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32화 (132/306)

132화. 군사, 대장장이, 선봉장

감녕이 쓰러지자 그를 따라온 금범군 100명은 전원 항복했다.

마초는 그런 금범군에게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자신의 휘하로 편입시켰다. 파군태수 조작과 파군도위 엄안, 그리고 호족 비관은 금범군을 전원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초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저들은 내가 거둘 것이다. ‘죽은’ 감녕과 그렇게 약조했다. 그대들은 서량의 마초가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는 오명을 써야 만족하겠는가?”

마초가 강하게 주장하니 비관 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들 전부 마초가 없었으면 심미와 누발, 감녕에게 암살당해 전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였다.

감녕이 죽고, 마초가 금범군을 휘하로 들인다는 소문이 돌자 장강의 수채에 남아 있던 금범군들도 마초에게 찾아와 항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만병 오백 명만 데리고 파군으로 온 마초였으나, 금범군이 합류하자 어느새 세력이 천 명 가까이로 늘어 있었다.

비관은 그런 마초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볼수록 대단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미와의 장강 교역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외지인인 마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초가 천하에 이름 높은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 법인지, 마초의 활약은 비관의 기대 이상이었다. 마초는 파서에서 판순만을 토벌하고, 파군에서 벌어진 심미와의 강화 회담에서 습격을 받자 손수 칼을 빼 들고 싸워 자객들을 격퇴했다. 그 와중에 심미와 누발은 죽었다. 장강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금범군의 수장 감녕은 마초의 목을 노리다 실패하고 죽었다.

‘이제 내 사업을 방해할 인물은 아무도 없다. 심미가 죽고 심가가 몰락했으니 장강 교역은 우리 비가가 독점하게 될 것이다.’

비관은 곧 익주 최고의 거상이 될 것이고, 마초와의 관계가 잘 지속된다면 서역 교역까지 손대면서 익주를 넘어 천하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비관은 분쟁의 뒤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매일같이 연회를 열어 마초를 극진히 대접했다. 마초는 연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분위기를 즐겼다.

어느 날 비관이 마초에게 물었다.

“맹기 형님, 파군에 머무르신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저야 형님께서 오래 머물러 주시면 좋지만, 이제 슬슬 성도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초의 원래 목적은 죽은 익주목 유언의 장남, 유범이 성도에 도착하면 그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유범이 성도에 도착했을 터였다.

마초가 대답했다.

“하하, 우형이 너무 오래 있으니 빈백 아우가 불편한가?”

“당치도 않은 말씀을! 그저 형님의 일정이 걱정될 뿐이지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유탄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입니다. 얼른 유범 중랑장을 만나 보셔야 유탄의 꿍꿍이에 대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이제 곧 움직일 참이었네. 파군에서 만날 사람이 아직 두 사람 남아 있어서 머물렀던 것이지. 마침 그 두 사람을 찾았으니 우형은 며칠 안으로 파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성도로 돌아가고자 하네.”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크게 웃었다.

바로 다음 날, 마초는 한 인물을 만났다. 마초가 비관에게 찾아 달라고 했던 인물들 중의 한 명이었다.

지난 생에서부터 마초가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나이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텁수룩한 수염과 깊은 주름으로 대단한 노안을 가진 사내였다. 사내는 마초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촉군의 포원입니다. 천하의 영웅이신 복파장군께서 미천한 대장장이를 찾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마초는 넉넉한 웃음을 띠고 포원을 맞았다.

“촉군에 쇠를 진흙처럼 주무르는 대장장이가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네. 간장과 막야가 살아나도 자네 솜씨를 따라올 수 없다지?”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연구해 봤을 뿐이지요.”

포원은 칭찬을 듣는 게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마초는 그런 그에게 향기로운 술과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칭찬한 후 슬슬 본론을 꺼냈다.

“익주는 큰 전쟁이 없었지만 내가 사는 서량은 지난 십 년간 매일같이 전쟁통이었지. 내가 겪어 보니 앞으로의 전쟁은 철이 좌우할 걸세.”

“철 말입니까?”

