배라서 돛대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돛은 그들의 상징이기 때문에 올려야 했다.
낙수 상류에 비단 돛이 펄럭였다. 이대로 강을 따라 내려가면 유탄이 주둔하는 낙성이 나올 것이다.
* * *
성도에서 유범이 동원 가능한 군사는 약 2만에 달했다. 마초는 그들 중 비교적 정예라고 할 수 있는 5천을 뽑아서 낙성으로 우회했다. 다양한 파벌들로 이루어진 유탄의 군세가 다 모이기 전에 본거지 낙성을 들이칠 셈이었다.
마초를 따르는 수하들은 비서랑 나관중, 당번병에서 아장으로 승진한 마대, 행령군 이감 등이었다. 이감을 제외하면 전투에서 큰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이 싸움은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다. 그리고 부장으로는 저 친구를 데려가지.”
마초는 자신을 따라온 서량의 장수들 대신 엉뚱한 익주 무장을 지목했다. 파군의 관군 출신인 파군도위 엄안이었다.
엄안은 <삼국지연의>에서 노장으로 각색되었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마초가 자신을 부장으로 지목하자 손사래를 쳤다.
“복파장군, 저는 대규모 전투를 치러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자신 있는 건 그저 원칙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어찌 저를 중용하려 하십니까?”
“그거면 되네. 무리하지 말고 자네가 할 수 있는 걸 하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마초는 엄안의 우려를 일축하고 자신의 부장으로 삼았다. 지난 생에서 엄안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단한 맹장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영리했다. 전투 지휘는 마초 자신이 능숙하니 부대의 살림을 돌봐 줄 수 있는 엄안 같은 인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엄안은 익주 토박이다. 외지인인 나와 병사들의 가교 역할도 해 줄 것이다.’
마초가 이끄는 오천 군사는 낙수 근처에 이르렀다. 이제 눈앞의 강을 건너면 유탄이 주둔하는 낙성이다.
“강을 건넌다. 부교를 설치해라!”
마초의 호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일제히 강을 건널 수 있는 부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익주의 병사들은 서량이나 관중 병사들만큼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전국시대부터 통일 전쟁을 치러 온 관중, 이민족과 군벌들로 인해 매일 매일이 생존 투쟁인 서량에 비하면 익주는 평화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친 변방 사람들 같은 전투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익주 병사들이 무엇보다 능한 것이 하나 있지. 험한 지형을 돌파하는 것이다.’
험준한 산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있고, 장강의 지류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익주의 지형 때문이었다. 마초가 데려온 병사들은 낙수를 건널 만한 부교도 뚝딱 만들어 냈다.
낙성의 유탄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우리의 십 분의 일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유탄은 어이가 없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장임이 말했다.
“마초의 이름이 높았는데 병법의 기본을 모르는 걸 보니 허명이었나 봅니다. 소장이 동주병을 이끌고 마초를 격멸하고 오겠습니다.”
장임은 홀쭉한 얼굴을 한 키가 큰 사내였다. 굵은 주름과 깊숙한 칼자국이 그가 살아 온 험한 삶을 말해 주었다.
“좋소, 장임 장군. 나가서 마초를 주멸하시오!”
“존명!”
허락을 받은 장임은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마초를 요격하러 나갔다. 병력의 수는 비슷했으나 그가 이끄는 병력은 관중 사람들로 구성된 동주병, 개개인의 전투력에서는 익주 출신 병사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기다려라. 마초가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친다.”
장임은 자신의 수하들을 진정시켰다. 마초는 그런 장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부교를 설치하고 스스로 선두에 서서 낙수를 건너기 시작했다.
마초가 강을 반쯤 건넜을 무렵, 장임의 호령이 떨어졌다.
“전원 공격하라!”
낙수 동편의 동주병들이 어지럽게 화살을 퍼부었다. 선두에 선 마초군 병사들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선두에 선 마초도 대형 방패를 몸소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당황하지 마라! 이 공격을 막으면 저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초가 기세 좋게 외치자 움츠러들던 군기가 살아났다. 화살비가 쏟아지는 것을 처음 보고 당황하던 병사들은 총대장이 선두에 서서 자신감을 보이자 빠르게 사기를 회복했다.
“제법이군. 포위해라.”
장임은 동주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주병들은 뗏목을 타고 진형을 넓게 펼쳐서 부교를 건너고 있는 마초군의 병사들을 포위했다.
‘굳이 피를 흘릴 필요도 없다. 이대로 포위하고 도하하지 못하게 압박하기만 해도 마초는 제풀에 지쳐 물러날 것이다.’
그것이 장임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마초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자,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마초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낙수 건너편의 장임군 진영에서 신호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었다.
“장임 장군! 상류 쪽에서 적선이 나타났습니다! 스무 척이 넘습니다!”
“적선이라고? 어떻게 상류에서 적의 배가 내려온다는 말이냐? 혹시 우리 배인데 잘못 본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적의 배가… 비단 돛을 달고 있습니다!”
“뭣이!”
비단 돛이라는 말을 듣자 장임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금범적이 무슨 수로 배를 낙수 상류까지 옮겼다는 말이냐? 아마 상류 쪽 고을의 현위 한둘을 매수해서 금범적을 사칭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나가서 상대하마.”
장임은 자신의 철창을 잡고 배 위에 올랐다. 다른 병사들이 탄 뗏목과는 달리 제법 그럴싸한 전선이었다. 상대가 진짜 금범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전장에서는 실체보다 소문이 더 무섭다.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는 빠르게 상대를 제압해서 금범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전선을 타고 상류 쪽으로 전진하는 장임의 배를 향해 작은 배 몇 척이 다가왔다. 상류에서 하류 방향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감안해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배의 노를 젓는 노꾼들은 하나하나가 장사였다.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노를 젓는데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중 선두에 있는 배가 장임의 대장선에 근접해 왔다. 비단 돛을 올린 작은 거룻배였다. 뱃전에 발을 올린 채 서 있는 적장은 화려한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장임이 배 위에 있는 적장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딸그랑.
하고 구리 방울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