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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34화 (134/306)

134화. 무르익는 전운 (2)

익주목 유언의 장례가 끝난 후, 후계자 문제를 놓고 익주 전체가 두 패로 나뉘었다.

하나는 장남 유범을 지지하는 쪽. 유범은 좌중랑장 벼슬을 받은 조정의 고관이다. 인품도, 학식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또한 유범은 서량의 마가군을 끌어들여 이각에게 핍박받는 천자를 구해 낸 공신이기도 했다.

유범은 바로 그것 때문에 호족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유범은 충신 중의 충신이고 천자의 최측근이다. 만약 익주의 이익과 조정의 이익이 충돌하게 된다면, 충신인 그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난세에는 눈치를 잘 살펴야 하는데, 유범이 익주목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 익주가 무조건 천자의 편을 들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호족들이 이익을 추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차남 유탄을 지지하는 쪽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유탄은 어린 시절부터 망나니로 유명했지만, 미오성에 유폐되었다 마초에게 구출되어 돌아온 후부터 지난 3년간 착실히 지역에서 평판을 쌓았다. 아버지 유언을 항상 수행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를 다 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여질 만한 행동을 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손을 써서 호족과 구신들 중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 놓았다.

그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익주의 무력 집단들이었다.

첫 번째로 남중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가진 남중 호족 옹개가 있다. 그가 이끄는 남만병들의 용맹함은 익주 전역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로 동주병의 우두머리 장임이 있다. 동탁과 이각의 정권을 거치며 황폐해지는 관중에서 수많은 유랑민들이 익주로 흘러들었는데, 이들을 동주병이라 했다. 유언은 이 동주병들을 조직해서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삼았다. 장임은 그 동주병들의 수장이었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다. 그저 그가 귀신같은 창술을 지녔고, 동주병들은 장임의 말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든다는 것만 알음알음 전해지고 있었다.

“세 번째로 한중의 장로가 있습니다. 장로는 익주 한중군에 위치한 천사도의 교주인데, 장로의 모친이 익주목 유언의 애첩으로 알려져 있지요. 천사도는 유언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탄이 천사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성도, 비가의 저택.

마초는 비관에게 빌린 이 장소에서 일행과 모여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감이 설명을 끝내자 마초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그 장로의 모친이 유언이 죽은 후 아들인 유탄과 사통하고 있다는 거로군. 그 사실은 내가 유범 중랑장에게 틀림없이 전했다. 지금쯤 유범 중랑장이 유탄을 추궁했을 것이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듣고 있던 황권이 입을 열었다. 그는 파서군의 군리 자리를 사직하고 마초를 따르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마초는 그런 그에게 대번에 법정과 동격인 군사장군의 자리를 약속했다.

“주공, 그러나 유탄 공자는 그리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야심은 익주 사람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나 또한 짐작하고 있네. 황 군사,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내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유범 중랑장을 지지하는 세력과 유탄 공자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서 말이지요.”

“좋아, 유범 중랑장을 지지하는 세력은?”

“촉군, 그리고 파, 파서, 파동의 삼군 태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유탄 공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광한군, 한중군, 그리고 남중의 건녕, 월수, 영창군입니다. 성도의 호족과 구신들은 대략 반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파와 촉의 지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유범의 세력이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것은 유탄의 세력이었다. 파촉의 관군들로는 광한군 부현에 주둔하는 동주병, 한중의 천사군, 남중의 남만병들을 막을 수 없었다.

마초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내전이 일어나면 부현의 장임, 한중의 장로, 남중의 옹개가 동시에 성도를 노리고 쳐들어오겠군.”

“그렇습니다.”

“좋아, 장임과 장로라면 나에게 막을 방법이 있다.”

마초는 서찰 하나를 들어 월길에게 건넸다.

“주공, 이게 뭡니까?”

“장안으로 보내는 서찰. 월길, 너는 지금 당장 이걸 품고 장안으로 달려라.”

원군을 요청하는 서찰이었다. 이것이 도착하면 마가군의 군사들이 부현과 한중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두 곳 모두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에 함락시키기는 어렵지만, 본거지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장임과 장로가 섣불리 성도로 출병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초는 월길에게 서찰을 맡긴 후, 이감을 향해 또 한 장의 서찰을 내밀었다.

“이감. 내가 일전에 말했던 ‘그 인물’을 만나서 이 서찰을 전하라. 부현에 가면 장임 휘하에 그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이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말로 서찰 하나만 전하면 그 인물이 배반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 인물이라면 서찰 하나로 얼마든지 배반하게 만들 수 있어.”

마초는 나관중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감에게 들은 바로, 장임의 휘하에 있는 동주병 집단 중에 이름난 명문가의 선비 하나가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원래의 역사에서 주인을 여러 번 배반하는 인물, 적당한 재물과 관직으로 유혹한다면 반드시 넘어올 것이라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나관중이 물었다.

“주공, 북쪽의 장임과 장로는 마가군이 견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쪽의 옹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왜 없어? 딱 하나 있지.”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좌중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옹개는 우리가 격파한다. 우리 마가군 일천이 선봉이 되면 옹개의 남만병들과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 그렇지 않은가, 맹획?”

맹획이 움찔했다.

옹개와의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맹획이다. 옹개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을 터였다.

“흥, 전쟁은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고 복파장군이 가르쳐 주었지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수성하는 입장입니다. 일단 성도의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켜야 합니다. 남중의 군사들은 생존이 아니라 이득을 위해 온 것이니, 성도를 굳게 지키다 보면 저들은 남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맹획은 신중했다. 스스로의 마음을 절제하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마초는 그런 맹획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제 슬슬 우두머리다운 모습이 나오는군. 좋아, 그러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옹개와 접전을 벌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치자고. 그러면 어찌할 테냐?”