“그래. 지금은 난세라서 어느 세력 할 것 없이 군사들이 갑주와 무기를 잘 갖추고 있지 못하네. 허나 앞으로는 몇몇 큰 세력들을 중심으로 천하의 판도가 재편되겠지. 하북의 원소, 중원의 조조, 그리고 관서의 우리 마가군 등이 있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은 점점 정예병끼리의 싸움이 될 테니, 상대보다 훌륭한 갑주와 무기를 갖추는 게 중요해지지. 그러니 더 많은 철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그 철을 더 효율적으로 다루는 기술도 중요해지네. 자네 같은 뛰어난 대장장이가 앞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말일세.”

“으음…….”

포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인정해 주는 이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마초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생에서 이미 포원의 실력을 봤기 때문이다.

‘기막힌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였다. 제갈량이 발탁해서 높은 관직을 주고 승상부에서 병기의 개량을 맡게 했었지.’

마초는 포원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익주에만 있어서는 크게 출세할 수 없어. 익주는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 외부의 적과 큰 싸움을 치를 일이 없지 않은가? 장안의 관중도독부로 오게. 자네가 온다면 관직을 주고, 우리 마가군의 병기에 대한 전권을 주지. 천하의 어떤 대장장이도 받지 못하는 대우를 받으며 일해 보게.”

마초는 제시한 조건들을 보자 포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벌이의 열 배가 넘는 수입에 공조 벼슬까지 약속하니 젊은 대장장이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복파장군, 너무나 영광입니다. 그런데… 제가 간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모든 것들을 주신다는 말입니까?”

“하하, 간단한 시험이 있지. 한 가지 자네가 만들어 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쇠로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포원은 결의에 차 있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군사들에게 말했다.

“신독의 철을 가져오너라.”

잠시 후 군사들이 철광석 덩어리를 들고 들어왔다. 지난 서량 원정에서 얻은 신독(身毒, 인도)의 철광석이었다.

마초는 먼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의천검을 내밀며 포원에게 물었다.

“이 칼은 황실에 전해지는 보검이네. 신독의 검은 철로 만들었다고 하더군.”

포원은 의천검을 받아 들고 찬찬히 살폈다. 후대에 다마스커스 검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떠올라 있는 칼날을 보자 포원의 얼굴에 깊은 감탄이 떠올랐다.

“신병(神兵)이군요.”

“문제는 내가 쓰는 도법과 잘 맞지 않아. 이 의천검은 칼자루 쪽에 무게중심이 있어서 칼을 돌려가며 사용해야 하는데, 내가 원래 쓰던 5척 장도는 칼끝에 무게중심이 있어서 일격으로 승부를 내는 무기라 사용법이 완전히 다르지.”

“하면, 이 신독의 강철로 5척 장도를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네. 서량 최고의 대장장이들한테 물어봐도 이걸 제련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이 철광석을 녹여 의천검처럼 잘 드는 5척 장도를 만들 수 있겠는가?

지금 상태의 의천검만으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신병이다. 장료, 허저와의 연속된 싸움에서 두 번 다 승리한 것은 의천검의 위력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마초는 그런 의천검보다 더욱 위력적인 칼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장료, 허저보다 더 강한 녀석과 싸워야 하니까.’

의천검과 철광석을 번갈아 살펴보던 포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열로는 녹지 않을 것 같지만… 한 번 다뤄보겠습니다. 복파장군께서 원래 쓰시던 장도를 주십시오. 최대한 똑같은 무게중심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마초는 포원에게 자신의 5척 장도까지 건네주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생에서 확인한 바로 포원은 신독의 강철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어떤 대장장이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 신독의 철광석이지만, 포원이라면 이 철광석으로 마가도법에 꼭 맞는 신도(神刀)를 만들어서 가져올 것이다.

“좋아. 이제 군사도 찾았고, 대장장이도 찾았군.”

마초가 익주에서 찾으려고 했던 인물은 세 사람이었다.

호방한 성품의 군사, 철을 진흙처럼 다루는 대장장이,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는 선봉장.

군사 황권과 대장장이 포원은 이미 구했다. 마초는 마지막으로 남은 선봉장을 만나기 위해 남의 이목이 뜸한 곳에 지어진 비관의 별장으로 향했다.

장중경이 나와 마초를 맞았다.

