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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22화 (122/306)

122화. 파 전투 (2)

부호는 자신을 대적하겠다고 나서서 장도를 곧추세운 청년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키는 제법 컸지만 마른 체형이라 근골은 단단하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큰 키 때문에 청년으로 보였을 뿐,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직 소년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어린 게 틀림없었다.

“남중의 맹획… 뭐 하는 애송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후회할 것이다!”

부호는 노호성을 지르며 맹획을 향해 대도를 휘둘렀다.

“흡!”

맹획은 그대로 뒤로 보법을 밟으며 부호의 공격을 피했다. 칼은 여전히 앞으로 세운 채였다.

“이놈이!”

부호는 대도를 다시 옆으로 뉘어 휘둘렀다. 맹획은 다시 한 발 물러나며 부호의 공격을 피했다. 허공에 두 번이나 헛손질을 했으니 빈틈이 보일 법도 하건만 부호는 거대한 몸을 민첩하게 놀려 자세를 회복했다. 두호와 함께 파군 최고의 무사라고 불리던 명성은 헛되이 얻어진 게 아닌 모양이었다.

맹획은 그런 부호를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런 강적과 생사를 걸고 싸우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혹독한 대련 속에서 마초는 항상 같은 것을 강조했다.

—보기 좋으라고 눈앞에 칼을 세우는 게 아니야. 도법의 핵심은 칼과 몸이 하나가 되어 쐐기를 만드는 것이다. 네 몸으로 칼을 단단히 지탱해서 하나의 쐐기로 만들어라. 상대가 네 거리에 들어오면 바로 박아 넣을 수 있도록, 항상 중심선을 유지해라.

공격하려면 칼을 뒤로 젖히거나, 위로 치켜들어야 한다. 그러니 눈앞에 칼을 세우는 마가도법의 기본자세는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작 공격에는 불리하다.

이 자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하나. 온몸을 단단한 하나의 쐐기로 만들어 빈틈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나의 중심선이 단단하게 유지되는 한, 거리에 들어온 상대는 발을 한 발짝 내딛는 것만으로도 칼끝에 걸려 치명상을 입는다.

부호의 세 번째 공격이 날아들 때, 맹획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뒤쪽에 둔 왼발을 힘차게 밀면서 앞으로 나갔다. 칼을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내밀어진 칼은 한 발짝에 부호의 목 언저리를 찌를 것이다.

“크윽!”

부호는 출수하던 대도를 거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출수했으면 목이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장도를 제대로 배운 놈이군. 그러나 아무리 잘 배웠어도 나의 기백에 눌리면 손발이 흐트러질 터인데, 이놈은 왜 이렇게 꿋꿋한 거지?’

맹획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부호를 노려보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부호도 표정을 바꾸고 대도를 짧게 잡았다.

“어지간히 무예를 익힌 놈이구나. 오냐,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마.”

부호의 대도가 어지럽게 날았다. 동작은 이제까지보다 훨씬 작았지만 한 초, 한 초가 치명적인 급소를 파고들어 왔다. 맹획은 전후 보법으로 부호의 공격을 피하다 결국 칼을 휘둘러 쳐낼 수밖에 없었다.

“쐐기 자세를 완성하는 게 쉬운 줄 아느냐? 네놈처럼 짧은 공력으로는 어림없다.”

쐐기 자세는 정면의 공격에는 극단적으로 강하지만, 긴 병장기를 든 상대가 옆으로 돌아서 칼부터 쳐내면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부호는 조금씩 횡보를 밟으며 미묘한 각도에서 맹획이 세운 칼날을 쳐내기 시작했다. 대도가 닿을 때마다 맹획의 칼날이 크게 흔들렸다.

부호에게 승기가 보였다. 부호는 옆으로 크게 돌아 맹획이 세운 칼날을 아예 접어 버리려는 생각으로 대도를 휘둘렀다.

챙!

그러나 맹획은 부호의 생각과는 달리 움직였다. 부호의 품 안으로 뛰어들며 장도의 칼날을 아예 수직으로 세워 대도를 받아냈다. 두 사람의 병장기가 얽히고 순식간에 숨결이 닿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부호는 힘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대로 키만 큰 맹획을 밀어붙이고 제압하려 했다.