“그러면…….”

맹획의 눈이 번쩍 빛났다.

“반드시 이 손으로 옹개의 목을 취할 것입니다.”

* * *

월길은 나는 듯 달려서 장안에 도착했다. 익주에서 장안으로 가려면 험준한 진령산맥을 넘어야 했지만 월길이 이끄는 강족 전사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산지를 평지처럼 가는 기마술로 남들의 눈을 피해 이동한 월길은 장안에 도착하자마자 마등을 만나 그간의 일을 아뢰었다.

“결국 익주의 후계자 분쟁에 개입하는 것인가. 곤란하게 됐군.”

마등은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별가 순유가 마등에게 말했다.

“대도독, 그러나 익주에 언제든 한 번은 출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나서서 유범 중랑장을 후계자로 세운다면 그것이 가장 짧게 싸움을 끝내는 방법입니다.”

익주를 직접 침공해서 마가군의 영지로 만드는 것은 최소 5년이 걸리는 대사업이다.

익주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면 유탄이 정권을 잡고 마가군의 뒤를 노리는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익주에 잠깐 동안의 군사 개입을 통해 친 마가군 성향의 정권을 세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마등 또한 이런 이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좋소. 기왕 이렇게 됐으니 빠르게 출병합시다. 누구를 보내야겠소?”

“한중에는 서황을 보내시지요.”

“적임자로군. 다만 한중은 큰 고을이고 하나의 종교로 결속된 곳이오. 한중에 출병해서 적을 깨뜨리는 것 이상으로 관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서황만 단독으로 가도 괜찮겠소?”

“맞습니다. 그러니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순 별가가 직접?”

“그렇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순유는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마등은 못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내정에만 전념해 온 순유가 이런 대규모 출병에서 군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초가 순유를 천거하며 했던 말이 마등의 뇌리에 떠올랐다.

—순공달에게 맡기십시오.

—뭘 맡기란 말이냐?

—그냥 다 맡기십시오.

마초가 말하기를 순유의 재주는 천하를 아우를 수 있는 재주라고 했다. 마등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좋소, 순 별가가 서황과 함께 한중을 공략하도록 하시오. 그렇다면 남은 한 곳, 부현 방면에는 누구를 보내면 되겠소?”

“방덕이 적합할 것입니다. 군사로 법정이 함께 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세세한 인선은 방덕과 법정에게 맡기시지요.”

“법효직(효직은 법정의 자)이 비록 총명하다고는 하나, 아직 경험이 모자란데… 괜찮겠소?”

우려하는 마등을 보며 순유는 너털웃음을 보였다.

“대도독, 최근 문관이 부족해져서 법효직이 제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렇지. 곁에서 보니 그의 재주가 어떻소?”

“천하의 기재입니다. 동시대의 선비 중 열 손가락에 꼽을 만합니다.”

순유가 그렇게까지 법정의 재주를 칭찬하자 마등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방덕과 법정으로 하여 부현으로 출병하게 하겠소.”

마가군의 원군이 결정되었다. 서황과 순유가 한중으로, 방덕과 법정이 부현으로 가서 장로와 장임의 움직임을 막을 것이다.

* * *

부현, 동주병의 진채.

이감은 마초의 명을 받고 한 사내를 만나고 있었다. 이제 이십 대 중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가는 손가락을 들어 서안을 똑똑 두드리며 물었다.

“마가군의 이감 장군이라고 하셨나요? 복파장군의 서찰을 가져왔다고요?”

“그렇습니다, 맹 선생.”

이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청년을 바라봤다.

맹달, 자는 자경.

원래 부풍군의 대부호였던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맹타는 십상시에게 서역의 포도주를 뇌물로 바치고 서량을 다스리는 양주 자사가 된 일로 유명하다. 그런 출신을 증명하듯, 익주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 지금도 화려한 복장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마초의 서찰을 읽은 맹달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으흥, 괜찮은 제안이네. 나를 조정에 비서랑으로 천거하겠다니.”

비서랑은 조정의 문서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나관중도 천자에게 직접 비서랑 벼슬을 받았다. 대단한 관직은 아니지만 명문가 자제들의 관직 진출 경로이고, 무엇보다 중앙 조정의 관직이니 먼 익주에서 미관말직에 있는 맹달에게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이감이 되물었다.

“어떠십니까, 맹 선생? 제가 복파장군께 좋은 대답을 전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이 맹달이 성심을 다해 돕겠다고 전하세요. 그런데 나에게 관직을 주는 대가로 뭐가 필요한 거죠?”

맹달은 관직을 얻는다고 해서 신이 났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영락없이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같은 태도였다. 맹달이 원하는 걸 묻자 이감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 동주병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편제, 무장 현황, 군마와 강노의 수, 주로 사용하는 전술, 수장인 장임이 사용하는 무술과 그 버릇, 그 외에도 많습니다.”

“으흠… 일단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해 주지요.”

맹달의 입에서 장임과 동주병에 대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그 말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려고 애쓰던 이감은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서도를 꺼내 죽간에 중요한 몇 마디를 새겨 가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맹달이 쏟아내는 정보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이감은 허위 정보가 섞여 있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맹달의 말은 상세하면서도 조리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허위 정보 같지는 않았다.

‘귀부하기로 했다고 이렇게 술술 불다니. 실로 경박한 자로구나.’

이감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한편으로는 맹달이 이렇게 쉽게 배반할 것을 예측한 마초와 나관중을 떠올리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맹달이 귀부하면서 장임의 진영에 마가군의 첩자가 심어졌다.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무섭다. 장임이 이끄는 동주병이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맹달의 배신으로 인해 기세가 꺾일 것이다.

익주의 결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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