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난전 (1)
방금 전까지 술잔을 놓고 앉아 있던 마초와 허저는 동시에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한쪽 무릎을 꿇고 한쪽 다리만 세운 채 서로를 향해 전진했다.
패검이 금지된 연회장에 가져올 수 있는 무기는 옷자락에 숨길 수 있는 짧은 것들뿐이다. 마초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허저가 뽑아 든 무기는 소매 속에 숨긴 작은 철퇴였다. 허저는 고리눈을 부릅뜨고 오른손에 든 철퇴를 들었다. 목표는 마초의 머리였다.
깡!
요란한 소리가 울었다. 마초는 곁에 둔 사자 모양 투구를 들어 허저의 철퇴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대로 허저의 힘을 죽여서 내려치는 철퇴를 아래로 흘렸다. 마초가 특기로 삼는 청경이었다.
마초는 오른손에 든 투구로 철퇴를 막아내고, 왼손으로 철퇴를 든 허저의 오른손을 덮으며 머리로 얼굴을 들이받았다.
퍽!
머리를 통해 전해지는 둔탁한 충격. 이 정도면 어지간한 무사라도 실신할 터였다.
그러나 허저는 쓰러지지 않았다. 마초보다 두 배 이상 두터운 몸통은 그 두께에 걸맞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제대로 들어간 일격에도 꼿꼿하게 상체를 세우고 버티고 섰다. 허저는 자신의 절반밖에 안 되는 체격의 마초가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몸을 수습하고 공격을 날리는 것은 몸이 가벼운 마초가 훨씬 빨랐다. 마초는 지체없이 무릎을 들어 허저의 안면을 다시 한번 올려 쳤다.
퍽!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충격을 버텨내는 허저의 목에 힘줄이 솟았다. 두 번은 쓰러졌을 만한 공격을 받았지만, 허저는 부릅뜬 고리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대신 오른손에 든 철퇴를 회수해 마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마초는 무릎을 차올리고 바로 땅바닥을 굴렀다.
부우웅!
방금 전까지 마초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허저의 철퇴가 바람을 가르고 지나갔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렸다. 맞았으면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터였다.
두 사람은 땅바닥을 굴러 서로에게 멀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대치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마초였다. 사자 투구의 안쪽 끈을 쥐어서 투구를 마치 주먹처럼 만들고 한 걸음 내디디며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질하면 어깨의 모양 때문에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상대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느려지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마초는 겨드랑이를 몸통에 단단히 붙이고 주먹을 내질렀다. 투구를 쥔 주먹은 완전한 직선을 그리며 최단 거리로 허저를 향해 날아갔다. 이 주먹은 허저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닿을 터였다.
허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육중하지만 발은 몹시 빨랐다. 자신의 왼쪽, 마초의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반보를 돌았다. 마초가 뻗은 오른손이 빗나가고 마초의 우반신이 허저의 정면에 드러났다.
퍽!
허저의 주먹이 마초의 옆구리에 꽂혔다. 짧은 공격이었지만 자신보다 훨씬 가벼운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 될 것이다. 마초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런 제길!”
마초는 욕설을 내뱉으며 허저를 껴안았다. 몸통에 큰 충격을 받았으니 잠깐 동안 다리가 느려질 것이다. 이럴 때 거리를 벌리고 있으면 상대의 먹잇감이 된다. 바싹 붙어 있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콰득!
허저는 철퇴를 역수로 잡고 자신에게 붙어 있는 마초의 등을 찍었다. 마초의 무릎이 크게 꺾였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상대는 이걸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허저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붙들고 있는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군웅의 아들이라 무예 실력은 실제에 비해 소문이 과장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착각했구나. 이렇게 용맹한 청년일 줄이야.’
마초는 마상전투를 특기로 한다고 들었다. 말을 잘 타고 무예가 뛰어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칼도 없이 뒤엉켜 싸우는 막싸움은 무예 실력과는 또 다르다. 이런 싸움에서는 무예 실력보다 중요한 것이 체격과 힘, 대담성과 용맹함이다. 그러니 귀한 신분의 마초가 거칠게 살아온 허저 자신을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허저의 예상과 달리, 마초는 너무나 대담하고 용맹했다.
‘그래도 체격과 힘의 열세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허저는 다시 한번 철퇴를 들어 올렸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마초는 다리가 풀렸는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일격이면 마초는 죽을 것이다.