그리고 부호의 그런 의지가 칼날을 타고 맹획에게 전해졌다.

“흡!”

맹획은 손에 쥔 장도를 위로 쳐들었다. 부호가 쥔 칼은 맹획의 장도에 같이 딸려 올라갔다. 맹획은 그대로 칼을 한 바퀴 돌렸다. 부호의 대도와 맹획의 장도가 허공에서 크게 반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더 안쪽에 있는 것은 맹획의 칼이었다.

퍽!

맹획의 횡베기가 부호의 몸통을 치고 지나갔다. 선혈이 튀었다.

“크윽…….”

부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칼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상대의 힘의 방향을 미리 파악하는 청경(聽經)이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시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절초였다.

몸통의 상처가 깊은 걸 보자 부호는 다시 한번 노호성을 질렀다. 승패는 기울었지만 혼자 죽고 싶지 않았다. 대도를 치켜들고 맹획을 향해 내리쳐 갔다. 자신의 몸이야 어찌 되든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푹!

어느새 쐐기 자세로 돌아온 맹획은 그대로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디뎠다. 칼끝은 그대로 부호의 목을 뚫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맹획을 내려치려던 대도는 그대로 힘없이 늘어졌다. 맹획은 부호의 몸에 손을 대고 힘껏 밀어젖혔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근육질의 거체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맹획은 그제야 손이 격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강적과의 첫 싸움에 대한 흥분으로 인한 떨림은 승리를 거둔 다음에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멀찌감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초가 맹획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했다, 맹획. 열심히 하더니 많이 늘었구나.”

“나, 나는…….”

그저 복파장군이 알려준 대로 매일 연습했을 뿐. 그러니 오늘의 승리는 모두 복파장군의 가르침 탓.

맹획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묘한 쑥스러움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힘겹게 말을 꺼내자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흥,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의 상대에게 애를 먹다니.”

“으하하, 솔직하지 못한 녀석!”

마초는 크게 웃으며 맹획의 어깨를 두드리고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외쳐라! 맹획 두령이 적장 부호의 목을 벴다! 두호와 부호가 모두 죽었다!”

“맹획 두령이 부호의 목을 벴다!”

“두호와 부호가 모두 죽었다!”

육백 명이라면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육백 병사들이 일제히 외치자 호구곡의 하늘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외침에 담긴 높은 사기는 판순만의 병사들에게도 전해졌다. 판순만의 숫자는 마가군의 두 배가 넘었지만, 점점 전의가 꺾이고 있었다.

판순만의 전의를 꺾는 것은 부호의 죽음 말고도 또 있었다. 전사한 두호가 있던 개활지 쪽의 전황도 갈수록 불리하게 돌아갔다.

“헉, 헉, 그만 좀 오라고!”

장료는 아예 무릎을 짚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둘러싸고 주춤거리던 판순만 병사들은 장료가 지친 듯 보이자 하나둘씩 달려들어 기습하기 시작했다.

푹!

“끄아악!”

그러나 모든 공격이 허사였다. 장료는 적병이 채 한 발짝을 내딛기도 전에 엉뚱한 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면 잠시 후 적병은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장료는 정확히 적병의 빈틈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저… 저놈은 방술사인가?”

“그게 아니라 잘 보면 어디로 휘두를지 보인다니까, 이 녀석들아.”

장료는 판순만 병사들을 향해 혀를 찼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죽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냐? 너희들도 이만큼 했으면 됐다. 병장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우리 복파장군은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장료의 말을 들은 판순만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병장기를 내려놓는 병사들이 생기고, 몇몇 소두령들이 악을 쓰며 병사들의 동요를 막았다.

그때, 판순만 대열의 뒤가 소란스러워졌다.

“대두령이다!”

“대두령이 직접 오셨다!”

후방에 있던 대두령 원약이 직접 나섰다. 손에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한인들처럼 말까지 타고 있었다.

“용맹한 파족의 전사들이여! 침략자에게 굴하지 말고 싸워라! 물러서는 자는 이 원약이 직접 목을 칠 것이다!”

원약의 목소리는 그 어떤 독전관의 외침보다도 위엄이 있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판순만 병사들은 다시 한번 마가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마가군에서 말 한 기가 원약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 나갔다. 사자 투구에 달린 흰 술이 바람에 나부껴 뒤로 젖혀질 만큼 빠른 속도였다.

