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31화 (131/306)

131화. 감녕의 선택

“헉, 헉!”

저 멀리 연회장이 보였다. 나관중은 무릎에 손을 짚고 턱까지 찬 숨을 골랐다.

비관과 심미의 강화 회담에 참석하던 중, 마초가 나관중을 불렀다. 인근 부릉군에서 찾아왔다며 인사를 올린 세 명의 선비 중 한 명이 허저라고 했다. 마초는 불온한 공기를 감지하고 나관중을 보내 진중의 장료를 불러오게 했다.

변란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말을 듣자 장료는 연회장으로 나는 듯이 달렸다.

‘만사가 귀찮아 보이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 내 다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관중은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겨우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연회장은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두터운 문은 누군가 쇠몽둥이로 부쉈는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나관중의 시야에 활을 잔뜩 당긴 청년이 들어왔다. 붉은 비단옷을 입고 구리 방울을 단 청년이었다. 나관중은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금범군의 두령 감녕이구나. 주공께서 꼭 데려가야 한다고 하시던 선봉장.’

군사 황권. 선봉장 감녕. 그리고 대장장이. 마초가 마가군으로 끌어들이려던 익주의 인물들은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감녕은 허리춤에 찬 짧은 활을 뽑아 화살을 메겼다. 순식간에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화살촉의 끝이 향하는 곳을 바라본 나관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감녕의 활이 노리는 곳은 마초의 등이었다.

그렇게 활을 잔뜩 당긴 채 마초를 겨냥한 감녕은 옆을 흘긋 돌아보며 말했다.

“멈춰라. 더 이상 다가오면 시위를 놓겠다.”

끼익.

감녕을 향해 돌진하던 장료는 발을 미끄러뜨리며 멈췄다. 항상 보일 듯 말 듯 하던 장료의 실눈이 크게 떠지며 흰자와 검은자가 드러났다.

“감녕, 비열한 놈. 대협이라 불리는 놈이 거짓 항복을 해? 이러고도 협객으로 자칭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언제까지나 협객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자네는 검객이라 잘 모르겠지만 딸린 식구가 많으면 의협심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네.”

“입은 잘 놀리는구나. 복파장군을 쏘는 순간 너는 죽는다. 그건 알고 있어라.”

“뭐 다 좋은데, 내 솜씨면 이 거리에서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둬라.”

장료와 감녕이 설전을 주고받았다. 정작 등에 활이 겨누어진 마초는 눈앞의 허저와 대치하느라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허저가 의천검에 베인 상처는 깊었다. 승부가 난 듯 보였지만, 상대는 잠깐만 방심하면 절초를 사용할 수 있는 고수였다.

마초는 눈으로는 허저를 응시하며 등 뒤의 감녕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쏘려면 빨리 쏠 것이지 무슨 잔말이 그리도 많으냐?”

감녕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초는 등 뒤의 감녕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로 그가 지금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파장군. 그대에게 은원은 없소. 그저 무리를 건사하기 위해, 그대를 쓰러뜨린 대가로 얻을 관직과 재물이 필요했을 뿐.”

“눈물 나는 책임감이군. 하지만 감 대협, 이제 내 목이 문제가 아니다. 금범군은 살아 돌아가기 힘들게 되었다. 무모하게 쳐들어온 수장 때문에.”

감녕과 허저가 제때 결착을 내지 못하자 파군의 관군과 마가군이 전열을 수습했다. 판순만 복장을 한 금범군들은 하나둘씩 마가군과 관군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감녕은 마초의 등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러니 나는 그대의 머리를 노리고 활을 쏘겠소. 그대가 죽으면 나는 복파장군 마초의 목을 대가로 관직과 재물을 얻어 부하들을 건사할 것이오. 그대가 산다면 두말없이 내 목을 내놓겠소.”

“이봐, 내 머리를 맞추는 순간 장문원의 검이 그대의 몸에 꽂힐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부탁이 있소.”

“이 마당에 무슨 부탁이냐?”