그렇게 철퇴를 내려치는 순간, 마초가 고개를 번쩍 들며 허저와 눈이 마주쳤다. 핏발이 선 푸른 눈이었다. 허저는 그 와중에도 마초의 눈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
마초는 오른손에 쥔 투구를 크게 올려 쳤다. 허저가 철퇴를 내려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고 허저의 턱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큭…….”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허저를 향해 마초가 몸통으로 부딪혔다. 허저는 발을 뒤로 빼고 마초를 밀어내며 균형을 잡았다. 예상보다 부딪히는 힘이 강하지 않았다. 체격 차이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는 자신보다 작으니 쓰러지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다. 계속 충격을 교환하면 결국 체격이 작은 마초가 먼저 드러누울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허저는 마초의 속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콱!
마초는 허저의 오른 손목을 부여잡고 투구로 허저의 손을 찍었다. 무기를 떨어뜨리게 할 셈이었다. 허저는 손가락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을 무시하고 한 번 힘을 써서 마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철퇴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손가락은 이미 부러져서 철퇴를 제대로 쥐지 못했다. 허저의 빈 오른손만 허공으로 솟구치고 철퇴는 손에서 빠져나갔다.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철퇴를 마초가 낚아챘다. 마초의 손에 들어간 철퇴가 허공으로 높이 솟았다.
퍽!
철퇴가 허저의 머리를 후려쳤다. 허저의 머리가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크게 꺾였다. 철퇴에 맞아 피범벅이 된 채였다.
허저의 움직임이 선 채로 멎자 마초는 철퇴에 맞은 등에 격통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의원에게 가면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의 부상이라고 할 게 틀림없었다.
그때, 철퇴에 머리를 맞은 허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서 고리눈이 번쩍 빛났다. 허저는 그대로 발을 들어 마초의 배를 밀어 찼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초의 몸이 날아갔다. 마초는 1장이 넘게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간신히 일어났다. 일어나서 보니 허저도 간신히 몸을 수습하고 있는 게 보였다.
머리는 언제 깨졌는지 뜨거운 피가 관자놀이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마초는 자신의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씩 웃었다.
“그래, 네놈과 이렇게 싸워 보고 싶었다.”
분명히 이길 기회가 있었다.
마초가 조조에게 도전했을 때,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초는 서량 기병대를 이끌고 서전에서 조조가 자랑하는 강군을 무참히 짓밟았다. 분명히 마초에게도 이길 기회가 있었다.
가후가 계략을 쓰지 않았다면, 두기가 구축한 보급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졌다면.
‘그리고 허저가 나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조조에게 이겼을 것이다.
이제 와서 승자가 된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됐을지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겼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우들이, 아내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너에게 빚이 좀 많이 있지. 이 자리에서 갚아 주마.”
마초는 허저를 보며 한껏 웃음을 지었다.
허저는 눈앞에 있는 귀공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이렇게 강한가? 어째서 이렇게 용감한가?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가?’
상대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자신이 먼저 기습했지만, 무기도 빼앗겼다. 마초의 왼손에는 철퇴가, 오른손에는 사자 투구가 들려 있었다. 허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른손의 손가락은 부러졌다.
허저는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주변에 무기로 쓸 만한 것을 가져오게 했다. 수하들 중 하나가 철봉을 가져왔다. 그리고 허저의 오른손에 철봉을 묶어서 고정시켰다.
그 모습을 본 마초는 허저가 철봉을 다 묶기 전에 달려들었다. 피를 많이 쏟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그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마초를 막아라.”
허저는 수하들에게 영을 내렸다. 그 또한 마초와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자존심을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
허저의 수하들은 예주 패국에서부터 그를 따르던 협객들이다. 하나같이 허저를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돼 있는 이들이었다. 저마다 목봉과 작은 철퇴를 꺼내 들고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방해하지 마라!”
마초는 벽력같이 호통을 치며 자신의 앞을 막는 허저의 수하들에게 달려들었다. 투구를 쥔 주먹과 허저에게 빼앗은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십여 명에 달하던 허저의 수하들은 마초를 당해내지 못하고 전부 쓰러졌다. 허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계속 손에 철봉을 묶었다. 수하들이 하나둘 쓰러질 때마다 부릅뜬 고리눈이 점점 충혈되었다.
쾅!
마초가 그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허저가 손에 철봉을 다 묶었을 때, 요란한 소리가 나며 연회장의 한쪽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부서지거나 말거나, 마초와 허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딸그랑.
뒤이어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마초와 허저는 동시에 방울 소리가 울린 쪽을 돌아보았다.
