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강좌호신(江左虎臣)
맹획과 감녕의 거리는 한 발을 딛고 한칼을 내지르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거리가 좁혀지자 맹획은 그대로 칼을 비스듬히 뉘어 감녕의 가슴을 찔러 갔다.
퍽!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칼이 멎었다.
맹획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감녕은 자신의 가슴께로 날아드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고 있었다. 맹획의 칼은 한쪽에만 날이 선 장도였는데, 감녕은 칼날 부분을 피해서 긴 손가락으로 칼등과 칼몸을 감싸 쥐었다. 감녕이 한 손으로 틀어쥔 칼은 맹획이 힘을 써 봐도 움직이지 않았다.
“흥, 이 녀석…….”
맹획은 이를 꽉 깨물고 칼을 고쳐 쥐었다. 강하게 돌려서 감녕의 자세를 흐트러뜨릴 참이었다.
그러나 감녕의 주먹이 날아드는 것이 더 빨랐다.
퍽!
감녕은 그대로 한 발을 크게 내디디며 세로로 세운 주먹으로 맹획의 명치께를 내질렀다. 8척 장신의 맹획이 그대로 뒤로 크게 날아가서 땅을 뒹굴었다.
“크헉!”
몸통을 제대로 맞으면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맹획은 땅바닥을 굴러 일어나려 했지만, 고통 때문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척거리며 일어나던 맹획이 이내 다시 주저앉았다.
감녕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 이번에는 얼굴을 막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단한 미남이었다.
“아직 어린 녀석이니 목숨은 취하지 않으마. 잠시 누워 있으면 괜찮을 거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맹획의 등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뛰어올라 감녕을 향해 돌진했다. 손도끼를 든 왕평이었다.
왕평의 몸놀림은 어지간한 고수라도 현혹될 만큼 빨랐지만 감녕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충돌의 순간, 왕평을 빤히 쳐다보던 감녕은 왕평의 손도끼를 피해 뒤로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반보 나섰다.
퍽!
왕평이 오른손에 든 손도끼는 허초였다. 감녕은 허초를 간파하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도끼는 허공을 갈랐다.
왕평의 노림수는 왼손으로 뽑아 든 비수였다. 그러나 왕평의 왼 손목은 감녕에게 잡혔다. 감녕이 한 손으로 왕평의 왼 손목을 쥐고 들어 올리자 왕평의 몸이 기묘하게 꺾이며 손목을 따라 움직였다. 왼 팔뚝은 손목 아래로 피가 통하지 않아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크윽, 이 녀석…….”
왕평은 다시 오른손의 손도끼로 반격하려 했지만 감녕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퍼억!
배를 차인 왕평은 1장이나 굴러갔다. 왕평은 아직 맹획만큼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 앞에 배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감녕은 휘파람을 불며 등을 돌렸다.
“자, 이제 가자. 우리의 목표물을 향해.”
“대형, 목숨을 끊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아직 어린애들 아니냐? 내버려 둬라. 뭐 저 녀석들한테 죽으면 그것도 내 팔자지.”
그렇게 말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던 감녕이 별안간 몸을 홱 돌렸다.
맹획이 칼을 질질 끌면서 핏발이 선 눈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일어났나? 보기보다 기백이 있는 놈이군.”
감녕은 진심으로 놀랐다. 키만 크고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의 투지가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 죽어…….”
콰직!
맹획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감녕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한 발을 내디디며 반대 발을 내질렀다. 다리를 쭉 뻗은 멋들어진 옆차기였다. 맹획은 칼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감녕의 발은 칼과 함께 맹획의 몸에 직격했다. 맹획은 오히려 검상만 입은 채 다시 한번 나동그라졌다.
감녕은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바로 뒤돌아서 맹획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맹획은 깊숙한 검상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나서 칼을 세웠다. 감녕은 그런 맹획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구나.”
감녕은 더 이상 웃음을 띠고 있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소년에게 경의를 표하며 집중하기로 했다. 한인인지, 남만족인지 알 수 없는 이 소년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일어나서 자신에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감녕은 맹획에게 항복이나 굴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를 바랐다. 그랬으면 자신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획은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앗!”
맹획이 기합을 내질렀다. 기합 소리는 마치 자기 자신을 깨우는 듯했다. 기합을 내지르고 칼을 다시 세우자 맹획의 눈빛이 다시 타올랐다. 숨 막히는 고통도 어느새 잊은 듯 보였다.
감녕은 그대로 맹획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부웅.
맹획의 칼이 호를 그리며 감녕에게 떨어졌다. 감녕은 아무런 보법도 취하지 않고 칼날의 궤적 안으로 그대로 걸어 들어갔다. 맹획이 내려친 5척 장도가 감녕의 어깨에 닿기 직전, 그때서야 감녕은 손날을 세워 칼날 쪽으로 뿌리듯이 휘둘렀다.