“복파장군,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환자는 어제부터 크게 회복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 봤지만, 원체 강골이라 그런지 결국 회복하더군요. 오늘은 식사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만나고 갈 수 있겠군요.”

“예, 환자도 복파장군이 찾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자는 다름 아닌 감녕이다. 마초는 그 길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감녕은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어서 약간 야위었지만, 급격히 혈색이 좋아져 있었다. 장료에게 찔린 상처 때문에 거동은 약간 불편해 보였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힘이 있는 걸로 봐서 무공은 잃지 않은 듯했다.

“천하의 감 대협이 꼴좋게 됐군. 거짓 항복에, 암습이나 시도하고, 이제 그런 적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꼬락서니라니.”

마초는 빙글빙글 웃으며 감녕을 놀렸다. 바로 며칠 전 비열한 방법으로 마초를 암살하려 했던 감녕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협객은 그만두려고 하오. 어디 가서 협객이라고 떠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주 후안무치하구만.”

“어른스러운 거지요. 복파장군도 나이를 더 먹으면 나를 이해할 것이오.”

마초는 크게 웃고 감녕의 앞에 마주 앉았다.

지난 생에서 촉한에 귀부한 후의 일이다. 형주 영유권을 두고 유비와 손권의 사이가 극히 나빠진 적이 있었다. 촉오 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어 형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국지전이 일어나고, 곧 전쟁이 터질 것처럼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유비와 손권의 상장들이 형주의 익양에 집결해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몇 달간 신경전을 벌였다. 훗날 익양 대치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나도 그때 형주에 갔었지. 감녕은 당시 적군인 손권군의 장수였다.’

물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마초는 당시에 기병 예비대를 이끌고 후방에 머물렀다. 그러나 적장인 감녕의 수완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감녕은 본래 수적 출신이라 물싸움에 능한 자였는데, 불과 1000명만을 이끌며 절묘한 병력 운용으로 유비군 대장이 시도하는 소규모 기습 작전과 도하작전을 전부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당시에 감녕이 견제한 유비군의 대장이 바로 당대의 천하제일인, 관우였다.

‘관가놈을 만나면 어지간히 이름난 무장들도 벌벌 떠는데, 이 감녕은 그런 관가놈을 상대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단 말이지.’

관우에게 대적할 만큼 용감하고 지혜롭다는 사실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관우에게 대적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은 것인가?

‘그런 건 아무려면 어때!’

어쨌든 평소 관우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쁘던 마초에게는 그런 감녕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감녕에 대한 호감은 그때부터 싹터 있었다.

마초는 눈앞의 감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드네. 목적을 위해서라면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게 특히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말하니 꼭 남 얘기를 하는 것 같군요. 내가 암습한 건 복파장군 본인인데 말이오.”

“감흥패,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일단 들어 봅시다. 말씀하시오.”

마초는 감녕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자네와의 약조를 확실히 지켰네. 그리고 천하제일 신의를 데려와서 자네의 목숨까지 살렸지. 그러니 나에게 은혜를 한 번 갚게.”

“으흠. 어떻게 갚으면 되겠소?”

“싸우면 자네 같은 고수라도 목숨을 던져야 하는 상대가 하나 있네. 나는 몇 년 안으로 그놈을 칠 생각이네. 그때 자네 목숨을 던지게.”

감녕은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여포하고 싸우다 죽으라는 거요?”

“잘 아는군.”

“하하하하!”

감녕은 하늘이 떠나가라 웃었다.

“여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소. 복파장군에게 큰 신세를 졌고, 복파장군이 살려준 목숨이니 복파장군을 위해 한 번은 던지겠소.”

감녕은 시원하게 결정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당분간 자네가 살아난 것은 비밀로 하게.”

심미와 누발이 죽은 지금, 감녕은 지금 파군에서 유일하게 곽가 일행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감녕이 살아 있다는 소문이 돌면 곽가, 여건, 허저도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난 것을 알게 되리라.

“알았소. 그러면 복파장군은 이제부터 어쩌시겠소?”

감녕이 묻자 마초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제 성도로 돌아가야지. 그곳에서 유범 중랑장과 유탄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익주의 미래에 대해 담판을 지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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