두두두두.

판순만 병사들은 달려오는 한 기를 향해 일제히 창과 도끼를 내밀었다. 그러나 절영을 탄 마초는 그들을 무시하고 호구곡 옆의 가파른 비탈을 타고 달렸다. 절영은 비탈을 타고 비스듬히 달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마초는 순식간에 판순만 병사들의 대열을 우회해서 원약의 앞에 나타났다.

“저, 저럴 수가!”

“말을 저렇게 타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신기에 가까운 기마술에 모두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원약은 황급히 도끼를 들어 마초를 향해 내리쳤다.

탁.

마초는 창칼을 뽑아 들지도 않고 맨손으로 도끼의 손잡이를 중간에 잡아챘다. 도끼는 너무나도 쉽게 원약의 손에서 마초의 손으로 옮겨갔다.

“병법을 전혀 모르는 놈이군. 장수는 독전을 하지 않는다. 총지휘관이 직접 도망병의 목을 베야 할 정도면 이미 끝난 싸움이니 그냥 항복하는 게 옳아.”

“닥쳐라, 이놈!”

원약은 칼을 뽑아 마초를 찌르려 했으나, 마초는 그 전에 도끼날 뒤쪽의 뭉툭한 부분으로 원약의 투구 쓴 머리를 내려쳤다.

깡!

“크억!”

쇠가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원약은 말에서 떨어져 그대로 머리부터 땅에 곤두박질쳤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게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초는 도끼를 내던지고 몸을 한껏 기울여 원약의 갑옷 끈을 잡아챘다.

“으랏차!”

나관중이 만들어 준 단단한 등자에 발을 기대고 한 번 힘을 쓰자 원약의 몸을 그대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마초는 축 늘어진 원약을 어깨에 걸머지고 외쳤다.

“원약을 잡았다! 판순만은 전부 무기를 버려라!”

“무기를 버리는 자는 해하지 않는다!”

호랑이의 입이라 불리는 호구곡으로 쳐들어온 적들은 복병에 걸렸지만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돌파했다. 파군에서 상대가 없다는 두호와 부호는 각각 투장 중에 죽고, 대두령 원약은 병사들의 눈앞에서 생포되었다. 이제 판순만 병사들에게 전의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육백 명의 마가군이 천삼백에 달하는 판순만을 무너뜨렸다. 마가군은 병장기를 놓은 판순만 병사들을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싸움이 벌어지던 호구곡 옆의 넓은 개활지에 마가군의 군기가 올랐다. 마초는 군기 앞에 호상을 놓고 앉았다. 나관중과 비관, 장료, 맹획을 비롯한 장수들이 그 옆에 시립했다.

마초는 포박당한 원약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냈다. 이제부터 비가를 습격하고 비가의 가노들을 납치한 이유에 대해 물어볼 참이었다.

“원약.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알고 싶은 게 뭐냐?”

“어째서 비가를 습격한 것이냐?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말해라.”

“그건… 말하자면 긴 얘기다.”

“천천히 얘기하라.”

“알았다. 일단 이번 일의 시작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나보다 다른 부하의 입을 빌리는 게 나을 것 같군.”

“불러와서 설명하게 해라.”

“알았다. 평, 이쪽으로 나와라.”

원약이 이름을 부르자 판순만 병사들 사이에서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초라한 행색에 제멋대로 자란 더벅머리가 눈을 덮고 있는데, 눈 밑으로 드러난 얼굴을 보면 14,5세 정도의 소년으로 보였다. 평이라고 불린 소년은 쭈뼛거리며 나와서 마초의 옆에 부복했다. 마초는 턱을 괴고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데 어린 부하까지 부를 작정인 거지? 평이라고 했나? 얘기해 봐라.”

평은 마초의 말을 듣고도 말이 없었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을 깬 것은 원약이었다.

“평. 마초를 죽여라.”

팟!

원약의 말이 떨어지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평은 땅바닥을 박차며 마초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소년의 몸이라고 믿기 힘든 속도였다. 십 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마초의 시야에 소년의 더벅머리가 가득 들어올 무렵, 평은 품 안에서 손도끼를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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