깡!
사람의 손과 칼이 충돌했지만, 쇳소리가 울렸다. 힘이 실린 손날에 옆면을 맞은 장도는 그대로 부러져서 하늘을 날았다.
상대가 맨손으로 칼을 부러뜨리는 것을 보고 맹획이 미처 경악하기도 전에, 감녕이 손가락을 쭉 펴서 반대쪽 관수로 맹획의 가슴께를 찔렀다.
푹.
“컥…….”
맹획이 마른 신음을 뱉었다. 감녕의 중지와 약지가 가슴께를 파고들어 있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감녕의 두 손가락은 두 번째 마디를 거의 가릴 만큼 깊숙하게 살 속으로 들어갔다. 근육이 많은 부분이 아니라 급소에 찔렸으면 틀림없이 즉사했을 것이다.
감녕이 손을 빼자 맹획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감녕은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몇 걸음을 걷기도 전, 다시 한번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맹획은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져 마치 곧 송장이 될 사람 같았다. 그러나 다리로는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손에는 부러진 장도를 쥐고 있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장도를 쥔 손이 하얗게 변했다.
감녕은 그런 맹획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어나면 살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다. 잘 생각해라.”
“흥, 일어날 수 있으면 일어난다. 져야 하면 진다.”
“죽는 것이 무섭지 않은가? 지는 것이 싫지 않은가?”
“흥, 난 그딴 거 모른다.”
맹획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부러진 칼을 겨누며 한 걸음씩 전진했다. 감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감녕은 그 말과 함께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맹획 또한 지지 않고 감녕에게 달려들었다. 감녕은 맹획이 휘두르는 장도를 개의치 않고 왼손을 뻗어 맹획의 관자놀이에 가져갔다. 맹획이 뻗은 부러진 장도는 감녕의 왼 팔뚝에 긴 검흔을 남겼다.
감녕은 왼손으로 맹획의 관자놀이를 고정하고, 오른손 장저로 반대쪽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퍼엉!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맹획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맹획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머리가 흔들려 실신한 것이다.
감녕은 쓰러진 맹획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숨만 붙어 있는 상태니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왼팔에 난 긴 검흔을 살폈다.
“저 실력으로 네 번이나 다시 일어나서 끝내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탐나는 녀석이군. 기절시키지 않았으면 일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났겠는걸.”
감녕은 쓴웃음을 짓고 멀어져 갔다.
겨우 몸을 수습한 왕평은 일어나려 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다리가 굳어서 일어날 수 없었다. 맹획의 무공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강했다. 파군에서 이름난 무사라는 부호를 벤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 저 잘생긴 사내는 맨손으로 그런 맹획을 너무나도 간단히 제압했다. 자신이나 맹획이 몇 명이 덤벼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보였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맹획은 계속 일어나서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도전했다. 그 모습을 본 왕평은 뭐라도 해야 했다. 판순만의 복장을 한 상대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왕평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야습이다!”
왕평이 외치는 소리는 밤의 어둠을 뚫고 포구를 울렸다.
* * *
소란이 일어나자 연회장 근처를 호위하던 마가군 병사들이 다가왔다. 대부분 용맹하기로 이름난 남만족들이었다.
감녕은 개의치 않고 계속 전진했다. 남만병들이 휘두르는 병장기는 감녕의 몸에 닿지 못했다. 감녕의 주먹과 발이 닿을 때마다 남만병들은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거나 멀리 튕겨 나갔다. 감녕이 선두에서 연 길로 판순만 복장을 한 백여 명의 금범군이 뒤를 따랐다.
연회장 앞까지 다가선 감녕을 두 사람이 막아섰다. 키가 9척이 넘는 남만족 거한과, 까치 집처럼 이곳저곳 뻗친 머리를 한 소년이었다.
얼핏 봐도 둘 다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었다.
“마초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군. 수하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다니.”
아까 자신의 앞을 막아선 맹획도 어지간한 고수였다. 감녕은 쓴웃음을 지으며 올돌골과 마대를 번갈아 응시했다.
“누가 먼저 덤빌 테냐? 시간이 없으니 둘이 같이 덤벼도 좋다.”
“닥쳐라!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기에 감히 복파장군이 계신 곳을 어지럽히느냐!”
까치머리 소년 마대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말투로 호통을 치며 창을 내질렀다. 감녕은 팔꿈치를 세워 창을 튕겨냈다.
“죽, 인, 다.”
뒤이어 올돌골이 휘두르는 도끼가 떨어졌다. 감녕은 몸을 피하고 반격하려 했지만 바로 올돌골이 왼손에 든 창이 바람 소리를 내며 찔러 왔다. 그마저 피하자 마대의 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감녕을 쓸어 왔다.