“내가 실패해서 죽으면 금범군들을 살려서 부하로 써 주시오. 물싸움에 능하고 충성심이 확실한 자들이오. 우리 또한 복파장군이 죽으면 다른 마가군 병사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겠소.”

마초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감녕의 목소리를 듣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감녕은 마초가 평소에 좋아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뻔뻔하고, 배짱이 두둑하고, 부하들 위할 줄 알고, 살짝 미친놈이구나.”

“서로 부하들을 상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우두머리끼리 결정합시다. 결과는 화살에 맡기고 말이오.”

“으하하하! 좋다, 서로 부하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하지. 어디 쏴 봐라, 감녕.”

감녕은 씩 웃었다.

장료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초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심입니까, 복파장군?”

“그래. 재미있잖아? 혹시 내가 죽거든 뒷일을 부탁하네. 유언장은 미리 만들어서 집무실에 뒀으니까 잘 찾아보라고.”

“아니, 그 나이에 유언장은 왜 만듭니까?”

마초가 태연한 것을 보자 장료는 기가 막혔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감녕을 바라보며 으름장을 놨다.

“활을 내려놓아라, 감녕. 그 활을 쏘는 순간, 복파장군의 생사와 관계없이 너는 죽는다.”

감녕은 씩 웃었다. 장료 쪽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시선은 그대로 마초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 봐라.”

슬슬 팔이 아파 왔다. 이제 활을 쏠 시간이다.

감녕은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마초의 뒤통수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다리와 허리에 힘을 줬다. 겨누고 보니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작았다.

‘쩨쩨하게 몸통을 겨누는 건 의미가 없다. 마초를 일격에 절명시켜서 전세를 뒤집거나, 빗나갈 경우, 내가 죽고 부하들을 살리는 것.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

감녕은 마초의 머리를 정확히 겨눴다. 오랫동안 활을 들고 있었던 왼팔이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단단히 줬다. 왼팔에 솟은 근육이 불뚝거렸다.

푸슉.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감녕의 왼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왼팔에 길게 그어진 검상이 터진 것이다.

불과 일다경 전 자신을 가로막았던 소년. 세 번 쓰러뜨리자 네 번 일어서던 남만족 소년이 남긴 상처가 벌어졌다. 시위를 놓기 직전 상처가 터지자 조준이 흔들렸다.

탕.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정확하게 조준했다고 생각했던 화살은 마초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허공을 갈랐다.

실패였다. 감녕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실수를 했군. 그 남만족 소년이 마음에 들어서 살려둔 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화살이 머리를 스치거나 말거나 마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감녕의 머릿속에 마초의 인물평이 절로 떠올랐다.

“실로 영웅이구나.”

타다닥.

감녕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장료가 달려들었다. 마지막 패까지 던진 감녕은 더 미련이 없었다.

장료는 장검을 들어 감녕을 찔렀다. 감녕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푹!

장료의 칼이 감녕의 복부에 박혔다.

“컥…….”

쇠가 몸 안으로 파고드는 싸늘한 감각이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털썩.

제자리에 무릎을 꿇은 감녕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올려다봤다. 작은 눈을 부릅뜬 장료가 검을 뽑아서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감녕은 장료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이런 최후도 나쁘지 않군.”

촤악!

장료의 검이 번득이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목을 깊게 베인 감녕의 앞섶에 유혈이 낭자했다.

감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초 쪽을 바라봤다.

“그럼 복파장군, 약조는 꼭 지키시오.”

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녕이 앞으로 쓰러졌다.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가득 메웠다.

감녕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화살은 빗나갔다. 허저는 중상을 입어 더 이상 싸우기 어렵다.

곽가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무사들이 실패한 이상 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곽가는 옆에 있는 여건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각(여건의 자), 계획은 실패했소. 철수해야겠소.”

“곽 군사, 우리가 이 자리를 모면해도 마초는 남은 이들을 심문해서 우리가 사공부의 인물이라는 걸 알아낼 것이오. 차라리 죽기로 싸우는 게 어떻소?”

“죽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소. 남은 이들을 없애서 입을 막고 몸을 피하는 것이 마땅하오.”