“꽤 고생하고 있군.”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내는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붉은 비단옷을 두르고 머리에 비녀를 꽂아 제멋대로 늘어뜨린 청년이었다. 옆구리에는 활을 차고, 뒤춤에는 화살이 든 전통을 차고, 양손에는 사각형의 쇠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왼팔에는 검상을 입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허리에 매단 구리 방울이 그가 걸을 때마다 맑은소리를 울렸다.
연회장 밖에는 마대와 올돌골, 맹획과 왕평이 있다. 마초는 그들 중의 누군가가 야습하는 적을 제압하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들어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연회장에 들어온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감녕?”
마초가 말하자 감녕은 잘생긴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복파장군. 시세가 부득이하여 어쩔 수 없군. 이 감모에게도 사정이 있으니 부디 용서하시길 바라오.”
마초는 감녕을 가만히 노려보다 물었다.
“그대도 내 목을 취하러 왔나?”
“그렇소.”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을 텐데.”
“아아, 소년 셋. 그리고 거한 하나. 다들 고수더군.”
“죽였나?”
“아니, 넷 다 죽지는 않았을 거요… 아마도.”
감녕이 그렇게 말하자 마초는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설마 파군까지 와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이런 곳에서 절정고수가 둘이나 내 목을 노릴 줄은 몰랐군. 그래, 이건 온전히 내 실수다.”
마초가 웃는 동안 감녕은 한숨을 내쉬며 슬금슬금 움직였다. 은원도 없는 상대와 2대 1로 싸우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파군태수직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마초의 좌측에는 허저가, 우측에는 감녕이 위치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 마초는 웃음을 그쳤다. 표정이 돌변하고 푸른 눈이 안광을 뿜었다.
“오냐, 덤벼라.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허저와 감녕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마초는 전에 없이 강맹한 기세로 철퇴와 투구를 휘둘렀다. 등에 입은 상처의 통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손이 느려지면 죽는다.’
허저와 감녕.
일대일로 상대해도 방심하면 죽는 상대다. 그런데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마초는 남은 체력을 전부 끌어올렸다. 시원찮은 병장기를 들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다리와 허리, 어깨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아니…….”
“저, 저럴 수가…….”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넋을 잃고 마초와 허저, 감녕의 싸움을 지켜봤다.
온 힘을 끌어올린 마초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두 사람을 밀어붙였다. 마초의 손에 들린 철퇴와 투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마초는 두 사람을 상대로 어지간한 무사는 끼어들지도 못할 만큼 절묘한 절초들을 매 호흡마다 쏟아냈다. 허저는 철봉으로, 감녕은 쌍철간으로 마초가 휘두르는 시원찮은 병장기를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예를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승패가 기울어 가는 게 보였다. 마초는 한쪽을 밀어붙이면 후속 공격을 할 여유가 없이 바로 다른 쪽을 상대하기 급급했다. 그 와중에 간간이 내뱉는 숨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도 느껴졌다. 2대 1의 싸움에서는 온 힘을 쏟아내는 것이 잠깐이나마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마초의 체력이 떨어지면 승패는 순식간에 갈릴 것이다.
쩡!
마초는 사자 투구를 휘둘러 감녕을 물러나게 했다. 손에 쥔 투구는 벌써 이곳저곳이 찌그러져 원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마초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이고, 얼굴은 보랏빛으로 변했다. 다리의 움직임도 미묘하게 느려진 게 보였다.
“헉, 헉…….”
마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몇 발짝을 걷자 등에 나무 벽이 닿았다. 맞은편에는 감녕이 부수고 들어온 자리가 있어서 바깥이 보였다.
몸을 꼿꼿이 세우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마초는 그대로 벽에 몸을 기댔다. 아주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허저가 그런 마초를 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주변에는 마초에게 당한 허저의 수하 십여 명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허저의 눈이 복수심으로 타올랐다.
“마초. 오늘 여기서 그대의 목을 취하겠다.”
탁탁탁.
허저와 감녕의 뒤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뒤를 돌아보는 우를 범하지 않고 눈앞의 마초에 집중했다.
별안간 마초가 피식 웃었다.
“내 목을 취하겠다라. 꿈이 크구나.”
“허세 부리지 마라. 그대의 무공이 고강한 것은 충분히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대의 천명이 다했다. 그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이런, 이런. 네놈들이 내 목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 주지.”
탁탁탁탁.
발소리가 커졌다. 마초는 허저와 감녕을 번갈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료가 왔다(遼來).”
발소리가 끊어졌다. 허저와 감녕은 등 뒤에서 발하는 날카로운 살기를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