“강한 녀석들이구나. 권장으로 두 명을 상대하기는 조금 벅차군.”
감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양손을 뻗었다.
척.
척.
양옆의 부하들이 감녕의 무기를 하나씩 손에 쥐어 줬다. 무기는 마치 검과 같이 생겼지만 검날 대신 직사각형의 쇠몽둥이가 달려 있었다.
애병 사각철간을 양손에 쥔 감녕은 먼저 마대를 바라봤다.
콰직!
감녕이 가볍게 휘두른 좌철간은 마대가 창을 두 손으로 휘두르는 것보다 빨랐다. 철간이 그대로 창대를 부수고 마대의 옆구리에 닿았다.
“크억!”
강하게 후려친 것도 아니고 그냥 닿았을 뿐이다. 감녕은 상대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죽이지 않게 힘을 조절했다. 그러나 마대는 그대로 튕겨지듯 나동그라져서 바닥을 굴렀다.
뒤이어 올돌골의 창과 도끼가 덮쳐 왔다. 올돌골은 감녕과의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우세한 것처럼 창과 도끼를 강하게 휘두르며 감녕의 좌우 철간을 밀어붙였다.
“실로 장사로구나.”
감녕은 짧게 감탄했다. 올돌골은 결정타를 날리겠다는 듯 도끼를 한껏 뒤로 당겼다 감녕을 향해 휘둘렀다.
깡!
요란한 금속성이 울었다. 감녕의 우철간에 격돌한 도끼는 이가 크게 빠졌다. 날이 깨지자 자루도 강하게 흔들려서 결국 도끼는 올돌골의 오른손에서 빠져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감녕이 좌철간을 뻗었다. 올돌골은 오른손의 창으로 방어하려 했으나 감녕의 좌철간이 더 먼저 올돌골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감녕은 그대로 좌철간에 올돌골의 오른팔을 얽어서 비틀었다.
우드득!
기묘한 소리와 함께 올돌골의 어깨가 빠졌다. 어깨를 장악당한 올돌골의 몸은 감녕이 좌철간으로 휘두르는 대로 끌려 왔다. 결국 중심을 잃고 바닥을 뒹굴자 감녕은 우철간의 손잡이로 올돌골의 목울대를 내려찍었다.
뻑!
잠시 버둥거리던 올돌골도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강한 자와 싸우는 요령은 부족하군.”
감녕은 담담하게 일어섰다.
맹획과 왕평과 마대와 올돌골이 막아섰지만 감녕은 태연하게 그들 전부를 돌파했다. 특히 남만병 최강의 백부장인 올돌골이 쉽게 쓰러지는 것을 보자 용맹한 남만병들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판순만의 복장을 한 감녕의 수하 금범적들이 그런 그들을 밀어붙였다.
이제 감녕의 앞에는 나무로 된 문만이 남았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의 목표물, 마초와 비관이 연회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금범군의 미래를 위해서는 마초를 제거해야 했다.
감녕은 양손에 든 사각철간을 휘둘렀다. 철간에 맞은 문은 폭발하듯이 부서져 나갔다.
* * *
연회장 안에는 칼이 없다. 평화로운 자리이니 흉측한 병장기들 없이 입장하기로 양쪽이 합의했던 까닭이다. 그러니 감녕과 금범군들의 습격으로 바깥이 소란스러워진 후에도 연회장 안에서는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마초는 가만히 턱을 괴고 눈앞의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릉 출신의 선비를 자처했지만 그 정체는 곽가와 여건으로 추정되는, 그리고 허저가 틀림없는, 따라서 사공 조조의 밀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 세 사람이었다.
“이렇게 바깥이 시끄러운데 선생들은 동요하는 기색이 없군.”
곽가가 그런 마초를 보며 씩 웃었다. 방금 전까지 흐르던 기품은 간데없고 흰 얼굴의 불한당 같은 태도였다.
“그럴 수도 있지요. 복파장군께서는 이 먼 익주까지 와서 여기저기 원한을 많이 사고 다니셨으니 야음을 틈타 누군가 복파장군의 목숨을 노린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훌륭한 지모요, 곽욱 선생.”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운 걸로 봐서 남만병들이 꽤 고전하고 있나 보군. 어떤 놈을 끌어들였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솜씨가 좋은 모양이야. 그러니 나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군.”
마초는 곽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고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시작하지.”
팟!
마초의 말이 떨어지자 구석에 있던 허저가 몸을 일으키며 한 걸음 내디뎠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르기였다. 허저는 소매 속에서 작은 철퇴를 꺼내 손안에서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동시에 마초도 몸을 일으키며 한 걸음 내디뎠다. 칼은 없지만 벗어 둔 갑옷이 있었다. 마초는 오른손으로 사자 모양 투구를 틀어쥐고 허저를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