이 자리에서 곽가, 여건, 허저의 정체를 아는 것은 세 사람.

파군의 호족 심미, 수로맹주 누발, 그리고 감녕이다. 그들 중 감녕은 방금 장료의 칼에 베여 쓰러졌다. 그렇다면 심미와 누발이 남는다.

여건은 곽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가 허저와 대치하고, 장료가 쓰러진 감녕을 수습하는 사이, 여건은 미끄러지듯 조용히 움직여 심미와 누발에게 다가갔다.

“여, 여 대인?”

퍽!

“끄아악!”

여건의 검이 춤을 추자 심미와 누발의 목이 너무나도 쉽게 떨어졌다. 공포에 질린 심미와 눈을 부릅뜬 누발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곽가와 여건은 그렇게 자신들의 정체를 아는 이들을 참살하고 미끄러지듯 연회장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뜻을 눈치챈 허저도 조금씩 뒷걸음질로 멀어져 갔다.

연회장을 빠져나온 곽가, 여건, 허저는 미리 준비해 둔 배에 올라탔다. 십여 명이 넘던 허저의 수하들은 마초에게 전부 참살당하고 두 명만 살아남아 노를 젓고 있었다. 곽가는 배가 포구에서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말을 꺼냈다.

“마초를 잡는다는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소. 심미가 죽어 버렸으니 유탄 공자도 타격을 입을 것이오. 하지만 아직 또 하나의 방법이 있소.”

여건과 허저는 곽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탄이 익주를 장악하고 조조의 휘하 세력이 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은 익주에 거대한 내전이 일어나서 익주 전체가 황폐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위협은 되지 않는다.

허저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중으로 갈 생각이시겠군요.”

“그렇소. 한중에서 다시 한번 일을 도모하겠소. 어쩌면 마초와 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중강(허저의 자), 그때는 이길 수 있겠소?”

곽가가 묻자 허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간신히 지혈해 둔 목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이길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말 위에서, 제대로 된 병장기로 겨룰 테니까요. 그러면 저는 지지 않습니다.”

허저는 결연하게 대답했다.

* * *

허저가 사라지자 마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추격은 고사하고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장료는 그대로 추격대를 보내 곽가, 허저, 여건을 뒤쫓으려 했다. 그러나 마초가 막았다.

“어차피 저들의 무위는 추격하는 병사들이 당해낼 수 없다. 공연히 사람만 상하게 될 거야.”

“아니, 그럼 저대로 놔 주자고요?”

분통을 터뜨리는 장료를 보며 나관중이 끼어들었다.

“장료 장군, 너무 화를 내실 필요 없습니다.”

“비서랑 선생,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놈들이 비겁하게 암습을 가해 놓고 도망치고 있잖아요? 게다가 심미하고 누발을 죽인 걸 보세요.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입막음을 한 겁니다. 뭔가 뒤가 구린 놈들이 틀림없어요.”

“예, 뒤가 구린 놈들이 틀림없죠. 허나… 복파장군께서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나관중이 말하자 마초가 말을 받았다.

“그래, 나는 저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저놈들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

마초와 나관중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료는 그제야 두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마초와 곽가 일행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했다. 마초는 곽가 일행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 하지만 곽가는 마초가 자신들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마초는 이 비대칭을 사용해서 일을 도모해 볼 참이었다.

그러던 새,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 급한 전령으로 내려보낸 병사가 돌아온 것이다.

전령은 초로의 사내와 함께 달려왔다. 마초는 전령과 함께 들어온 초로의 사내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장중경 선생, 야심한 밤에 무리한 부탁을 드려 송구합니다.”

“허허, 복파장군의 청이라면 마땅히 성심껏 응해야지요. 그래, 제가 살려야 하는 환자는 누굽니까?”

“저자입니다.”

마초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에 놓인 침상을 가리켰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부하들을 살려 보겠다고 얼토당토않은 도박을 했다 실패한 얼간이입니다. 선생의 의술로 이 자를 꼭 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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